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9일 기도

28 2020.06.22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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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 9일 기도

기  간: 2020년 6월 17일(수)-25일(목)

방  법: 미사 전·후 기도문 함께 봉헌

기도문: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가톨릭 기도서 109면 / 매일미사 191면)

지  향:

6월 17일(수) -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회심을 위하여

6월 18일(목) - 북한과 미국, 남한의 정치 지도자들을 위하여

6월 19일(금) - 한반도의 비핵화와 핵무기가 없는 세계를 위하여

6월 20일(토) - 경제제재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하여

6월 21일(일) - 남과 북의 복음화를 위하여

6월 22일(월) - 이산가족과 탈북민들을 위하여

6월 23일(화) - 한반도의 진정한 용서와 화해를 위하여

6월 24일(수) - 평화의 일꾼들을 위하여

6월 25일(목) - 한반도에서 종전이 선언되고 평화체제가 실현될 수 있도록

 

6월 17일(수)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회심을 위하여

첫째 날,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회심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를 구하는 기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평화를 지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보기 좋으시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면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평화롭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평화로운 세상을 유지, 발전시킬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반대로 흘러가는 듯 보여 집니다. 세상이 말하는 평화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폭력과 분열을 조장합니다. 힘과 지배의 논리가 진리로 둔갑합니다.

우리는 압니다. 참된 평화는 세상이 강요하는 평화가 아니라 하느님께 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며 ‘보시니 좋았다’라 말씀하시는 하느님 눈에
드는 평화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참된 평화가 가족과 이웃, 사회와 우리 민족, 더 나아가 온 세상에 이루어지도록 마음을 모아 기도하며 평화를 이루는 도구가 되도록 우리 자신을 봉헌하도록 합시다.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그리스도님, 저희에게 평화를 주소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를 바치고 주모경, 또는 묵주기도를 바칩니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

○ 사람을 당신의 모습대로 지어내신 주님,
    저희가 모두 주님을 닮게 하소서.
● 사랑으로 하나 되신 주님처럼
    저희가 서로 사랑하여 하나 되게 하소서.
○ 평화를 바라시는 주님,
    이 나라 이땅에
    잃어버린 평화를 되찾게 하소서.
● 한 핏줄 한 겨레이면서도 서로 헐뜯고 싸웠던
    저희 잘못을 깨우쳐주소서.
○ 분단의 깊은 상처를 낫게 하시고
    서로 용서하는 화해의 은총을 내려주소서.
● 인류의 일치를 바라시는 주님,
    갈라져 사는 저희 겨레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소서
○ 저희의 무관심을 깨닫게 하시어
    겨레의 일치를 위하여 열심히 일하게 하시고
    가진 바를 나누게 하소서.
●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며
    평화 통일을 이룩하게 하소서.
○ 온 겨레가 주님을 믿어
    이땅에 주님의 나라를 이루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 평화의 모후시여,
●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한국의 모든 순교 성인이여,
●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6월 18일(목)

 북한과 미국, 그리고 남한의 정치 지도자들을 위해서

둘째 날, 북한과 미국, 그리고 남한의 정치 지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그러니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어느 누가 이렇게 큰 당신 백성을 통치할 수 있겠습니까?”(1열왕 3,9)

성경은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야말로 백성을 이끌어야 하는 통치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설명합니다.
솔로몬은 그 분별의 능력이 잘 들을 수 있는 ‘마음’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지혜의 왕은 진리이신 하느님의 음성을 잘 들을 수 있는 마음, 자신에게 맡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을 수 있는 마음을 청했던 것입니다.

난관들을 극복하고 어렵사리 대화를 이어가던 북미 관계가 하노이 회담 이후 교착상태에 빠진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국내에서도 대북정책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강해지는 상황을 보면서 한반도에 불었던 평화의 바람이 멈추고
또다시 군사적 대결과 같은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의 비극적인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절대로 놓칠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평화를 믿는 교회는
적대적인 분단구조 안에서 서로를 미워하고 두려워했던 고통과 악을 극복하기 위해 더 간절히 노력해야 합니다.
이 순간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정치 지도자들에게 하느님의 지혜가 내려지기를 기도합니다. 평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호소를 듣는 마음,
사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지혜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도록 기도합시다.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그리스도님, 저희에게 평화를 주소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를 바치고 주모경, 또는 묵주기도를 바칩니다.

                          6월 19일(금)

한반도의 비핵화와 핵무기가 없는 세계를 위하여

셋째 날, 한반도의 비핵화와 핵무기가 없는 세계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평화는 결코 권력과 공포로 이루어지는 균형으로만 평가 절하되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이들에 대한 위협은 그들의 지위를 격하하여 대상화시키고 그들의 존엄을 부정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고조되는 위협과 무절제한 무기 확산이 윤리에 어긋나며 참 평화의 추구를 거스르는 일임을 우리는 다시 한번 선언합니다.” (교황 프란치스코 <제52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이 땅의 참 평화를 바라시는 주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평화가 너희와 함께’이듯이 우리 남과 북 한민족에게도 평화를 이룰 수 있는 은총을 내려주소서. 세계의 모든 나라 지도자들이 무기로는 항구한 평화를 이룰 수 없음을 깨닫게 해주소서. 그리하여 이 땅에 힘이 아닌 사랑을,
무기가 아닌 나눔을, 전쟁이 아닌 평화가 정착할 수 있도록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이 땅에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손에서 무기를 내려놓는 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함을. 평화의 임금이신 그리스도여, 세상에 당신의 평화를 깃들게 하시어, 어디서나 구원을 주시는 당신의 현존을 더욱 명백히 깨달을 수 있게 해 주소서. 그리하여 바오로 사도가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마십시오.”(로마 12,17)라고 하신 말씀의 심오한 진리를 깨달아, 악을 악으로 갚는 전쟁과 폭력이라는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악에 굴복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 내는 것임을 이 땅의 모든 이들이 깨닫게 해 주소서.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그리스도님, 저희에게 평화를 주소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를 바치고 주모경, 또는 묵주기도를 바칩니다.

 

                       6월 20일(토)

경제제재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하여

넷째 날, 경제제재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제재들의) “참된 목적은 협상과 대화의 길을 열어 주는 것이다. 제재가 결코 국민 전체에 대한 직접적 처벌의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 전체, 특히 그 가장 취약한 구성원들이 그러한 제재로 고통받게 되는 것은 정당한 일이 아니다. 특히 경제제재는 지극히 신중하게 사용되어야 하는 수단이며, 엄격한 합법적 윤리적 기준을 따라야 한다. 경제 봉쇄는 기간이 한정적이어야 하며, 그에 따른 효과가 뚜렷하지 않을 때는 정당화될 수 없다.” ("간추린 사회교리", 507항)

북한은 국제사회로부터 오랜 시간 동안 그리고 지금도 경제제재를 받아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제재는 교회의 가르침에서 말하듯,
“협상과 대화의 길을 열어 주는” 목적으로 “한정적”이어야 합니다. 제재가 위협을 방지하는 일시적 방법일 수 있으나, 그것이 만성적으로 계속될 때는 회복 불가능한 재앙으로 우리에게 돌아올 수 있습니다.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이웃인 북한 주민에게 극심한 고통이 기약 없이 이어진다면, 그것은 하나 됨을 저해하는 분명한 요인이 될 것입니다. 외부의 통제에 의해 고통을 겪는 이들은 국가 지도자 그룹이 아닌 작고 약한 이들입니다. 그들을 향하여 복음적 시각으로 인도적 지원을 도모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과제입니다. 먼 훗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물으실 것입니다. ‘너의 형제인 북한 주민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어떤 노력을 하였느냐.  제재는 반드시 더 나은 결실을 얻기 위한 과정일 때에만 참된 의미를 지닐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제재가 개방과 대화로 이어지지 않았음을 기억합니다. 제재의 결과는 더욱 위협적인 무기의 증강과 무엇 보다도 극심하게 고통받는 이들의 증가였습니다. 북녘땅에서 경제제재로 인한 절대적 가난이 사라질 때, 오히려 한반도의 위협은 줄어들 것이고 평화가 증진될 것입니다. 일치의 대상인 북한 주민들을 향한 연민의 마음으로 남과 북, 국제사회의 지도자는 물론 우리 자신의 회개를 위하여 주님의 은총을 청합시다.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그리스도님, 저희에게 평화를 주소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를 바치고 주모경, 또는 묵주기도를 바칩니다.  

 

6월 21일(일)

남과 북의 복음화를 위하여

다섯째 날, 남과 북의 복음화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이 세상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교회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상처 입고 피 흘리는 인간들을 돌보아 주시는 ‘착한 사마리아인’으로서, 그리고 구불구불한 길에서 목표 없이 방황하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찾아 나서시는 ‘착한 목자’로서 당신의 사명을 계속하십니다. 하느님 덕분에, 수많은 의미있는 경험들에서 복음의 변화시키는 힘을 계속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중략)… 우리는 또한 편협함, 갈등, 인종주의, 부족주의를 극복하는 데에 복음이 어떠한 도움을 주는지, 그리고 모든 곳에서, 무엇보다도 화해, 형제애 그리고 나눔을 증진하는 데에 복음이 어떠한 도움을 주는지 확인시켜 주는 무수히 많은 증언들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교황 프란치스코, <2017년 전교주일 담화문>)

우리가 희망하는 평화적인 한반도의 미래상은 남과 북의 체제와 영토가 하나로 어우러지고 그 속에서 모든 사람이 일치를 이루는 모습입니다.
남과 북의 노력으로 종전선언과 평화체제 구축이 가시화되는 목전에서 아쉬움을 삼키기도 했습니다. 한반도의 체제와 영토가 평화적으로 통일되기까지는 아직 하느님의 때를 더 기다려야 할 듯 보입니다. 그러나 남으로 유입되는 북한이탈주민이 점점 증가하면서 남과 북의 사람들이 통일의 모습을 이뤄가는 일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 다른 체제와 문화 속에서 살아온 남과 북의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며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마련하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그동안 교회는 북한지역의 복음화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며 어려운 북한지역을 도우면서 북녘땅을 복음으로 변화시키려는 자세를 유지해왔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 다른 체제와 이념으로 대립했던 남과 북에 평화를 자리 잡게 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복음화뿐만 아니라 남한에도 복음화가 필요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는 같은 체제에서 살아온 남쪽 사람들 안에도 갈등과 대립이 깊이 뿌리내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갈등과 분열이 만연했던 세상 곳곳에서 화해와 일치를 지향하는 복음의 가치는 빛을 발해왔습니다. 남과 북에서, 그리고 남과 남에서 이념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대립해왔던 과거 상태를 극복하고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평화의 때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한반도 전체의 복음화를 위해서 기도합시다.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그리스도님, 저희에게 평화를 주소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를 바치고 주모경, 또는 묵주기도를 바칩니다. 

 

6월 22일(월)

이산가족과 탈북민들을 위하여

여섯째 날, 이산가족과 탈북민들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중략)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마태 25, 35-40 참조)

전쟁과 분단의 과정에서 가장 큰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이산가족들입니다. 고향을 떠나 사랑하는 가족들과 헤어짐의 아픔을 겪고 있는 그들의 고통은 시간이 흐를수록 가중되고 있습니다. 이미 마음속의 응어리를 품고 세상을 떠나는 1세대 이산가족들이 늘고 있고, 남아 있는 대부분 사람들도 내일을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 있습니다. 이산의 아픔을 지닌 모든 사람이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만남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남북 교류협력의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남북 대결구도 속에 탈북하여 제3국을 떠도는 이들과 대한민국에 정착하여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여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 역시도 또 다른 형태로 이산의 아픔을 겪는 우리의 형제요 자매들입니다.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온갖 수모와 고통을 겪는 탈북민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더불어 북한이탈주민으로 이방인처럼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그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도움으로써 다가올 통일시대를 그들과 함께 앞서 살아 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 마음 둘 곳 찾지 못해 방황하며 아파하는 우리의 이웃들을 기억하며 주님의 자애로운 보살핌과 은총을 청합시다.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그리스도님, 저희에게 평화를 주소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를 바치고 주모경, 또는 묵주기도를 바칩니다. 

 

6월 23일(화)

한반도의 진정한 용서와 화해를 위하여

일곱째 날, 한반도의 진정한 용서와 화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에페 4, 31-32)

화해의 첫 출발점은 현재 직면한 갈등 상황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그해결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개방적이며, 적극적인 자세로 끌어안는 자세입니다. 일치는 서로의 다름을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는 이러한 화해로부터 시작됩니다. 일치는 인류가 보편적으로 지향하는 가치를 ‘오늘, 이 땅’에 꽃피우는 한민족 공동 노력의 모든 수단과 방법에서 구현되어야 합니다. 그 가치는 인간과 생명의 존엄성에 기반한, 진정한 공존과 번영 및 공동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비단 한반도의 갈등과 위기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약자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조차 포기하고, ‘포용과 화합’의 가치를 ‘배척과 지배’라는 야만적인 가치로 되돌리는 오늘날의 흐름에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랑과 용서의 마음을 품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나누고 실천하며, 새로운 하늘과 땅을 지금 여기에 증거 해야 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를 통해 용서와 일치로부터 발해지는 기적이 증거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그리스도님, 저희에게 평화를 주소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를 바치고 주모경, 또는 묵주기도를 바칩니다.

6월 24일(수)

평화의 일꾼들을 위하여

여덟째 날, 평화의 일꾼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사람을 당신의 모습대로 지어내신 주님, 저희가 모두 주님을 닮게 하소서.

사랑으로 하나 되신 주님처럼 저희가 서로 사랑하여 하나 되게 하소서.

평화를 바라시는 주님, 이 나라 이 땅에 잃어버린 평화를 되찾게 하소서.

한 핏줄 한 겨레이면서도 서로 헐뜯고 싸웠던 저희 잘못을 깨우쳐주소서.

분단의 깊은 상처를 낫게 하시고 서로 용서하는 화해의 은총을 내려주소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 中)

예수님께서는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마태 5,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1)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사랑의 나라로, 미움, 분열, 증오가 없습니다. 평화, 행복, 기쁨, 일치의 상태가 이미 하느님 나라를 사는 것입니다. 남북 전쟁 이후 아직도 우리는 좌익, 우익의 색깔론을 펼치며 서로가 서로를 비방하고, 같은 사건을 두고도 서로의 관점에서 다양하게 해석하며 싸움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계속적으로 분열을 일으키고 결국 절망만을 남기게 됩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더이상 미움과 다툼, 전쟁으로 아프지 말자고, 우리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세상을 물려주자고 평화를 외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지치지 않도록 기도하며, 우리도 자신의 아집과 오만을 버리고 용서와 사랑을 실천합시다. “사랑으로 하나 되신 주님처럼 저희가 서로 사랑하여 하나 되게 하소서.”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그리스도님, 저희에게 평화를 주소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를 바치고 주모경, 또는 묵주기도를 바칩니다. 

 

6월 25일(목)

한반도에서 종전이 선언되고 평화체제가 실현될 수 있도록

아홉째 날, 한반도에서 종전이 선언되고 평화체제가 실현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악을 꾸미는 자들의 마음에는 속임수가 들어 있지만 평화를 권유하는 이들에게는 기쁨이 있다.”(잠언 12,20)

폭력이 일상화된 가정의 아이들은 늘 어둠을 안고 살아갑니다. 말도 행동도 위축되고 폭력의 두려움에 늘 불안합니다. 폭력이 내면화되기도 하고, 사랑하기보다 적대하는 감정을 먼저 배웁니다. 평화로운 가정의 아이들은 밝습니다. 자유롭게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눈치를 보지 않고 사랑하며 삽니다. 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고, 미움보다 사랑을 먼저 배웁니다. 우리나라는 어떤 가정일까요? 우리는 어떤 나라의 자녀들일까요?

한반도는 전쟁을 쉬고 있는 상태입니다. 언제든 끔찍한 70년 전의 상태로 갈 수 있는 불안함을 안고 살고 있습니다. 겉으로 평화롭게 보이지만, 폭력의 한 가운데서 외줄 타기를 하듯 위태롭게 살아왔습니다. 폭력이 일상화된 가정의 아이들처럼 말입니다. 분단체제가 더 편안한 이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평화보다 분단이 훨씬 이로운 이들이 있습니다. 불안이 오히려 편안한 이들이 있습니다. “악을 이루는 자의 속임수”가 분단체제를 유지했습니다. “평화를 권유하는 이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폭력적인 분단체제가 기쁨의 평화체제로 바뀌길 소망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위축되고 불안한 마음이 아니라, 자유롭고 밝은 마음으로 더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그리스도님, 저희에게 평화를 주소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를 바치고 주모경, 또는 묵주기도를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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