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전통과 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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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전통과 계명

 

창세 1,20-2,4ㄱ; 마르 7,1-13

연중 제5주간 화요일; 2019.2.12.; 이기우 신부

***** 오늘 신부님의 사제 서품 31주년을 맞아 조촐한 축하식을 가졌습니다.
        " 신부님 축하드립니다."

육지의 지형을 축소해서 그린 지도나 바다의 해류와 암초를 표시한 해도가 발달하지 못하고 나침반이 생겨나기 이전의 옛날에는 북극성을 기준으로 방향을 잡고 위치를 짐작하며 항해해야 했기 때문에 먼 바다를 나가기가 어려웠습니다. 맑은 밤에만 북극성을 관찰할 수 있었기 때문에, 흐린 밤이나 낮에는 도무지 방향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는  위를 떠도는 정지 위성들이 작동하고 있어서 자신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범지구위치결정시스템을 통해 먼 바다는 물론 하늘이나 육지에서도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있고 가고자 하는 방향을 잃어버리지 않고 이동할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자동차에도 네비게이션이라고 줄여서 부르는 GPS가 장착되어 모르는 길을 갈 때에도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 장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준점과 방위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류의 역사나 사회의 진로 또는 개인의 인생 길에 있어서도 기준이 있으니 그것은 하느님의 계시 진리요 이를 해석해 주는 종교의 교리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유다인들이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아 지켜온 전통과 예수님의 생활방식이 충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건의 발단은, 예수님의 제자 몇 사람이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고 있는 모습을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보고 예수님께 따져물은 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본시 유다인들의 전통이란 유다교의 종교 관습을 뜻하는 것이고, 아브라함과 모세 이래 하느님의 계시를 받은 이들이 이 계시를 해석하여 잘 지키도록 관습으로 만든 것이 대대로 내려오면서 형성된 것입니다. 애초에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계시해 주신 진리와 이를 지킬 수 있도록 종교 지도자들이 해석한 계명 교리가 전통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역사적 상황이 변천하면서 계시 진리를 변화된 환경에서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계명 교리가 곡해되거나 과도하게 변형되면, 계명 교리가 계시 진리의 본래 목적대로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방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지적으로나 영적으로 모자라거나 지나치거나 해서 걸림돌이 될 수가 있습니다. 

유다인들이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는 관습은 본시 건조한 기후여서 먼지가 많기 때문에 위생적인 이유 때문에 생겨났을 것이나 여기에 죄를 씻는다는 종교적인 해석이 곁들여져 온 것이 조상들로부터 내려온 무슨 거창한 관습처럼 되었습니다. 씻어야 할 것은 손만이 아니라 잔이나 단지나 놋그릇 같은 식기류나 침상도 있었습니다. 위생을 생각하면 당연하고도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땅에는 먼지도 많았지만 물도 귀했기 때문에 외출했다가 돌아와서 일일이 씻는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유랑하며 설교하는 예수님 일행으로서는 끼니를 해결하는 일도 어려운데다가 씻을 물까지 챙길 수가 없는 형편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위생상의 이유로 걱정해서가 아니라 종교적인 이유로 트집을 잡았습니다. 

 

그래서 보다 못한 예수님께서 그들의 위선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네들은 계시 진리에 속하는 부모 공경은 소홀히 하면서도 사소한 관습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기준을 명확히 확인하지 않으면 자신의 현 위치는 물론 가야할 방향도 정확하게 잡기 어려운 것처럼, 관습이 왜 그리고 무슨 목적으로 생겨났는지를 확인하지 않으면 언제라도 생겨날 수 있는 시행착오였습니다. 

 

일찍이 18세기에 독일에서 근대 계몽주의를 정점에 올려놓았다고 평가받는 이마뉴엘 칸트는 “참으로 경탄스러운 것이 두 가지 있으니, 하나는 밤 하늘에 빛나는 별이요 다른 하나는 마음 안에서 빛나는 도덕율”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도덕율은 양심을 말합니다. 사람마다 마음 속에 새겨져 있는 양심이라는 기준은 하느님과 통하는 영혼의 통로입니다. 그 옛날에 밤 하늘에 빛나는 별을 보고 특히 북극성을 기준 삼아서 배들이 항로를 잡아 나아갈 수 있었듯이, 사람들은 각자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양심의 명령과 질서에 따라서 살아감으로써 죄로부터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종교의 교리는 사람들이 지닌 양심이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계시 진리에 따라 더 충실하고 밝게 살아갈 수 있도록 양심을 강화시켜 주는 기능을 합니다. 사람들의 양심이 마비되거나 병들었을 때에도 종교의 교리를 실천하려는 신앙의 힘이 양심을 강화하거나 치료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하느님을 닮도록 창조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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