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238

본문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이사 60,1-6; 에페 3,2.3ㄴ.5-6; 마태 2,1-12

주님 공현 대축일; 2019.1.6.; 이기우 신부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아무도 모르게 베들레헴의 외양간에 탄생하신 구세주를 저 멀리서 동방박사들이 찾아와서 경배하는 바람에 그분의 성탄이 알려지게 되었고 그래서 이를 공현 사건으로 봅니다. 마태오가 전해주는 이 동방박사 이야기 속에는 그리스도인이 구도자로서 구세주를 찾아 경배하기 위한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1. 떠나다

동방박사들은 동방에서 전해 내려오던 점성술에도 조예가 깊었습니다. 점성술은 지구에 큰 인물이 태어나면 그를 알리는 큰 별도 함께 생겨난다는 전설을 신봉하는 일종의 민간신앙이었습니다. 그런데 서로 다른 곳에서 별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세 명의 동방박사들이 거의 동시에 이 큰 별을 발견하고는 의기투합하여 새로 태어나신 큰 인물을  함께 찾아가기로 결정하였습니다. 

 

2. 사막을 건너다

동방박사들은 지금의 이라크가 위치한 페르시아 지방에서 살던 사람들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들이 관찰한 바로는 그제까지 없었던 큰 별이 남서쪽 이스라엘 땅 방향에 떠 있었습니다. 길을 떠나기로 한 그들은 재산을 모두 처분하여 구세주께 드릴 예물과 낙타를 샀습니다. 사막을 건너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로부터 사막에는 대상(隊商)들이 상단을 꾸려 다니고 있었고, 동방박사들이 이들 무리에 합류하여 낮에는 무덥고 밤에는 추운 사막을 건넜습니다. 캄캄해서 별들만 반짝이는 사막의 밤하늘에서 그 큰 별은 동방박사들을 잘 이끌어주었습니다. 

 

4. 예루살렘에서 길을 잃다

페르시아에서 이스라엘에 이르는 길은 이미 예로부터 대상들이 다니던 무역로였으나 예루살렘 근처에서 그 별을 잃어버렸습니다. 도시의 불빛이 워낙 많고 밝았기 때문입니다. 

 

5. 성서에 길을 묻다

할 수 없이 동방박사들은 헤로데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러나 헤로데는 학자들을 불러 구세주께서 태어나시리라고 예언되어 있는 고을이 어디인지 알아보게 했습니다. 학자들은 성서 구석구석을 뒤져서 미카 예언서에서 베들레헴이 언급되어 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물어오기 전까지는 학자들도 주목하지 않았던 대목이었습니다. 이들 덕분에 헤로데까지도 구세주께서 탄생하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6. 경배하다

헤로데의 말을 듣고 떠난 동방박사들은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을 비추던 별빛이 다시 나타나더니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춘 것을 보고 아기를 찾아 경배했습니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바쳤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쇠붙이인 황금은 태어나신 아기가 왕 중의 왕이시기 때문에 그 귀한 품위를 상징하기 위한 예물이었습니다. 유향은 태어나신 아기가 세속적인 왕권을 휘두르실 분이 아니라 대사제로서 자기 일생을 백성을 위해 바치실 분이기 때문에 그분의 뜻을 유향 연기처럼 하늘로 피워 오르게 하기 위한 예물이었습니다. 몰약은 태어나신 아기가 대사제로서의 임무를 영광 중에 평화로이 수행하실 분이 아니라 십자가 죽음으로 수행하실 것이기 때문에 그분  시신에 발라드릴 예물이었습니다. 이 세 가지 예물은 동방박사들이 온 재산을 팔아서 마련한 귀한 보물이었습니다. 

 

7. 선포하다

구세주를 찾아 경배한 동방박사들은 꿈에 나타나서 경고한 천사들의 도움으로 헤로데를 피해 돌아갔습니다. 헤로데가 아기 구세주를 죽이려는 사악한 음모를 꾸미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향으로 돌아간 그들은 자신의 삶으로 돌아왔지만 세상에 오신 구세주를 섬기는 백성으로서 살아갔습니다. 매우 극적으로 예수님을 만나서 사도가 된 바오로도 구세주를 만방에 알리는 선교사로서 살아갔는데, 그러한 선교의 활력은 바로 그가 만났던 구세주께서 주신 기운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민족들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되리라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에 남은 생애를 기꺼이 바친 것입니다. 

 

8. 일어나 비추어라

신앙인들이 세상에 오신 구세주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그 실천 행동이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빛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사야의 메시지는 구세주만을 향한 말씀이 아니라 구세주를 경배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일어나 비추어야 합니다! 땅을 덮고 있는 어둠과 겨레들을 덮고 있는 암흑을 밝게 비추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옆에 보이는 그리스도인들은 바짝 엎드려 꼼짝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伏地不動, 伏地眼動의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비겁함만 보입니다. 

 

9. 우리의 신앙생활은 구도적인가?

지금으로부터 백 사십 여 년 전에 태어난 프랑스 가톨릭 신자 피터 모린은 미국으로 건너와서 막노동을 하면서도 오로지 가톨릭 사회철학으로 세상을 바꾸는 데에만 골몰했던 인물로서, 도로시데이를 감화시켜 가톨릭 일꾼 운동을 시작하게 만든 평신도 사상가입니다. 그는 가톨릭 신앙이 골수에 박힌 그리스도인으로서, 사회와 경제, 정치질서가 그리스도교의 복음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는 점이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만, 저는 그가 지녔던 우리 사회의 문제인식에 동의하면서도 한 가지를 더 보태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이 모든 사태에 대한 해결책을 담고 있는 복음을, 그 영적 다이나마이트를 단단히 묶어서 가두어두고 있는 성직자들의 한심한 보신주의 내지 관료주의 못지않게 그 멍청한 교회 관료들의 장단에 놀아나고 있는 평신도의 아마츄어리즘 또한 답답하기 짝이 없는 교회 쇄신 대상으로 겨냥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최후의 심판 법정에서 평신도라고 해서 하느님께서 봐주실 이유가 하등 없는데도 말이지요. 

 

10. 조선의 동방박사, 강완숙 골롬바

이 대목에서 한국의 가톨릭 그리스도인들에게 귀감이 되는 또 한 사람의 동방박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지금보다도 모든 신앙생활의 조건이 미비하기 짝이 없었던 한국 천주교회사의 초창기에 활약했던 여성 지도자 강완숙 골롬바가 그 사람입니다. 충청도 예산의 덕산 고을에 사는 홍지영의 후처로 들어간 그는 시댁 친척 홍낙민을 통해 천주교 신앙을 접했습니다. 그는 골롬바라는 세례명으로 입교한 후 천주교 교리를 통한 진리에 빠져들었습니다. 

 

제사금지령으로 인한 진산 사건이 일어난 1791년에 충청도를 관할하던 관찰사 박종악은 예산과 천안에 걸친 호동리의 경우 100여 호 가운데 천주교에 물들지 않은 가정은 20여 호뿐이라고 정조 임금에게 보고하면서, 이곳에서는 마을 공동 제사를 폐지한 지가 여섯 해나 되었다고 했습니다. 조상 제사를 유교식으로가 아니라 천주교식으로 지내고 있는 사람이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만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또 예산과 천안에 이어 덕산까지 조사하느라고 강완숙의 집안을 세심히 살핀 박종악 관찰사는 보고서에 이렇게 썼습니다. “이 무리들은 서로 ‘교중’이라 부르며 노비와 주인, 존비, 친소의 구분이 없다. 남자만 그런 것이 아니다. 양반가의 규수는 언문으로 풀이하여 읽고, 상천의 어리석은 부녀자는 입으로 전해 외운다. 가령 길가는 사람이 제 입으로 그 학문을 하는 자라고 하면, 주소, 성명도 묻지 않고 양반인지 상한인지 따지지 않고 모두 안방에서 만나 보기를 허락하며 중요한 손님처럼 공경하고 가까운 친척처럼 아낀다. 거처와 음식도 달건 쓰건 함께하는데, 떠날 때는 반드시 노자를 준다.” 관찰사로서 박종악은 천주교 신자들을 칭찬하려고 이 보고를 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철저했던 신분 사회에서 이 관습 제도를 뛰어넘었던 형제애를 실천한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증언으로서, 유학을 국교처럼 신봉하던 관리가 임금에게 올린 객관적 보고서의 내용으로서 냉정한 관찰 결과를 토대로 깨알같이 쓴 것입니다.  

 

진산 사건으로 인한 박해를 피해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간 그는 한양 북촌 마을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윤유일 프란치스코 등의 교우들이 목숨을 걸고 영입해 온 주문모 야고보 신부가 조선에서 봉헌한 첫 미사가 북촌의 강완숙 골롬바의 집에서 있었습니다. 그 자리가 지금 가회동 성당 터입니다. 중국인이라서 생김새야 비슷하지만 외국인이어서 조선말도 할 줄 모르고 입맛도 맞지 않아 불편한 주문모 신부를 조정의 눈을 피해 은밀하게 편히 모시고 신자들의 성사생활을 돕는 한편, 여성들에게 교리를 가르쳐서 입교시키고 그 여성 신자들과 함께 활발하게 한양을 중심으로 지방에까지 선교활동을 함으로써, 4천 여명에 불과하던 천주교 신자를 5년만에 1만 명으로 늘렸습니다. 남성 신자들의 단체인 명도회를 이끌던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와 함께 조선의 동방박사로서 강완숙 골롬바 역시 자신이 놓였던 역사적 상황과 사회적 조건 하에서 구세주를 경배하는 구도자로서 살아간 인물로 손색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구세주를 찾아 경배하기 위해 자기 일생을 바친 동방박사들의 구도적 삶을 통해 우리네 신앙생활은 과연 구도적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에도 몸으로는 그전처럼 머물러있어도 마음과 영혼으로는 길 떠나는 처지가 됩니다. 세상 다른 어떤 가치들보다도 구세주를 앞세우는 신앙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구도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신앙의 여정도 세속적인 가치들을 피하는 길을 가야 하고 그러자면 세상이 주는 편리함이나 쾌락도 멀리해야 합니다. 사막에서 큰 별이 더 잘 보이듯이, 신앙적 가치들을 따라가는 길에서는 비록 삭막해보여도 진리가 더 잘 보입니다. 신앙의 여정에서도 문명은 도움을 주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진리를 가리기도 합니다. 그럴 때 성서는 구세주를 찾아가는 길을 일러주는 지도입니다. 또한 신앙의 여정도 구세주를 찾아서 무언가 자신이 마련한 귀한 예물을 바치고 경배하는 구도의 여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가 그러했듯이, 구세주를 만난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여정도 세상 곳곳에 흩어져 살면서 그분의 백성으로서, 하느님 나라를 앞당기는 실천 행동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구도의 길입니다. 동방박사들의 구도 여정을 상기하면서, 온갖 이유로 냉담할 핑계를 찾고 있는 듯이 미지근하게 생활하고 있는 예비 냉담자들을 생각합니다. 매일이나 매주일 듣는 복음 말씀을 한쪽 귀로 듣고는 다른 쪽 귀로 흘려보내고 있는 이 시대의 귀머거리들이 동방박사들의 구도적인 마음가짐을 본받기를 바랍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