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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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있습니다

 

이사 9,1-6; 티토 2,11-14; 루카 2,1-14

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2018.12.24.; 이기우 신부

 

  1.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오시기를 기다려온 우리는 오늘 밤, 성탄 대축일 밤미사를 봉헌하며 구세주 성탄을 경축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이사야 예언자가 내다본 대로,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있습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치고 있습니다. 그 빛이 비치고 있다는 한 증거는, 영원까지 공정과 정의로 다스려지는 왕국을 세우고 지켜나갈 왕권을 받으신 한 아기가 태어나셨다는 것입니다. 

그 옛날 이집트 땅에서 고된 종살이를 하며 어렵사리 하느님 백성으로 선택된 이스라엘은 이 구세주를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왔습니다. 대림 시기 동안 하나씩 불을 밝혀온 대림초는 구세주를 기다려온 그 오랜 세월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때가 차자 세상에 오시어 성모 마리아 태중에서 열 달이 될 때까지 머무신 그분은, 공생활을 마치고 승천하신 하늘에서는 성부 오른편에 앉아계시고 성령으로 강림하신 땅에서는 당신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 안에 함께 현존하여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현존하여 계시는 그분을 세상에 알리는 일이 그 빛이 비치고 있다는 두 번째 증거가 됩니다. 

 

2. 한편 이천 년 전 지구 아시아 대륙의 서쪽 한 구석인 이스라엘 베들레헴 땅에 오신 그 큰 빛이 지구를 반바퀴 돌아서 아시아 대륙의 맞은편 동쪽 한 구석인 한반도에 사는 우리에게 어떻게 어둠을 깨치고 암흑을 몰아내면서 비치고 있는지 거듭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한겨레는 오대양 육대주로 이루어져 있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유라시아 대륙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동쪽에 자리잡고 반만년을 살아 왔습니다. 지구는 둥글지만 인류가 합의한 날짜 변경선을 기준으로 하면 하루라는 시간은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자락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가장 먼저 빛이 비추이는 땅에 사는 만큼 우리 민족은 진리의 빛을 갈망하며 드높은 정신문화를 일구어냈습니다. 

유라시아 대륙의 한가운데 있는 인도에서 발원된 불교가 이 땅 한반도에 들어오면 원효와 지눌과 서산 등 고승들의 구도적 삶을 통해 인도 불교보다 더 불교적인 문화를 이룩해냈고, 동아시아의 한가운데 있는 중원에서 발원된 유교가 이 땅 한반도에 들어오면 퇴계와 율곡 등 유림 선비들의 사색을 통해 중국 유교보다 더 유교적인 문화를 이룩해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전통은 이 땅 한반도가 중국 땅이나 일본 땅보다 더 비옥한 토양인 것보다 정신적으로는 더 비옥한 토양을 한겨레가 가꾸어왔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3. 이렇듯 비옥한 정신적 토양 위에 들어온 천주교의 복음은 세계 교회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인 과정을 거쳐 꽃을 피웠습니다. 유럽 안에서 미증유의 교회 분열을 겪고 나서 정신 차린 서양 선교사들이 중국 땅에 펼친 복음을, 이 땅에서 진리를 목마르게 찾던 선비들이 자발적으로 들여왔기 때문입니다. 명과 청 왕조가 다스리던 중국 지식인 사회에 서양 선교사가 책을 한문으로 쓰면, 일년이 채 가기 전에 조선 땅에 들어왔습니다. 인쇄술이 발명된 시절이라고는 하나 궁중에서 독점하던 시절이었으므로 일반 선비들은 중국에서 새 책을 들여오면 필사 작업을 해서 독서를 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어렵사리 받아들인 복음의 서적들이 무려 130 여종이 넘었습니다. 성호 이익이 이런 풍토에서 실학을 들여왔다면 광암 이벽과 다산 정약용은 그 실학의 실사구시적 학풍에서 서학을 통한 깊은 사색으로 나아갔다가 천주교를 통한 구도적 진리를 발견해 낸 것입니다. 이런 지적 풍토가 이제 막 시작된 어린 조선천주교회의 신앙을 잔인하기 짝이 없는 피어린 박해를 견디어내고도 남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정신적 토양의 차이 때문에 한국보다 더 먼저 복음이 들어갔고 한국 못지않게 끔찍한 박해를 모질게 그리고 오랫동안 겪었지만 중국이나 일본의 천주교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복음화 열매의 차이가 빚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4. 조선에 천주교의 복음이 들어온 시기는 13세기 세종대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던 문명과 문화가 내리막을 치닫던 시기였습니다. 도전과 자극이 없는 문명들이 쇠락하고 말았듯이 조선은 개국 초기의 개방성과 활력을 상실하고 민중을 억압하였으며 그 결과 국력이 쇠퇴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을 연이어 패퇴당하고도 정신을 차리지 않았으며 사회적 개혁을 마냥 미루었습니다. 모처럼 들어온 천주교의 복음에 대해서도 그 종교적 가치와 문명적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저 몰살하려 들었습니다. 죽을 정도로 매를 때리고 끝내 목숨을 빼앗으면 사그라들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나마 기울어지던 국력이 아예 쓰러져버리자 이런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던 제국주의 일본이 식민지로 삼았고, 그 한 세대 후에도 제 힘으로가 아니라 강대국의 힘으로 찾아온 해방은 분단까지 강요했으며 동종상잔의 전쟁까지 치르고 국토는 폐허가 되었습니다. 이때가 국력이 바닥을 친 시기였습니다. 

 

5. 서양의 유수한 나라들이 삼 백 년 정도 걸려서 겨우 이룩한 산업화를 불과 반세기만에 성공적으로 완수한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세계 제2차 대전 전에 식민지였던 나라들 가운데에서 해외원조를 줄 수 있을 정도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이러한 기적적인 산업화를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른다지만, 국정농단을 일삼은 박근혜 정권을 촛불시위로 탄핵시킨 이른바 촛불혁명으로 이룩한 민주화는 서양 여러 나라들이 산업화의 역사보다 더 오랜 기간에 온갖 시행착오를 거쳐 이룩한 것보다 앞서는 자랑거리입니다. 단 한 건의 폭력도 없이 평화적으로 정권 교체를 이루어냈다는 것은 민주화에 있어서도 우리가 이미 한 수 위를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역사를 간추리면, 동양 문화의 정수인 불교나 유교를 수용하는 데 있어서도 발원지를 능가하는 찬란한 정신문화를 이룩할 수 있었던 우리 겨레가 서양 문화의 근간인 그리스도교와 산업화와 민주화를 수용하는 데 있어서도 유감없이 그 역량을 드러낸 자랑스런 역사입니다. 이제 우리 국력은 상승국면에 확실하게 접어들었습니다. 아시안 게임은 물론, 하계 및 동계 올림픽, 축구 월드컵 대회,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같은 매머드급 세계 체육 행사들에다가 세계성체대회 같은 종교계의 세계적 행사까지 두루두루 성공적으로 치루어낸 나라가 전세계에서 열 나라가 채 되지 않습니다. 아시아 대륙에서는 대한민국이 유일합니다. 우리 겨레의 역량은 집단적으로만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다. 한국 영화, 드라마, K-Pop 열풍, 여자 양궁과 여자 프로 골프, 한식, 한복에다가 클래식 음악계에 이르기까지 발군의 재능을 드러낸 개인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자랑스런 한국인들의 숫자로만 따져보아도 대한민국은 결코 후진국이 아니며 약소국도 아닙니다. 경제적으로도 그렇지만 정신적으로도 세계를 이끌어가는 열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장래가 유망한 나라입니다. 

 

6. 그런 나라가, 그런 겨레가 이제 지구상 마지막 남은 분단 구도를 해체하고 남북협력의 시대를 당당히 열었습니다. 통일 코리아의 전망을 가시권 안으로 끌어들였습니다. 국운의 상승기를 맞이한 우리 겨레 앞에 우리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께서 특별히 베푸신 각별한 은총을, 그 뜻을 되새겨야 합니다. 작년 오늘 밤 미사에서도 우리는 똑같은 독서와 복음 말씀을 들었습니다만, 기운찬 하느님 말씀에 비해서 실제 한반도 국제정세는 어둡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반도 정세는 올해 초부터 기적적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실제 통치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에서부터 그 희망의 조짐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남북한 선수들은 단일팀을 이루어 참가했고, 양쪽의 특사들이 상화 방문을 한 결과 봄에는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되었고, 여름에는 싱가포르에서 역사상 최초의 북미정상회담이 열렸는가 하면, 가을에는 평양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었을 뿐만 아니라 프란치스코 교황을 평양에 초청하겠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계획이 발표되었습니다. 이것이 2018년 한 해 동안 하느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주신 큰 은총이요, 어둠 속을 걷던 백성에게 비추인 큰 빛입니다. 

이제 새 해가 되면 한반도의 정세는 한층 더 급물살을 탈 것입니다. 남북을 연결하는 철도가 달리기 시작할 것이고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이 재개될 것입니다. 북한을 옭죄던 적대적 조치들이 철회되고 경제제재도 하나씩 둘씩 해제될 것입니다. 그리고 조만간 상호 방문과 자유 왕래를 위한 조치들이 시행되어 나가리라 기대합니다. 특별히 프란치스코 교황의 평양 방문이 성사되고나면, 선교 활동의 자유와 종교 생활의 자유가 보장될 것이고, 그것은 북녘과 북방 대륙의 복음화 과업이 드디어 시작되는 계기를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도, 프란치스코 교황도 수 차례 한국 가톨릭 그리스도인들에게 당부하신 바, 이웃 나라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지 못한, 그래서 우리에게만 주어진 그 고난의 은총과 그 오묘한 섭리와 그 풍성한 열매를 이제 우리 자신, 우리 교회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널리 인류를 위해서 써야 합니다. 적어도 한겨레와 동북아시아의 복음화를 위해서, 더 나아가서는 아시아의 복음화를 위해서 봉헌해야 마땅합니다. 

이제 그동안 남녘에서 이룩한 산업화와 민주화의 기운을 북녘에서도 그 나름의 자주적인 방식으로 이룩할 수 있도록 남녘 동포들인 우리가 돕게 된다면, 통일 코리아의 기운은 능히 동북아시아에 퍼지고도 남을 것입니다. 예로부터 평화를 사랑해온 전통에 바탕하여 그 어느 이웃 나라도 거리낌없이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도울 수 있도록 이제부터 우리가 평화의 샘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한반도가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각축장이 되어 온 과거의 역사를 마감하고 러시아와 미국이 더 이상 견제할 필요 없고, 중국과 일본이 더 이상 대결할 필요가 없어지는 평화의 샘이 될 수 있도록 우리가 마중물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와 노력이 하느님께서 품고 계시는 원대한 구원 계획의 겨자씨가 되고 누룩이 될 수 있도록 예수님의 성탄을 축하하는 이 거룩한 밤에 우리의 이 아름다운 뜻을 더하여 하느님께 기도의 화살을 날려 보냅니다. 

 

하느님께서 고민하실까봐 그 고민을 덜어드리기 위해 참고하시라고 한 마디 말씀을 더 보탭니다. 동북아시아에서 살아가는 6억 인구의 복음화 과업을 위해서 한국인 가톨릭 신자들만큼 준비되어 있는 사람들도 없습니다. 고난과 보람의 담금질을 두루 맛보며 내공도 깊어질대로 깊어져서 이제 크게 쓰임 받을 때만을 기다려온 사람들입니다. 하느님! 한민족을 당신의 도구로 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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