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삼용 요셉 신부 <거짓말만 안 하면 절대 외로울 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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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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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아들이며 말씀이신 그리스도
(1540-1550), 모스크바 크레믈린 Cathedral of the Sleeper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구에게 당신을 드러내 보이시는가?’를 묵상하는 날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동방박사들과 헤로데가 대조되어 나타납니다. 헤로데는 동방박사들에게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마태 2,8)라고 ‘거짓말’합니다. 

그는 자신의 경쟁자 메시아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만나려면 먼저 ‘진실해야’ 합니다. 누가 거짓말하는 사람과 사귀고 싶겠습니까?

  

    깊은 산속에 유명한 절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 절의 주지인 혜통대사에게는 두 제자가 있었는데 누구에게 주지 자리를 넘겨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지 스님은 두 제자를 불렀습니다.

    “오늘 너희에게 곡물 한 포대기를 나눠줄 것이다. 봄이 되거든 이 씨앗을 파종하여 정성껏 길러야 할 것이야. 또한, 가을이 되어 곡식을 거둬들이거든 나에게 가져오도록 하여라.”

주지 스님은 이렇게 분부한 다음 지나가는 말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마 곡식을 더 많이 거둔 사람이 미래 주지가 될 것이야.”

  

    어느덧 시간이 흘러 곡식이 무르익자 제자인 ‘지능’은 곡식을 한 짐 가득 싣고 주지 스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다른 제자인 문원은 빈 지게를 지고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혜통대사가 물었습니다.

    “어찌하여 너는 빈손으로 올라오는 것이냐?”

    “스님, 송구스럽습니다. 제가 파종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에 곡식이 발아하지 못했습니다. 하여 쌀 한 톨 얻지 못하고 빈손으로 올라오는 길입니다.”

  

    혜통은 그 대답을 듣고 그 즉시 문원을 미래의 주지로 지명했습니다. 이에 다른 제자인 ‘지능’이 그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며 혜통에게 따져 물었습니다.

    “스님, 분명 곡식을 더 많이 거둔 사람에게 주지 자리를 물려주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어찌 쌀 한 톨 얻지 못한 문원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려 하십니까. 저는 스님의 결정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자 혜통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원래 너희 둘에게 준 씨앗은 모두 삶았던 씨앗이다. 그런데 어찌 삶은 씨앗에서 싹이 날 수 있겠느냐?”

  

    장자는 말합니다.

    “진실로 슬픈 사람은 소리 내지 않아도 슬픔이 느껴지고, 진실로 화를 내는 사람은 성내지 않아도 화가 느껴지며, 진실로 다정한 사람은 웃지 않아도 친근함이 느껴진다.”

     

    이 말은 ‘진실’이 작용하는 공간이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의 관계는 육체적 관계, 정신적 관계, 마음적 관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아무리 육체적으로 자주 만나도 정신적으로는 싫은 사람일 수 있고, 아무리 정신적으로 추앙하더라도 심적으로는 멀리하고 싶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관계 맺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친밀한 관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가지 않게 만드는 것이 ‘거짓말’입니다.

  

    ‘거짓’이 발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기 영광’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왕으로 섬기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이 수렁에 빠져있습니다. 이것을 원죄라 합니다. 사람은 본성적으로 다 자기 생각을 먼저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한 행동은 무엇이었을까요? 무화과 잎으로 자신의 몸을 가리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은 거짓으로 자신의 영광을 잃는 것을 방어합니다. 

  

    예수님은 사탄을 “거짓말쟁이이며 거짓의 아비”(요한 8,44)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 나의 영광을 포기하여 진실해지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모송을 바칠 때 항상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이 진실해지기 위해 한 노력이 바로 세 가지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마태 2,11)

    

     황금은 아기 예수님이 임금이심을 고백하는 것이고, 유향은 예수님이 ‘대사제’임을 고백하는 것이며, 몰약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희생’되실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또한, 몰약은 죽은 이의 몸에 바르는 것인데 곧 육체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유향은 대사제가 성소에서 향을 피울 때 사용하는 것인데, 이는 ‘자기 생각을 봉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황금은 지성소에서 하느님 뜻을 상징하는 십계명 판이 들어있는 계약의 궤를 덮는 데 쓰인 것인데 곧 ‘나의 뜻’, 또는 ‘나의 자유와 의지’를 봉헌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동방박사들이 준비한 이 세 가지 선물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당신의 육체와 혼과 영을 내어주셨기에, 우리도 그분을 위해 나의 육체적 욕망과 정신적 교만, 그리고 나의 자유까지도 내어드리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 5,8)라고 하셨습니다.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게 되어있고 그러면 사람과 하느님과의 관계를 맺을 수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마음을 닫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주소를 알려주지 않으며 놀러 오라는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은 진실하십니다. 그래서 별을 보내셨습니다. 진실하지 않은 사람은 마음을 감추고 나아오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 마음 안에는 누구도 들어갈 수 없어서 외로워집니다.

  

    “오늘 딸기는 산지에 비가 와서 평소보다 덜 달고, 조직이 다소 무릅니다. 수박, 참외는 아직 제철이 아니어서 덜 답니다. 구입에 참조하십시오.”

    한 백화점의 식품매장에 실제로 걸려있던 안내문입니다. 이 백화점은 단순히 딸기를 파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팔았던 것입니다. 이런 솔직함이 진실한 관계를 원한다는 것을 우리는 다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백화점에 또 가게 될 것입니다.

 

    외로워지고 싶지 않거든 거짓말하지 맙시다. 육체와 정신과 마음의 영광을 포기합시다. 그러면 거짓말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거짓말을 하면 나의 영광을 위해 너를 이용하겠다며 다가가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은 마음이 깨끗한 사람에게 당신을 드러내 보이십니다. 사람이 고립되고 외로워지는 이유는 스스로 거짓의 가면을 쓰기 때문입니다.

 https://youtu.be/5shWBQBO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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