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보라, 그날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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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예레 33,14-16; 1테살 3,12-4,2; 루카 21,25-36
2021.11.28.; 대림 제1주일; 이기우 신부

⒈ 말씀의 초점, 메시아가 아니라 메시아 백성이다

다시 전례력을 시작하는 오늘 대림 제1주일에 우리에게 들려오는 하느님 말씀의 초점은 메시아 백성입니다. 흔히 메시아를 기다리는 때가 대림 시기로 알고 있지만, 메시아는 메시아 백성 안에 오시므로 메시아 백성이 먼저 모여야 합니다. 메시아께서 오셔도 메시아 백성이 그분을 알아 뵙고 맞아들이기 위해서는 메시아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깨닫고 그에 따라서 맞갖은 준비를 해야 하는 법입니다. 

 

구약시대에도 이스라엘의 엘리트들, 즉 임금이나 대신들, 궁정 예언자들이나 세습 사제들은 메시아를 기다리기는커녕 자신들이 수행했어야 할 목자의 역할마저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하느님께 대한 눈이 멀어버려서 메시아가 그들 앞에 나타나셔도 알아보지 못했으며 예수님께서 여러 기적으로 메시아로서의 권능을 나타내보이실 때마다 별별 트집을 잡아서 인정하지 않다가 끝내 메시아를 사칭한 거짓 메시아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렸습니다. 그런데 권세도 재산도 없지만 신심이 깊은 백성들이 메시아를 기다렸고, 그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래서 이들 메시아 백성의 눈으로 대림 시기 말씀을 읽어야 제대로 이해가 됩니다.  

 

2. 제 영혼 들어 올리나이다

 하느님, 당신께 제 영혼 들어 올리나이다(입당송, 시편 25,1). 이 기도는 메시아를 기다리던 백성이 ‘원수’라 지칭하던 거짓 목자들을 거슬러 하느님께 아뢰던 간절한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입당송은 전례의 성격을 미리 알려주는 표지 기능을 수행하는데, 대림 제1주일의 입당송인 시편 25장은 하느님께 영혼을 들어 올리겠다는 소망을 바치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빛이신 메시아께서 오시어 어둠을 밝혀주시려면 메시아 백성이 되어야 할 신앙인들이 빛을 반사할 수 있을 만큼 영혼을 들어 올리는 거룩한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3. 아나빔과 암하레츠를 위한 기쁜 소식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에게 한 약속을 이루어 주겠다. 그날과 그때에 내가 다윗을 위하여 정의의 싹을 돋아나게 하리니, 그가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룰 것이다’”(제1독서, 예레 33,14-16).


  예언자가 “그날이 온다”고 약속하는 대상은 ‘아나빔’으로 불리우던 하느님의 가난한 이들과 ‘암하레츠’로 불리우던 이스라엘의 남은 이들입니다. 유다인들이 남 유다 왕국과 북 이스라엘 왕국으로 분열된 채로 주변 나라들의 우상숭배에 물들어 지내다가 국력이 약해져서 멸망당하고 바빌론으로 끌려갈 때에, 아무 재주도 기술도 지식도 없어서 그냥 유다 지방에 남겨진 사람들이 암하레츠입니다. 가난하지만 신심은 있었던 아나빔보다 더 경제적으로 더 보잘것없었고 사회적으로 무시당하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이야말로 간절하게 메시아께서 오시는 그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가 전해준 이 약속을 그토록 절박하게 기다려야 했던 까닭은 그 당시의 정치와 경제 그리고 종교 등 백성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현실이 하느님께서 이미 약속해 놓으신 현실과 달라도 너무나 달랐기 때문입니다. 억압과 착취, 차별과 수탈이 만성화된 사회 현실에서 아나빔들과 암하레츠들은 너무도 간절하게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예언자로서 예레미야는 이들의 탄원과 희망을 대변하여, 메시아께서 이루어주실 공정과 정의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느님께로부터 귀한 생명을 받았고 무수히 용서를 받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하느님의 자비를 믿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여 세상에서 불공정과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에 맞서서 공정하려는 노력과 정의롭게 살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메시아께서 이루어주시는 공정과 정의란 결국 메시아 백성이 행하고자 하는 공정과 정의의 노력이 씨앗이 되어 열매를 맺을 수 밖에 없습니다. 겨자씨 만한 공정과 정의의 실천이라도 메시아께서는 커다란 나무와도 같이 풍성한 성과로 키워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이치를 깨닫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4. 늘 깨어 기도하여라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복음, 루카 21,25-28.34-36)

 

오늘 복음은 루카 복음에 나오는 종말 설교의 결론인데 그 핵심은 사람들이 하늘의 표징들을 보면 구름 타고 오는 사람의 아들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디다케』)입니다. 그 준비가 “깨어 기도하라”는 것인데, 이는 잠을 자지 말고 기도하라는 뜻이 아니라 메시아이신 예수님처럼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그분은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의 도우심에 따라서 이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실현하도록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부활 승천하신 후에 성령을 받아 초대교회를 이룩한 신자들은 열한 사도와, 아나빔과 암하레츠 출신의 유다인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본시 바리사이 출신이었던 바오로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도로 삼으신 인물로서 그는 로마 제국 치하에서 살던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리하여 새로이 신자가 된 이들에게 권고한 내용이 오늘 제2독서입니다. 

 

5. 흠 없이 거룩한 사람이 되어라

“형제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시어, 우리 주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재림하실 때, 여러분이 하느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흠 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아멘.”(제2독서, 1테살 3,12-4,2). 

 

이제 메시아 백성은 유다인이라는 혈통을 넘어서 모든 민족들 안에서 모이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 메시아 백성이 ‘흠 없이 거룩한 사람’이 되라고 권고했는데, 이는 하느님처럼 완벽한 존재가 되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오히려 자기자신의 노력만으로 완벽하게 살아가려는 태도가 교만입니다. 예수님을 거부했던 자들이 그렇게 교만했습니다. 그보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길을 보여주셨고, 악인들이 짊어지워주는 십자가마저도 하느님께 대한 순명으로 겸손되이 받아들이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믿으셨기 때문입니다. 과연 하느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을 부활시키셨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시어 믿는 이들로 하여금 예수님께서 시작하신 새 하늘 새 땅, 즉 공정과 정의의 길을 계승하게 하셨습니다.

불공정하고 불의한 세상에서는 사회적 약자들이 기가 꺾이기 쉽습니다. 약은 사람들은 은근히 세태에 편승하여 갑질을 자행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하느님의 개입은 비록 아무리 적은 규모라 할지라도 공정과 정의를 행하고자 하는 의인들의 노력이 마중물처럼 먼저 부어져야 이루어짐을 예수님께서 여러 기적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세상이 도래하기 위해서 하느님의 도우심이 99%라 해도 1%에 지나지 않는 의인의 노력으로 현실화되는 법입니다.

그래서 ‘흠 없이 거룩한 사람’이란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 인간적으로 얼마든지 흠이 있을 수 있지만 예수님이 살아가신 길을 따라서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온전한 삶을 살아가려는 존재를 말합니다. 

 

6. 새 복음화의 길

사도 바오로 이후 우리 가톨릭교회는 2천 년 동안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성취도 이루었지만 그만큼이나 적지 않은 시행착오도 겪었습니다. 이를 성찰하면서 반 세기 전에 바티칸에 모인 주교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열어서 새로이 ‘흠 없이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는 길로 나아가고자 했습니다. 새 하늘이신 예수님께서 다스리시는 새 땅이 되자고 다짐한 것인데, 이것이 새로운 복음화의 길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시작한 이러한 교회 쇄신의 여정을 가장 반갑게, 그리고 가장 지속적으로 걷고 있는 이들은 라틴 아메리카 교회일 것입니다. 이 교회의 주교와 신학자들은 1968년에 콜롬비아의 메델린에서, 그리고 1979년에는 멕시코의 푸에블라에서 열린 주교총회에서 공의회의 가르침을 이미 앞서서 실천하고 있었던 기초교회공동체의 민중의 바람을 대변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를 격려하고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라틴 아메리카 교회의 민중과 신학자들과 주교들 앞에서 ‘새 복음화’의 기치를 들었습니다. 이 깃발은 베네딕토 16세를 거쳐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서도 계승되었는데, 특히 현 교황은 공의회의 교회 쇄신 여정을 마무리짓고자, 그 메시지를 담은 여러 문헌들을 잇달아 반포하였습니다. 특히 「복음의 기쁨」(2013), 「교회 생활에서의 신앙 감각」(2016),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공동합의성」(2018) 그리고 「모든 형제들」(2020)을 통해 메시아적 백성으로 신앙을 새롭게 하고 세상에 빛을 비추기를 소망하였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베넥딕토, 프란치스코, 이렇게 3대에 걸친 역대 교황들이 새 복음화의 징표로 라틴 아메리카 교회를 주목하고 있다는 것은 평신도들이 주축이 된 기초교회공동체와 이들이 지향하는 해방이라는 주제에 주목하고 있다는 뜻이며, 또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유럽 교회가 주도하던 노선의 복음화가 세계로부터 가톨릭교회를 소외시켰으며 시대의 징표를 식별하는 데에 있어서도 실패했음을 반성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예레미야 예언자가 외쳤던 정의와 공정이라는 가치는 공의회 이후의 가톨릭 신학에서 더욱 선명하게 정리되었습니다. 즉 자유와 평등, 정의와 평화라는 가치로 요약하고 있는 최고선과, 또한 인간 존엄성의 가치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정리한 사회적 공동선을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서 실현하자면, 이와는 반대되는 물질주의적이고 자본숭배적인 사조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이 해방의 길은 기초교회공동체를 이룬 평신도들의 신앙 감각에서 나온 요청이며 이를 존중하여 공동합의성 구조를 통해 온 교회가 함께 걸어가자는 요청입니다. 세상에 대해 메시아이신 예수의 복음을 선포하자면 먼저 교회가 메시아 백성으로 거듭 나자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대림 시기의 초점은 평신도들의 신앙 감각이 살아있는 교회, 그리고 성직자와 수도자와 평신도가 공동으로 합의해 가며 운영하는 구조가 살아있는 교회를 만드는 일입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도우심이라는 역사적 개입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최소한도의 성사적 장치입니다.

교우 여러분!
예레미야 예언자의 호소력 있는 말씀이 우리를 향해서도 들려옵니다. “보라, 그날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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