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땅에서 하늘을 쳐다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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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열왕 17,10-16; 히브 9,24-28; 마르 12,38-44
2021.11.7.; 연중 제32주일; 이기우 신부

⒈ 두 발을 땅에 딛고 서서 살아가는 인간은 땅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늘은 아버지요 땅은 어머니이기 때문이고, 하늘과 땅의 열매가 바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 민족이 태초에 얻은 깨달음으로서, 이를 천지인(天地人) 삼재사상(三才思想)이라 합니다. 단군은 이를 후손들에게 알려주고자 삼원태극으로 우리 민족의 문양을 삼았고, 조선 임금 세종은 이를 바탕으로 한글 모음을 만들어 전해주었습니다.

 

⒉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으려는 이러한 사색이 안개처럼 아스라이 뿌옇다가 드디어 역사 속에 선명하게 드러난 때가 2백여 년 전인 18세기 말 무렵이었습니다. 새 하늘이신 예수님, 인간이 되신 하느님을 믿고 섬기는 그리스도 신앙의 진리가 평신도 선비들의 자발적이고 지성적인 노력으로 들어왔기 때문입니다(1779~1784). “조선 왕조 5백 년 역사에서 가장 큰 사건이요 기적”이라고 불리우는(조광) 이 일은 사실 천지인 삼재사상의 맥락에서 보자면, 천지인의 관계가 삼위일체 도리로 밝혀지고 인간의 기준이자 모범이신 예수님의 삶이 그리스도 신앙 진리가 밝혀진 것이기 때문에, 정신사적으로 볼 때 우리 민족 반만년 역사에서 가장 큰 사건이었습니다. 세계 인류역사에서도, 가톨릭 교회사 안에서도 유례가 없는 오묘한 섭리로 일어난 기적이었습니다. 

 

⒊ 이를 두고, ‘천지개벽’(天地開闢)에 관한 전통적인 사색을 넘어서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남긴 저술을 통해 ‘후천개벽’(後天開闢)이라는 깨달음을 얻은 최제우는 중국 청나라에 온 서양 선교사들이 제국주의 침략정책에 편승하여 저질렀던 행태(태평천국의 난, 1854~1864)를 보고 실망한 나머지 동학을 창시했습니다(1860). 유불선 등 한국의 전통적인 사상의 맥을 계승하되 서학에서 얻는 후천개벽의 깨달음을 더하면서도 서학에 맞서 민족의 뿌리를 상기시키려는 의미로 동학이라 이름 붙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 전봉준이 정약용이 지은 <경세유표>를 교과서로 삼아 동학혁명을 일으켰던 일(1894)도 18세기 말부터 이 땅의 선각자들이 들여온 신앙 진리의 여파(餘波)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모두가 18~19세기에 조선 사회에 만연했던 모순과 불의에 분개하여 진리와 정의의 이름으로 일어난 평신도 정신 혁명이었고, 땅에 두 발을 딛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 본 그래서 지극히 인간적인 행위였습니다.

 

⒋ 이런 업적을 알아본 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가 2012년에 세계 정신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여유당 전서의 저자인 정약용이 스승으로 모셨던 인물은 선각자 이벽이었는데, 이승훈을 통해 세례를 받은 이벽과 천진암 강학회 선비들은 천주교 교리를 완벽히 알지 못하는 처지에서도 성사생활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중 문중박해를 받아 이벽이 세상을 떠나자 그 선비들은 이벽을 본받아 자체적으로 성사를 거행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고 이를 바탕삼아 선교하여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습니다(1786~1790). 주로 선비들을 비롯한 중인들까지 무려 1천여 명의 입교자를 갖춘 교회로 성장시켰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자발적인 성사조직이 신생교회를 성장시키고 엄청난 선교적 위력을 발휘한 일은, 그 십여 년 전에 이 땅의 평신도들의 지성적 위대함을 보여준 것 이상으로 이 땅에서 평신도들의 자발적 조직력을 보여준 일입니다. 

 

⒌ 한국 천주교회 평신도들의 저력을 입증한 이 위대한 역사적 업적은 이 정도에 그치지 않고, 교우촌을 세워 백 년의 박해를 이겨냈다든지 이 바탕 위에서 기록상으로만 해도 2천 명이 넘은 순교자를 배출했다든지 또 그에 멈추지 않고 그 후의 또 다른 백 년 동안 순교자 신심을 함양하여 순교 정신을 우리 교회의 핵심으로 삼아온 것 모두가 다른 나라 교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답고 귀한 전통입니다. 

 

⒍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반 세기 전에 시작한 교회 쇄신의 여정을 마무리짓기 위하여 프란치스코 현 교황이 역점을 두고 있는 노력은 「신앙 감각」(2016)과 「공동합의성」(2018) 문헌에 집약되어 있는데, 이 노력 역시 그 초점은 평신도들의 각성을 촉구하고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이를 도우라는 뜻입니다. 우리 교회의 평신도들이 깨어나기를 바랍니다. 그 1% 미만인 성직자, 수도자들이 99%의 평신도가 깨어나도록 헌신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모두가 합심하여 남녘 겨레에게 빛이 되고자 노력하기를 원합니다. 그리하면 북녘의 겨레와도 손에 손 잡고 아리랑 노래를 부르는 민족 복음화의 날도 머지않을 것입니다. 이 땅에 깨달음의 새벽이 열리던 때, 구도적 지성과 자발적 성사생활과 창의적 교우촌과 용감한 가치 실현의 순교노력으로 빛나는 전통을 세워준 평신도 선조들의 발자취를 기억하는 오늘은 평신도 주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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