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사제직,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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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신명 6,2-6; 히브 7,23-28; 마르 12,28-34
2021.10.31.; 연중 제31주일; 이기우 신부

⒈ 신앙의 최소한은 죄를 짓지 않는 것이고, 최대한은 하느님께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모세 이래로 계명을 정해 놓고 죄를 짓지 않도록 기준을 마련해 놓았으며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목표를 정해 놓았습니다. 기원 전 천2백5십 년 경에 이런 문명을 이룩했던 이스라엘은 당시로서는 첨단 정신 문화의 수준의 종교였었습니다. 

 

⒉ 이스라엘이 이렇듯 높은 수준의 정신 문화를 이룩할 수 있었던 계기는 아브라함이 바벨탑 문명의 우상숭배를 벗어나서 하느님 신앙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바벨탑 문명에서는 인신제사가 유행했습니다. 처음에는 전쟁의 결과로 사로잡은 포로를 제물로 바치더니 나중에는 전쟁이 뜸해지니까 아이들을 제물로 바치기도 했습니다. 그 흔적인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하신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이 아들 이사악을 칼로 찌르려던 순간에 천사를 시켜 막으신 일입니다(창세 22,1-19). 그래서 이스라엘의 선진 문명은 사람 대신에 짐승을 붙태워 사람들의 죄를 속죄한다고 믿었던 제사 신앙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⒊ 짐승의 피를 쏟아버리고 그 살코기만 불살라서 사람들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는 대속물 신앙에 있어서 전문적으로 하느님께 제사를 봉헌하는 직분이 확립되기 시작한 것은 통일 왕국을 세운 다윗 때였고 대사제와 사제들의 조직이 생겨난 것은 성전을 지은 솔로몬 이후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 얼한 지파는 십일조를 내어 성전 봉사를 맡은 레위 지파를 먹여 살렸고 레위 지파가 낸 십일조는 사제들의 몫이었습니다. 게다가 사제들은 별도로 성전세를 거두었고, 제사를 지내려던 백성에게는 봉헌하고 난 제물까지 차지했으므로, 백성들의 살림살이는 어려웠어도 사제들은 여유로웠습니다. 더군다나 왕과 대신들과 궁정 예언자들이 모조리 학살당하고 바빌론으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이후에는 이 세습 사제들외에는 이스라엘 안에서 지도자 계층이라 할만한 사람들이 죄다 사라졌으므로, 사제들이 이스라엘을 다스렸는데, 이들은 다윗 시대에 대사제였던 사독의 후손들이어서 사두가이파라 불리었습니다.  

 

⒋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동안 이 사두가이파 사제들과 대립하셨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성전 정화 사건입니다. 율법에 따라 소년 시절부터 해마다 성전을 방문하여 순례하시던 예수님께서는 당시 사두가이파 사제들이 성전에서 자행하던 온갖 비리와 부패상을 잘 알고 계셨기에, 공생활 초기에도(요한 2,13-22) 말기에도(마르 11,15-29; 마태 21,12-13; 루카 19,45-48) 이 복마전과도 같았던 성전의 질서를 정화시키고자 하셨고, 이로써 사두가이파 사제들과의 관계는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할 정도로 악화되었으나 이를 지켜본 백성들은 환호하였습니다(요한 2,2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 성전 대신에 백성들 사이에서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하시며 하느님께 이르는 새로운 길을 가르치셨고, 제자들에게는 최후의 만찬에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시어 그 성사 거행의 임무를 맡기심으로써 하느님께 바치는 제사의 새로운 양식도 확립하셨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치신 십자가상 제사로 세상의 죄를 없애셨다는 대속 신앙이었는데, 이것이 짐승 번제의 대속물 종교에서 한 차원 높게 개혁된 대속 신앙의 제사였습니다. 

 

⒌ 사제직의 역사가 이러했기 때문에 초대교회 신자들은 예수님께 대해서 ‘사제’라는 이러한 불명예스러웠던 구약종교에서 유래된 호칭을 함부로 붙일 수가 없었습니다. 서기 68년과 70년에 두 차례의 독립전쟁이 실패로 돌아가고 성전마저 파괴되어 사두가이파가 몰락하고 나서야 서기 백 년경에 히브리서가 쓰여지면서 비로소 예수님께 대사제라는 호칭을 붙여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약성경 안에서 예수님을 대사제라고 불러드린 성서는 히브리서가 유일합니다. 

 

⒍ 그래서 그리스도교 사제직의 역사는 히브리서를 기점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초대 교회와 고대 교회 시절까지만 해도 예수 그리스도께만 대사제의 호칭을 불러드렸고 교회 안에는 사제라는 명칭이 따로 없었습니다. 단지, 신자들 안에서 공동체의 지도자로 선출된 이들이 돌아가면서 성찬례를 집전하였고, 성찬례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를 거행하는 주체는 공동체였습니다. 공동체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께 제사를 드려야 함을 신앙으로 철썩같이 믿고 있었고, 따라서 예수님께서 남기신 제사를 주례하기 위한 사제를 공동체가 선출했습니다. 그러니까 신약시대의 사제직은 구약시대와 달리 철저하게 봉사직이었고 공동체적이었습니다. 당연히, 세습 사제직의 전통 역시 부정되었습니다. 

 

⒎ 그러던 것이 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그 대신에 로마 제국의 법적인 유산이 가톨릭 교회로 들어와 자리를 잡으면서, 12세기 이후 중세부터 오늘날까지 가톨릭 교회의 사제직은 독신 남성으로서 제사 봉헌을 전담하는 공직자 신분으로 고착되었습니다. 이를 직무 사제직이라 합니다. 평신도들의 공동체가 성사에 참여하고 자신들의 삶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본연의 사제직무인 보편 사제직이 강조되기 시작한 때는 20세기 중반에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부터였습니다. 

 

⒏ 공의회는 교회 헌장, 사제 직무 교령과 특히 평신도 사도직 교령을 통하여 평신도들이 수행해야 할 보편 사제직을 대단히 강조한 데에는 사제직의 성서적이고 교회적인 전통을 회복해야 할 절박한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히브리서가 어렵사리 회복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이 온 교회를 통하여 계승되게 하기 위해서였고, 사도단의 으뜸이었던 베드로 사도 역시 이를 강조한 바 있습니다. “여러분은 선택된 겨레고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이고 그분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1베드 2,9).

 

⒐ 공의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평신도들이 행해야 할 보편 사제직무는 첫째는 직무 사제직을 맡은 사제들이 집전하는 성사에, 특히 성체성사에 참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계승하는 일이고 이로써 대속 신앙을 수용하는 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당신 목숨을 바쳐 세우신 유산입니다. 주교와 신부로 이루어진 직무 사제들은 성사를 집전할 의무가 있고, 이들의 봉사를 통해 평신도들을 비롯한 온 교회가 성사를 거행합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성체성사가 거행되는 미사의 구경꾼이거나 손님이 아니라 주체입니다. 주인의식을 가지고 미사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⒑ 보편 사제직무의 두 번째는 성사생활의 지향이 가리키는 대로, 자신의 온 삶을 하느님께 바쳐드리는 일로서, 이를 통해 하느님을 닮도록 창조된 피조물인 우리 인간이 자신의 삶을 제물로 삼아 하느님께 봉헌하는 제사적인 실존이 실현되고 따라서 대속 신앙도 실천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서 우리네 삶으로써 세상의 죄를 없애자는 것입니다. 

 

⒒ 그러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성사가 거행되는 성당이 거룩하듯이, 우리네 삶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 즉 가정이나 일터 그리고 모든 활동장소를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노력입니다. 특히 가부장이요 가모장으로서 부부는 가정 교회의 사제로서 가족이 모여 함께 기도하고 아이들에게 하느님의 축복을 전해주는 안수 예식에 사명감을 가져야 마땅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을 마음과 정신과 몸을 다해 사랑하고, 이웃을 제 몸처럼 사랑하는 삶이 가능할 것입니다. 

 

⒓ 이렇게 하느님께 바쳐드리는 제사는 역사적으로 볼 때, 우상 종교에서 이루어지던 인신공양 풍습에서 구약 유다교에서 실시한 짐승의 번제로 개혁되었던 것이 1단계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2단계에서 당신 자신을 십자가상에서 봉헌하신 예수님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바치는 성사로 신약의 제사 전통이 확립되었습니다. 이제 마지막 남은 제사 전통의 과제는 사제직무의 공동체성을 회복함으로써 제사적 실존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느님을 닮는 삶을 살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모든 사람이 자신의 삶을 하느님께 바칠 줄 알아야 하겠기 때문입니다. 교우 여러분, 공의회가 가르치는 사제직의 미래상이 우리 교회 현실 안에 확고하게 자리를 잡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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