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새 복음화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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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이사 53,10-11; 히브 4,14-16; 마르 10,35-45
2021.10.17.; 연중 제29주일; 이기우 신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지 2천 년이 되기 직전, 스물한 번째로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가톨릭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믿는 자세를 새로이 하고 정교회와 개신교회는 물론 이웃 종교들과 선의의 모든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자 하였으며 무엇보다도 현대 세계를 함께 살아가는 이웃인 인류의 희망과 고민을 나누고자 하였습니다.  

 

공의회가 시작한 교회 쇄신의 여정은 아직도 진행 중이며, 특히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라틴 아메리카 교회에서 기초교회공동체와 해방의 신학에서 뿜어져 나오는 활력을 바탕으로 온 가톨릭교회가 교회 쇄신의 여정을 함께 걸어가고자 ‘새 복음화’의 기치를 높이 들었습니다. 그 뒤를 이은 베네딕도 16세 교황과 프란치스코 교황도 역시 이 새 복음화의 길을 이어 받으며 인류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전하자고 독려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열의, 예루살렘의 교훈 

바빌론 유배살이에서 돌아와 폐허가 되어 있는 예루살렘을 보고 망연자실해 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사야 예언자는 메시아께서 오시리라는 희망을 전하며 새로운 열의를 불어 넣고자 하였습니다. 그분은 이스라엘의 목자들에게 억눌리며 수탈당하던 밑바닥 백성들의 고통을 함께 겪으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죄를 저지른 자들의 몫까지도 대신 속죄하실 제물로 자처하실 것이었습니다. 과연 이사야의 예언대로, 메시아는 오셨고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으며 그들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셨을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의 목자들에 의해 버림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메시아께서 걸어가신 이 십자가와 부활의 길이 새 복음화에 요구되는 자세였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복음을 듣고 초대교회를 이룬 유다인들은 과거 자신의 조상들이 기대했던 영광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견디신 수난을 받아들이는 이 길이 진리라는 것을 본능적인 신앙 감각으로 알아들었습니다. 자기를 낮추고 비우는 예수님이야말로 하느님이시라는 신앙 고백이 그래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방식, 로마의 교훈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짊어지러 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일찌감치 이를 가르치셨습니다. 당신은 섬기러 오셨고 죄를 지은 이들의 몸값으로 당신 목숨을 바치러 오셨음을 가르치신 다음에, 이 교훈을 새기라는 뜻에서 제자들의 발까지 씻어주셨습니다. 이러한 섬김이야말로 사랑이라는 가르침의 성사로서 최후의 만찬에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것입니다. 이 성사에 담긴 뜻은 서로가 섬기는 뜻으로 공동합의적 구조를 교회에서 이룩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진리의 복음을 만방에 전하고자 로마부터 선교했는데, 로마인들은 이 진리로 인한 은총을 갈망한 나머지 형식만을 받아들였을 뿐 정신을 본받지 않았습니다. 결국 로마의 시민 전체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상황에서도 정신적 타락과 경제적 부패를 모면하지 못하여 제국이 멸망했습니다. 그런데도 가톨릭교회는 로마화되어 만방에 복음을 전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습니다. 제국은 망하고 교회는 제국화된 것입니다. 

 

새로운 표현, 아시아의 교훈

그런데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파견된 서양 선교사들은 아시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순교를 각오하고 파견되어 왔으면서도 자신들의 방식을 고집했습니다. 아시아인들의 신앙 감각을 존중하지도 않았고, 교회의 결정방식이 공동합의적이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고백하던 전통을 올곧게 계승하지 못한 것입니다. 다행히 한국의 신앙 선조들은 순교로써 이를 계승했으며, 그 후손들은 순교 정신으로써 이를 이어받고자 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는 길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종교들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최고선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십자가를 짊어지는 가운데 예수님의 신성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미 서구화되어 가는 아시아에서 서구의 무신론 풍조에 물든 무신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길 역시, 사회의 공동선을 증진시키는 십자가를 짊어지는 가운데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심을 체험시켜 주는 길밖에 없습니다. 

 

요즘 하도 일부 종파와 교파들이 세상에서 문제를 일으키니까, 믿지도 않는 사람들이 종교를 걱정해 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종교나, 신 개념이 무척 궁금합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가톨릭교회가 전하고 있는 복음은 이런 것입니다. 즉, 하느님의 최고선은 당신을 닮아야 할 인류가 자유롭고 평등하며 정의롭고도 평화로운 세상에서 구원되는 것이고, 이를 위한 사회의 공동선은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셨듯이 인간이야말로 하느님을 닮아야 할 귀한 존재임을 현실에서 입증하는 것입니다. 전례에서 이 진리를 체험하고, 교리로써 가르치고 배우며, 삶에서 실천하는 길이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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