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하늘, 땅, 마음 그리고 하느님

70

본문

욥 1,1-10; 히브 1,1-2,12; 마르 10,2-16
2021.10.3.; 연중 제27주일; 이기우 신부

  아스라이 먼 옛날에 하느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창조주이십니다. 하느님께 대한 많은 이름이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름이 창조주 하느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신앙을 고백하지요.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창조주 하느님께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들로 우주를 채우셨는데, 축복스럽게도 그 가운데 유독 우리가 사는 지구라는 별에만 생명이 살 수 있는 세상을 조성하셨습니다. 인류가 우주와 천문에 대한 지식을 갖추게 되고 관측 기술도 발달하면서 혹시 다른 별에도 생명체가 살고 있는지 궁금해서 엄청나게 많은 돈과 노력을 들여서 찾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가까운 태양계는 물론 은하계에도 생명이 살 수 있는 별이 없습니다. 

 

  이 지구 별에서 온갖 살아있는 것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하느님께서는 보시고 참 좋아하셨습니다. 땅에는 푸른 싹이 돋아났고, 그 싹에서 풀과 나무가 종류대로 무성하게 피어났으며, 다양한 동물들이 뛰어다녔습니다. 바다에서는 온갖 물고기들이 헤엄쳐 다녔고, 땅 위에서는 새들이 날아다녔습니다. 그래서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그 아름다운 세상을 당신 대신에 다스리라고 당신을 닮은 모습으로 사람을 지어내셨습니다.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은 아주 친근하게 부르는 이름이 있습니다. 하늘입니다. 하느님은 하늘이셨습니다. 온 땅과 바다가 다 거기서 나왔고 온 땅과 바다를 다 품을 수 있을 만큼 넓고 높았으며, 온 땅과 바다에 골고루 햇빛을 비추어주시고 비도 골고루 내려주실 만큼 넉넉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늘이라는 말만큼 창조주 하느님을 잘 표현하는 말이 없습니다. 크고 넓고 넉넉하다는 뜻도 들어가 있고, 모든 것과 모든 생명체를 태어나게 하신 존재라는 뜻도 들어가 있습니다. 특히 하늘은 한알이라는 우리 말 표현에서 그렇습니다. 

 

  하늘이신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닮을 수 있도록 사람에게 마음을 주셨습니다. 물질에는 마음이 없습니다. 식물이나 동물에게도 마음은 없습니다. 오직 사람에게만 마음이 있고, 이 마음으로 사람은 하느님을 의식하고, 사랑하며, 찬미하고, 감사할 줄 압니다. 이런 뜻에서는 제한적으로 인내천(人乃天)이라는 깨달음도 일리가 있습니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하느님과 같다는 뜻은 물론 아니고, 피조물에 불과한 사람이 황공하옵게도 조물주이신 하느님의 마음을 알고 느끼며 공감할 수 있다는 그런 뜻입니다. 

 

  마음 속에 하느님의 얼을 새겨 받은 덕분에, 사람은 주님께서 계시는 집과 주님의 영광이 깃드는 곳을 사랑하며 살았고(시편 26,8), 자신을 기억해 주시는 주님을 찬미하며,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시고 만물을 다스리도록 위임해 주신 주님께 감사드길 줄 알았습니다(시편 8,5-7). 인간의 존엄성은 자신을 지어내신 근원적 존재 즉 창조주 하느님을 알고 믿으며 닮고자 노력한다는 그 놀라운 가능성에 있는 것입니다. 그밖에는 사람이 가진 그 어느 특성도 인간 존엄성의 근거가 되기에 부족합니다. 따라서 사람이 이러한 인간 존엄성을 깨닫지 못하면 얼마든지 죄를 지을 수 있고, 하느님과 등질 수도 있습니다. 악마, 악령, 마귀 등으로 불리우는 사탄이 노리는 지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이 자기의 귀함을 모르게 하는 것, 그래서 하느님과 떼어놓는 것. 

 

  이처럼, 하느님께서 주신 얼이 새겨진 마음을 지닌 사람이 욥이었습니다. 구약성경 46권 중에서 욥기만큼 한 사람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그러면서도 자세하게 기록해 놓은 책은 없습니다. 욥은 실존 인물이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가공 인물도 아닙니다. 하지만 욥은 아브라함 이래로 하느님을 믿어온 이스라엘의 이상형 인물인 동시에 유다인들이 도달하고자 노력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역사에는 고난을 당하면서도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지키고자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기울인 수많은 욥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욥은 대표적인 아나빔입니다.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그는 흠이 없고 올곧으며 하느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끼어 들어 욥을 시험하였습니다. 사탄과 욥의 관계가 욥기에서 주로 다루는 관심사항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욥, 그래서 하느님께서도 믿으시는 하느님의 사람인 욥이 어떻게 사탄이 방해하는 계략을 물리쳤는지가 매우 중요한 욥기 저자의 관심사였습니다. 

 

  어느 날부터 욥은 발바닥부터 머리 꼭대기까지 고약한 부스럼으로 고통받기 시작했습니다. 어찌나 괴로웠던지 그는 질그릇 조각으로 제 몸을 긁으며 잿더미 속에 앉아서 그 고통을 참아 견디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아내는 하느님을 경외하며 착하게 살아왔는데,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느냐고 억울해 하며 하느님을 원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욥은 미련한 아내를 꾸짖으며, “하느님에게서 좋은 것을 받았다면 나쁜 것을 주셔도 받아야 하지 않겠소?”(욥 2,10) 하며 견디었을 뿐, 입술로는 하느님께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모든 재산마저 빼앗겼지만 그래도 욥은 한결같이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이 대목이 가장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수많은 욥들이 이룩한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예언자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여러 번 여러 가지 방식으로 말씀하셨음을 상기시켰으며, 이 마지막 때에는 당신의 아드님을 통하여 말씀하셨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야말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신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음을 상기시켜 준 것이고,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새로이 창조하시기 위하여 원 창조 시에도 함께 계셨던 당신의 말씀이신 예수님을 보내셨다고 선포한 것이었으며, 이는 새 하늘이 땅에 내려오셨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시면서도 당신의 역할을 염두에 두시고,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4,17)고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사실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시던 때에 하느님은 혼자가 아니셨고, 성자와 성령께서도 성부와 함께 우주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를 닮은 사람을 만들자”(창세 1,26)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바로 이 점, 즉 삼위일체로서 창조하시는 하느님의 경륜이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새 세상을 창조하신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세상에는 욥처럼 의로운 이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 많은 카인의 후예들이 사탄의 꼬임에 넘어가 마구 욕심을 부리며 세상을 타락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을 새로 창조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새 하늘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새 땅이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사는 겨레에게도 새 땅이 시작되었다는 소식과 새 하늘이신 예수님을 믿는 신앙이 오랜 세월을 거친 후에 오묘한 섭리로 전해졌습니다. 

 

  이 신앙 진리가 겨레에게 전해지는 길을 닦은 선각자들은 유학의 경전 속에 있던 하늘 천(天)자를 통하여 하느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사실 그 이전까지 유학자들은 허공의 하늘, 푸른 창공에다가 사람의 마음 속에 드리워진 도덕 법칙만 생각했지 인격적인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이 하느님 신앙은 이미 5천 년 전에 겨레의 첫 조상들이 나라를 세우고 문명을 이룩하면서 깨우쳐 준 바 있었습니다. 세상 어느 민족도 나라를 세우면서 하늘이 열렸다고 말하지 않았는데, 우리 조상들은 하늘이 열린 덕분에 자신들이 하느님의 자손임을 자각했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땅을 다스려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 첫 조상들은 하느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기 위하여 제사를 지내왔고 이 제천의식에서 계시받은 대로 모든 인간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해야 한다는 홍익인간의 진리를 후손들에게 전해 주었으며, 그 진리에 따라 의로움을 추구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겨레로 동아시아에서 반만 년을 살아 왔습니다. 그러니 우리 겨레의 역사에는 예수님께서 오실 길을 준비한 세례자 요한들이 무수히 많이 등장했던 셈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세대는 기후위기가 심각해진 나머지 인류가 다음 세대에까지 과연 존속할 수 있을지가 걱정되는 최초의 세대입니다. 이 문명의 근본적 회개와 성찰을 위해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반포한 최초의 생태 회칙 ‘찬미받으소서, 주님’은 이제껏 하느님을 믿어온 사람들이 많았고, 그리스도교가 서양 문명을 주도하면서도 하느님께서 주신 세상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고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올바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뼈아픈 반성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환경을 깨끗하게 보존하고 생태계를 아름답게 물려주는 일에는 불편함이 따르기는 하지만, 이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고자 예수님께서 짊어지신 십자가의 고통은 물론, 의로운 욥이 겪었던 고생에도 비할 바는 못 됩니다.

 

  교우 여러분, 마음이 하늘입니다. 하느님의 얼이 깃든 이 하늘 마음으로 땅에도 하늘을 세워야 합니다. 주님이 계시고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의 집, 이 지구를 아름답게 가꾸어서, "보시니 좋더라!" 하고 경탄하셨던 하느님처럼 우리도 우리 눈과 우리 입으로 경탄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 하늘을 세워야 할 사명을 새롭게 하는 오늘은 개천절(開天節)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