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123

본문

지혜 2,12-20; 야고 3,16-4,3; 마르 9,30-37 
2021.9.19.; 연중 제25주일; 이기우 신부

  예수님께서 공생활 전반기에는 주로 갈릴래아 지방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고, 그 후반기에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주로 제자들을 사도로 양성하시는 일에 주력하셨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에 관한 예고와 함께,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오늘 복음도 그 중의 대표적인 가르침입니다. 이는 제자들이 짊어져야 할 십자가의 구체적인 내용을 일러주신 가르침이었습니다.

 

  비유하자면 이 진리는 영적인 의미에서 천동설을 지동설로 바꾸어주는 커다란 전환이었습니다. 이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서로 첫째가 되려고 다투게 되어 세상에는 혼란이 끊이지 않게 됩니다. 이 진리를 반대하는 악인들은 이웃을 섬기며 살아가려는 의인을 시기하여 덫을 놓는 악행까지 저지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예수님의 이 가르침을 핵심으로 삼아 가톨릭 교회를 쇄신하고자 하였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공의회의 쇄신 의지를 담아서 2014년에 ‘교회 생활에서의 신앙 감각’이라는 문서를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반포하였습니다. 여기서 교황은 서로 섬겨야 한다는 말씀을 하느님의 진리로 믿는 신앙 감각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성직자들은 가르치고 능동적으로 행한다거나, 평신도들은 배워야 하고 수동적으로 행한다는, 기존의 잘못된 교회관을 배격하였으며, 모든 세례 받은 이가 예언자직, 사제직, 왕직이라는 그리스도의 세 가지 직무에 각기 고유한 방식으로 참여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 좋은 예로서, 평신도들의 신앙 감각을 높이 샀던 비오 9세와 비오 12세 교황 시절에, 마리아의 무염시태와 몽소승천이 성경에 직접 언급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망설이는 교황청 관료들과 반대하는 신학자들을 무릅쓰고 각각 1854년과 1950년에, 마리아의 무염시태 교리와 몽소승천 교리가 확정되었던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들었는데, 이 두 교리는 초대교회 시절 이래로 근 2천 년 동안이나 평신도들 사이에서 신앙 감각으로 확신되어 오던 신심이었습니다. 동정녀의 처지에서 오로지 믿음만으로 예수님을 성령으로 잉태하시고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올곧게 예수님의 길을 가신 성모 마리아이시라면, 하느님께서 잉태와 죽음의 순간에 특별히 보호하셨을 것이 틀림없다고 믿었던, 평신도들의 소박하지만 확신에 찬 신앙 감각의 발로였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서로가 꼴찌가 되어 섬겨야 한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진리임을 확신하는 평신도들의 신앙 감각은 어려운 설명 없이도 이해할 수 있는 능동적인 능력이자 감수성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공의회는 교회헌장에 이런 내용을 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섬김으로 이룩하는 당신의 직무를 성직자들만이 아니라 평신도들을 통해서도 수행하시며, 가정과 사회의 일상생활에서 복음의 힘이 빛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평신도들은 성사 생활로 그 믿음을 더욱 굳세게 하여 세상의 복음화를 위하여 귀중한 활동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35항). 또한 계시헌장에서도 사도들을 통해 전해 내려온 예수님의 이 진리에 대한 믿음이 활성화되기 위한 세 가지 방법을 가르쳤습니다. 그것은 “첫째, 마음 깊이 진리를 새겨 간직하는 명상과 공부, 둘째 영적인 식별로 실천하며 겪는 체험, 셋째 확고한 진리의 은사를 받은 주교들의 설교”라는 것입니다(8항). 

 

  이 같은 섬김의 진리를 실제 사목에서 구현한 인물은 올해로 탄생 백 주년을 맞아 그 생애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초대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입니다. 그는 신생 교구로서 교세가 빈약한 상황에서도 신자들을 늘리려고 하기보다도 교구가 관할해야 하는 지역 내에 가난한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을 직시하고 가난한 이들의 눈으로 사목하고자 오늘날 사회사목이라 일컬어지는 통합적 인간발전을 위한 깃발을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가난한 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문제와 상황을 깨닫게 하는 의식화 교육을 실시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주민 자조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지 주교가 보여준 섬김의 사목은 첫째, 가난한 이들의 온전한 인간 발전을 위한 노력, 둘째 협동조합 운동을 통한 참여적 대안 경제 설립과 독점과 독재에 저항하려는 정치개혁 요구, 셋째 환경을 오염시키고 생태계의 균형을 깨뜨리는 산업 문명을 따라가지 않고 모든 생태계가 협동적으로 공존할 수 있도록 모색하려는 노력 등 선구적인 모범이었습니다. 

 

  원주 교구와 그 모태가 된 춘천 교구는 지금도 이 강원 지역 복음화의 산실이 된 풍수원에서 성체 현양 대회를 1920년부터 열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뿌리이자 신앙생활의 맥이 된 교우촌이 한국에서 최초로 형성된 풍수원의 전통을 계승하는 한편,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섬김의 진리를 성체성사의 영성으로 생활화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서로가 첫째가 되려고 다투는 세상과는 정반대로 서로 꼴찌가 되어 섬기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섬김의 진리에 대한 신앙 감각으로 살아갑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