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귀가 열리고 혀가 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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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이사 35,4-7; 야고 2,1-5; 마르 7,31-37
2021.9.5.; 연중 제23주일; 이기우 신부

  예수님께서는 주로 갈릴래아 지방에서 유다인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어느 정도 복음이 알려졌을 즈음에, 북쪽 해안 지방에 사는 이방인들에게로 가셨습니다. 내친 김에 역시 이교도들이 사는 시돈과 데카폴리스 지방 한가운데를 가로질러서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만나셨습니다. 마귀들이 판을 치는 이교도들의 생활 문화에서는 우상 숭배가 만연해 있어서 마귀로 인한 귀 먹음과 말 더듬이 흔했습니다. 

 

  그런데 유다인 아나빔들 사이에서는 메시아가 오시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들뿐만 아니라 눈먼 이들이나 다리 저는 이들까지도 온전히 치유되리라는 희망이 퍼져있었고, 이 희망찬 미래는 아나빔들을 대변한 이사야가 예언자적 상상력으로 이미 내다본 예언에 나타나 있었습니다. 이는 유다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까지도 포함되는 그래서 인류 전체를 위한 보편적인 예언이요 또한 신체적인 불구와 장애 상태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나 영적인 불구와 장애에 대해서도 해당되는 그래서 전인적인 예언이었습니다. 

 

  보편적으로나 전인적으로 회복해야 할 인간의 능력, 그래서 결국 하느님을 닮아야 할 인간의 품격은 사랑과 진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나의 형제 여러분, 영광스러우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야고 2,1). 이 말은 사람들이 본질적으로 지니고 있는 마음과 진실 등을 존중할 줄 몰라서 인간에 대한 예의를 모르는 사람들, 그래서 사랑할 줄을 모르고 사랑해 본 적도 없는 정신적 장애자 내지 영적 불구자와도 같은 이들을 향하여 권고한 말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티로와 시돈 그리고 데카폴리스 같은 이방인 지역에서 만나신 이교도들뿐만 아니라 갈릴래아 지방에서 만나신 유다인들 가운데에서도 눈먼 사람, 귀 먹은 사람, 말 더듬는 사람, 다리 저는 사람들은 많이 만나셨고, 이들의 신체적 장애와 불구는 금방 치유될 수 있었습니다. 더 심각한 불구와 장애는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귀먹고 눈멀고 말 더듬고 다리 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신체 기능이 멀쩡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거나 영적으로 불구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는 로마 제국이 통치하며 착취하는 폭력에다가 사두가이와  바리사이 같은 엘리트들이 가하는 사회적인 억압과 경제적인 착취, 그리고 율법상 작은 허물도 죄인으로 낙인찍는 갑질 등이 만연해 있었습니다. 이렇게 강한 자들이 약한 이들에게 악행을 저지르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면역력이 극도로 약해지기 때문에 병이나 장애에 걸리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병들고 마귀들린 이들을 온전하게 치유해주시는 한편으로, 이들에게 악행을 저지르던 자들과 맞서야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오던 당시의 조선 사회에서도 양반 계층의 사대부들이 저지르던 구조적인 악행을 합법적으로 저질렀습니다. 노비들은 사람도 아닌 짐승처럼 취급했고, 중인이나 상민들은 인간 이하로 하대했으며, 양반 중에서는 적자가 아닌 서얼도 관직에 나아가지 못하게 차별했고, 여성들은 신분에 상관없이 사회 진출에 제약을 받는 등 대다수의 백성을 심하게 괴롭혔습니다. 이렇듯 양반에 의한 저질러진 신분 차별은 사회 전반에 걸쳐서 합법적으로 이루어지는 구조적인 갑질이었고, 당하는 피해자들에게는 일생 동안 심지어 자자손손 행해지는 영속적인 악행이었습니다.  

 

  이러한 세상이 크게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이들 중에서 선각자 선비들의 도움으로 하느님을 믿게 된 천주교 신자들은 박해의 바람이 불어닥치자 심산유곡을 찾아 들어가서 교우촌을 이루어 살면서 또 다른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거기서 신자들은 사회적 신분과 상관없이 서로를 믿음의 벗이라는 뜻으로 서로를 교우라고 부르며 살았습니다. 하느님의 진리를 보는 눈으로 목숨 바쳐 믿음을 지키려하는 서로의 진실을 보았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눈으로 서로의 애환과 희망의 이야기를 들었으며, 하느님께 말씀드리는 입으로 흠숭과 찬미, 감사와 속죄의 기도를 바쳤습니다. 

 

  농토가 될 만한 변변한 땅뙈기가 없는 탓에 담배 농사를 짓거나 옹기나 숯을 구워팔면서 헤어진 교우들의 소식을 탐문하기도 하고 교우촌 소식들을 주고 받으며 성사생활을 해 나갔습니다. 고아나 과부 등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교우촌에 찾아오면 내치지 않고 그 가난한 살림에도 숟가락을 더 얹어서 함께 나누어 먹었습니다. 박해의 피바람이 불어 교우들 중에서 누군가 치명하면 그들 자녀들의 대부 대모가 되어 길러주는 등 그들의 팔 다리는 사랑의 도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귀와 눈, 입과 팔다리가 온전히 살아있던 세상, 예수님 덕분에 인간답게 살 수 있었던 대조사회가 바로 박해시대의 천주교 교우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와는 딴판으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잊어버리고 인간을 사랑하는 법마저 잊어버린 우리 시대의 불구자들, 하느님을 보지 못하고 진리를 듣지 못하며 사랑의 말을 더듬는 우리 사회의 장애자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나 흔합니다. 이 불구자와 장애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치유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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