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세상 복음화와 자기 성화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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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신명 4,1-8; 야고 1,17-27; 마르 7,1-28
2021.8.29.; 연중 제22주일; 이기우 신부

⒈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지은 신국론에 담긴 역사적 통찰 덕분에 우리 교회가 배우는 역사적 교훈이 있습니다.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고 그가 남겨 준 통찰로 인해서 오늘 미사에서 들은 하느님의 말씀이 더 풍요롭게 밝혀집니다. 세상에 죄는 넘쳐납니다. 그런 죄악에 물들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일은 물론 필요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대책은 우리의 마음을 하느님으로 채우려는 노력입니다. 이는 어려움을 겪는 고아와 과부 등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아 주면서도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갈등과 번뇌를 자기 성화를 위한 십자가로 받아들여 승화시킴으로써 자신을 성화시키는 노력을 말합니다. 세상을 복음화시키는 일에서 도피하지 않고 오히려 공동선에 봉사하면서도, 하느님 앞에서 깨끗하고 흠 없는 신심을 간직하는 노력이기 때문입니다. 

 

⒉ 하느님 백성으로 선택되었던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 숭배에 빠져 나라가 멸망하고 끝내는 하느님으로서 당신 백성에게 오셨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역사적 사례를 보거나,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삼았던 로마 제국이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결과로 복음화되기는커녕 자신은 멸망당하고 오히려 가톨릭교회를 제국교회로 만들어 버린 역사적 사례를 볼 때, 복음화의 길은 분명합니다. 

 

⒊ 이 가톨릭교회의 제국화 현상을 두고 근세의 역사가들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는 말로 평가하였습니다. 과학적 상식은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이라고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밝혀졌는데, 제국화된 가톨릭교회의 행태에서 나타나는 종교적 상식은 거꾸로 천동설로 돌아가고 있다고 비꼰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고 서로 발을 씻어 주라고 가르치시고 몸소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으며 그 십자가로 부활하셨는데, 그리스도 예수님의 부활을 선포하는 교회는 제국이 되어 세속 국가들도 지배하고 다른 종교와 다른 문화를 가진 다른 대륙의 사람들을 강제로 개종시키려 함으로써 역사를 후퇴시켰다는 비판인 것입니다.  

 

⒋ 실제로, 로마제국을 따라 로마 가톨릭교회라는 이름을 받아서 유럽을 정신적으로 지배하게 된 서방 교회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로 갈라지는 진통을 겪으면서도 인류 복음화의 기치를 높이 들고 다른 대륙의 정복을 응원하였습니다. 그 결과, 남북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은 유럽에서 건너간 백인 그리스도인들의 선교와 종교적 자유를 위해 수도 없이 학살당했고, 아메리카 대륙에서 신세계를 건설하기 위하여 아프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은 남북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한 백인 그리스도인들의 노예가 되기 위해 비참한 처지로 팔려 가야 했습니다. 오늘날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중동 이슬람 국가들의 복잡한 국제적 갈등, 소말리아를 비롯한 아프리카 국가들의 끊이지 않는 내전 상황에는 이 지역을 지배하고 불평등한 교역을 강제하며 자원을 수탈하다가 국제 여론이 나빠지자 인위적으로 국경선을 그어 놓고 자신들은 손을 떼어버린 백인 그리스도인들의 무책임한 처신이 있습니다. 세계인들의 양심은 백인 그리스도인들이 세계에서 선진국 행세를 하며 부유하게 살게 된 배경에 이러한 수탈과 착취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음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흘렀어도 문명의 내용은 전혀 나아지지 못하고 있다는 고발인 것입니다.

 

⒋ 여기서 아우구스티노가 일깨워주고자 했던 역사적 통찰이 빛을 발합니다. 즉, 복음화의 과업은 사회에서 최고선과 공동선의 가치를 구현하면서 개인들이 사랑받고 사랑하는 체험을 통해서만 이룩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가치를 구현함이 없이 그 사회에 사는 사람들을 몽땅 신자로 만든다고 해서 복음화되는 것이 아니요, 하느님 사랑을 체험하고 그 사랑을 자신도 다른 이들에게 주어 보는 체험을 하지 않고서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복음화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⒌ 지혜롭고 슬기로운 복음화의 길은 이웃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인 공동선에 우선적으로 투신하는 데 있습니다. 어려움을 겪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아 주라는 야고보 사도의 권고처럼, 현 시대의 소외되고 불이익당하는 우리 시대의 사회적 약자들의 어려운 사정에 민감해야 하고 그들의 목소리와 울부짖음을 대변하여 공동선에 반영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사회적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의 악행에 대해 분노하는 일보다 더 중요합니다. 그러자면 선의의 사람들과 연대하는 일은 필수적입니다. 그래야 사회적 여론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와 함께 반드시 균형을 잡아야 하는 노력은 그러한 투신과 연대로 인하여 얻게 되는 갈등과 번뇌를 기도의 소재로 삼아 자기 성화의 불쏘시개로 삼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깨끗하고 흠 없는 신심은 세상으로부터 도피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은총이 아니라 이러한 사랑의 투신과 의로운 연대 그리고 이어지는 기도로써 얻어지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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