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삼용 요셉 신부 <성체를 떠나는 사람들의 공통점: 육에 대한 분노와 적대감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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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자
부티노네(Butinone) 작, (1490),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오늘 복음에서는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체험한 이들이 예수님께서 당신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고 하시자 그 말씀이 너무 어렵다며 결국 예수님을 버리고 떠나갑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영적인 인간이 아니라 육적인 인간이기 때문에 당신을 떠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성체성사의 본래 의미를 알게 되면 육적으로 사는 사람들은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살아오던 삶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도 바쳐야 하고 사람도 판단할 수 없으며 육체도 절제하여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성체는 육체를 파괴하려고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기 생명까지 미워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육체를 사랑한다면 성체 앞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이해할 수 없다고 떠나버릴 것입니다. 오늘 유다인들이 보인 반응입니다. 그들은 계속 육체를 배 불리는 빵만 원했던 것입니다.

 

    성체와 육체의 관계를 따지자면 떠오르는 상징이 있습니다. 다니엘서 2장에 나오는 동상입니다.

    바빌론 왕 네부카드네자르는 꿈을 꾸고서 마음이 불안하여 잠을 자지 못합니다. 그는 온 세상을 통치하는 왕입니다. 그래서 현자들을 모아 그의 꿈을 맞추고 해석하라고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다 죽이겠다고 말합니다. 이때 바빌론으로 끌려온 다니엘도 있었습니다.

 

    다니엘이 죽기 직전 하느님께서는 환시로 그 꿈을 알려주십니다.

그 꿈은 이렇습니다. 머리는 황금이고 가슴과 팔은 은이며, 배와 허벅지는 구리이고, 종아리는 철, 그리고 발은 철과 흙이 섞인 동상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산에서 떨어져 나온 돌이 쇠와 진흙이 섞인 발을 때려서 동상이 무너져 가루가 되는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석합니다. 금으로 된 머리는 바로 지금 세상을 지배하는 네부카드네자르입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올 나라들은 은과 같고 동과 같고 철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들을 지탱하는 발은 철과 흙이 섞여 있어서 매우 약합니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바빌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순으로 그 금속의 상징을 볼 수 있겠습니다.

 

    어쨌든 돌이 무엇인지는 모르는데 그 나라들을 모조리 허물어버립니다. 그리고 그 돌은 산처럼 커집니다. 그 돌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어떠한 나라들을 무너뜨리고 영원히 성장할 ‘하느님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허물어져야 하늘나라가 세워질까요? 육체의 나라입니다. 동상은 육욕이 지배하는 나라임이 틀림없습니다.

    그 돌의 역할을 하러 하늘에서 떨어져 나오신 분이 누구이시겠습니까?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발을 당신 피로 씻어주심으로써 우리 육체가 다 허물어지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위에 당신 나라를 세우십니다. 그러나 내가 무너지기를 원치 않는다면 나를 허물러 오시는 그리스도는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럴 때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라고 하게 됩니다.

 

    요한복음은 성체성사의 제정이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것으로 대체한 것입니다. 성체가 그 사람 안에 들어가면 하느님께서 겸손하게 나의 발을 씻어주시는 예식처럼 여겨집니다.

    교황님이 오셔서 나의 더러운 발을 씻어주시고 발바닥에 입을 맞추신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제자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배신하고 도망갑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내리시자 이젠 도망치지 않습니다. 이전의 육적인 삶을 완전히 벗고 그리스도만을 위한 삶을 삽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성체라는 돌로 내 육체를 허물려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라면 말씀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핑계로 성체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믿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내 육체의 모든 욕구가 허물어질 것을 직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체를 영하려는 이는 그 성체가 내 안에서 무엇을 허물어뜨리기 위해 날라오는지 알아야 합니다. 나를 영적인 나라로 만들기 위해 육체적인 나라를 허물러 날라오는 돌과 같습니다.

    

    우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헐크’라는 푸른 괴물의 이야기를 TV나 영화로 보아왔습니다. 성격은 괴팍해도 약해빠진 본래의 브루스 배너라는 박사가 죽지 않으면 위기에 처한 친구를 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박사는 자신이 사라지고 헐크가 날뛰는 것을 좀처럼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헐크의 최대 적은 자기 자신인 배너 박사입니다. 헐크가 열이 받을수록 배너 박사는 사라집니다. 그리고 헐크가 나타나 모든 일이 해결됩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 나를 죽이고 내 안의 거인을 깨워 이 세상에서 하시려는 일을 방해하는 브루스 배너 박사에게 열이 받아야 합니다. 그럴 줄 알아야 친구들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나를 무너뜨리기 위해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인 발을 때리는 돌이 성체입니다. 성체가 나를 무너뜨리지 못하면 그 어떤 것도 나를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내 안의 우상인 나 자신을 허물어 당신 나라를 만들기 위해 오시는 성체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 모십시다.

    내가 죽어야 나도 살고 이웃도 살 수 있음을 모른다면 성체는 영원히 생명의 양식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떠나는 사람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육에 대한 적대감도 없고 분노도 없다는 사실 하나입니다.

 https://youtu.be/hKA0smfEe5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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