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신(新) 준주성범(遵主聖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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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아모 7,12-15; 에페 1,3-14; 마르 6,7-13
2021.7.11.; 연중 제15주일; 이기우 신부

⒈ 하느님을 믿고 섬기는 신앙의 길은 우상을 멀리 하고 마귀를 쫓아내는 길입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조성하시고 인간에게 맡기신 뜻은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진리 안의 모든 선, 즉 사랑과 자유, 자비와 평등, 정의와 평화 같은 최고선을 기본으로 인간의 존엄성,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 선택, 연대성과 보조성, 공동합의성 같은 공동선을 구현함으로써 인류가 행복하게 살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한처음 에덴 동산에서부터 이러한 하느님의 뜻을 가로막고 방해해 온 마귀는 사람들로 하여금 힘을 추구하도록 부추겨왔습니다. 하느님의 뜻 대신에 인간의 힘을 내세움으로써 자신이 하느님이라도 된 듯한 성취감을 맛볼 수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마귀의 전략은 인류 역사상 종종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⒉ 오늘 제1독서에서 아모스 예언자는 북 이스라엘 왕국의 사제 아마츠야와 대결하고 있습니다. 아모스가 살던 그 시기는 나라 안팎으로 무법천지를 방불케 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아직 강대국 앗시리아가 일어서기 전에, 고만고만한 나라들끼리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도토리 키재기 같은 힘을 겨루며 온갖 죄를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⒊ 국제적으로 보면, 다마스쿠스 사람들은 타작기로 길앗 사람들을 짓뭉갰으며(아모 1,3), 가자와 에돔 사람들은 전쟁에서 포로로 사로잡은 이들을 모조리 끌고 가서 에돔에게 노예로 팔아 넘겨 버렸습니다(아모 1,6.9). 에돔 사람들은 칼을 들고 제 형제를 뒤쫓으며 무자비한 분노를 품었고(아모 1,11), 암몬 사람들은 저희 영토를 넓히려고 길앗 여자들의 임신한 배를 갈르는 죄도 저질렀습니다(아모 1,13). 모압 사람들은 에돔 임금의 뼈를 불살라 횟가루로 만들어 버렸고(아모 2,1), 동족인 유다 사람들은 주님의 법을 배척하고 우상에게 홀려 버렸습니다(아모 2,4). 

 

⒋ 그런가 하면 국내적으로도 사람들이 빚돈을 빌미로 무죄한 이를 팔아 넘기고 신 한 켤레를 빌미로 빈곤한 이를 팔아 넘겼습니다(아모 2,6). 또 힘없는 이들의 머리를 흙먼지 속에다 짓밟고 가난한 이들의 살 길을 막았으며, 아들과 아비가 같은 처녀에게 드나들고 있었고(아모 2,7), 저당 잡은 옷들을 펴서 그 위에 드러누워 즐기고 벌금을 모아 사들인 포도주를 제사를 드려야 할 하느님의 집에서 마셔대고 있었습니다(아모 2,8). 의인을 괴롭히고 뇌물을 받았으며, 공정한 재판을 펴야 할 성문 앞에서 빈곤한 이들을 밀쳐 내기도 했습니다(아모 5,12). 

 

⒌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돌무화과 나무를 재배하며 양떼를 키우던 농부 아모스에게(아모 7,14-15) 예언자가 되어 다음과 같은 말씀을 전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의 축제들을 싫어한다. 배척한다. 너희의 그 거룩한 집회를 반길 수 없다. 시끄러운 노래를 집어치워라(아모 5, 21-23). 악이 아니라 선을 찾아라(아모 5,14). 다만 공정을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아모 5,24).

 

⒍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파견하신 이유는 이러한 죄악들이 세상을 더럽히고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을 부추기고 있던 마귀를 쫓아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자니 마귀 들려 고생하거나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돕는 일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선포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바야흐로 다가왔음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제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일이었습니다. 그 소식을 받아들여 믿는 것이 회개였습니다. 

 

⒎ 아모스 예언자 당시에 북 이스라엘 안팎에서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죄악을 저질렀던 이유는 자기를 앞세워 힘을 추구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상을 숭배하는 짓이고 마귀의 지배를 받는 짓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쫓아내라고 하시며 하느님의 뜻을 추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 자신부터 자기를 비우고 낮추는 삶으로 솔선수범하셨습니다. 이것이 십자가로 부활하는 영원한 삶입니다. 

 

⒏ 하느님을 믿고 섬긴다는 것은 힘이 아니라 뜻을 추구하는 것이며, 뜻을 추구한다는 것은 진리를 향하여 선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최고선을 바탕으로 공동선에 투신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하라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이를 위해 하느님께서는 천지창조 이전에 우리를 택하시어 당신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게 하시고, 진리와 선 안에서 모두가 하나가 되게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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