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하느님의 자비, 예수 그리스도로 우리를 구원해 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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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사도 4,32-35; 1요한 5,1-6; 요한 20,19-31
2021.4.11.; 부활 제2주일; 이기우 신부

⒈ 부활 제2주일인 오늘로써 부활 팔일 축제를 마감합니다. 팔일 동안이나 경축해야 할 만큼 부활은 일년 중 가장 큰 축일이었습니다. 그 마지막 날인 오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지니는 의미를 하느님의 자비로 조명합니다. 사실 예수 부활은 그분의 신비스러운 탄생과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울하고도 참혹했던 죽음을 통해서 얻어진 귀하디 귀한 하느님의 자비였습니다. 

 

⒉ 예수님께서 세 번에 걸쳐 자신들 앞에 나타나시고 나서야 그분이 확실히 살아나셨음을 믿게 된 제자들은 공생활 동안 예수님께서 가르치셨고 당부하신 양성 취지대로 사도로 거듭 났습니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예전의 불신과 의심, 비겁함과 소심함을 깨끗이 털어버리고 담대한 믿음과 굳센 용기, 거룩한 깨달음과 슬기로운 언변으로 세상에 나섰습니다. 사도행전의 저자요 바오로의 제자인 루카는 예수님께서 직접 양성하신 직제자들이 이토록 놀라운 변화를 보인 모습을 두고 이러한 표현으로 증언해 주었습니다.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모두 큰 은총을 누렸다”(사도 4,33). 

 

⒊ 예수 부활의 은총은 사도들의 변화로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평소 제자들의 언행을 잘 알고 있던 유다인들은 이 늦깎이 제자들이 보여준 놀라운 변화를 보고서는 자신들도 달라지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즉,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사도 4,32)할 정도로 변화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이 공동 소유라는 놀라운 생활양식은 믿는 이들 안에서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믿는 이들 바깥에 있던 가난한 이들과도 나누는 더 놀라운 행동양식으로까지 진화되었습니다. “땅이나 집을 소유한 사람들이 그것을 팔아서 받은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고, 저마다 필요한 만큼 나누어 받곤 하였기 때문에”(사도 4,34-35), 나눌 마음과 나눌 돈은 충분했습니다. 

 

⒋ 바로 이렇듯이, 예수 부활의 은총이 사도들의 변화를 거쳐 신자들의 공동체화에 이르는 놀라운 과정이 바로 하느님의 자비였습니다. 그런데 이를 모방하려던 시도가 교회 역사상 여러 번 있었습니다. 광적일 만큼 열심했던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가난한 이들과 나누지는 않는, 자신들만의 폐쇄적 재산공유 집단으로 변질되는 바람에 반사회적인 이단의 무리가 되기도 했고, 병적으로 이 모습을 흉내내고자 했던 자들은 말 그대로 공유주의자(共有主義者)가 되어 부자들의 재산을 몰수하고자 유혈혁명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초대교회 신자들의 공동체 생활에 관한 또 다른 보도를 보면 이렇습니다.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리고 재산과 재물을 팔아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필요한 만큼 나누어 주곤 하였다”(사도 2,44-45). 이 신자들은 성령을 받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할 정도로(사도 2,42) 성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자발성과 개방적 나눔으로 건실한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도록 가능하게 해 준 힘은 성령께서 내려 오셨고, 함께 이 성령을 받은 사도들이 집전해 주는 성사를 배령함으로써 영적 기운을 충만히 받았으며 그리고 자신들도 성숙한 지향으로 바친 기도였던 것입니다. 

 

⒌ 이렇듯 성령과 성사 그리고 기도로 공동체를 이룩한 초대교회 신자들의 모범과, 이에 대한 역사적 시행착오들을 거쳐, 예수님의 부활이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자비를 현대에 일깨워준 인물이 있었습니다. ‘하느님 자비의 사도’로 불린 폴란드의 파우스티나 수녀와 이를 알아보고 시복시성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입니다. 초대교회 이후 2천 년이 흐르면서 예수 부활에 대한 신앙이 갈수록 약화되어 가던 중에 파우스티나 수녀는 환시를 통해 예수님의 발현을 체험했고 그분의 강생과 수난 그리고 부활에 담긴 하느님 자비의 뜻을 믿고 그분을 본받고자 노력하는 삶이야말로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조건임을 세상에 알리라는 분부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적은 일기 ‘나의 영혼 안에서 하느님의 자비’가 그 수녀의 사후에 교회 안에 알려지면서 자비 신심이 퍼지기 시작했고, 요한 바오로 2세가 시복시성함으로써 그 신심을 공식화시켰습니다. 

 

⒍ 토마스 사도는 창과 못에 찔린 상처 자국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서야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을 믿었지만, 요한 사도는 그분의 부활을 확인할 수 있는 또 다른 방식을 이렇게 증언하였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1요한 4,16). 이 증언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 곧 그리스도교의 하느님 상(像), 그리고 그에 따른 인간의 모습과 여정을 매우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윤리적 선택이나 고결한 생각의 결과가 아니라, 삶에 새로운 시야와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한 사건, 한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베네딕토 16세,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1항). 

 

⒎ 예수님을 만나 하느님의 자비를 받고 애덕을 실천하는 삶은 사회적으로 정의를 구현하고 평화를 실현하려는 노력으로 나타납니다. 최근 실시된 지방자치단체장 보궐선거에서 여당인 민주당이 참패했는데, 이는 1년 앞으로 다가온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그 동안 문재인 정부가 기울여온 정책적 노력을 중간 평가했다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국제적으로는 한국에 대한 평가가 후하다는데, 왜 국내에서는 엇갈린 평가가 나오는 걸까요? 자칭으로든 타칭으로든, 프로급 또는 아마츄어급 정치평론가들이 내놓는 진단과 처방이 마구 쏟아지고 있는 중입니다. 그 중에서 나름 솔직하게 들리기도 하고 또 들어보니 씁쓸하기도 한 쓴 소리 하나를 소개합니다. 

 

⒏ “저는 70년대 중반 압구정동에서 태어나 30대 중반까지 살았던 40대 남성입니다. 저희 아버님은 제조업으로 자수성가하여 70년대 압구정동에 130평 대지의 2층 저택을 매입해 살다가 저희 형제가 중학교에 입학하며 편의를 위해 현대아파트로 이사를 가고 그 후 30대 중반까지 계속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그만큼 강남 코어 정서의 생성, 성장, 현재를 잘 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그럴 일도 없지만 국힘당이 '조두순'을 후보로 내놔도 강남은 투표를 안 하면 안했지 민주당을 찍지는 않습니다. LH 분노? 그런 거 관심 없습니다. 오세훈 셀프보상? 그 정도는 강남 성골 사이에서는 하찮은 일상입니다. 박형준 LCT, 조현화랑? 이정도가 그냥 평균적 삶이어서 절대 흠이나 문제시 될 일이 아닙니다. 다들 그렇게 부를 축적하고 유지하고 있는데 그걸 욕하고 못하게 하려는 민주당이 죽도록 싫은 겁니다. 이명박이나 오세훈, 박형준 같이 자신들과 비슷한 사람들이 권력을 쥐고 있어야 부를 유지하고 늘릴 수 있고 그로인해 비강남권과 더 큰 부의 차이를 만들어서 자신들과 분리되길 바라고, 비강남권 사람들이 강남에 새롭게 진입하는 걸 극도로 혐오합니다. 이런 정서는 이미 90년대 초부터 있었습니다. 

 

강남은 철저히 계급사회입니다. 신라 육두품 대입하면 대충 비슷합니다. 강남3구? 그런 거 없습니다. 서초구는 안 쳐주고 송파구는 거지 취급합니다. 그래서 마치 자신들의 존재 증명을 하듯 서초, 송파가 더 노골적으로 민주당을 싫어합니다. 

 

강남의 계급은 철저히 부로 결정되지만 어느 정도 지역성을 보입니다. 성골은 70~90년대 압구정동으로 이주해온 신흥부자들 중 사업 이윤을 대부분 부동산에 투기하여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IMF 이후로도 부를 유지하며 지금까지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재벌 3세대들, 이름대면 알만한 중견기업 2~3세대들 정도가 성골급의 코어입니다. 재수없죠? 근데 사실이에요. 저도 30대 중반까진 그 안에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압구정동에서 살아온 사람들만 공유하는 문화와 의식이 있습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철저한 계급과 차별이 생겨납니다. 강남에 산다고 다 같은 게 아닌 거죠. 이 성골들은 엄청난 특권을 누려왔고 뼈 속 깊게 그 특권의식이 박혀있습니다. '죽은 사람을 살리는 일 외에는 돈과 빽으로 할 수 없는 건 없다.'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요즘은 예전만큼은 아닙니다만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웬만한 일은 돈과 빽으로 해결되지 않는 게 없었습니다. 심지어 살인도요. 실상 살인이지만 수사과정에서부터 작업 들어갑니다. 피해자 가족 매수 당연한 거고 과실치사로 내리고 재판과정에서 또 작업 들어가서 잘 되면 집행유예, 안 되면 실형 좀 살다가 2심에서 집행유예. 익숙하시죠? 뭐, 중간에 뭔가 틀어져서 사회에서 이슈화 되면 그냥 걔가 재수 없었던 거일 뿐 무슨 흠 잡힐 일이 아닌 겁니다. 오히려 못 빠져나오면 병 신 취급당하죠. 이런 그들의 특권을 옆에서 보는 밑에 육두품들은 어떨까요? 자신들도 저렇게 되고 싶고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국힙당 지지자들 보면 자신들이 특권층, 기득권층이라고 착각하거나 거기 편입되고자하는 희망자들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그 욕망을 이용해서 부를 축적하고 특권을 공고히 하는 건 성골들뿐입니다. 거기서 나오는 떡고물에 추종자들은 더 열심히 인거죠.

 

그럼 해결책이 뭐냐? 언론? 포털? 부동산? 아닙니다. 핵심은 특권입니다. 더 강력하고 촘촘한 법망으로 규제하면 특권의 영역이 즐어들고 결국 포기하게 됩니다. 예전엔 돈과 빽으로 할 수 있었던 일들이 지금은 시도도 못하는 게 꽤 많습니다. 도저히 할 수 없으니깐 포기한 겁니다. 재벌, 언론, 검찰, 판사, 모피아 등들이 저항하는 것을 철저히 꺽지 못했기 때문에 추종자들이 포기 안 하는 겁니다. 다시 권력만 가져오면 특권을 누리며 편하게 살 수 있고, 내가 좀만 더 벌면 저 특권층에 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고문 때문입니다. 절대 자신들이 성골에게 이용당하고 있다고 생각 안 해요. 지들도 일원인 줄 알아요. 

 

이제는 알 만도 한데 아직도 모르는지 민주당은 우클릭이니 중도니 헛소리합니다. 심지어 김어준도 부동산, 언론 말씀하시는데 아니에요. 그냥 더 이상 특권 안 뺏기겠다. 찾아오겠다 플러스 나도 특권층, 기득권층 되고 싶다는 추종자들 총 궐기입니다. 

 

모든 특권이 사라지면 그때는 자신에게 득이 되는 정책과 인물을 보겠죠. 그러기엔 긴 시간과 엄청난 개혁이 필요합니다. 그걸 할 수 있는 세력은 민주당 밖에 없고 지금 아니면 못해요. 민주당이 지금 안하면 또 10년 20년 동안 못할걸요.

 

그냥 답답해서 주저리주저리 써봤습니다. 내용 중에 불편하신 게 있더라도 실제 제가 보고 느끼며 살아온 일인지라 양해 바랍니다.”

 

⒐ 이 글을 소개하면서 소돔과 고모라에 관한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그 죄악의 소굴에 의인 열 사람만 있어도 벌하지 않으시겠다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던 하느님의 자비가 떠올랐습니다. 그 먼먼 옛날에 잘 나가던 고조선, 고구려가 왜 망했는지, 그 고구려를 계승하겠다던 고려는 또 왜 조선에 망했는지, 더군다나 조선은 왜 일본에게 망했는지가 이해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은 어떻게 하느님의 자비를 얻어 누려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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