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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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역대 36,14-16.19-23; 에페 2,4-10; 요한 3,14-21 
사순 제4주일; 2021.3.14.; 이기우 신부

⒈ “즐거워하여라, 예루살렘아. 그를 사랑하는 이들아, 모두 모여라. 슬퍼하던 이들아,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위로의 젖을 먹고 기뻐 뛰리라”(이사 66,10-11. 입당송). 오늘 사순 제4주일의 제1독서에서는 이사야 예언자가 내다본 대로 이스라엘 백성이 누렸던 기쁨과 즐거움의 배경이 된 사연을 들려주는데, 그것은 바로 바빌론 유배가 풀리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땅으로 다시 돌아오기까지, 그들은 70년 동안 바빌론에서 종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그 까닭은 모든 지도 사제와 백성이 이방인들의 역겨운 짓을 따라 주님을 크게 배신하고, 성전까지도 더럽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당신과 맺으신 계약을 기억하시고 예언자들을 보내시어 타이르기도 하시고 경고하기도 하셨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이스라엘 백성은 그 예언자들을 조롱하고 하느님의 말씀까지도 무시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적들을 시켜 성전과 궁전을 불태우게 하셨고, 지도자들을 모조리 학살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조금이라도 재능이 있는 이들은  바빌론으로 끌고 가서 종살이를 하게 벌하셨습니다. 그러니까 7십 년 간의 바빌론 유배생활은 왕국이 세워진 이후 역대 왕조들이 4백 년 간 타락했던 죄악에 대한 징벌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역대 왕조의 역사를 기록한 역대기 기자의 역사신학적 관점입니다. 

 

죗값을 치르는 복역기간이 채워지자 주님께서는 이방인 임금 키루스의 마음을 움직이시어 해방령을 내리게 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주님께서는 페르시아 임금으로 등극한 키루스가 많은 소수 민족으로 이루어진 제국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서는 포로들을 돌려보내서 자치를 하게 하는 것이 좋으리라는 판단을 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특히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그 성전을 재건할 수 있는 지원책까지도 마련해서 귀환시키는 특별한 배려까지도 하게 만드셨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의 유배 역사에서는 그 안에 주님의 분노가 담겨 있으며, 키루스 임금이 내린 해방령에서는 그를 움직이신 주님의 자비가 드러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모처럼 수백 년 만에 맛보았던 기쁨이자 즐거움이었습니다.

⒉ 하지만 이스라엘 땅으로 귀환하여 예루살렘에 이전에 솔로몬이 지었던 것보다 더 화려한 성전을 짓기는 했으나 기쁨과 즐거움도 잠시였을 뿐, 유배 이전에 비해 이스라엘 백성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바빌론 강 기슭에서는 시온을 그리워하며 눈물짓던 이스라엘 백성이(시편 137) 시온에 돌아와서는 마치 언제 유배를 당했는가 싶게 하느님을 잊어 버렸습니다. 결국 또 다시 그리스계 왕조의 직접 지배를 받기도 하고, 로마 제국의 식민지배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이제는 남의 땅으로 끌려갈 것도 없이 제 땅에서 종살이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종살이로 고생하면서도 이스라엘 백성은 유배 이전에 뭇 예언자들을 박해했던 것 이상으로 완고해져서, 자신들에게 오신 구세주를 알아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이는 다른 예언자들에게 저질렀던 박해와 비교해서도 더 끔찍한 악행이었습니다. 이야말로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지 않았다는 결정적인 방증(傍證)이었습니다. 

공생활 초기에도 이를 미리 내다보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대해 니코데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요한 3,14). 그리고 그 운명에 깃든 사명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으므로 어둠에 그대로 남겨두실 것이고,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는 이들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다”(요한 3,15.19).  

 

⒊ 영원한 생명의 상급을 받게 된 믿는 이들은 교회를 이루어 새로운 하느님 백성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대해서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이 과정을 발만 동동 구르며 하릴없이 지켜만 보았던 이들도 많았고, 이들 중에 입교한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잘못마저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은총을 베푸셔서 용서해 주시고 기꺼이 교회에 받아 들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오로가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 여러분,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잘못을 저질러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은총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에페 2,4-5). 

 

이러한 사도 바오로의 통찰은 그대로 이후 2천년 동안 이어지는 교회의 역사를 내다본 예언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분과 함께 일으켜지고 그분과 함께 하늘에 앉혀진(에페 2, 5-6)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은총이 얼마나 엄청나게 풍성한지를 모든 시대에 보여줄 사명을 부여받았습니다(에페 2,7). 그리스도인들은 전 세계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면서 모든 민족들이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것처럼 선행을 하며 살아가도록(에페 2,10) 파견되었던 것입니다. 

 

⒋ 과연 사도 바오로가 내다본 대로, 2천 년 전 이스라엘 땅에 처음 선포된 복음은 서방으로 향해 전해진 유럽에서 꽃피웠다가, 개신교가 갈라져 나가며 혼란스러웠던 근세 초에 동방으로 전파되었습니다. 유럽에서 발견한 바닷길로 중국에 서양 선교사들이 파견되었고, 이들이 유학을 배워 저술해 놓은 서적들을 통하여 조선에 복음이 전해진 것입니다. 조상제사 금지령 때문에 박해가 초래되기는 했지만, 서학 연구와 자발적인 수용 의지 덕분에 선교사 없이도 복음은 조선에 들어왔고 그 끔찍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오히려 교우촌에서 꽃피우게 된 것입니다.  

 

⒌ 하지만 성사가 없이는 교회가 성장할 수 없었기에, 주문모 야고보 등 중국 선교사들에 이어 프랑스 선교사들이 본격적으로 파견됨으로써 조선 천주교회는 박해 속에서도 자라났습니다. 특히 파리외방전교회 피에르 모방 신부가 교우촌에서 신학생으로 선발하여 마카오에 있던 신학교로 보내서 사제로 양성한 인물이 김대건 안드레아와 최양업 토마스입니다. 그게 벌써 백 5십여 년 전의 일입니다. 그래서 지금 한국천주교회는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기념 희년을 보내고 있는 중입니다. 

 

⒍ “김대건 신부님을 비롯한 우리 신앙 선조들은 차별이 엄격하던 신분 사회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평등사상을 실천함으로써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증거하였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으로 대표되는 신앙 공동체는 복음과 신앙을 실천에 옮기면서 평등사상과 박애 정신을 드러냈습니다.

  진정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나약함 가운데 강함을, 가난함 가운데 부유함을, 절망 가운데 희망을 심어 주십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우리 삶의 모든 것이 되실 때, 분쟁과 시기, 이기심과 분열을 사라지게 하시고, 행동하는 기도를 통하여 평화가 깃들게 하십니다. 이처럼 성령의 인도 아래 피조물의 존엄성을 사랑으로 지키는 모든 노력은, 우리 순교 성인 김대건 신부님의 영성에 닿아 있습니다“(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기념 희년 담화).

 

⒎ 엄격하게 신분을 차별하고 숨막히게 사상을 통제하던 조선 사회에서도 신앙 선조들이 양심의 자유와 만민평등을 내세우는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바탕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이 하느님을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점이 다른 나라들, 특히 중국과 일본 같은 이웃 나라와도 뚜렷하게 구분되는 매우 중요한 특징입니다. 조선 사람들은 신분을 막론하고 이미 하느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중국에서 전해진 유교 사상이 그들의 눈과 귀를 가렸습니다. 그래서 유학을 숭상하던 조선의 조정과 유림들은 천주교가 조선의 질서를 무너뜨릴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꼈고, 하여 서슬 퍼렇게 천주교 신자들을 박해함으로써 아예 씨를 말려 버리려고 하였습니다. 이를 바라보는 일반 선비들과 백성들에게 천주교인들이란, 그저 천주교를 금지한다는 왕의 명령에 반역하는 ‘사학죄인’(邪學罪人)들이자 조상제사를 거부하는 ‘무군무부’(無君無父)의 무리들이고, 박해를 종식시키기 위해 서양 군함을 불러오려는(‘양박청래’洋舶請來) 나라 망칠 대역죄인들로 보였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 와중에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배교를 강요하며 고문하던 형리가 던진 “당신이 천주교인이오?” 하는 질문에, “그렇소. 나는 천주교인이오.” 하고 당당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는 우리 민족 모두에게 하느님을 제대로 알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고 외친 목소리였고, 겨레의 예언자였습니다. 

 

⒏ 이렇듯 시대착오적인 박해의 대가로 우리 민족은 참담한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김대건 신부를 비롯한 천주교 신자들을 끔찍하게 죽이던 박해가 백년 동안 일어나다가 가까스로 종식된 직후에, 조선이 망하여 일제 식민통치를 받아야 했고 그러고도 부족했는지 나라가 해방된 연후에도 두 동강이 나야 했으며 또 갈라진 두 쪽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 동족상잔의 전쟁까지 치러야 했던 이 모든 민족적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그 기간이 또한 백년입니다. 이렇게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에서 박해와 고난의 기간이 비슷합니다. 박해 백년, 고난 백년이면 이제는 하느님 앞에 우리 민족이 죗값을 다 치렀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 민족이 아주 오랜 옛날부터 하느님을 알고 믿어 왔다고는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모른 채로는 그 종교적 인식이 천박할 수밖에 없어서, 최고선이나 공동선과 같은 하느님의 가치와는 동떨어진 채로 종교생활이 한낱 현세기복적일 수밖에 없고 자칫하면 우상숭배에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미신화되고 상업화되어 버린 역술과 무속의 현실이 그러하고, 몸은 성당에 와 있어도 의식은 샤마니즘에 의해 물든 기복신앙인 많은 신자들이 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선 우리가 먼저 천주교 신자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하고 이 바탕 위에 민족 성원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 주는 한편 또 다른 하느님 백성 즉 천손(天孫)으로 부르심 받은 우리 한민족의 참된 정체성을 알려야 합니다. 

 

교우 여러분!

이제 우리 민족은 고난의 역사가 그 바닥을 쳤습니다. 지금의 어려움은 동트기 전의 어둠과도 같습니다. 머지않아 역사의 동이 트면 여명(黎明)이 밝아올 것이고, 대한민국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동방의 빛으로서 새로운 문명의 새벽을 열게 될 것입니다. 주변국들의 방해와 시샘을 넉근히 민족의 역량으로 아우르는 한편 남북의 화해 협력과 통일을 내다보면서, 전 세계에 우리 한민족이 자유와 평등, 정의와 평화의 진리를 간직한 한류 문화를 전파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다시 한 번 동족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할 때입니다. 그래야 민족과 더불어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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