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두 갈래 길목에 서서

465

본문

탈출 20,1-17; 1코린 1,22-25; 요한 2,13-25
사순 제3주일; 2021.3.7.; 이기우 신부

⒈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Lee Frost, 1874~1963)는 자연 속에서 인생의 깊은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던 중 숲길을 산책하다가 문득 떠 오른 시상(詩想)을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이라는 시(詩)에 담았습니다. 단풍으로 물든 숲속에 두 갈래 길이 나 있었고 사람들의 발자국이 찍히지 않은 길이 더 아름다워 보여서 그 길로 갔더니, 자신의 운명이 달라졌더라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어느 길이 더 좋은지는 가 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어느 길이 더 좋은지를 아시기에 에덴동산을 조성하시고 사람도 창조하신 한처음에 더 좋은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는 결코 가지 말아야 할 길은 엄하게 금하셨는데, 창세기는 이 두 길을 생명의 열매를 내어주는 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해 주는 나무 이야기로 알려주었습니다. 

 

⒉ 오늘 사순 제3주일에 들은 말씀은 창조주 하느님께서 두 나무로 경고하신 이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즉, 모세가 전해준 십계명과 바오로가 권고하는 십자가의 이치, 그리고 유다교의 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하시며 부활의 길을 제시하시는 성전정화사건 보도가 그것입니다. 생명나무와 선악나무를 에덴동산 한가운데에 심어 놓으신 하느님께서 생명나무의 열매는 따 먹을 수 있게 허락하셨지만 선악나무의 열매는 따 먹지 말라고 금지하셨는데, 아담과 하와는 사탄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따 먹었고 그 벌로 그들은 하느님과 함께 살던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들을 추방하시면서 하느님께서는 금지되었던 선악과를 따 먹고 하느님과 맞서려고 한 이상 생명나무 열매마저도 따 먹을 수 없도록 금지하셨으며, 인간을 유혹하는 마귀를 능가할 구세주를 장차 보내주실 것인데 그가 생명의 길을 보여주리라고 하셨습니다. 

 

⒊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아담과 하와는 카인과 아벨을 낳았는데 카인이 아벨을 죽이자 다시 셋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셋째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가 자기 가족을 데리고 에덴의 동쪽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는 후손들에게 에덴동산의 교훈을 담아 전해주려 했던 이야기가 한자 중에 금할 금(禁)자에 담겨 있습니다. 이 낱말은 생명나무와 선악나무를 뜻하는 나무 목(木)자를 겹쳐 쓰고, 이 두 나무에 얽힌 교훈을 하느님께서 보여주셨다는 의미에서 보일 시(示)자를 그 아래에 씁니다. 이 글자말고도 한자 속에는 창세기의 교훈과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습니다. 아마도 셋의 후손들이 같은 동쪽으로 갔던 카인의 후손들과 섞여 살면서 행여 또 다시 같은 죄를 저지를세라 가르치려던 뜻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시아의 동쪽에 살던 옛 선조들이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며 바르고 의롭게 살고자 하던 정신전통을 후손들에게 남겨준 배경에는 이런 뜻이 숨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대다수는 하느님께서 금하셨던 그 길을 끝내 걸어갔고 결국 대홍수로 심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대홍수에서 살아남은 노아의 후손들로 이어진 인류는 여전히 금지된 길을 고집하며 하느님께 도전하는 바벨탑 문명을 세우고자 골몰했기에 세상에는 죄악이 가득 차기에 이르렀고 마침내 하느님께서는 구세주를 보내시어 생명에 이르는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길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생명의 길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금하셨던 길을 가지 않고 구세주를 기다리던 소수의 아나빔들이 구세주를 맞이했습니다. 

 

⒋ 에덴의 동쪽으로 가서 나무의 교훈을 물려준 셋에 이어, 에덴동산의 서쪽으로 갔던 이들의 후손 가운데에서도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을 전해 준 이유도 똑같았습니다. 이 법을 지키는 것이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생명의 길이라고 가르치며, 이 법을 지키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 죽음의 길로 빠지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하지만 이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십계명의 형식만 고수하면서 율법의 나라를 대대손손 이어왔습니다. 특히 바리사이들은 열 가지로 시작된 계명을 무려 613개로 늘려 놓았고, 사두가이들은 하느님을 흠숭하는 제사를 드릴 수 있는 권한을 독점해 오면서 자신들의 권력과 재물을 불려오는 사실상의 우상숭배를 자행하고 있었습니다. 

 

⒌ 오늘 복음에 나오는 성전정화사건의 배경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일반 백성이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며 속죄할 수 있는 길을 독점하며 재물을 불리고 있었고, 이것이 예수님의 눈에는 더할 나위없는 우상숭배의 폭력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소나 양이나 비둘기 등 하느님께 바쳐드릴 제물을 파는 장사꾼들과 해외 디아스포라에서 오는 순례자들을 위한 환전꾼들을 사정없이 채찍으로 쫓아내셨습니다. 사두가이들은 이들에게 성전 경내에서 제물을 팔고 환전을 해 주는 권리를 주는 대가로 웃돈을 챙기고 있었으므로, 이들을 쫓아낸다는 것은 대사제를 비롯한 사두가이들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에 대해 앙심을 품은 사두가이들은 나중에 예수님을 성전모독혐의로 뒤집어 씌워 사형선고를 내리고, 로마 총독 빌라도의 권세를 빌려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말았습니다. 

 

⒍ 사두가이들은 감히 성전 질서에 도전하는 예수님께 대해서 메시아라는 표징을 내놓으라고 요구했지만 그분은 새로운 성전을 사흘 안에 세우시겠다는 부활의 소신(所信)으로 답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로 세워질 새로운 성전은 건물이 아니라 당신처럼 십자가를 짊어지는 신자들의 공동체를 뜻하는 것이었고, 따라서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어지는 공동체야말로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생명의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 역시 이러한 이치를 깨닫고 코린토 공동체의 신자들에게 간곡히 당부한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지만,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가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으로 보이겠지만, 부활에 참여하고 있는 그분의 백성들에게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지혜이시라는 것입니다. 

 

⒎ 가지 말아야 할 금지(禁止)된 길은 하느님을 떠나 자신이 스스로 선과 악을 분별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겠다는 길입니다. 돈이든 권세든 힘이든 상관없이 필요한 대로 취해서 선으로든 악으로든 이 현세만을 편하게 살아보겠다는 우상숭배의 길입니다. 이래서 세상에 죄악이 쌓이게 되고 서로 다투고 분열하면서 그 죄악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창세기의 교훈을 한자에 담아 전해준 환인(桓因)이나 단군(檀君) 등 동방의 선조들도 노아나 아브라함이나 모세와 같이 하느님의 뜻대로 선하게 살면서 후손들에게도 같은 선을 권장하고자 하던 이들일 뿐인데, 이들을 신(神)처럼 섬기고 제사를 드리는 일은 조상을 공경하면 될 일을 조상신으로 모시는 것과 같이 우상숭배에 해당되는 일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선조들이 전해 주려던 뜻, 그러니까 금지된 길을 가지 않는 일이 중요한 것입니다. 

 

⒏ 또한 가야 한다고 권장된 길은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아보는 일로부터 시작해서, 그분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걸으며, 우리 자신이 죄악으로부터 벗어나야 함은 물론이고, 죄악에 물들어 있는 다른 이들도 끌어안아서 회개 시키면서, 그들이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는 죄로 인한 문제들까지도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부활의 삶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축복과 생명의 말씀을 선포하는 한편으로, 그리스도의 성사를 거행하며 이 세상에 살면서도 천상적인 가치와 그 향기를 맛보게 하는 것이고,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가리키시는 그 찬란한 빛과 생명의 축복의 길로 걸어가도록 권고하는 것입니다. 

 

⒐ 지난 2월 1일 미얀마에서는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서 국가고문 아웅산수치와 대통령 윈민, 그리고 여당 지도자들이 축출된 뒤 가택에 갇혔습니다. 군부는 헌법을 정지시키고 1년 간의 비상사태를 선포했으며 미얀마군의 참모총장 민아웅흘라일이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그러자 이에 저항하고 민주화를 바라는 시민들이 연일 거리에서 평화시위를 하고 있고, 이를 진압하려는 군대가 발포를 해서 많은 희생자가 나오고 있고 습니다. 이 때문에 미얀마의 유혈사태를 막고자 프란치스코 교황도 기도를 바치며 미얀마 주교단도 성명을 발표해서 국제 사회의 관심과 기도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이 미얀마 사태를 통해서 쿠데타를 일으키고 유혈진압에 나서고 있는 미얀마 군부의 악행과 이를 막아서고자 하는 미얀마 시민들의 용기와 희생을 보면서, 금지된 길과 가야 할 길을 다시 생각합니다. 

 

⒑ 쿠데타 직후인 2월 4일 미얀마 가톨릭교회 주교회의 의장 찰스 보 추기경은 정권을 향해서는 민주주의를 회복시키도록 요구하면서 국민을 향해서는 비폭력과 대화를 호소하였습니다. 그러자 국제 사회에서도 이에 응답하였는데, 국제연합 인권이사회에서는 쿠데타 직후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를 규탄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였고, 교황청에서도 미얀마 군부에 민주주의를  회복시키라고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하지만 미얀마 주변의 중국 및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이번 사태는 마얀마의 국내문제라고 하면서 방관하고 있는데, 그러자 시위대 중 일부 시민들은 여러 나라 대사관들 앞에서 관심과 도움을 달라고 호소하고 있으며, 특히 대한민국 대사관 앞에서도 연일 이러한 호소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의정부 교구 정의평화위원회에서는 미얀마의 민주화를 돕기 위해 기도챌린지 캠페인을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은 첫째, 미얀마 가톨릭 교회와 체포된 미얀마 시민들을 위하여 묵주기도 5단을 바치고, 둘째 챌린지에 참여할 세 사람을 초대하며, 셋째 챌린지 인증으로 SNS에 사진을 올리고, 해시태그(hashtag)로 ‘#미얀마민주주의’ 또는 ‘#prayforMyanmar’라고 써서 같이 붙이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미얀마에서 쿠데타에 항의하는 시민들은 아웅산수치 여사가 소속된 국민민주연맹을 상징하는 빨간색으로 된 깃발을 들거나 빨간 티셔츠를 입고 나와서, 세 손가락 표시로 연대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세 손가락은 반폭력(反暴力)과 반독재(反獨裁)와 반차별(反差別)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 역시 가지 말아야 할 금지된 길을 나타내는 호소입니다. 

 

⒒ 교우 여러분! 가지 말아야 할 금지된 길을 걸어가는 악인들의 부질없는 악행이 여전히 판을 치고 있는 인류의 현실을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가 여실히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이 사순 시기에 1980년 5월 광주의 유혈사태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우리가 민주화를 위해서 고난의 길을 가고 있는 미얀마의 민주시민들과 기도로 동행했으면 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축복과 생명의 길이며, 하느님의 힘이시고 하느님의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