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그리스도를 본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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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성사 윤리 ⓻ : 고해, 죄에서 벗어나 하느님과 화해하기

레위 13,1-2.44-46; 1코린 10,31-11,1; 마르 1,40-45
연중 제6주일; 2021.2.14.; 이기우 신부

⒈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 무슨 일을 하든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애쓰는 나처럼 하십시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처럼 여러분도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1코린 10,31.33;11,1).

  연중 제6주일인 오늘 미사의 제2독서인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전서에서 들은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으면 하느님을 닮게 됩니다. 사도 바오로처럼 우리도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느님을 닮도록 애를 써야 합니다. 

 

⒉ 마르코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셨을 때 그분에게 몰려든 군중 가운데에는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이 많았고 그분 혼자서 이들을 다 돕기에는 힘이 부쳤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여러 지방에서 미처 오지 못한 이들 중에도 그런 이들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병든 이들을 고쳐주고 마귀를 쫓아내는 권한을 주어서 파견하셨습니다(마르 7-13). 같은 복음을 루카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 권한은 가난하고 자유를 잃어버린 이들을 해방시키는 의무이기도 했습니다(루카 4,18-19). 병들면 가난해지고 마귀에 들리면 자유를 상실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죄인이라고 부르시면서, 스스로 의롭다고 자처하던 이들이 아니라 이 죄인들을 부르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르 2,17). 

 

⒊ 사도가 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강림하신 성령을 받아 교회를 세우고, 병든 이들을 돕고 마귀를 쫓아내기 위해 성사를 제정하였습니다. 그래서 성사는 기본적으로 성령의 이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교회는 성사를 거행함으로써 사람들을 돕고 마귀 즉 악령에 대항할 영적 무기를 제공합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신앙을 고백한 이들이 신앙을 실천하는 행위가 바로 악령에 대항하는 영적인 싸움인 것이고, 이 영적 싸움에서 필요한 방패가 믿을 교리라면 사회 교리와 영성 교리 등 지킬 교리는 칼이고 성사 교리는 창으로서 모두가 이 영적 싸움에서 필요한 영적인 무기인 것입니다. 

 

⒋ 마귀의 무기는 쾌락과 이익이라는 미끼로 위장한 악입니다. 창세기는 선과 악을 스스로 분별할 수 있는 밝은 눈이라면서 유혹했습니다. 악이 사람에게 들어오면 죄가 저질러집니다. 쾌락은 생존의 욕망에서 비롯되고 이익은 생활의 필요에서 생겨납니다. 그 자체로는 악이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의 욕망을 억누르고 필요를 가로막을 때 죄가 됩니다. 고대로부터 교부들도 이 문제에 대해 심사숙고했고 논쟁도 일어났습니다. 그만큼 예나 지금이나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피해갈 수 없는 문제입니다. 죄는 필연적으로 자유와 연관되어 있고 인간이 이 자유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악이나 선으로 기울어집니다. 인간의 자유를 선으로 이끄는 영적인 힘이 은총입니다. 이 은총을 느끼는 힘이 양심을 구성하는 영적 감각입니다. 

 

⒌ 4세기에 이 문제를 두고 뺄라지오와 아우구스티노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영국 출신의 수도자였던 뺄라지오는 인간의 구원은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공로를 통해서 성취되는 것이며 은총은 다만 좀더 쉽게 선한 행위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일 뿐이라는 주장을 폈습니다. 말하자면 인간의 자유가 악으로 기울지 말고 선에로 쓰여져야 함을 강조한 것인데, 로마 시대에 사악한 박해에 굴복했던 배교자들을 염두에 두고 악에 굴복하지 않고 선을 지향할 수 있는 강한 자유를 주장했던 셈입니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노는 자신도 입교하기 전에 마니교 이단에 빠져서 죄의 체험을 진하게 했던 터라서, 이에 반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즉, 사람은 누구나 원죄에 물들어 있으며 그래서 무상으로 주어지고 있는 하느님의 은총을 필요로 한다는 것, 그 은총의 실체는 세상의 죄를 없애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수난하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라야 자유를 올바로 사용할 수 있고, 이 자유를 선용함으로써 공로도 쌓을 수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은총에 이끌리는 자유만이 선을 행할 수 있고 그래야 공로도 쌓을 수 있다는 아우구스티노의 신학적 논증이 받아들여져서 뺄라지오는 단죄되었습니다. 

⒍ 근대에 들어서 이 문제를 깊이 있게 사색한 인물은 영국의 존 스튜어트 밀과 에리히 프롬입니다. 밀은 왕정시대에 권력자들이 일반 시민들에게 권력으로 억압을 가할 때 어떻게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자유를 주장할 수 있고 행사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근대 국가들의 헌법에 기본권과 자유에 대한 보장을 주장했다면, 프롬은 나치즘 치하에서 중산층 시민들이 자유를 억압당할 때 저항하거나 유다인의 무죄한 희생에 반대하기를 포기하고 도피함으로써 사회악이 더욱 커졌다고 분석했고 따라서 자유에 대한 책임을 방기한 인간에 대해 비판하고 적극적 자유를 주장했습니다. 

⒎ 그러나 밀이나 프롬에 비해 더욱 깊이 있게 영적인 차원에서 자유에 대해 논한 인물은 요한 23세였습니다. 그는 20세기에 들어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한 교황으로서, 회칙 「지상의 평화」를 통하여, 모든 자유는 책임에서 나오는 것이며, 이는 하느님께서 설정하신 질서를 존중할 때라야 그 균형이 잡힐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니까 하느님께로부터 부여받은 책임을 소홀히 하는 행위는 자유를 남용하는 것이고 이 남용행위에서 죄가 저질러진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그러니까 뺄라지오를 반박한 아우구스티노의 은총론의 노선을 따라서 자유를 논하되, 밀이나 프롬 같은 사회사상가들이 생각하는 자유의 사회적이고 정치적 차원의 더 깊은 영적 근원에 대해 가르쳤다고 할 수 있겠고, 책임을 소홀히 하고 자유만 앞세우는 현대인들의 그릇된 자유주의 풍조에 경종을 울린 셈이라 할 것입니다. 사실 자유는 책임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 책임은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것이며, 책임을 소홀히 하는 데에서 죄가 비롯되기 때문에, 하느님과 떼어놓고서는 그 어떠한 자유도 설명할 수 없고, 따라서 죄의 문제를 피한 채로 자유를 논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⒏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모인 주교들의 토의를 거쳐 편찬된 교리서에서는 요한 23세의 가르침을 존중하여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죄는 “이성과 진리와 올바른 양심을 거스르는 잘못”(가톨릭교회교리서, 1849항)입니다. 죄는 인간의 본성에 상처를 입히고 인간의 연대성을 해칩니다. 그뿐만 아니라 죄는 하느님께 대한 모욕입니다. 죄는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거슬러 맞서는 것이며, 우리 마음을 하느님에게서 다른 것으로 돌리게 합니다. 최초의 죄와 마찬가지로 죄는 선과 악을 알고 규정하는 하느님처럼 되겠다는 헛된 의지로 하느님께 반항하는 것입니다(1850항). 

 

⒐ 하지만 성령께서 이끄시는 은총은 사람이 지은 죄를 씻어 주고, 예수 그리스도께 향한 믿음에로 이끌며,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도록 도와줍니다(1987항). 은총에 따라서, 죄를 지은 사람이 마음을 정화시키고 하느님과 화해하도록 도와주며, 선을 행하도록 회개 시키는 것을 의화(義化)라고 합니다(1990항).  이 의화는 세상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예수님을 본받아 다른 이들의 죄까지 대속(代贖)하려는 성화(聖化)에로 나아갑니다. 고해성사에서 주어지는 보속은 이 의화와 성화의 공로를 겨냥한 것입니다. 

 

⒑ 자신이 지은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과 화해하며, 그리스도를 따라 의화와 성화의 길로 나아가려는 신자들을 위해서 교회는 고해성사를 거행합니다. 전통적으로 그 순서는 성찰과 반성, 결심과 고백, 보속의 실천 등 다섯 단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성찰(省察)의 단계는 일상생활에서 침묵 중에 이루어집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는 가운데 우리가 행사한 자유가 주어진 책임을 이행하는 데 어떻게 쓰여졌는지를 스스로 심판하는 것입니다. 
  • 반성의 단계는 성찰의 결과로 잘못되었다고 판단되거나 양심에 거리끼는 것이 느껴지면 뉘우치는 것입니다. 흔히 저녁기도 중 반성의 기도에 해당됩니다. “주님, 오늘 생각과 말과 행위로 지은 죄와 의무를 소홀히 한 죄를 자세히 살피고 그 가운데 버릇이 된 죄를 깨닫게 하소서.” 
  • 결심의 단계는 반성의 단계에서 이어지는 통회의 기도로 나타나는데, 하느님과 화해하기 위한 전 단계입니다. “하느님, 제가 죄를 지어 참으로 사랑받으셔야 할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기에 악을 저지르고 선을 멀리한 모든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나이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속죄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으며 죄지을 기회를 피하기로 굳게 다짐하오니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공로를 보시고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 그리고 나서 고해소로 가서 고해 사제 앞에서 고백(告白)을 하게 됩니다. 이 단계가 두렵고 떨리는 마음인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제 입으로 자기자신의 죄를 고발함으로써 죄로 상처입은 영혼이 치유되는 과정이 시작됩니다. 죄의 고백을 들은 사제는 사죄경을 통해서 죄를 고백한 신자가 하느님과 화해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사죄경의 내용 역시 사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친히 죄인을 용서하심을 나타내며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공로와 성령의 이끄심으로 죄가 용서되는 것임을 드러냅니다. “인자하신 하느님 아버지, 성자의 죽음과 부활로 세상을 구원하시고 죄를 용서하시려고 성령을 보내 주셨으니, 교회의 직무수행으로 이 교우에게 몸소 용서와 평화를 주소서. 나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이 교우의 죄를 용서합니다.” 
  • 마지막 보속(補贖)의 단계는 고해사제로부터 받는 훈계와 함께 주어집니다. 통상 지었다고 고백된 죄의 무게보다 가볍게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주어진 보속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길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한 자발적으로 선행을 더하는 것이 필요하고, 이는 의화와 성화의 길로 나아가게 하기 위한 계기로서 주는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제1독서와 복음에서 나병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피부가 오그라들어서 끔찍한 흉터가 생기는 나병처럼, 무릇 모든 죄는 우리 영혼에 나병에 못지않은 흉터를 남깁니다. 깨끗한 영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고해성사의 은총을 가까이 하여 예수님을 본받는 길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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