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론] 성사 교리 : 영과 실천으로 예수를 본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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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욥 7,1-4.6-7; 1코린 9,16-19.22-23; 마르 1,29-39
연중 제5주일; 2021.2.7.; 이기우 신부

⒈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지어내신 목적은 인간으로 하여금 당신을 닮게 하심으로써 세상에 당신의 나라를 세우게 하시고, 궁극적으로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살아가심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보면 하느님을 알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의 목표는 예수님을 본받는 것이고, 목적은 하느님을 닮는 데 있습니다. 

 

⒉ 연중 제5주일인 오늘의 복음은 예수님의 공생활 전체 활동을 간추려 보도하고 있어서,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도와주심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신 내용입니다. 치유와 구마의 기적이 이 과정에서 일어났고, 이를 목격한 사람들이 처음에는 갈릴래아 지방에서 몰려오다가 점점 다른 지방에까지 알려지시게 되었습니다. 

 

⒊ 예수님께 몰려들었던 병자들 가운데 많은 이들은 오늘 제1독서에 나오는 욥처럼, 고달픈 인생을 살면서 날품팔이 같은 나날을 보내다가 병을 얻은 사람들이었고 간혹 마귀까지 들린 이들이었습니다. 병들고 마귀 들린 이들은 예로부터 그리고 도처에 널려 있었습니다. 이들을 치유와 구마 행위로 도우심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신 예수님을 본받고자,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복음선포를 숙명적인 소명으로 받아들였고 더군다나 보수를 받지 않고 노동으로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 가면서 복음을 선포하는 사도직을 자신의 명예로 삼았습니다.  

 

⒋ 이렇게 복음과 독서로 들려오는 오늘 미사의 하느님 말씀은 하느님을 닮고 예수님을 본받는 길에 있어서 기본적인 바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목표를 확립하는 것, 병들고 마귀 들린 이들을 돕는 치유와 구마의 사도직 활동을 비롯해서 이들처럼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모든 약자들에 대한 봉사활동을 실천하기, 이를 가능케 해 주시는 성령의 이끄심을 받고 그에 순명하려는 영적인 지향을 두기, 게다가 가능하면 복음선포 활동의 경제적 대가를 받지 않고 봉사함을 명예로 삼는 자부심 등입니다. 

 

⒌ 교회의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교부들과 성인성녀들은 이러한 바탕 위에서 예수님의 삶을 본받고자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아우구스티노가 두드러지지요. 그는 학술적 저술로뿐만 아니라 삶에 있어서도 수많은 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스승으로 존경받을 만큼 자신의 삶에서도 치열한 노력을 기울인 교부입니다. 

 

  그의 뒤를 따른 이들 중에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à Kempis. 1380~1471)가 있습니다. 그는 유럽 중세 말기였던 15세기 초에 간행되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 전 세계에서 성서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으로 알려진 준주성범(遵主聖範)을 내놓았는데 일반 평신도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이런 목표와 지향과 방식으로 살 수 있도록 자신의 수도생활을 토대로 저술했습니다. 내적인 정신생활에 대한 훈계와 성체성사 신심으로 살아가기 위한 훈계가 그 중점입니다. 그 이후의 시대적 배경에서 16세기의 종교개혁, 17세기 이래의 산업혁명, 18세기 이래의 시민혁명과 노동자 운동 등에 대해 반발하고 이를 수습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로 염세주의적 경향과 현실도피적 경향으로 해석되기도 했지만, 이런 시대적 영향의 거품을 걷어내고 알맹이만 본다면, 준주성범은 저자인 토마스 아켐피스의 저술의도대로,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본받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지침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도 여전히 유용한 신심서적입니다. 

 

⒍ 예수님의 삶을 본받고자 역시 아우구스티노의 뒤를 따른 이들 중에 얀센 코르넬리우스(Jansen Cornellius. 1585~1683)가 있는데, 그도 적지 않은 영향을 후대에 미쳤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신학의 주석가로 자처했던 그는 엄격함에 있어서 토마스 아 켐피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결국 인간이 원죄로 말미암아 타락했기 때문에 은총으로만 구원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교회로부터 단죄를 받았지만, 얀센의 엄격주의 사상을 지지하는 추종자들이 네덜란드와 프랑스에는 많이 퍼져나갔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조선으로 파견된 프랑스 선교사들 역시 이 경향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이는 조선 교회 신자들이 박해를 받고 있었던 상황이어서 마치 가톨릭 교회의 정통 신심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했는데, 나라를 일본 제국주의 세력에게 빼앗기고 민족이 엄청난 고난을 당하고 있는 와중에서도 버젓이 친일 노선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이 그 증거입니다. 이는 공의회가 끝난지 반세기가 넘어가는 한국 가톨릭 교회 안에도 남아 있어서, 광복 후 민간과 군부에서 독재정치를 자행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을 때에도 초연할 수 있었던 경향이 그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나 사도 바오로라면 있을 수 없는 사정입니다. 

 

⒎ 아우구스티노가 지향했던 바를 오늘의 복음과 공의회의 교리에 비추어 새롭게 펼치자면, 그것은 교회가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신 바를 계승하고자 거행하는 성사의 영적인 뜻과 사회적 실천을 통하여 예수님을 본받는 것입니다. 즉, 성사의 제도적 뼈대에 머물지 말고 영적인 지향에 따라 영성을 받아들이는 한편, 사회적 실천으로 예수님을 본받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신심과 실천의 균형을 회복하라는 것이 성사 교리의 핵심입니다. 

 

⒏ 성사는 교회가 신자들에게 베푸는 전례입니다. 그리고 그 취지는 신자들로 하여금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은총을 얻어서 그분의 삶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거행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례의 핵심은 성령으로 현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주도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마치시고 승천하시면서 당신 제자들에게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마태 28,20), 그 현존 약속이 실현되는 마당이 성사입니다. 

 

⒐ 성사는 보이지 않게 은총을 베푸시는 성령을 신자들에게 보이게 드러내어 주는 표지입니다. 마치 하느님을 세상에 보여주신 예수님을 하느님의 성사라고 부를 수 있듯이, 교회는 역사와 민족 안에서 예수님을 보여주는 그리스도의 성사라고 부를 수 있으며, 마찬가지 이치로 개별 신자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교회를 보여주는 교회의 성사입니다. 이렇듯 단계적인 차원에 따라서 말하자면, 신자들이 일상에서 행하는 모든 생각과 말과 행위가 모두 예수님을 본받고자 하는 것이기도 하며 또한 그분을 보여주고 드러내는 성사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⒑ 그리스도인들은 세례를 받아 세상에서 죽고 하느님 안에서 새로 태어난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자녀라고 불리워지며 이때부터 탄생 때에 부여받은 영혼이 깨어나서 영적인 몸이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죄를 씻는 세례는 영적으로는 새로운 탄생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탄생의 흔적은 영혼에 새겨지게 되고 이를 인호(印號)라고 합니다. 이 인호의 가시적 표시로써 세례명을 받습니다. 

 

11. 마귀는 이때부터 세례 받은 그리스도인을 적으로 간주하고 공격 대상으로 삼습니다. 신자가 세례받기 전에는 없던 양심의 유혹을 느끼게 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죄를 씻고 그리스도께 향한 믿음을 고백한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사람이 되었으므로 성령의 보호를 받습니다. 그리하여 정의로운 삶으로 인도되고 사랑을 실천하는 삶으로 나아감으로써 더욱 더 자신이 하느님께로부터 선택되어 사랑받는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를 확인시켜 주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과 마치 송수신을 통해 메시지를 주고받듯이 영적인 기운을 청하고 받습니다. 만일 기도가 끊어지면 호흡이나 영양 공급이 멈춘 것처럼 영적인 몸이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정의 구현과 사랑 실천 그리고 기도, 이 세 가지가 세례성사의 영적 은총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사회적 실천입니다. 

 

⒓ 세례성사는 성체성사를 위하여 받는 것입니다. 그만큼 성체성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중심이 됩니다. 예수님을 본받고자 세례를 받은 것이기 때문에 그분의 영적인 기운을 영성체를 통해 얻는 일은 영혼의 생기를 유지하는 데에 필수적입니다. 보이지 않는 예수님의 영적 기운을 가시적으로 보이도록 해 주는 표지가 성체와 성혈입니다. 따라서 이 표지는 부활한 삶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는 표지가 되어 줍니다. 그래서 성체성사를 중심으로 한 전례생활 자체가 예수님의 마음을 영혼의 눈으로 보게 해 줍니다. 

 

⒔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보여주신 대로, 병든 이들의 아픔을 공감하는 마음, 마귀 들인 이들의 괴로움을 가엾이 여기는 공감 능력이 성체성사의 영적 효과입니다. 공감능력이 마비된다면 우리는 아무런 나눔이나 선행도 할 수 없게 됩니다. 신자들의 공감능력에 따른 나눔과 선행을 도구로 해서 성령께서 아프거나 마귀 들린 이들의 영혼을 치유해주시고 마귀도 쫓아내어주십니다. 실로 치유와 구마 사도직의 필요조건은 공감능력 행사에 있으며, 충분조건은 이를 도구로 삼아 성령께서 일하시는 데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행동으로 말미암아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아 사회적 신뢰를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하느님을 닮기로 한 목적, 예수님을 본받고자 하는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목적도 목표도 없는 신앙생활은 그저 마음의 평화를 누리거나 하느님의 축복을 받게 해 주는 요술이 될 수 없습니다. 결국, 하느님을 닮겠다는 신심과 예수님을 본받으려는 실천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개별 신자들의 삶과 신자 공동체의 활동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교회의 선교활동이 사회적 신뢰를 얻음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 선포되는 성령의 역사(役事)가 펼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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