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론]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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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메시아 백성의 믿음

1사무 3,3-19; 1코린 6,13-20; 요한 1,35-42
연중 제2주일; 2021.1.17.; 이기우 신부

  오늘은 연중 제2주일로서 요한 사도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이야기를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 배경이 되는 제1독서에서는 사무엘이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고사(古事)를 소개합니다. 복음의 후속편인 제2독서에서는 사도 바오로가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해야 하는지를 머리와 몸의 비유로 해설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초점은 부르심과 응답입니다. 

 

⒈ “주여, 말씀하소서. 당신 종이 듣고 있나이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이 주변의 힘센 부족들 틈에서 불안한 삶을 영위해 가고 있던 시절, 백성을 이끌었던 마지막 판관이자 나라의 첫 번째 예언자로 꼽히는 사무엘이 이런 기도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지파들을 연합시켜서 왕국을 세워서는 그 왕국의 첫 임금으로 사울을 옹립하기까지, 그는 백성에 대해서는 지도자요 왕에 대해서는 자문관으로서 자기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 낼 수 있었습니다.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히브리들을 탈출시킨 모세에 버금가는 뛰어난 공로였습니다.

  그가 모세에 버금할 만큼 어렵고도 중요한 사명을 완수할 수 있었던 까닭은 간단합니다.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에 그가 하느님 앞에 나아가기까지는 사제 엘리의 도움도 컸습니다. 구약의 세습사제제도 하에서 엘리는 자신의 아들들은 훌륭한 후계 사제로 키우지 못했지만, 한나가 하느님께 기도하며 아들을 얻을 수 있도록 버팀목이 되어 주었고 어머니 한나가 기도하여 얻은 아들이라며 사무엘을 자신에게 맡기자 성심성의껏 하느님의 사람으로 키웠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소리를 알아 듣고는 올바르게 응답할 수 있는 태도를 가르쳐 주었던 것입니다. “주여, 말씀하소서. 당신 종이 듣나이다”(1사무 3,9). 그렇게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 듣기까지 사무엘은 스스로 알아듣지 못해서 두 번이나 시행착오를 거듭했습니다. 

 

⒉ “주님, 보소서, 당신 뜻을 이루려 제가 왔나이다.

사무엘이 활약하면서 왕정시대를 열었지만, 불행히도 왕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고 그 결과 통일왕국은 분열되었으며, 갈라진 채로도 경쟁하다시피 우상숭배로 타락하는 길을 걸었습니다. 사무엘 이후 예언자들이 출현한 시기가 바로 이 무렵부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들과 권세가들은 예언자들을 통해 들려오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싫어했으며 심지어 박해하기까지 했습니다. 힘 없는 백성 가운데에서 신심이 깊었던 아나빔들만 예언자들을 통한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 들었고, 결국 그들 가운데에서 메시아께서 오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하느님께 찬양을 드리거나 소망을 탄원하기도 하며 비탄에 빠져 울부짖기도 하다가 하느님께서 주시는 위안을 갈구했던 아나빔들의 기도가 시편입니다. 다윗이 지은 시도 있고 그의 이름만 빌려온 시들도 있습니다만, 이름없는 백성들의 기도가 대부분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형성된 시편은 백성들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희로애락을 모두 하느님과 함께 하려는 신심의 발로로 하나이 큰 흐름으로 형성되었습니다. 그 흐름 중에 큰 지류가 이 말씀 속에 담겨 있습니다. “주님, 보소서. 당신 뜻을 이루려 제가 왔나이다”(시편 40,8-9). 

 

⒊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에 오셨지만 아직은 그다지 널리 알려지지 못하고 있었던 무렵에, 그분은 당신과 뜻을 함께 할 제자들부터 부르셨습니다. 함께 하는 것이 이토록 중요합니다. 사무엘의 본보기에서처럼 하느님과도 함께 해야 하지만 그 믿음 안에서 함께 할 사람들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함께 할 제자들을 모으는 그 일에 징검다리가 되어준 사람은 세례자 요한입니다. 그는 태중에서부터 메시아를 알아본 인물입니다. 성령께서 감도하셨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자신 있게 자신의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했습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36). 이 말씀은 예수님의 메시아적 신원에 관한 소개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의 죄를 없애는 어마어마한 사명을 받으신 그분이 메시아로서 걸어가시는 길이 험난할 것임을 예감한 예언이기도 합니다. 스승으로 모시던 요한이 이렇게까지 자신만만하게 추천을 하니까,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찾아가 만났습니다. 그리고 함께 묵으면서 서로의 가슴에 품은 뜻을 나누었을 것이고 의기투합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먼젓 스승을 떠나 새로운 스승으로 예수님을 모시기로 작정하고서는 시몬까지 끌어들입니다. 그러면서 요한의 제자였던 안드레아가 자기 형 시몬에게 한 말이 이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요한 1,41).

 

⒋ “너는 케파라고 불릴 것이다.” 

그리하여 안드레아의 권유로 시몬이 예수님 앞에 나섰을 때, 그분은 한 눈에 시몬의 인물됨됨이를 알아보시고 ‘케파’라는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당신의 소망이 담긴, 매우 파격적인 환영의 뜻이 이름에 담겨 있었습니다. 이 이름은 ‘베드로’라고 알려지게 되었으며 그 뜻은 ‘바위’라는 의미로서, 메시아 백성이 모인 교회를 떠받치는 든든한 반석이 되라는 뜻입니다. 요한을 비롯한 그의 제자들은 물론,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부름을 받은 다른 제자들도 이런 인간관계망으로 이어진 아나빔들이었습니다. 믿고 추천하고 다시 믿음으로 권유하여 맺어진 이런 인적 네트워크가 메시아 백성의 원류가 됩니다. 베드로만이 아니라 이들 제자들 모두가 하느님과 함께 할 사람들로서 교회의 반석이 되라고 부름 받았던 셈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공생활 동안 제자로 지내면서 사도로서 양성을 받았는데, 이 양성과정에서 자신들을 전폭적으로 믿어주시는 예수님의 헌신적인 사랑을 받았으며, 따라서 그분의 부활과 승천 이후에 일생을 걸쳐서 복음을 전하면서 목숨을 바치는 삶을 살아갔습니다. 메시아 백성의 모임인 교회를 집으로 비유하자면 사도들이 교회의 주춧돌이라고 불리는 이유입니다. 이래서 “너는 케파라고 불릴 것”(요한 1,42)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메시아 백성 모두에게 열려진 축복이 됩니다. 이들은 믿음으로, 메시아이신 예수님으로부터 은총과 진리를 나누어 받아 메시아 백성의 모임을 불러 모으는 반석이자 주춧돌이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요한 1,16-17. 복음환호송).  

 

⒌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계를 이렇게 탁월한 비유로 설명해 주었습니다. 즉, 그분은 교회의 머리이시고, 교회를 이룬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입니다. 열두 제자뿐만 아니라 후대에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게 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이 몸에 속합니다. 머리와 몸이 떼어질 수 없는 것처럼, 예수님과 그 백성은 메시아 신앙으로 이어져 있고,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의 죄를 없애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메시아께서 당신 백성을 통하여 인류를 이끄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의 몸인 신자들의 몸도 성령께서 거하시는 궁전이라고 강조하면서, 그 몸으로 죄를 짓지 말고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고 깨우쳐 주었습니다. 우리가 미사 중의 영성체 예식에 참여할 때 사제는 “그리스도의 몸!”임을 상기시켜 주고 있고, 우리는 그에 대해 “아멘!”이라고 응답하는 이유도 이 뜻에 동의한다는 뜻입니다. 

 

⒍ “무엇을 찾느냐?”

안드레아와 그 동료는 스승이었던 세례자 요한의 추천으로 예수님을 찾아가 뵈었을 때, 그분은 그들에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무엇을 찾느냐?”(요한 1,38). 그들은 요한의 추천을 받고 오기는 했지만 직접 확인하고 싶었는지 이렇게 청했습니다.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요한 1,38).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와서 보아라.”(요한 1,39) 하시고 그들은 그분께서 묵으시는 곳으로 가서 하룻밤을 함께 묵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그분이 사시는 환경뿐만 아니라 생활방식부터 시작해서 그분의 소신과 이스라엘 안에서 하시고자 하시는 장차의 활동계획과 꿈 등에 대하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것입니다. 

 

⒎ “와서 보시오!”

그리고 그들의 대화 속에는 이미 마르코가 그분의 복음선포 활동을 집대성해서 보도한 바와 같은 여러 내용들이 다 들어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은 이를 인정하여 회개해야 하고 이 복음을 믿어야 한다는 내용이 첫째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복음을 믿게 하자면 아프거나 마귀 들려서 찾아온 이들부터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 두 번째였을 것이고, 중풍이든 나병이든 특히 심한 병을 앓고 있는 이들의 경우에는 몸만 낫게 해 줄 것이 아니라 마음과 영혼까지 낫게 해 주어야 한다는 것도 세 번째로 나누었음직한 내용일 것입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미리 예상되는 바, 율법을 앞세우는 자들이 비판과 비난을 서슴지 않을 것에 대해서도 필시 흉금을 털어놓고 이야기를 나누었을 지도 모르지요. 

 

⒏ “이 시대에 하느님의 평화를 주소서”(본기도) 

오늘 미사의 본기도에서 이렇게 청하는 것은, 예수님의 첫 제자들이 겪은 과정과 체험에 따라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꼭같이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메시아 백성의 길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처럼 “주여, 말씀하소서, 당신 종이 듣나이다.” 하는 태도는 그분과 함께 하기 위해서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듣게 되면, 가톨릭 아나빔으로서  “주님, 보소서. 당신 뜻을 이루려 제가 왔나이다.” 하는 자세로 다짐을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그분의 제자요 백성이 되기를 약속한 우리로서는 우리가 만난 그분을 세상에 알리고 전해야 할 것도 물론입니다. 그리고는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의 생활양식과 사고방식 그리고 행동양식 모두를 “와서 보시오!” 하고 열린 마음으로 초대할 수 있어야 하겠지요. 우리는 그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보고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게 해야만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하느님께서 평화를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메시아 백성에게 바람직한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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