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론] 세례의 세 표징: 차원, 은총 그리고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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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하늘이 열리자 성령께서 내려오시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이사 42,1-7; 사도 10,34-38; 마르 1,7-11
주님 세례 축일; 2021.1.10.; 이기우 신부

⒈ 오늘은 주님 세례 축일입니다. 서른 살이 될 무렵까지 나자렛에서 사셨던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가로 나오셔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이 때, 하늘이 열렸고, 성령께서 내려오셨으며,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 1,11).

해마다 성탄시기에서 연중시기로 건너가는 이 때에 맞이하는 주님의 세례 축일입니다만, 특히 올해에는 어떤 특별한 의미가 들어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한 세계적 보건위기가 언제 지나갈지 모르는 가운데, 나라와 나라 사이에나 나라 안 개인과 개인 사이에 그렇지 않아도 벌어지고 있었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아날로그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던 나라와 디지털 방식으로 운영되어 온 나라 사이의 격차는 더 크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격차는 개인 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방식에 따른 차이는 소통과 정보의 격차를 가져오고, 이는 또 다시 소득 격차로 이어져서 끝내는 사회적 소외를 불러오지요. 문명의 수단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진화했다고 해도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죄를 이겨내지는 못합니다. 물질은 가치중립적이기 때문이고 모든 것은 그 물질적 수단을 사용하는 인간에게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님의 세례 축일이 지닌 메시지는 소통의 차원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⒉ 지금 우리가 받는 세례성사는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나올 때부터 물려받은 원죄와 태어난 이후 자신이 지은 본죄를 모두 없애주는 엄청난 효력이 세례성사에서 발생할 수 있게 된 이유가 바로 예수님께서 지니신 신적 권능, 즉 죄를 용서해 주실 수 있는 권능 덕분입니다. 우리가 물들어 있는 세상의 죄를 없애주시는 한편, 아예 근본적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드는 마귀에서 해방시켜주시기 위하여 그분은 당신이 먼저 마치 죄인처럼 세례자 요한을 찾아가서 요르단 강물에서 머리를 숙여 물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이리하여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죄인들 사이의 중재자가 되실 수 있었습니다. 당신을 메시아로 믿는 이들은 세례를 받으면 모든 죄를 용서받고 깨끗한 영혼으로 새로 태어날 수 있는 은총을 베풀어 주셨으며, 세례를 받을 때에 고백하는 신앙대로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면 세례 때에 받아 새로 태어난 그 영적인 몸이 성장하여 하느님을 닮을 수 있도록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⒊ 세례의 은총이 이토록 크지만, 혼자서 세례를 받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시 이스라엘 백성 안에서 ‘세례자’로 널리 알려진 요한에게 가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세례를 주는 이의 메시지에 동의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통으로는 세례를 베푸는 이가 세례를 받는 이보다 정신적으로 우위에 서기 마련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세례자 요한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외쳤던 바, 이미 이스라엘에 파국이 임박했으며 따라서 유다인들은 크게 회개해야 한다는 가르침에 동의하고 계셨습니다. 

 

⒋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죄인처럼 몸을 굽혀 세례자 요한에게서 물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이는 요한이,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마르 1,7)고 자처한 태도보다 더 파격적인 겸손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요한에게 몰려왔던 군중과 달리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마치 죄인처럼 세례를 받으러 오시자 요한은 놀라서 사양하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지금은 이대로 해야 하느님의 계획이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시자, 그제서야 요한은 예수님의 뜻을 받아들여 세례를 드렸습니다. 

 

⒌ 그런데 마르코는 이 세례 기사를 보도하면서,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물로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마르 3,10)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요한은 배제되어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세례는 요한에 의한 물의 세례보다 더 중요한 요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세례입니다. 예수님께서 물의 세례를 받으신 이유는 당신께 죄가 있어서 씻으려고 하신 것이 아니라 죄인인 사람들과 하느님 사이를 중재하시기 위해서였던 것이고, 정작 우리가 받은 그분의 세례는 예수님께 내려오신 같은 성령을 받는다는 사실이 더 중요합니다. 

 

⒍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사건의 본질은 세상에 오신 메시아로서 그 존재를 공적으로 드러내시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세례사건에 관한 본격적인 보도에서 요한은 나타날 필요도 없고 나타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로지 성부 하느님과 성령 하느님께서만 나타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마르코가 예수님께서만 내밀한 자의식으로 느끼신 체험을 기록했다는 뜻입니다. 그 첫 표징이 바로, 하늘이 갈라짐, 즉 하늘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에,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요한 1,51) 공생활을 전개하실 것임을 알리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바야흐로 하느님의 새로운 역사가 펼쳐지는 차원으로 옮아갈 것임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⒎ 하늘이 열렸다는 이 첫 번째 표징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세례를 받는 모든 이들에게도 그대로 해당됩니다. 즉, 우리가 받은 세례성사의 의미를 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인, 즉 메시아 백성이 되며, 또한 하느님의 자녀가 됩니다. 한처음에 창조주 하느님께서 지니셨던 창조계획 대로, 하느님을 닮은 존재로 새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참조: 창세 1,27). 다시 말하면, 땅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늘에서 하느님께서 주도하시는 새로운 역사가 펼쳐진다는 뜻입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인들을, 악이 아니라 선, 죄가 아니라 사랑의 새 역사가 펼쳐지는 차원으로 옮겨 놓습니다. 

 

⒏ 예수님 앞에 열린 하늘은 이제 이스라엘에서 백성이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린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3,2)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가난한 이들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이들이 그 하늘 나라를 차지할 것”(마태 5,3)이라고 가르치셨으며, 이 하늘 나라에 대해서 많은 비유로 아주 쉬우면서도도 친근하게 군중에게 가르치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 이전까지 대사제를 비롯한 사두가이들에게만 종교적으로 독점되어 있던 하늘을 백성들에게 활짝 열어젖히셨습니다. 성전 정화 사건의 숨은 의미가 여기서 밝혀집니다. 

 

⒐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내려오셨다는 두 번째 표징은 향후 이어질 공생활에서 예수님을 이끌어주실 영적인 기운의 근원을 알려줄 뿐만 아니라 그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의탁해야 할 영적인 기운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성령의 이끄심을 받아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할 것임을 공식적으로 천명하셨습니다(루카 4,18). 그리고 당신 제자들이 곳곳에 파견되어 같은 사명으로 복음을 선포한 결과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고 하느님께 돌아왔을 때에도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셨습니다(루카 10,21). 

 

⒑ 예수님께 성령이 내려오신 덕분에 우리가 그분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는 단지 물의 세례가 아니라 성령의 세례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로 받는 세례는 죄를 짓게 하는 마귀를 끊어버림으로써 악에서 벗어나게 해 주지만, 성령으로 받는 세례는 사랑을 실천하게 함으로써 새롭게 살아가는 부활의 은총을 누리게 해 줍니다. 차원만 높아진 것이 아니라 이 높아진 차원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은총까지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⒒ 세 번째 표징으로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하늘에서 들려온 소리는 그분이 하느님을 닮으신 분이시고,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아드님이시며, 따라서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아드님이심을 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공생활 동안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일하시는 대로 일하셨으며(요한 5,17.19), 하느님 아버지와 당신은 하나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요한 10,30). 그래서 당신을 본 사람은 곧 하느님 아버지를 뵌 것이라고도 확언해 주셨습니다(요한 14,9). 그분 세례의 이 세 번째 표징은 그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열려있는 가능성입니다. 하느님을 닮아야 할 우리 모든 사람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이 길 덕분에 우리의 삶이 새로워지고 존재가 존엄해지게 되었습니다. 

 

⒓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느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당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당신 자신을 생명의 양식으로 내어주시고 당신처럼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요한 6,57). 그리고는 우리가 당신의 제자가 되어 많은 사랑의 열매를 맺으면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물 수 있게 되리라고도 약속하셨습니다(요한 15,8-10). 예수님께서 제정하시고 우리와 계약을 맺으신 성체성사의 은총이 바로 이것입니다, 새로운 존재. 

 

⒔ 다시 밝아온 새 해에 세상의 최우선 과제는 코로나의 긴 터널에서 하루속히 벗어나는 일이겠습니다. 방역에서 세계적인 모범이 되어온 우리나라가 백신과 치료제까지 개발하고 보급하여 마스크를 벗고 일상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종래의 선진국들까지도 선도하는 새로운 역사가 펼쳐지기를 기대합니다. 그리하여 코리아 디스카우트 시대가 저물고 코리아 프리미엄 시대로 나아가고 있는 이즈음, 더욱 성숙한 시민의식이 발휘되어야 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몫이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고통의 무게가 결코 평등하지 않다는 점에서 더욱 벌어진 격차를 줄이는 방향으로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하고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하여 주어진 세례 축일의 메시지가 이것입니다; 첫째, 하늘이 열려서 하느님의 새로운 차원의 역사가 펼쳐지고 있다는 것, 둘째 문명의 소통 수단이 아날로그 방식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되더라도 성령께서 이끄시는 영적인 통공이 더 중요하다는 것, 셋째 우리는 이 은총으로 하느님을 닮은 존재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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