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공현과 경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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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⓵ 공현과 경배

이사 60,1-6; 에페 3,2-6; 마태 2,1-12
주님 공현 대축일; 2021.1.3.; 이기우 신부

⒈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이 세상에 오실 때 베들레헴의 구유에 조용하게 오신 메시아께서 공적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드러남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세상에 오신 메시아께서는 이스라엘 민족만이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을 모두 구원하러 오셨다는 것이 공현 계시에 담긴 진리입니다. 그리고 공적으로 드러나신 이 메시아를 우리는 경배해야 하고, 이것이 우리의 구원이라는 것이 공현 계시에 따른 윤리입니다. 

 

⒉ 예수님께서는 여러 기회에 알려지셨습니다. 가장 처음에 일어난 공현 사건은 동방 박사들의 방문이었습니다. 이들이 베들레헴으로 아기 예수님을 찾아와 경배한 일은 요셉과 마리아 부부로 하여금 과연 이 아기가 천사 가브리엘이 알려준 대로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시라는 확신을 주었을 것입니다. 만삭의 마리아와 요셉을 멸시하며 박대했던 베들레헴 주민들도 메시아의 오심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겠지요. 이 사실을 이스라엘 백성은 아마 예수님께서 장성하신 후에 알게 되었을텐데, 세례자 요한에게로 가서 요르단 강에서 공개적으로 세례를 받으셨을 때에는 하늘에서 울려오는 소리 덕분에 요한과 그의 제자들과 거기에 모여 있던 군중이 알게 되었을 것이고,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는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기적을 일으키신 덕분에 특히 베드로와 안드레아, 야고보와 요한 등 함께 갔던 제자들과 잔치에 왔던 손님들이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 공현 대축일의 복음도 가해에는 예수님의 세례 사건, 나해에는 동방 박사들의 경배, 다해에는 카나의 혼인 잔치 이야기를 읽습니다. 

 

⒊ 오늘 우리가 지내는 주님 공현 대축일이 전하는 메시지는 세상에 오신 메시아를 우리가 맞이하자면 경배를 드려야 한다는 숙제를 던져줍니다. 그래서 ‘네 번째 동방 박사’(Henry van Dyke, 1895; Edzard Schapper, 1961)라든가, ‘환상여행’(Michell Tournier, 1970) 같이 공현과 경배에 관한 문학 작품들이 여럿 생겨났습니다. 특히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인 ‘네 번째 동방 박사’에는 주인공 아르타반이 주님을 경배하려고 무려 30년 동안이나 찾아 헤매다가 결국 실패하고 길에서 숨을 거두고 만다는 줄거리가 나옵니다. 그러나 그가 운명하는 마지막 순간에 주님께서 자신의 영혼을 받아서 안아주시는 환시를 영혼의 눈으로 봅니다. 아르타반은 주님을 만나면 예물로 드리려고 준비했던 세 개의 보물을 하필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게 망설이면서도 자선으로 주어 왔었는데, 주님께서는 그때마다 그 보석을 당신에게 바친 경배 예물로 잘 받으셨다고 말씀하셨고, 이 말씀을 들으면서 아르타반은 눈을 감았다는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⒋ 이 작품은 동방 박사의 경배 이야기와 예수님의 최후 심판 이야기를 연결하여 구성되었습니다. 여기서 잘 표현하고 있듯이, 주님의 공현 그리고 우리의 경배는 단 한 번의 행위로서가 아니라 일생에 걸쳐서 행해야 하는 일이고, 우리의 도움과 관심을 필요로 하는 이웃들에게 주님을 경배하듯이 사랑을 베풀어야만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따라서 당연히 우리가 그분께 경배 드리며 바쳐야 하는 예물도 동방 박사들이 바쳤던 값비싼 보석일 필요는 없고 그냥 우리네 삶으로 바치면 됩니다. 우리네 삶도 보석만큼이나 귀하기 때문이고, 어쩌면 보석보다 더 귀한 예물일 수도 있습니다. 보석은 값비싸다고 해도 돈을 많이 주면 살 수 있는 물질에 불과하지만 삶으로 행한 사랑은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고 해도 살 수 없는 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메시아께서 비추신 빛이 우리를 통하여 세상에 드러나게 해야 하는 경배 행위의 의미에 대해서, 사도 바오로는 로마인들에게 이렇게 권고한 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로마 12,1). 

 

⒌ 오늘 첫째 독서는 이사야가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동족을 친근하게 ‘예루살렘’으로 부르면서 전한 예언인데, 고향이 폐허더미로 변해 있는 절망적인 여건에서도 장차 오실 메시아를 내다보면서 이런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예루살렘아,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이사 60,1). 어둠이 땅을 덮은 것으로도 모자라 암흑천지인 예루살렘에서도 주님께서 오시면, 태양이 떠오르듯이 진리의 빛이 나타나서 그 영광이 떠오르리라는 것입니다. 그리되면 그 동안 이스라엘 백성을 억누르던 주변 강대국 민족들이 주님의 빛과 영광을 향하여 경배하러 오리라고도 예언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경배하러 올 민족들을 맞이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은 주님께서 비추시는 정의와 평화의 빛을 받아 반사하듯이 그들에게 비추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참조: 시 72편, 화답송). 

 

⒍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전하려는 이사야의 예언자적 상상력이 매우 돋보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러 이스라엘 백성에게 오셨는데 유감스럽게도 아주 적은 수의 아나빔들만 그분을 알아보고 맞이했을 뿐, 대다수의 유다인들과 특히 종교 지도자들은 그분을 외면했습니다. 결국 그분을 믿었던 그 소수의 유다인들이 성령으로 다시 오신 메시아 즉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 교회와 이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이 메시아께 드렸어야 할 경배 역할을 해야 하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지금은 메시아를 경배함으로써 그분의 백성이 되려는 신앙인들에게 새로운 영적 상상력이 필요해진 상황이고, 여기서 동방 박사들은 풍부한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⒎ 메시아적 상상력으로 동방 박사들의 방문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 교회와 신자들이 메시아께 드려야 할 경배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들은 여섯 단계를 거쳐 메시아를 경배하였습니다. 첫째, 박사들은 하늘에서 자신들의 운명을 미리 알려주리라고 믿고 있어서 밤하늘의 별자리들을 늘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둘째, 그들은 메시아의 탄생을 알려준다고 여겨져 온 큰 별이 나타나자 이를 발견한 즉시 가진 재산을 처분하여 메시아께 드릴 예물을 마련했고 이제껏 누려오던 익숙한 환경과 지위를 버리고 길을 떠났습니다. 셋째, 그들은 길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거칠고 메마른 사막을 건너느라 큰 위험을 무릅써야 했습니다. 넷째, 사막을 다 건너자 도시를 만나서 죽을 위험을 벗어났는가 했는데 그 도시의 화려한 불빛에 가려서 별을 놓쳤습니다. 다섯째, 성서의 도움으로 다시 길을 찾았습니다. 여섯째, 도시를 벗어나자 다시 나타난 별의 인도로 아기 메시아를 만났고 그분에게 박사들은 준비한 예물을 바치며 경배하였습니다. 

 

⒏ 당시에서 별자리의 움직임으로 세상의 변화를 예측하려던 점성술은 오늘날로 말하면 천문학과 역사학과 신학을 종합한 정도의 지적 노력이었습니다. 이는 적어도 그 박사들이 하느님의 주도권을 인정할 만큼 신앙심이 있었다는 사실과 진리에 대해 지니고 있었던 경외심을 반영합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찾고 있었던 큰 별이 나타나자 그들은 이제까지 그들이 쌓아온 명성과 차지하고 있던 사회적 지위를 버림은 물론 가진 재산을 처분하여 메시아께 바칠 예물을 마련하였습니다. 하느님 신앙과 진리에 대한 경외심이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삶에로 떠나려는 계기를 정해준 것입니다. 이러한 박사들의 태도는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과 진리에 대해 가져야 할 인생의 기본자세를 다시금 돌아보게 해 줍니다. 

 

⒐ 그 박사들이 떠날 준비가 되자 별이 서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방향은 광활하면서도 황량한 사막을 건너야 하는 길이었습니다. 사막을 건너는 일은 생존을 위한 특별한 준비를 필요로 했습니다. 낮에는 몹시 무덥고 밤에는 몹시 추운 험악한 날씨를 견디면서 겨우 죽음의 사막을 건너서 메시아가 태어나실 나라에 도착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사막 여행을 마치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으나 도시에서 비추이던 화려한 불빛 탓으로 별빛을 잃어 버렸습니다. 인생이라는 사막도 쉽지 않은 도전을 우리에게 주거니와 사막에서는 더욱 밝고 크게 빛나던 별빛도 오아시스가 있는 도시에서는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⒑ 박사들이 들어간 도시는 포악한 헤로데가 다스리던 예루살렘이었고, 그들은 헤로데가 누군지도 모르고 도움을 청했습니다. 헤로데는 율법학자들의 자문을 받아 메시아께서 태어나신 곳을 베들레헴이라는 사실을 박사들에게 알려주었는데, 이것이 태어날 메시아에게는 큰 화근이 될 것도 모른 채 박사들은 다시 나타난 별의 인도로 베들레헴에 가서 메시아를 만나 경배를 드렸습니다. 이처럼 길을 잃어버린 이들이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은 하느님의 말씀이 담겨 있는 성경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 우리 갈 길을 인도할 별빛을 찾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⒒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박사들이 아기 메시아께 바친 예물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세상의 금속 중에 가장 귀한 황금은 왕에게 어울리는 예물입니다. 메시아의 왕권을 인정하여 드리는 예물입니다. 유향은 귀한 향가루로서 제사 때에 씁니다. 옛적부터 고산지에서 자생하는 나무의 뿌리에서 채취하여 사람들의 기도가 위로 올라가기를 염원하며 제사 때에 피우는 재료였으므로, 메시아의 사제직을 알아보고 드리는 예물입니다. 몰약은 시신을 썩지 않게 하는 용도로 쓰이던 귀한 향료입니다. 메시아께서 구약의 예언자들처럼 말씀을 전하시다가 박해를 받아 돌아가실 운명임을 내다보고 바친 예물입니다. 

 

⒓ 우리가 메시아께 경배를 드리며 바칠 예물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 아니더라도 좋습니다. 하지만 우리도 섬김으로 다스리는 길을 걸어감으로써, 또한 우리가 기도를 바칠 때 진정으로 하늘에 계신 주님께 바친다면, 그리고 우리도 말씀을 전하여 그 안에 담긴 고귀한 가치들이 세상에서 썩지 않고 길이 남도록 노력한다면, 우리는 황금보다, 유향보다, 몰약보다 귀한 예물을 메시아께 드리고 경배하는 것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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