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삼용 요셉 신부 <빛을 만난 이의 특징: 새롭고 명확한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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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020년 나해 대림 제3주일

<빛을 만난 이의 특징: 새롭고 명확한 정체성> 

복음: 루카 1,6-8.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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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시다

루벤스(RUBENS) 작, (1612)

  

      오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증언’에 관한 내용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증언하러 온 것은 ‘빛’입니다. 복음은 “요한의 증언은 이러하다”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나오는 이야기는 ‘정체성’입니다. 요한은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모세와 같은 예언자도 아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계속 누구냐고 하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빛을 증언하는 이는 빛을 봅니다. 그런데 그 빛을 보는 것이 아니라 빛을 통해서 자신을 다시 보게 되는 것입니다. 태양은 눈이 부셔서 똑바로 바라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태양이 있다는 것을 나를 바로 보게 됨으로써 알게 됩니다. 이것이 빛을 본 이들의 특징입니다.

 

      제가 ‘나는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다녔을 때는 고등학생 때였습니다. 내가 왜 공부해야 하는지, 장차 어떤 일 하며 살아야 하는지 혼란스러웠습니다. 어떤 때는 연예인이, 어떤 때는 사장님이 되고 싶고, 어떤 때는 대통령이 되고 싶기도 했습니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 자주 바뀌는 이유는 내가 명확한 자기 정체성과 소명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를 물을 때 그때 저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나는 나야!”

      내가 나의 주인으로 착각하니 갈 길이 막막하고 어두운 밤에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빛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은 이런 대답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어둠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때가 어둠 속에 있을 때였습니다. 빛을 만나면 내가 어둠이었음을 깨닫고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 정체성에 따라 새로운 소명을 발견하게 됩니다.

 

      골수기증, 헌혈, 자선, 자연보호 운동 등을 선도하며 개신교 신자로서 본인이 ‘나는 하나님의 배우입니다’라고 자신 있게 선포하는 배우가 있습니다. 배우 ‘최강희’씨입니다.

하지만 최강희씨는 처음에는 매우 자존감 약한 사람이었습니다. 모태신앙을 가지고 있었지만 예수님을 만난 적은 없었습니다. 되고 싶은 것도 없었고, 인생이 언제 끝나는가만 기다렸고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자해까지 하며 자신에게 전혀 만족할 수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녀가 가장 연기를 잘해서 처음으로 칭찬을 받은 대사가 이것이었다고 합니다.

“여기 숨어있었어. 아무도 없으니까 무섭잖아.”

      감독님에게 연기가 기가 막힌다고 처음으로 칭찬을 받아보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대사는 그녀의 삶이었고 진심이었습니다. 어쨌든 그런 칭찬을 들으니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연기 생활을 열심히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의 성취로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밤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지친 생활 속에서 마음도 지쳐갔습니다. 겉으로는 밝은 척하지만 사실 사람들과 함께 식사도 할 수 없었습니다. 소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혼자 방에서 짜장면을 시켜놓고 눈물이 쏟아져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술과 담배에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라도 술 담배를 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습니다. 운전하며 사고가 나서 빨리 죽고 싶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예배는 꼬박꼬박 나갔습니다. 물론 예배 내용은 기억나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람들이 통성기도를 하는데, 그녀는 들릴까 말까 한 목소리로 “살려주세요 ... 살려 주세요 ... ”를 반복했습니다. 그러자 이런 깨달음이 생겼습니다.

 

      ‘담배나 술이나 내가 좋아서 하는 게 아니었구나. 괜히 하는 거구나. 괜히 피지는 말아야지. ... 주님 저 의지박약인 거 아시죠? 그렇게 만드셨잖아요. 그런데 괜히는 안 필게요. 하지만 피고 싶을 때는 필게요. 술도 괜히는 안 마실게요. 그런데 마시고 싶을 땐 마실게요.’

 

      그렇게 몇 번 더 마시고 피우고 했습니다. 그러나 괜히는 안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술과 담배를 끊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제가 만난 예수님은 자유예요. 그리고 그게 세상에 어떤 자유보다 제가 자유라고 생각했던 모든 행동을 해봤을 때 세상의 자유는 저를 자유롭게 하지 못했습니다. 찝찝하고 다음에 수습해야 하고 결국 내가 점점 더 죽어갔었습니다. 진짜 자유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새벽 예배에 참석하고 싶어졌습니다. 한 번 나가고 두 번 나가니 이제 빠질 수 없는 하루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하나님 만나기 전의 내가 어떤지 알기 때문에 돌아가고 싶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매일 새벽 예배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내가 의지박약인 것을 알기 때문에, 나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매일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을 대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열등감으로 자신을 증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전에는 나를 증명하고 싶었어요. 억울한 것은 따지고 내 생각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굳이 나를 증명하고 싶지 않아요. 노력도 억지로 하지 않아요. 내가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을 때 하나님이 느껴져요.”

      자신의 꿈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예전에는 아무것도 되고 싶은 게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뭐든지 될 수 있다고 믿어요.”

“당신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묻는 말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같은 최강희지만 밤에서 아침으로 나온 것 같아요. 나는 그리스도인이고, 하나님의 배우입니다.”

[‘배우 최강희 간증: “나는 크리스천, 하나님의 배우입니다.”, ‘CBS 새롭게하소서’, 유튜브]

      오늘 요한 복음에 나오는 세례자 요한의 증언은 굳이 예수님을 증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빛을 만났다는 것을 증언하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과 그에 따른 소명을 명확히 알고 있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배우 최강희씨가 예수님을 ‘자유’라는 이름으로 만나고 자신의 정체성과 소명이 명확해진 것처럼, 세례자 요한도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로서의 명확한 정체성과 소명을 가졌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나려는 우리가 찾는 것은 바로 나의 정체성과 소명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그분이 주러 오시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빛을 만난 사람들은 그런 명확한 정체성으로 세상에 빛을 증언하는 사람이 됩니다. 만약 나의 명확한 정체성이 무엇인지, 왜 살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면 우리는 최강희씨처럼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누군지 모르고 사는 것이 죽음입니다. 그러면 그분께서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러 오실 것입니다.

https://youtu.be/ciHbIeB1z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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