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론]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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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61,1-11; 1테살 5,16-24; 요한 1,6-28
대림 제3주일; 2020.12.13.; 이기우 신부

 

⒈ 대림 제3주일인 오늘은 자선 주일로 지냅니다. 이는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되어 주님을 맞이하려는 지향에 따라 1984년부터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정한 결정에 따른 것입니다. 자선은 가난한 이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하지만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 자선으로만 충분한 것은 아닙니다. 정신적인 회심이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선 물질적인 나눔인 자선을 행하되, 이를 통해서 우리 자신도 궁극적으로는 하느님 앞에서는 그분의 자비를 입어야 하는 가난한 존재임을 깨닫는 정신적 회심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가난한 이들은 우리를 하느님께로 이끌어주는 천사와도 같은 존재입니다. 이 회심에 따라서 우리가 우리보다 더 가난한 이들과 우리의 삶을 나누어야 우리가 주님의 성탄을 맞이하기에 합당한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난하고 병들어 소외된 이들에게 사랑을 나누는 물질적인 나눔, 즉 자선은 우리가 하느님께로부터 자비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주는 기회요 성사입니다. 그러므로 정신적 회심이라는 근본 지향 없이 가난한 이들에게 베푸는 자선으로만은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이 전해지지도 않거니와, 교회가 복음화되지도 못합니다. 그만큼 가난한 이들의 복음화는 교회라는 건물의 기초가 되는 것이요, 원이라는 도형에 비유하자면 그 중심입니다. 

 

⒉ 그래서, 이사야는 메시아께서 오시면 선포하실 복음을 이렇게 예언한 바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 하느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를 싸매어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게 하셨다.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이사 61,1-2). 이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바빌론 유배에서 겨우 풀려나서 황폐해 진 옛 고향 땅에 돌아와 망연자실해 있을 무렵이었습니다. 그런 동족들에게 이사야는 새롭게 희망을 주러 오실 메시아의 소식을 알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동족 가운데 가장 비천한 처지에 놓인 이들, 즉 가난한 이들과 마음이 부서진 이들과 잡혀간 이들 그리고 갇힌 이들에게 기쁨이 될 소식을 전하러 오시리라고 장담하였습니다. 마치 “땅이 새순을 돋아나게 하고, 정원이 싹을 솟아나게 하듯이”, 먼저 이스라엘 민족이 그리고 그 다음 모든 민족들이 의로움으로 변화되어 하느님을 찬미하도록 하느님께서는 만드실 것이라고 예언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가장 비천한 처지에 놓인 이들이 먼저 기쁜 소식을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⒊ 과연 메시아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신 예수님께서는 메시아로서의 사명을 천명하셨는데, 이 때 이사야가 예언한 바로 그 부분 즉 오늘 독서 내용을 인용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 예수님께서는 이 대목을 인용하여 봉독하시고 나서 나자렛 회당에 모인 고향 사람들에게 이렇게 한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4,21). 이사야의 메시아 선언이 바로 당신께서 공생활 내내 받들어 실천하실 사명임을 천명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의 역사에서는 가난한 이들에게 베푸는 자선이 교회 활동의 부록처럼 여겨져 왔습니다. 언제 어디서고 교회가 자선을 소홀히 한 적은 없을 것입니다만 부록처럼 행하는 자선으로 교회가 복음화된 적도 없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입니다. 이는 마치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뀌는 것과도 같은 이치인데, 이를 알아보고 교회가 중심으로 삼아야 할 진리로 삼은 때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였습니다. 

 

⒋ 그리하여, 교회헌장(8항)과 사목헌장(1항)을 통해 가난한 이들의 복음화가 지니는 이 중대한 뜻을 새삼 상기시킨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마치고, 거의 10년만에 이를 주제로 한 주교대의회회의가 열렸습니다. 1974년에 로마에서 열린 이 회의의 주제는 ‘세계의 복음선교’였고 그 핵심은 선교의 주체이자 핵으로서의 ‘교회의 기초 공동체’였습니다. 그 다음 해에 바오로 6세 교황은 이 주제와 건의안을 받아 들여 교황의 사도적 권고로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반포하였습니다. 사실상 이 기초교회공동체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향후 가톨릭교회가 최고 관심을 쏟아서 실천해야 할 사목정책 대안으로 제시된 것입니다. 

실제로 이 기초교회공동체는 공의회 이후 극심한 혼란에 빠지고 엄청난 침체를 겪고 있던 유럽 교회와 달리, 공의회 이후에도 라틴아메리카 교회를 변화시키고 놀랍게 쇄신시키고 있던  희망의 누룩이었습니다. 그 결실을 정리한 제2차 라틴아메리카 주교총회 문헌인 메델린 문헌의 메시지를 받아서 세계의 주교 대의원들과 바오로 6세 교황이 그 메아리로 작성한 것이 ‘현대의 복음선교’ 문헌입니다. 가톨릭 교회 2천 년 역사상 로마와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 시작된 목소리가 바티칸을 움직이기는 이것이 처음입니다. 그만큼 가난한 이들의 복음화를 실현하면서 교회도 복음화시키는 기초교회공동체가 가톨릭 교회의 쇄신에 커다란 의미가 있었습니다. 기초교회공동체에 대한 언급은 이 사도적 권고 58항에 집중적으로 나와 있는데, 간추려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⒌ 이 공동체들은 교회 생활에 참여하고, 교회의 가르침에서 힘을 얻으며 사목자들과 일치하므로 육성 조장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공동체가 생기게 되는 것은 교회 생활을 더 열심히 하고자 하는 것과 또는 대도시의 교회 공동체 같은 곳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인간적인 상호 유대를 추구하는 데서 생긴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도시의 생활은 집단화되고 익명화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공동체들은 오로지 자기들 나름대로 하느님 공경과 믿음에 대한 깊은 연구, 형제적 사랑의 실천, 기도 생활, 사목자들과의 일치 등 종교적 영성적인 문제에 관하여 적은 사회 단체나 마을 같은 단위에 확대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동체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묵상하는 것과 성사 배령, 사랑의 일치를 위하여 연령, 교양, 직분 또는 사회 환경이 비슷한 사람들의 모임인 부부, 청소년, 직장인의 단체들을 집합시키려고 합니다. 또한, 정의를 위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며 인간 발전을 위해서 뭉쳐진 사람들을 결속시킬 뿐만 아니라 사제가 부족하여 정상적인 본당 생활 운영이 잘 안 되는 경우 신자들을 결합시키기도 합니다. 이러한 모든 것은 교회가 인준한 공동체 안에서 더욱 특수 교회나 본당 교회 내에서 이루어집니다.

 

⒍ 바오로 6세 교황은, 기초교회공동체가 복음 선교의 못자리가 되고, 더욱 큰 공동체 특히 지역 교회에 도움이 될 것이며, 보편 교회의 희망이 될 것이라고 격려하면서, 몇 가지 당부를 덧붙였습니다. 첫째, 기초교회공동체는 하느님 말씀에서 그 양식을 구하고 인간의 위대한 가능성을 이용하려는 정치적 편향이나, 그때그때의 이데올로기에 좌우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 기초교회공동체는 그가 속하고 있는 지역 교회와 보편 교회에 굳게 일치함으로써 하느님께서 교회에 주신 사목자들과 그리스도의 성령께서 맡겨주신 교회의 교도권에 진정한 일치를 보존하여야 하고, 셋째 기초교회공동체는 날로 신심과 포교적 열성에 대한 책임 의식이 발전하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바오로 6세 교황의 당부 말씀을 요컨대 하느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하되 사목자들이 주관하는 성사생활에 충실해야 하며 또한 말씀과 성사에서 받은 은총의 힘으로 선교적 사도직 활동에 매진하라는 뜻입니다. 이는 기존의 교구와 본당 조직에서 사목적으로나 선교적 활력이 소진되어 가는 데 비해 소규모로 평신도들이 스스로 모여 신앙을 확인하고 증거하려는 기초교회공동체의 활력이 놀라울 정도로 활력을 띠었기 때문입니다. 실로 기초교회공동체의 생명력은 평신도들의 자발성이었고 성령의 이끄심에 따르는 신앙감각이었습니다. 

 

⒎ 이렇게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기초교회공동체 현상으로부터 새로운 교회의 희망을 보았고 그 활력으로부터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공의회 직후부터 이 기초교회공동체 현상의 발생과 성장 과정을 줄곧 지켜보아온 프란치스코 교황은 여기에 가톨릭 사회교리의 전통과 공동합의성 그리고 신앙감각을 존중하라는 메시지를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보냈습니다. 경직된 교구와 본당의 구조를 새로운 활력으로 되살려낼 수 있는 기초교회공동체의 행동강령인 셈입니다. 세계보건비상사태 이후에 침체되어 가는 교구와 본당의 사목구조와 질서에도 평신도들이 성령의 인도를 받는 신앙감각에 따라서 자발적으로 모이고 기도하며 행하는 이 기초교회공동체야말로, 이미 반세기 전에 로마에 모인 주교 대의원들과 바오로 6세 교황이 내다본 교회의 활력이자 희망이 될 것입니다. 

 

⒏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은 예수님께서 스스로 가난의 모범을 보이시고 그로 인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삶을 함께 하며 나누는 일입니다. 여기서 물질적인 나눔인 자선은 가난한 이들의 복음화를 위한 성사로서 주요한 계기가 됩니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이 가난하건 가난하지 않건 가난한 이들의 복음화를 중심으로 하느님께 향하는 회심이 하느님 나라와 그 백성의 관건이 됩니다. 이 관건으로 열 수 있는 하느님 나라 현실은 이렇게 전개됩니다. 즉, 강생의 신비에서 우러나오는 인간의 존엄성이 실현되고, 십자가와 부활의 신비를 반영하는 사회 공동선이 지켜지고 증진될 수 있습니다. 창조의 신비에서 귀결되는 재화의 보편성과 최후 심판의 엄중한 잣대가 되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기준도 자발성과 신앙감각으로만 실제로 엄중하게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섬김의 명령을 뜻하는 보조성과 사랑의 구체적 형태인 연대성도 기초교회공동체에 모인 평신도들의 행동질서가 됩니다. 모여서 함께 뜻을 모으고 함께 행동하고자 할 때, 공동합의적 논의구조를 존중하는 것과 서로의 신앙감각을 존중하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교회가 되고자 하면 기본적인 요건입니다. 

 

9.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가난한 이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또한 가톨릭교회가 기초교회공동체로서 쇄신되어야 한다는 것은 성직자들이 평신도들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모두 다, 우리가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그분의 교회가 되기 위한 길입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분을 기억하여 복음진리를 사는 교회를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복음에 대한 기억력과 교회에 대한 상상력이 우리를 구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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