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더 나은 정치와 더 나은 종교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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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너희는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아라

- 새로운 세상을 위한 새로운 교회 만들기 

이사 40,1-11; 2베드 3,8-14; 마르 1,1-8 

대림 제2주일; 2020.12.6.; 이기우 신부

⒈ 대림 제2주일인 오늘은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정한 제39회 인권주일입니다. 그 취지는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세우시기 위해서 오시는 메시아를 맞이하면서 우리가 세상에서 행할 믿음의 행동 질서를 상기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이사야가 내다본 대로, “너희는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아라. 골짜기를 메우고, 산과 언덕을 낮추어라. 거칠고 험한 땅을 평지로 만들어라.” 한 예언의 말씀을 실현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낮은 골짜기에  처박힌 것처럼 인권을 유린당한 이들을 들어 높이고, 높은 산과 언덕처럼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이 모이는 속에 벌거숭이로 내동이쳐진 이들을 감싸 안으며, 거칠고 험한 사회환경에서 버림받은 이들에게 끌어안음으로써 기쁜 소식을 전하러 오시는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해서 준비해야 합니다. 그분께서는 목자가 가축들을 먹이는 것처럼 의로움에 굶주린 이들을 배불리 먹이시러 오시고, 목자가 새끼 양들을 품에 안고 어미 양들은 조심스럽게 이끌 듯이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보살피시러 오십니다. 이처럼 성탄을 앞두고 그분께서 오시기를 기다리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분의 주도권을 명심하는 일이요, 우리가 사는 이 사회현실을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도록 변화시키시려는 그분의 주도권에 따라 협력하는 일입니다. 

 

⒉ 이 대림시기에 하느님의 주도권에 따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세상으로 변화시켜 나갈 수 있도록 프란치스코 교황은 새로운 사회회칙을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반포하였습니다(2020.10.3.). 제목은 「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이며 주제는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입니다. 이 주제는 가톨릭 신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함께 노력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더 공정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건설하자고 제시한 방향입니다. 그러자면 “복음의 향기로 가득한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야”(1항) 하기 때문에, 복음을 진리로 믿고 삶에서 실천하겠다고 세례 때에 약속한 가톨릭 신자들이 앞장서자는 것이지요. 여기서 교황은 프란치스코 성인과의 통공 속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교리를 강요하기 위해 논쟁을 벌이지 않았고 그저 하느님의 사랑을 전파함으로써 형제적 사랑으로 가득찬 세상에 대한 영감을 불러일으켰는데, 교황도 같은 영감을 인류에게 불러일으키기를 원합니다(2-4항). 

 

⒊ 인류는 창조주 하느님의 한 가족이므로 인종과 국적이 달라도 서로 형제요 자매인 것이며, 모두 같은 배를 타고 있고, 더구나 세계화되어 있는 현대에 와서는 긴밀하게 상호 연결되어 있어서 오로지 함께 할 때에만 함께 구원될 수 있습니다. 지구촌에서 한 마을처럼 이루어져야 할 형제적 사랑은 단순히 말로 그칠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행동으로 나타나야 하고 그래서 이를 장려해야 합니다. 이 행동은 ‘더 나은 정치’와 ‘더 나은 종교’를 통하여 구체화되어야 하며, 소수 부자들의 이익에 기여할 것이 아니라 모든 이들의 공익에 기여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진리를 중심에 두고, 모든 이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그 일자리가 안정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하며, 이로써 각자가 지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국제분쟁과 전쟁을 예방할 수 있는 정의와 사랑의 실현입니다. 실로 평화는 그저 전쟁이 없다고 해서 실현된 것이 아니라 각 나라의 사회 안에서 모든 이들의 공동선이 보호되고 증진될 때라야 가능한 것입니다. 

 

⒋ 올해 초부터 발생하여 마치 전쟁을 겪는 것만큼이나 전 세계인들을 혼란스럽고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세계적 보건 비상사태는 아무도 홀로 구원받지 못한다는 사실과 우리 모두 형제가 된 하나의 인류 가족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시대가 정말로 도래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 시대에는 비단 코로나 19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훨씬 더 많은 그림자들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유나 정의 같은 가치를 실현하려는 민주주의의 이념이 조작되거나 변형되어 있으며, 과거의 수많은 과오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역사의식 실종사태가 만연해 있고, 공동선에 대한 무관심을 초래하는 이기심이 보편화되어 있는가 하면, 이익에 기반을 둔 시장 논리가 팽배한 가운데 ‘쓰고 버리는 문화’가 일상화되어 있고, 실업이나 인종 차별이나 빈곤 같은 사회악이 방치되어 있으며, 사람들의 권리가 불평등하게 행사되고 사실상의 노예제가 근절되지 않고 있으며 인신매매도 사라지지 않고 있고 여성에 대한 지배와 낙태 강요, 장기매매 등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심각한 일탈행위도 남아 있습니다(10-24항). 우리가 형제적 사랑과 사회적 우애가 넘치는 세상을 만들자면 이 모두가 함께 힘을 모아 해결해야 할 일들로서 전 지구적 행동을 요구하는 문제들입니다(27-28항). 

 

⒌ 그래서 이 시대에 놓인 어두운 그림자들을 걷어내는 희망의 선구자가 필요한데, 말하자면 우리가 이 시대의 ‘착한 사마리아인’(루카 10,29-37)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고통에 등을 돌리고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데 ‘문맹’인 병든 사회에 살고 있지만(64-65항), 우리도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편견과 개인적 관심, 역사나 문화의 장벽을 넘어 낯선 이방인들의 이웃이 되어 주라는 초대를 받았습니다(81항). 배제되고 소외된 이웃의 얼굴에서 그리스도를 알아보아야 할(85항) 우리는 ‘사랑을 위해 창조된 이들’(88항)이며 이 소명에 눈 떠야할 소경입니다. 

 

⒍ 우리가 만들어야 할 새로운 세상은 형제적 사랑과 사회적 우애가 넘치는 세상입니다. 그러자면 ‘근본적 개인주의라는 바이러스’(105항)를 물리치고 모든 이들이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대화를 위해 교육을 장려하는 사회를 건설해야 합니다(114항). 이 사회 건설의 두 가지 도구는 ‘타인의 선을 구체적으로 바라는 자비’이며, 또한 ‘취약한 이들을 돌보는 연대성’입니다. 이 도구들로써 가난과 불평등과 투쟁해야 하며 이념이 아닌 인간을 섬겨야 합니다(112-115항). 

 

⒎ 이러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현실을 개혁하자면 정치가 개혁되어야 합니다. 더 나은 정치는 사회적 사랑의 가장 소중한 형태입니다. 왜냐하면 정치야말로 공동선을 위해 봉사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160항). 사회생활은 노동으로써 지탱되므로 노동의 존엄성을 지켜야 하고 모든 이가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여 노동의 존엄성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으로 나아가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 정치입니다(162항). 이를 위해서 연대성과 보조성의 관점에서 가난한 이들을 도와서 노동과 인간의 존엄성을 통한 공동선의 혜택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진정으로 빈곤을 퇴치하는 정책입니다(187항). 언론도 이를 도와야 하는데, 언론은 인간의 약점을 들추어내거나 사회의 사악한 상황을 끄집어내지 말고, 인류가 한 가족이라는 관점에서 서로가 친밀하게 느낄 수 있으며 관대하게 만나고 약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면서 서로 대화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205항). 

 

⒏ 정치의 개혁을 위해서라도 종교는 세상에서 형제애에 봉사해야 합니다. 교회는 선교를 사적인 영역으로 제한하지 말아야 합니다. 비록 교회가 정치에 관여하지는 않지만 정치적 관심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의 원칙에 따라서 교회는 공동선과 온전한 인간 발전에 대한 관심을 지녀야 하며 모든 이들에게도 촉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되어 오신 하느님에 따라서 교회도 인간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276-278항). 이 회칙을 반포하기 전에 이미 프란치스코 교황은 여러 해 동안 교황청 산하 국제신학위원회를 통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노선에 따라 가톨릭 교회를 쇄신시키기 위한 방안을 연구시켜 왔고, 그 결과로 「공동합의성」과 「신앙감각」에 관한 두 문서를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발표한 바 있습니다. 

 

⒐ 예수님께서는 메시아로서 당신께서 시작하신 파스카 과업을 계승하도록 당신 제자들에게 성체성사를 남겨 주셨습니다. 빵을 당신 몸에, 포도주를 당신 피에 빗대어 하느님께 바치는 희생으로 삼으신 예수님께서는 이 희생으로 인한 거룩한 변화를 믿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이 거룩한 변화의 원인이 되어야 할 행동은 상호 섬김으로서, 최후의 만찬을 하기 앞서 예수님께서는 스승이시면서도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씻어주시고 서로의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고 다짐을 받으셨습니다. 이 상호 섬김의 십자가가 원인이 된다면, 그 결과는 영광스러운 부활입니다. 이 부활 안에서 상호 섬김의 십자가를 짊어진 이들은 믿음 안에서 새로운 세상을 위한 밀알이 되고, 하느님께서는 새로운 세상을 위한 풍요로운 열매를 맺게 하시리라는 것입니다. 

 

⒑ 상호 섬김으로 인한 부활이 교회가 세워지는 거룩한 기반입니다. 이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여러 문헌으로 정리하여 반포한 바 있는데, 이 공의회가 제시한 교회 쇄신의 방향을 프란치스코 교황은 ‘공동합의성’과 ‘신앙감각’으로 해석하여 제시한 것입니다. 이는 교회의 본질적 차원으로서, 하느님께서 제삼천년기의 교회에 바라시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이며 이 백성 전체는 교회의 삶과 사명에 주체가 되어 참여해야 합니다. 여기에 평신도 사도직이 중요성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교계제도에 속한 주교와 신부들은 평신도들의 보편사제직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직무 사제직을 통해 봉사해야 하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있습니다. 

 

⒒ 평신도 사도직은 성령께서 이끄시는 신앙 감각을 통해 활성화될 수 있습니다. 신앙 감각은 진리를 식별하고 진리를 실천할 수 있는 예언자적 은사를 뜻합니다. 이는 성체성사를 통해 그리스도와 하나된 믿음으로 세상을 거룩하게 변화시키려는 희망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특히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사회 복음화에 있어서 이 믿음과 희망에 뿌리를 둔 신앙 감각은 성령께서 우리 교회를 오류 없이 이끄신다는 등불이요 표지가 되어 줍니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적한 우리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들을 사회악으로서 매일 체험하고 살아가는 평신도들은 이 사회악을 공동선으로 반드시 변화시켜야 한다는 절박한 사명감과 성령의 이끄심에 순명함으로써 이 변화가 가능하다는 확신으로 다양한 양상으로 사회생활에 임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평신도들이 믿음으로 이루는 연대와 통공은 그 자체가 세상 속에 살아있는 또 하나의 작은 교회로서 전체 보편 교회에 큰 활력을 제공하는 은총입니다. 인권주일을 맞이하여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로써 이룩되어야 할 새로운 사회를 향하여, 상호 섬김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서로의 신앙 감각을 존중하는 교회를 이룩하기로 다짐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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