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론] 저희는 모두 당신 손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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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모두 당신 손의 작품입니다(이사 63,7)

이사 63,16-64,7; 1코린 1,3-9; 마르 13,33-37
대림 제1주일; 2020.11.29.; 이기우 신부

⒈ 오늘은 새 전례력이 시작되는 대림 제1주일입니다. 올해도 전례력은 구세주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시기로 엽니다. 대림시기가 끝나면 성탄시기로 이어져서 구세주의 오심을 맞이합니다. 성탄시기는 구세주의 세례로 마감하고 성년이 되신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는 첫 번째 연중시기로 이어지지요. 그러다가 곧 춘분을 앞두고 구세주의 수난을 기억하는 수난의 시기가 한 달 동안 이어지는 사순시기가 시작되고, 춘분 후 보름달이 뜰 무렵 부활대축일로 사순시기를 마치면서 부활시기로 건너갑니다. 이로부터 오십 일이 되는 오순절에 성령강림대축일이 되기까지 부활을 경축하는 이 때가 전례력의 정점입니다. 성령강림대축일을 지내고 나면 다시 두 번째 연중시기로 접어들어서 우리가 세상에서 복음을 선포하라고 재촉합니다. 그래서 전례력은 고유시기와 연중시기가 순환되는 리듬으로 이루어지고, 이 리듬이 매년 반복됩니다. 

 

⒉ 세상의 달력은 해마다 새로워지는데 전례력은 해마다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까닭은 우리가 구세주의 생애를 잊어버릴까봐 상기시켜주기 위함이 아니라 그분을 기준으로 우리네 삶이 나아져야 하기 때문이고 무엇보다도 끊임없이 생겨나는 삶의 문제들을 그분의 존재와 가르침을 기준으로 해서 풀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역사 이래로, 또 세상 안에 그토록 문제들이 많아도 결국 그 문제들을 풀어야 할 주체는 사람, 즉 우리 자신이요 우리가 문제를 푸는 데 기준을 두어야 할 좌표상 원점은 그분 즉 구세주이시기 때문입니다. 

 

⒊ 인류가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문명이 이룩되었지만 문명은 수많은 문제들을 생겨나게 하기도 했습니다. 한정된 자원을 고르게 배분하고 필요한 물자를 공정하게 거래하기 위해서는 숫자가 필요했고,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는 가감승제의 수식도 발명되어야 했으며, 이러한 산술적 사고방식은 문명이 복잡해짐에 따라 수학적 사고방식으로 발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이집트처럼 해마다 강물이 범람하여 드넓은 농토의 경계를 허물었다가 바다로 빠지기를 반복하는 곳에서는 다시금 농토의 원주인을 찾아주기 위하여 도형을 그려서 답을 찾는 기하학적인 사고방식도  생겨났습니다. 

 

⒋ 우리가 학창시절에 배웠던 방정식, 인수분해, 순열, 조합, 지수와 로그 같은 대수학은 논리적 사고력을 바탕으로 사물의 양, 구조, 변화 등에 대하여 수를 이용하여 논리적으로 가시화함으로써 문제를 합리화시키는 지적 노력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먼저,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수학적 진리로서의 공리(公理)를 찾아내고, 그 다음에 공리에 입각한 명제(命題)를 세우며, 마지막으로는 이 명제로 각종 현실적 문제들의 참과 거짓을 증명(證明)해 내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다툴 필요 없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상업 활동과 금융질서 등의 경제구조가 이 대수학적 사고방식에 바탕하여 이루어집니다. 

 

⒌ 또한 기하수학은 상상적 사고력을 바탕으로 공간을 가시적으로 측정가능한 대상으로 만듦으로써 문제를 풀려는 지적 노력이었습니다. 삼각함수, 집합과 공간, 미분 및 적분에서 벡터에 이르기까지 여러 개념을 가지고 도형과 좌표를 활용하여 공리에서 파생된 공식을 만들고, 다시 공식으로부터 각종 명제를 만들어서 이를 바탕으로 인류가 현실 공간에서 부딪치는 각종 문제들을 풀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기하수학은 모든 제조업은 물론 건축 및 건설 산업과 우주천문학의 기본바탕입니다.

 

⒍ 그런데 수학에서 바탕이 된 논리적 사고력과 상상적 사고력은 상업이나 금융 같은 경제활동이나 건축과 건설 같은 생산활동에서뿐만 아니라 이보다 더 중요한 우리네 삶의 기본문제를 푸는 데에도 활용되어서 행복 추구에 기여해야 마땅하며, 그 결과로 파악된 공리와 공식 그리고 명제도 그러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경제나 생산 등의 물질문명의 활동들이 인간 행복에 기여하지 못하고 거꾸로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수와 수식의 개념 속에 들어있는 논리적 사고력이나 도형과 좌표 같은 개념 속에 들어있는 상상적인 사고력이 정작 발휘되어야 할 대상은 인간의 삶, 즉 인생과 사회생활입니다. 

 

⒎ 신앙과 신학은 하느님께서 알려주신 계시 진리에 바탕하지만 인간의 행복과 구원을 위하여 생겨났습니다. 문명의 일상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인생의 문제를 풀어야 하는 필요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과 만나기 위한 전례가 생겨나게 되었고, 이 전례의 흐름을 전례력이라 합니다. 

  고유시기를 기본리듬으로 연중시기로 이어지는 전례력의 주기는 하느님께서 존재하신다는 대전제 하에서 인간은 하느님의 피조물이며 따라서 인간에게는 반드시 하느님이 필요하고 인간을 하느님으로 이끄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는 기본적 신앙 확신에서 출발합니다. 이는 그리스도 신앙의 공리와도 같습니다. 여기서 파생되는 공식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인간을 하느님께로 이끄신다는 신앙과 하느님은 삼위일체이시라는 신앙이요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하느님 나라를 인간은 세상에 세워야 하며, 이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지게 되어 있다는 심판과 상벌의 신앙입니다. 이 하나의 공리와 세 공식을 합하여 4대 교리라고 부릅니다. 줄여서 말하자면, 천주 존재, 예수 부활, 삼위일체, 상선벌악입니다. 이를 진리로 믿는 것이 그리스도 신앙입니다. 인류가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어둠의 무명(無明) 속에서 헤매일 때, 인류가 깨닫기를 기다리시다 못하여 하느님께서 먼저 하늘을 찢고 내려오셨습니다(이사 63,19). 대림시기의 묵상 내용이 이것입니다, 하느님의 주도권. 우리는 이 진리를 조심하여 깨어 지켜야 합니다(마르 13,33).

 

⒏ 이 공리 공식에서 파생된 명제가 다섯 가지인데, 첫째는 인간의 존엄성 명제입니다. 인간은 하느님이 인간이 되기를 원하셨을 만큼 귀한 존재이며, 이로써 인간은 하느님에게서 나왔으므로 하느님을 닮아야 하며 그러할 때 비로소 창조된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진리였습니다. 이를 두고 이사야 예언자는, “저희는 모두 당신 손의 작품”(이사 63,7)이라고 고백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모든 사람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인간 사랑으로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 첫째 명제가 됩니다. 이 명제를 거슬러 인간 존엄성을 해치는 모든 사상과 행동은 모두 우상숭배입니다. 대림시기와 성탄시기는 이 인간 존엄성 명제가 진리임을 마음속 깊이 새기는 특별한 전례시기입니다.  

 

⒐ 둘째는 사회의 공동선 명제입니다. 세상에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사랑을 가르치시고 몸소 실천하셨는데 구체적으로는 가르침과 치유 그리고 구마(驅魔) 행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즉,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며 다른 사람을 도와주도록 가르치는 일, 또 아픈 이들을 돌보아주고 마귀 들린 이들을 해방시켜주는 일 등 이었는데, 이를 사회적으로 말하면 우선 공동선과 사회악의 실체를 가르치는 한편 사회악의 피해자와 희생자를 돌보고 사회악에 맞서서 공동선을 회복시키며 더 나아가서는 이 공동선을 증진시키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순시기는 이에 대한 특별한 묵상을 제공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이 공동선을 위해 수고하셨고, 그러시고도 모함을 받아 주어진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지셨으며, 제자들에게도 이 십자가를 짊어져야 한다고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공동선의 십자가야말로 구원의 조건입니다. 

 

⒑ 셋째, 재화의 보편성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 명제입니다. 모든 재화는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에게는 재화가 필요치 않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골고루 나누어 쓰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이 재화의 보편성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욕심이 이 명제를 가립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셔서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심판의 기준으로 삼으시겠다고 경고도 하셨습니다. 그 명제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현세에서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내세에 영원한 생명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려주시고, 현세에 대한 집착에서 생겨나는 욕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당신께서 먼저 부활하시어 성령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이를 체험하고 확신한 사도들과 초대교회 신앙인들은 미련없이 재화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서로 나누고 서로 섬길 수 있었습니다(사도 2,42-47; 4,32-37). 부활시기에 특히 묵상하는 주제입니다. 그래서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여 나눌 수 있는 신앙이야말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부활을 체험했음을 증거하는 신앙입니다. 

 

⒒ 넷째는 보조성 원리이고 다섯째는 연대성 원리입니다. 이 두 명제 모두 연중시기에 신앙인들이 세상에 나가서 자기 가정과 직업 그리고 사회적 관계를 통해 실현하고 증거해야 하는 진리입니다. 이는 방법적이고 실천적인 명제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실 정도로 서로 섬겨야 함을 강조하신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사랑의 실질적 모습이 섬김입니다. 보조성 원리는 이 섬김을 사회적으로 실현하는 명제입니다. 누구나, 사회적 약자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공동선에 참여할 기회를 주어야 하며, 그럴 수 있도록 교육도 하고 양성도 하며 지원도 해야 한다는 내용의 원리입니다. 그리하여 자발성이 각성될 때까지 기다려주어야지요. 먼저 혜택을 받은 사람일수록 이 보조성 원리 구현의 책임이 크지요. 그리고 서로 섬김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 연대하는 일과 연대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일에 관한 연대성 원리입니다. 사회적 약자들은 약하기 때문에 연대하지 않으면 공동선에 참여할 수 없고 그 혜택을 입을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연대의식이 깨어나지 못한 사회적 약자들에게도 연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일이 필요해집니다. 이것이 사회적 사랑을 실현하는 연대성 원리입니다. 

 

⒓ 우리들이 지닌 개인적 인생문제는 물론이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도 모두 이 공리와 공식 그리고 명제들이라면 반드시 풀 수 있습니다. 또 풀 수 있어야 진리입니다.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새로이 시작된 대림시기에 선물처럼 알려드리는 것이니, 이 진리를 통하여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총과 평화를 교우 여러분에게 내려주시기를 빕니다”(1코린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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