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복음화, 생명과 협동의 공동체와 정의구현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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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화, 생명과 협동의 공동체와 정의구현 활동

이사 2,1-5; 로마 10,9-18; 마태 28,16-20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2020.10.18.; 이기우 신부

⒈ 오늘은 전교 성월에 맞이하는 전교주일이자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날입니다. 오늘 미사의 첫째 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장차 모든 민족들이 당신의 길을 걷게 되리라는 원대한 전망을 내다보며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모든 산들 위에 굳게 세워지고 언덕들보다 높이 솟아오르리라. 모든 민족들이 그리로 밀려들고 수많은 백성들이 모여 오면서 말하리라.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 이것이야말로 애초에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히브리들을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시면서 당신 백성으로 삼으신 이유이자 목표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먼저 모든 산들 위에 굳게 세워졌어야 했고, 다른 언덕들보다 높이 솟아올라야 했습니다. 

⒉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이스라엘은 편협한 선민의식에 사로잡혀서 자신들이 특별해서 선택받았다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상대로 복음을 선포하시며 설득하셨지만 사두가이와 바리사이 등 지도자들의 끈질긴 방해 책동으로 실패하셨습니다. 이미 그들이 예수님께 적대할 음모를 꾸미기 시작할 때부터 당신의 운명을 직감하신 그분은 이스라엘이 애초에 받았던 소명대로 다시 시작하도록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셨고, 이 열두 제자를 사도로 삼아서 참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교회를 세우게 하셨습니다. 십자가와 부활로 그 절정에 이르는 예수님의 공생활은 바로 이를 위한 과정이었고 이를 예수님의 파스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의 파스카를 깨닫게 된 사도들과 초대교회 신자들은 그분에게서 배운 대로 참 하느님 백성으로 걸어가기 위한 첫 걸음을 공동생활로 뗐습니다. 함께 모여서 기도하는 한편, 서로 형제처럼 지내면서 서로 가진 것을 나누되 특히 가난한 이들이 궁핍하지 않도록 우선적인 배려를 했습니다. 이 같은 신자들의 공동생활에 앞장선 이들은 바로 열두 사도들이었습니다. 그전에는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도 없다고 야단맞던 그들이 예수님의 파스카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앞장서게 된 변화 자체가 기적이었거니와, 사도들의 이 놀라운 변화를 목격한 신자들도 섬기고 나누는 삶을 통해서 기적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랬더니 이러한 변화를 지켜본 주위 사람들이 그 매력에 이끌려 제 발로 입교하기를 청하게 되었고, 그래서 교회가 커지는 전교가 이룩될 수 있었습니다. 사도행전에서는 이 대목을 이렇게 전합니다: “신자들은 하느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 주님께서는 구원받을 사람을 늘려주셔서 날마다 믿는 이들의 모임이 커갔다”(사도 2,47). 초대교회가 유다교 당국과 로마 제국의 박해 속에서도 엄청난 선교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비결이 여기에 숨어 있었습니다. 

⒊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목표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모인 주교들도 이 같은 소명과 책임에 대하여 깊이 자각하고는, 교회헌장과 사목헌장의 첫 머리에 엄숙하게 천명한 바 있습니다. “인류의 빛이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교회는 그 빛을 세상 모든 이들에게 비추고자 한다. 하느님과의 깊은 일치 안에서 그 빛을 받으면서, 그 빛을 전 인류에게 비춤으로써 모든 민족과도  깊은 일치를 이루고자 하는 표지요 도구가 바로 교회인 것이다(교회헌장, 1항). 그리스도인들은 인류와 인류 역사에 깊이 결합되어 있으므로,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서 가난한 이들과 고통받는 이들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번뇌를 자신들의 것으로 삼고자 한다(사목헌장, 1항)”. 

  이를 위한 최소한의 기본자세는, 첫째로 중세와 근세에 그러했던 것처럼 더 이상 세상을 가르치려 하거나 다스리려 하지 않을 것이며 그보다는 오히려 낮은 자세로 세상과 대화한다는 것과 둘째로 먼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부터 겸손하게 가난한 이들에게 가진 것을 나누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다가가서 위로해 줌으로써 가난한 교회가 되는 것이었고, 셋째로는 이러한 지향으로 하느님 앞에 모여서 성체성사를 통해 성령으로 오시는 예수님의 기운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각오로 파스카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을 본받는 길이었습니다. 이러한 자기 변화 내지 쇄신이야말로 전교의 전제조건인 동시에 복음화의 과정 그 자체임을 공의회는 천명한 것입니다. 

⒋ 공의회가 폐막된 바로 그 해 1965년에 원주교구장으로 임명된 지학순 다니엘 주교는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를 찾자”는 사목목표를 내걸고, 원주 교구를 복음화시키기 위한 전략으로서 사회경제 네트워크를 결성함으로써 주민들의 삶의 현장에서 다양한 협동조합을 건설하기 위한 운동을 그 이듬해인 1966년부터 전개하였습니다. 고리대금에 시달리는 가난한 이들을 돕기 위해 1966년에 원동 성당을 중심으로 원주신용협동조합을 세웠고, 청소년들에게 협동정신을 함양시키기 위해서는 원주 교구가 인수한 진광중학교에 학교협동조합을 세웠습니다. 

  그러다가 1972년에 남한강 유역의 3개도, 13개 시군, 87개 읍면에 대홍수가 밀어닥치자, 수재민들을 무상원조 형식이 아니라 자조 자립하는 방안으로 돕기로 계획을 세우고, 지학순 주교는 독일 가톨릭교회를 방문하여 구호단체인 ‘미제레올’과 ‘까리따스’에 도움을 요청하였고 지 주교가 원주 복음화의 협조자로 선택한 사회운동가 장일순 요한은 이 두 단체의 지원으로 협동조합 방식으로 지역사회를 복원시키고자 하였습니다. 농민, 노동자, 어민, 영세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협동 공동체를 건설하는 광범위한 자활운동부터 전개하였습니다. 현재 65만 명의 조합원이 가입된 생활협동조합 ‘한살림’의 전신 '원주소비자협동조합'이 장일순 요한의 주도로 이 당시에 설립되었습니다. 

  이 복음화 운동의 본부를 원주 교구에서는 ‘원주 캠프’라고 불렀는데, 이 캠프에서는 신용, 구매, 공제, 생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동운동을 조직하여,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과 공동체 운동 단체 등 36개 단체를 모아서 ‘대안사회를 위한 원주 협동사회경제네크워크’를 결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원주 캠프에서는 원주 복음화를 대표하는 가치를 생명과 협동으로 설정하고 이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운동으로서, 한 살림 운동과 협동조합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원주 복음화 계획의 성과 가운데 눈에 뜨이는 것이 의료복지 사회적 협동조합입니다. 20년 가까이 원주 시민, 그 중에서도 취약계층 시민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이 조합은 의료, 건강, 생활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주민과 보건의료전문가, 지역복지 전문가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비영리법인입니다. 일반 병원은 자본가가 소유하고 의료인이 운영하지만, 이 조합에서 운영하는 병원은 조합원들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대표기구를 통해 관리하기 때문에 영리를 추구하기보다 조합원들의 건강을 관리하고 치료하는 데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지방 도시들의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추세 속에서 원주시는 인구가 증가하고 있고 따라서 자연히 신자들도 늘고 있습니다. 

⒌ 하지만 이런 외적 성장이 복음화 성과의 전부일 수는 없으며, 원주 교구민들과 원주 교구 관할 지역민들의 내적 성숙과 무엇보다도 전체 한국 사회의 공동선에 미친 영향이 원주 교구 복음화 활동의 성과로서는 더 컸습니다. 원주 교구 관할 지역에서는 물론이고 전체 한국 사회에 대하여, 한국 천주교회가 기복신앙을 강조하면서 자기 조직의 확장만을 꾀하는 자기중심적인 종교집단이 아니며 사람들 안에서 그것도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 뵈옵기를 갈망하는 신앙인들의 공동체로서 참된 종교집단임을 증명한 것입니다. 

  이러한 효과는 생명과 협동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지역 내 활동에서보다도 정의구현과 사회 복음화를 위한 사회참여 활동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즉, 원주 교구장으로서 지학순 주교가 지역 사회 복음화에 더 적극적으로 기여하려는 지향으로 원주 MBC에 전체 주식 지분 중 40%를 출자하였는데, 관료들의 부정부패로 이 출자금이 증발되어 버리자 비로소 정부와 사회의 부정부패가 얼마나 심한지를 체감하게 되었고 따라서 이를 척결하기 위한 시국미사와 대대적 거리시위를 사흘 동안 벌였습니다. 그러자 중앙정보부에서는 그를 요시찰인물로 지목하게 되었고, 독일 모금여행에서 돌아오던 그를 공항에서 체포하여 구금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이에 분개한 전국의 사제들이 원주 교구 주교좌 성당에 모여 지 주교의 석방을 촉구하는 한편 한국 사회의 정의구현을 위한 활동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한 사제들이 정의구현사제단을 출범시키기에 이르렀습니다. 이후 사제단의 활동은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의 개입과 묵시적 교감 하에서 이루어져서 가톨릭 신자들의 자긍심과 사회의식을 한껏 드높여 주었음은 물론 박해가 종식된 이후 은둔하며 조용히 살아오던 가톨릭교회의 사회적 이미지 역시 정의롭고 믿을 만한 종교집단으로 탈바꿈시켜 주게 되었습니다. 1980년대 십 년 동안 가톨릭교회의 교세가 두 배 이상, 그러니까 150만여 명 정도였던 신자들이 300만여 명 이상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한 배경에는 두 차례에 걸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방한과 시성식 그리고 세계성체대회로 가톨릭교회가 언론과 국민 대중에게 대대적으로 노출되었던 것이 계기가 되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또한 그 배경에는 1970년대에 이루어진 정의구현활동이 자리 잡고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⒍ 성찬경 시인의 시어로 표현하자면, 세상에 의인이 가득 차서 땅에 하늘나라가 세워지기를 기도하는 날이 오늘입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하느님의 뜻이 지지부진한 까닭은 너도 나도 의인이 될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전교주일에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해서 기도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의인이 되겠다고 다짐하는 일입니다. 의인으로 살다보면 전교할 기회는 자연히 성령께서 마련해 주시거니와 사실은 의인으로 사는 일 자체가 선교입니다. 의롭게 살지 못하면서 전교부터 하려 들면 실패합니다. 

그런데 지학순 다니엘 주교와 장일순 요한 사회운동가는 생명과 협동의 공동체로 그 의로움의 실체를 증명해 주었고,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과 정의구현사제단은 의롭지 못한 정치권력에 맞서야 하는 교회의 거룩함의 실체를 알려줌으로써 한국 사회의 복음화에 기여하였습니다. 이렇게 복음화에 앞장선 의인들을 통해 성령의 이끄심을 알아본 무수한 신앙 공동체들이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의 기운을 받아 개미처럼 노력한 성과가 오늘날 한국 가톨릭교회의 현주소입니다. 그러므로 정의구현 활동은 민족이 화해하는 다음 목표를 향하여 우리 사회 안에서 더욱 힘차게 계속되어야 하며 생명과 협동의 공동체 운동은 전국 교구 안에서 더욱 널리 퍼져야 합니다. 이것이 공의회가 천명한 복음화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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