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세상의 가라지들을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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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회악 현상에 대한 전략과 전술

지혜 12,13.16-19; 로마 8ㅡ,26-27; 마태 13,24-43 
연중 제16주일; 2020.7.19.; 이기우 신부

⒈ 오늘 복음이 밀과 가라지의 비유 말씀입니다. 이 비유의 제목부터 의미하고 있듯이, 밀밭에는 원치 않는 가라지가 심겨져 자라기 마련입니다. 선한 일을 함에 있어서도 악으로부터 방해를 받거나 적어도 악과 마주치는 일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가라지들을 많이  만나셨는데, 그 가라지는 개인이기도 했고, 세력이기도 했습니다. 밀을 잘 자라게 하는 일반큼이나 가라지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주요 관심사일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여기에 있습니다. 

 

⒉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돌보시고 인간의 마음속까지 살펴보시는 분이시지만, 만물과 마음 모두에 대하여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져서 완성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자유의지를 통해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선택하고 또 실제로 행동해야만 합니다. 인간으로서는 자신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존재를 알고 믿으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만 구원될 수 있지만,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인간의 운명조차도 거부할 수 있는 자유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자신의 조물주에게 반항할 수 있는 가공할 가능성이 주어져 있어서 세상이 순조롭게 완성을 향해 발전되어 가지 못하고 어지러운 것입니다. 

 

⒊ 바리사이들은 그분을 줄곧 쫓아다니며 사사건건 트집을 잡았고 그것도 부족하여 그분에 대한 거짓 뉴스와 악소문을 지어내어 퍼뜨렸습니다. 성령으로 인한 잉태를 알 길 없었던 그들은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아들이라는 소문부터 퍼뜨렸습니다. 이는 그분이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사생아라는 험담으로 이어졌습니다. 또 그분이 일으킨 기적들도 마귀 두목의 힘을 빌려서 하는 것이라는 아주 악의에 찬 모함도 지어냈습니다. 예수님의 신적인 능력을 시기하는 심보에서 나온 이 모함은 그분에 대한 명성을 가리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지요.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처럼 경건한 생활을 하지 않고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먹고 마시기를 즐기고 가만히 보니까 죄인들과 창녀들과 가까이 지낸다는 악소문까지 생겨났습니다. 예수님을, 태생으로 보나 능력으로 보나 행실로 보나 아주 형편없는 사기꾼으로 깎아내리는 훼방이었습니다. 

 

⒋ 바리사이들보다는 조금 더 거리를 두고 관망하던 사두가이들은 자신들이 관할하고 있는 예루살렘 성전의 질서에 예수님께서 정면으로 도전하셨을 때 돌아섰습니다. 정화사건을 일으켜서 성전을 모독했다는 혐의와, 메시아를 사칭했다는 신성 모독 혐의를 뒤집어 씌웠습니다. 그런데 이런 종교적 혐의만으로는 사형을 집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식민 통치 하에서 사형집행권은 로마 총독에게만 유보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사두가이들과 최고 의원을 함께 하던 바리사이 율법 학자들이 꾀를 냈습니다. 여기에 그럴듯한 빌미는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시는 기적을 일으키셨을 때 군중이 그분을 억지로라도 왕으로 모시려고 했던 광경을 목격했던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의 왕이 되려 했다는 혐의를 뒤집어 씌워서 정치적 반역자로 내몰았던 것입니다. 

 

⒌ 하지만 빌라도의 재판에서 이런 혐의조차 평소에 그분을 잘 보아온 군중에 의해 잘 받아들여지지 않자 마지막으로는 무장혁명을 통해서라도 로마로부터 독립하기를 원하던 혁명당원들과의 비밀협상을 시도했습니다. 혁명에 대한 열성 때문에 ‘젤로데’라고도 불리던 이 혁명당원들은 원래 대부분 갈릴래아 출신이라서 그분과 친근한 심정으로 비밀스럽게 혁명을 위한 연대를 모색하고 있었고 이들의 옛 동료였던 이스카리옷 유다가 그들의 끄나풀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발언과 성향 그리고 숨은 의도를 파악하면서 결정적인 순간에 민중봉기의 바지저고리로 내세우려 하고 있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지켜보아도 그분이 자신들의 기대대로 움직여줄 것 같지 않았던지라 유다를 통해서 사두가이와의 1차 휴상을 시도해서 최고 의회에 넘기고 유력 의원들을 설득해 보고자 했지만, 대사제 카야파가 주재한 최고 의회 재판에서 그분은 무기력한 침묵으로 일관하셨습니다. 일이 틀어지게 된 것을 알게 된 유다는 자살해 버렸고, 혁명당원들도 일단 그분을 자신들의 거사에 이용하려던 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⒍ 사태의 관건은 나머지 군중이 쥐고 있었는데, 이들은 성전이나 신성을 모독했다는 혐의 따위는 물론 유다인들의 왕이 되려 했다는 정치적 반역 혐의조차도 죄다 거짓임을 잘 알고 있었던 현장 목격자들이었기 때문에 섣불리 그분을 사형시키자는 데 동의할 수 없어서 머뭇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사두가이파와 혁명당원들 사이에 이미 체포되어 구금되어 있었던 혁명당 지도자 바랍바와 맞교환하는 조건으로 협상이 타결되는 바람에 혁명당원들이 우물쭈물하며 관망하던 군중을 협박조로 선동했고 이에 부화뇌동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자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형이 어이없게도 한 순간에 결정되어 버렸습니다. 

 

⒎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실 때부터 제자들에게 여러 차례 예고하셨을 만큼 당신의 이 비극적 운명을 내다보고 계셨고, 바리사이나 사두가이나 젤로데 등 반대자들의 속성과 성향과 예상 반응을 훤히 꿰뚫고 계셨습니다. 스승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겪은 후 두 세대가 흘렀을 즈음 마태오는 자신의 복음서를 쓰면서 이미 목격한 경험을 근거로 오늘 복음에 나오는 ‘밀과 가라지의 비유’를 삽입해서 독자들에게 알리고자 했습니다. 하느님께 적대하는 가라지들을 어찌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는 하느님의 일을 하려는 모든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문제였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예수님의 기준과 선택에 따르기를 바라는 지향을 담았습니다. 

 

⒏ 하늘 나라를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유하신 예수님께서는 원하지 않아도 그가 모르는 사이에 원수가 가라지 씨앗을 뿌리고 가는 상황이 불가피함을 암시하면서 가르침을 시작하셨습니다. 좋은 일을 하는 데 있어서도 가라지와 같은 반대나 모함, 시련이나 역경은 어쩔 수 없이 주어진다는 현실을 전제로 하신 것입니다. 열두 제자를 부르실 때 한 사람 한 사람을 주의깊게 주목하시며 밤 새워 기도한 끝에 뽑으신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에도 이스카리옷 유다가 포함되어 있었던 상황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신적인 능력으로 사람의 마음속을 꿰뚫어보실 수 있었던 예수님조차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이것입니다. 

 

⒐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밀도 자라지만 가라지도 함께 자랍니다. 어느 면에서는 밀보다 가라지의 생장 속도가 더 빠를 수도 있습니다. 본인의 의지가 흔들리기도 하고, 의심과 불신을 받아 내부 갈등이 촉발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내부의 갈등은 기본이고, 반대자들의 시기와 질투 그리고 모함에다가 주변 상황 여건까지 악화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역으로 선한 일을 하려고 했던 이들의 초심에 부정적인 영향이 다가오게 됩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서 밀을 키우는 노력, 다시 말하면 하느님의 선이나 공동의 선을 위한 노력은 가라지를 상대하는 노력, 다시 말하면 사회악에 맞서려는 노력뿐만 아니라 자기 마음 안의 평정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반드시 포함해야 하게끔 됩니다. 사실은 이 과정에서 당사자의 초심이 더욱 성장하기도 하고 반대자에 맞설 수 있는 내공이 심화되기도 하며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취약점이 더욱 보완될 수 있는 정화가 진행되기도 합니다. 이래서 교회의 영성과 세상이 말하는 도덕성은 하느님의 선이나 공동의 선을 실현하기 위해 일하는 능력을 기본으로 하고, 세상이 짊어지워주는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능력에다가 이런 십자가에도 불구하고 평정심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자기 내공을 수련하는 능력까지를 포함해 왔습니다. 

 

⒑ 이것이 예수님께서 생애의 마지막에 게세마니 동산에서 겪으셔야 했던 상황입니다. 그분은 아무런 죄도 저지르지 않으셨고 따라서 죽임을 당해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고, 그분을 죽이려던 무리들은 기세등등하게 칼과 몽둥이를 들고 찾으러 왔지만, 그전에 이미 그분은 밤새도록 공포와 번민에 싸여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다면 이 고난의 잔이 내게서 피해가게 해 주소서. 하지만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오직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성령칠은 가운데 경외심의 은사를 떠올리게 하는 이 장면은, 인간의 본성적인 자유의지와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고자 하는 신앙의지 사이의 갈등을 겪으면서 이를 사다리 삼아 하느님께로 승천하는 듯한 영성의 최고봉을 보여줍니다. 

 

⒒ 그러므로 밀을 보호하고 자라게 하는 데 집중한다는 것은, 일단 가라지에 대한 원망심이나 분노를 가라앉히고 그 장래에 대한 처리를 하느님께 맡겨드리려는 자세를 의미하고, 그 다음은 우리의 마음속까지 살펴보시는 성령께 기도하는 자세를 의미하며, 그리고 나서 밀을 위한 대책들 다시 말하면 선을 보호하고 강화하려는 노력에 집중함을 의미합니다. 커다란 밑그림만이 아니라 작고 세밀한 부분까지도 정성스럽게 보살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을 공명정대하게 심판하시는 하느님께서 악을 응징해 주시고 선을 보호해 주시는 분이심을 더욱 확실하게 알게 됩니다. 이러한 심판 역할은 세상 종말이나 내세에 가서야 이룩되는 것이 아니라 선과 악의 투쟁이 치열하게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룩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을 위해 통공을 이루며 기도로 연대하는 이들은 선한 일을 하는 의인들이 큰 일을 하는 것 못지않게 작은 분심을 하는 것에도 염려를 하고 청원기도를 바치게 됩니다. 악에 대해서는 분노를 하되, 그 악을 조장하는 악인들이나 이들에게 물들어 죄를 저지르는 죄인들에 대해서는 하느님께 그 심판을 맡겨드리는 연민의 마음만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선한 일을 하면 할수록 우리네 영혼도 더욱 선하게 되고, 악인들이 막아서면 설수록 우리네 마음도 악에 물드는 것이 아니라 더욱 악에 물들지 않을 수 있는 내공이 깊어지게 되는 은총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가라지 현상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지금까지 간략하게나마 말씀드린 것이 그에 대한 대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가라지들이 지워준 십자가라고 하더라도 막무가내로 짊어지려 하면 힘에 부쳐서 넘어질 수가 있습니다. 그야말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해야 하는 일이 이 일입니다. 이것이 착하되 야무지게 착하게 사는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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