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회 설립 88주년 기념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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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020.6.27.土. 10시 30분

김수창 야고보 신부

 

미사봉헌 시작하며

오늘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의 뜻 깊은 88주년 생일을 경축하며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요한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시고, <그때부터 요한이 성모님을 자기 집에 모셨습니다.>(요한 19,27) 사도 요한처럼 우리도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시는 공동체를 이루어, 88년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간의 하느님 은혜와,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며 우리와 함께 걸어오신 성모님의 자애로운 손길을 기억하며 감사합시다.

 

그리고 오늘 은경축을 맞이하시는 12분 수녀님, 금경축을 맞이하시는 5분 수녀님, 서원 회갑을 맞으시는 3분 수녀님께 축하와 감사를 드립시다. 또한 우리 수도회를 창설해주시고 이끌어 주신 메리놀의 사제들과 수녀님들과, 우리의 모든 은인들을 기억하며 감사합시다. 아담 이브는 죄를 짓고 숨어서, <너 어디 있느냐?> 하시는 하느님 앞에 나오지 못했지만,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서, <너 어디 있느냐?> 하시는 하느님 앞에 나아와, 88년 동안의 우리 공동체의 모든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청하면서 고백의 기도로 이 미사를 시작합시다.

강 론

오늘 우리 수도회의 88주년 생일을 다 함께 축하하며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립시다. 우리나라에서는 八十八歲세를 米壽라 합니다. “米”字는 “十”字의 위아래로 “八”字를 넣어서 “쌀 미”字가 된 글자이고 “壽”는 생명 즉 목숨을 의미하는 글자입니다. 그래서 88세를 米壽라 합니다. 米壽는 생명의 쌀, “생명의 밥” “생명의 빵”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생명의 빵이다>(요한 6,35) 하시며,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요한 6,51) 하셨습니다. 그리고 수난 전날 저녁床에서 <너희는 받아먹어라 이 빵은 내 몸이다>(마태 26,26) 하셨습니다. 세상의 빵은 먹고도 죽는 빵이지만, 예수님의 빵은 영원한 생명을 주는 빵입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회는 금년 그 米壽,즉 생명을 주는 빵의 해를 맞고 있습니다.

 

독일 사람들은 88의 글자는 세우거나 눕히거나 마찬가지라 해서, 이래나 저래나 마찬가지라는 뜻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중국 사람들은 八을, “發” 즉, 發興익 뜻으로 생각하며, 대단한 행운의 숫자로 여깁니다. 그것은 周나라 武조의 이름이 發이라서 그런 행운으로 여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중국인들은 전화나 자동차 번호에 八字가 들어가는 것을 큰 행운으로 여기며, 그 8字를 얻으려고 뇌물을 쓰기도 한답니다.

 

“八”이란 숫자에는, 七顯A起(칠전팔기), <세살 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시편에는 <인생은 기껏해야 칠십년, 근력이 좋아서야 팔십년>(시편 90,10)이라 했습니다. 구약시대는 6일 창조와 7일 안식일을 율법의 토대로 하고 있지만, 복음시대에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八日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 격언의 七顯八起는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 수도회의 역사는 바로 七顯八起였습니다. 우리는 內憂外患의 소용돌이와 고난을 고비 고비 다 겪어내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內憂으로는, 편견, 질투, 아집, 비난, 편 가르기, 시행착오 등이 공동체를 암담하게 하고, 소란과 풍파의 먹구름을 일으켜 갈피를 잡을 수 없게 하였습니다. 外患으로는, 일본의 식민통치, 초창기 지도자들의 본국 추방, 공산정권의 박해, 同族相殘의 6.25 전쟁, 피난살이의 시련 속에서 우리는 갖은 어려움을 다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아무 것도 없이 맨손으로 새로 시작해야하는 가난하고 암담한 피난살이의 현실도 겪어내었습니다. 이런 시련 속에서 마음이 약한 이들은 불안하고 혼들리고, 더러는 문 밖으로 떠나갔습니다. 참으로 아까운 분들입니다. 예수님은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어느 고을이나 집안도 서로 갈라서면 버티어내지 못 한다>(마태 12,25)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우리 수도회의 이런 內憂外患의 시련들은 망하는 길이 아니라, 하느님이 우리 수도회를 더욱 튼튼하게 키우시려고 내려주신 시련의 은총이고, 그 교육 과정이라 믿게 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그 크신 사랑의 섭리를 깨닫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 암담했던 시련을 넘어서 우리 수도회는 얼마나 많이 발전하고 성장했습니까!

 

공동생활 수도회의 첫 창시자이신 파코미오 성인도 초기에는 그런 많은 시련과 시행착오와 반발과 편 가르기의 소용돌이를 겪어내며 수도자들의 공동생활 양식을 창시하고 정착시키셨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수도회도, 베네딕도 수도회도, 프란치스코 수도회도 초창기에는 다 그런 시련과 혼란을 겪었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로마 8,35)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주시는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도 남습니다. Hypernikomen=Supervictory>(로마 8,37)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의 길로 우리를 이끌어주시어 內憂外患의 여러 가지 시련을 큰 승리로(Supervictory) 이끌어 주셨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을 들읍시다.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한다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 31-35) 이제 우리는 다 함께 성찰하고, 뉘우치고, 서로 용서하고, 서로 사랑하면서 함께 손을 맞잡고 <너 어디 있느냐?> 하시는 하느님 앞에 나아가 용서를 청합시다. <주님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처럼 너희도 서로 용서하라.>(콜로 3,13) <한마음 한뜻>은 “사랑의 학덕”이며 그렇게 사는 모습을 보고 구원받을 사람들이 모여 들었듯이(사도 2,47) 우리 성소자들도 모여들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八日, 즉 주님의 부활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만일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의 선교도 헛되고 너희의 믿음도 헛되다.>(너희의 수도생활도 헛되다.) (I코린 15,14 참조) 하셨습니다. 그래서 “八” 이란 숫자는, 주님 부활의 숫자이며 가장 중요하고 참으로 심오한 부활생명의 숫자입니다. 예수님은 수난예고에서 매번 삼일 만에 부활하신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부활 후의 기록은 모두 “주간 첫날”이라 했습니다. 그 “삼일 만에”와 “주간 첫날”은 바로 8일 째 되는 날입니다. 그날은 바로 주님의 날(Kuriakos)이고, 예수님은 당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 하셨습니다. 하느님은, 六日창조를 이루시고 七日에 쉬셨습니다. 예수님은 새로운 창조인 救世事를 六日에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시고>(요한 19,30),七日에 쉬시고,八日에 부활하셨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일곱째 날은 우리 안식 일이 되리니 그 안식일은 해넘이가 없을 것이며 오로지 주님의 날이 될 것이다. 그야말로 여덟째 날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축성된 날이 그날이다. 그때는 쉬면서 보게 되리라. 보면서 사랑하게 되리라. 사랑하면서 찬미하게 되리라. 마지막은 바로 이러하리라. 끝이 없는 마지막! 우리의 마지막은 끝없는 나라에 도달하는 것이다.>(신국론 22,30,5.)

 

수도생활은 복음대로 사는 생활 입니다. 우리 수도회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고, 복음대로 살고, 복음을 선교하는 수도회입니다. 세상에는 수도회가 많습니다. 그중에서 우리 수도회의 계열과 그 맥을 우리는 알아야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수도생활 始祖는, 隱修者 성 안토니오와, 共住 생활의 창시자 파코미오 성인을 꼽습니다. 그리고 라틴 교회에서는 아우구스티노(354~430년) 성인이 수도생활을 창시하시고, 도미니코(1170~1221년) 성인은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수도생활이념을 추종하며 수도회를 설립하셨습니다. 초기의 수도자들은 대개 은수자였지만,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와 도미니코 수도회는 修德생활을 하면서 교회를 위해 활동봉사 하는 수도회입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수도생활과 복음선교를 이념으로 하는 수도회들이 무수히 생겨났습니다. 우리 수도회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그런 이념으로 메리놀 선교회와 메리놀 수녀회는 우리 수도회를 설립하셨습니다. 메리놀 수녀회를 설립하신 Mary Joseph Rogers 수녀님은 처음에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념을 따르려 했으나, 뜻을 바꾸어 도미니코 성인의 수도생활 이념을 받아들였습니다. 메리놀 선교회는 평양에 한국 선교 수녀회를 설립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당시의 평양 교구장이신 목 신부님이 설립하시고, 메리놀 수녀회가 모든 가르침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수도회는 메리놀 수녀회와 도미니코 수도회와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의 이념을 따르는 계열에 들게 된 것입니다.

 

선교회는 한둘이 아닙니다. 그중에서 우리 한국교회에 진출하여 우리 수도회와 유대를 맺은 선교회는, 먼저 1658년에 설립된 프랑스 파리 외방선교회가 1831년 한국교회의 교구가 설정되면서 한국에 파견되었고, 이들은 미국 메리놀 외방선교회를 한국으로 초청하여 평안도지역의 선교를 맡게 하였습니다. 다음으로는 독일 남부 Ottobeuren 성 베네딕도회의 수도자인 Andreas Amrhein 신부님이 “Intus Monachus, Foris Apostolus”(안에서는 수도사, 밖에서는 사도)라는 이념으로 1884년 오틸리엔 성 베네딕도 선교수도회를 설립했습니다. 이 선교 수도자들이 1909년 서울로 파견되었고 1927년에는 덕원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해방 후 남북이 갈라지고 공산치하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덕원의 분도회 신부님들이 우리 수도회를 영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1916년 Edward Galvin 신부님이 아일랜드 더블린에 설립한 골롬바노 외방 선교회입니다. 설립 목표는 “국경과 종족을 초월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영성은 “Peregrinari pro Christo”(그리스도를 위한 순례) “MChristi simus non nostri”(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이지 우리 것이 아니다)입니다. 이들은 88년 전, 즉 1933년 한국에 파견되어 제주도, 광주, 춘천지역에서 선교하였습니다. 그들 중에서 우리가 잊을 수 없는 분은, 춘천교구의 Thomas Quinlan 具 주교님이십니다. 그분은 춘천에 우리 수련소를 마련해주시고 學德이 높으신 朱在用(바오로) 신부님을 지도 사제로 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이곳 정릉에 수련원을 지어주셨습니다. (지금은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다시 지었지만) 역대 지도신부님들도 기억하며 감사드립시다.

 

우리는 七顯八起, 세상의 쓰라린 고비를 다 겪으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우리 수도회는 八日의 시대, 즉 주님 부활의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지금은 聖否가 감소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量的으로 質的으로 크게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質的인 성장에 더 힘써야 되겠습니다. <한마음 한뜻> “사랑의 학덕”을 더욱 뜨겁게 달구어야 합니다. 금년 들어 매일 매시간 Corona Virus, 죽음과 공포의 뉴스가 온 세상을 휩쓸고 있습니다. 우리가 묵주기도를 바칠 때 Corona가 두 번 나옵니다. 예수님이 쓰신 가시관(Corona, 고통의 신비 3단)과 예수님이 당신 어머니께 씌어 드린 영광의 冠(Corona, 영광의 신비 5단) 입니다. Corona Virus는 사람을 죽이고 서로 멀리하고 기피하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시관 Corona는 하느님의 뜻을 이루고 생명을 주는 Corona 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쓰신 가시관 Corona는 구원의 생명을 주시듯이, 우리도 자매들과 공동체를 위하여, 세상 모든 이를 위하여, 예수님이 쓰신 가시관을 쓰고 모든 이에게 생명과 영광의 Corona를 씌어주어야, 우리는 진정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을 따르는 수도자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모님의 소명을 인도해주신 성령께서는 우리 수도회를 이끄시어 저희가 부르심을 다 이루게 하여주소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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