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성모 신심과 사도직 강론 ⓵ 현존의 진리와 성모신심

32

본문

사도 8,5-8.14-17; 1베드 3,15-18; 요한 14,15-21

부활 제6주일; 2020.5.17.; 이기우 신부

⒈ 성모성월의 중반을 지내며 우리가 오늘 부활 제6주일에 들은 복음은 요한 복음사가가 전하는 예수님의 고별사입니다. 제자들에게 남기신 유언이기도 한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당장은 떠나지만 곧 다시 오시어 제자들 안에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시는 내용입니다. 이 현존의 진리는 성령을 통한 영적인 현존임을 아울러 알려주셨습니다. 성령과 당신은 성부와 마찬가지로 일체이시고, 성령께서는 당신과 마찬가지로 제자들의 보호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심오하면서도 단순한 한 마디 안에 삼위일체의 교리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이 현존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그분의 계명을 잘 지키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분의 계명이라고 할  수 있는 파스카 과업에 대한 충실함이 그분 현존의 조건인 셈입니다. 그래서 이 한 마디는 삼위일체 교리를 믿어야 할 도리에 이어서 지킬 계명의 의무를 당부하신 말씀입니다. 

⒉ 그런데 이 예수님의 현존 약속에는 성모 마리아의 두드러진 역할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나시자, 제자들은 믿음을 잃어버리고 제각기 흩어졌었습니다. 낙심하여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도 그러했고, 상심한 나머지 아예 갈릴래아 호수로 돌아가 고기를 잡던 베드로와 그 동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뿔뿔이 흩어진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몸으로 일일이 다시 찾아가서 그들이 이미 받았던 부르심을 일깨워주시고 흔들린 믿음도 붙잡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다시 믿음을 추스르게 된 그들이 어디서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던 차에 중심이 되어 주신 분이 계십니다. 바로, 그들이 다 떠나가 버린 예루살렘에 홀로 머물면서 기도로 예수님과 교감을 나누고 계시던 성모님이 그분이셨습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당신 자신에게 성령께서 내려오시기를 기도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마리아께서는 이미 예수님을 잉태하실 때부터 성령의 현존을 온 몸으로 체험하셨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서 줄곧 성령의 이끄심을 느끼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모 마리아께서는 제자들에게도 성령이 내려오시기를 기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과연 흩어졌던 제자들은 하나둘씩, 이미 굳건한 믿음으로 자신들이 돌아오도록 중심이 되어 주고 계신 성모 마리아 주변으로 모여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성령께서 내려오시자 생전에 예수님께서 예고하셨던 대로, 자신들이 그분 안에 살아 있게 되었으며, 더욱 생생한 믿음으로 부활의 은총을 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모 마리아께서는 성령과 제자들 사이를 중개하신 분이 되셨습니다. 제자들은 성모 마리아 덕분에 명실상부한 사도로 거듭 태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⒊ 사도들에게도 어머니가 되어 주신 성모 마리아께서는 사도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용기백배하게 된 사도들은 이제 유다인들은 물론 사마리아인들에게도 믿음을 나누어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성령을 받지 못했던 그들에게 안수하는 기도 행위를 통해 성령을 전달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베드로와 요한, 필리포스 등을 비롯한 사도들은 열두 명이 아니라 그 몇 배, 아니 몇십 배나 몇백 배 또는 그 이상 늘어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이끌어주신 명백하고 올바른 사도직의 토대입니다. 

 그런데 성모 마리아께서는 예수님께서 이루시는 구원 사업에 꼭 필요한 협력자로서 당신 역할을 하시면서도 드러나지 않게 수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활 동안에도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면서도 조용히 지켜보면서 수행하셨듯이, 사도들이 사도직을 수행할 때에도 그러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새롭고 낯선 도전에 부닥칠 때마다 성령과 지혜로 가득차서 새로운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성령과 사도들의 중개자가 되어 영적으로 도와주셨습니다. 그리하여 후대의 교회에서는 성모 마리아의 이런 구원 협력자 역할에 대해 신자들이 믿어야 할 교리로 네 가지로 요약하여 전수해 주었습니다. 

⒌ 첫째는, 구세주의 어머니가 될 수 있도록 원죄에 물들지 않게 잉태될 때부터 하느님께서 마리아를 각별하고도 그 품격에 맞게 보호해 주셨다는 무염시태 교리가 그것입니다. 이는 피조물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 가운데 예외적으로 놀라운 은총으로서, 이 은총을 받으신 성모 마리아께서는 당신 아들의 몸과도 같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도 세상의 죄에 물들지 않도록 하느님의 보호를 받는 은총을 누릴 수 있도록 전구해 주시는 역할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도직의 존재이유가 된 첫 번째 토대입니다. 

  둘째는, 하느님께서 성령으로 보내시어 동정의 몸으로 구세주를 잉태하게 하신 분으로서 마리아는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시고, 성자 하느님이 되신 예수님의 반열에 힘입어 하느님의 어머니로까지 칭송을 받으시는 분이시라는 구세주의 어머니 교리가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세주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를 공경하는 것은 사도직 활동을 하느님의 계시 위에 굳건하게 올려 놓는 토대가 됩니다. 

  셋째는, 예수님을 낳으신 후에도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기르셨음은 물론이고, 장성하신 후에도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는 아드님을 따라서 복음 진리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셨고, 위에도 언급한 바와 같이 믿음이 흔들렸던 제자들의 믿음을 붙잡아주어 명실상부한 사도들이 되도록 내세우는 역할까지 수행하심으로써 성령으로 예수님께서 제자들 안에 현존하실 수 있는 중개자가 되셨다는 교리가 그것입니다. 이 교리는 마리아를 첫 번째 그리스도인이요, 사도들의 어머니이시자 교회의 어머니가 되시며, 따라서 복음 진리 안에 머물게 되심으로써 결과적으로 평생 무죄하게 살아가셨음을 입증하는 교리이기도 합니다. 사도직의 목표를 제시하는 토대라 할 것입니다. 

  넷째는, 이렇게 천상의 품위로 살아가신 어머니 마리아를 예수님께서 생애를 다 마치신 후에 천상에로 들어 올려주셨으며, 모든 여인 중에서는 물론 모든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최고의 품위를 갖추신 분으로 예우하셨다는 교리가 그것입니다. 최상이 상급을 받은 심판입니다. 이것이 살아서나 죽어서나 최상의 고귀한 품위를 인정하는 뜻으로, 천상 모후의 화관을 씌워주셨다는 성모몽소승천의 교리입니다. 사도직의 가치와 품위를 보증해 주는 토대입니다. 

⒍ 마리아에 관한 이 같은 네 가지 믿을 교리는 사도들의 후계자들이 다스리는 후대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여전히 영적으로 구원의 협력자 역할을 하고 계심을 알려주는 등대와도 같은 진리입니다. 그리하여 역대 교황들은 전 세계 신자들에게 중요한 회칙과 교서 등을 반포할 때마다 그 말미에 반드시 성모 마리아의 전구에 의탁하는 기도를 바치곤 하였고, 전통적으로 가톨릭 그리스도인들도 하루를 마치고 끝기도를 바칠 때에 맨 마지막에 바치는 기도는 성모님께 의탁하는 찬가, 즉 ‘살베 레지나’였습니다.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뱃사람들에게 고마운 등대 불빛과도 같이 작용하는 이 네 가지 마리아 교리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파스카 과업을 실천하기 위해 수행하는 사도직 활동을 이끌어줍니다. 그래서도 성모 마리아에 관한 믿을 교리는 단지 희미한 관념으로 머물 것이 아니라 스스로도 명확한 진리로 인식하는 한편 다른 이들에게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이에 대해 사도 베드로도 강조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거룩히 모시십시오. 여러분이 지닌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해 두십시오.” 

⒎ 누가 저에게 사도직이 뭔지, 아직도 필요한지 물어본다면, 또는 천주교에서 왜 마리아를 공경하는지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오셔서 하느님 나라라는 이름의 새로운 문명을 시작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열두 제자를 불러 모아 사도로 양성하셨으며, 이 사도들로 하여금 말씀을 선포하게 하셨고 또한 이 말씀을 실현하기 위한 사도직도 계승하게 하셨습니다. 성모 마리아에 관한 믿을 교리들은 이 사도직 실천에 있어서 빛이 되어 줍니다.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마리아의 삶을 온 그리스도인들이 본받기 위한 이 믿을 교리들을 참고함으로써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새로운 아담이라고 비유적으로 지칭함으로써 새로이 시작된 문명의 시작이자 근거이심을 분명히 밝혔으며, 이에 비추어 그리스도의 교회는 새로운 하와로서 새로운 인류로 부르심 받았음도 역시 분명히 밝힌 바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하와로서 부르심 받은 교회에 있어서 성모 마리아께서는 그 선봉에서 교회를 이끌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 사도들에게 계명으로 남겨주신 파스카 과업이란 결국 새로운 인류로서 전 인류를 새로운 문명을 향하여 나아가도록 본을 보이는 사도직입니다. 이것이 모든 사도직 활동의 영성입니다. 

⒏ 이처럼 사도직과 이를 위한 수칙이 되어 주는 마리아 교리는 문명적인 차원에서 중차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흔히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수행하는 사도직 활동은 사회의 여러 분야들 중 하나인 종교적인 영역에 국한되고 있다고 폄하되거나, 또는 사회의 다른 생산적 활동들에 비해 부수적인 뒤치다꺼리처럼 여겨지는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만, 이는 사도직의 영성이 빈약한 탓입니다. 작고 뾰족한 피뢰침이 지상의 물체들보다 높이 솟아있기만 하면 어마어마한 번개의 전압을 견디어 내고 지중으로 안전하게 전달해 주듯이, 무릇 모든 사도직 활동은 하느님의 에너지를 세상에 전달해 주는 피뢰침과도 같습니다. 

  실상 이 마리아 교리는 물질문명을 이룩하는 데 있어서 초석이 되어 준 여러 가지 법칙 내지 발견들, 예를 들면 물리학에 있어서 뉴튼이 발견한 만유인력의 법칙이라든가, 수학에 있어서 데카르트가 창안해 내어 현대 대수학과 기하학의 기초를 쌓은 방정식과 좌표 개념과도 비견할 만한 것입니다. 또는 우리 역사에서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여 뛰어난 문자와 언어로 품격있는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탁월한 문화를 창조하게 만들어 준 업적과도 마찬가지로 비견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업적들이 오늘날 우리 문명의 초석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누구나 인식할 수 있도록 명쾌하다는 점과 실제로 올바르다는 진리성 덕분입니다. 

  그런데 현 문명의 초석이 된 이 명쾌한 진리들도 결국 물질문명을 가능케 한 진리의 조각에 지나지 않는 반면에, 말씀과 사도직 그리고 이를 위한 마리아 교리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형성시켜주고 세상을 위한 사도직을 수행하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정신문명을 성숙시킬 수 있는 진리 전체를 겨냥한 진리입니다. 그리하여 현재의 물질문명이 더 이상 마귀가 조종하는 죄악에 물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 또 현대인들이 구세주 예수님을 제대로 알고 믿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양심과 인성을 올바르게 형성함으로써 사람들이 이룩하는 문명이 하느님의 문명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게 하기 위해서 특히 필요한 진리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