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74

본문

사도 2,14ㄱ.36-41; 1베드 2,20ㄴ-25; 요한 10,1-10

부활 제4주일; 2020.5.3.; 이기우 신부

1. 부활 제4주일인 오늘은 성소 주일입니다. ‘성소’(聖召)란 거룩한 부르심이라는 뜻으로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말합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지어내신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당신을 닮아서 행복하기를 바라셔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열두 제자를 부르신 예수님께서는 이 제자들을 기초로 더 많은 사람들을 신앙인으로 부르시고 다시 그 신앙인들 가운데에서 사제와 수도자와 평신도 사도 그리고 선교사를 부르십니다. 그래서 사실상 성소는 예수님의 부르심이며 또한 단계적으로 진행됩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 의하면, 성소가 시작되고 늘어나고 퍼져나가는 과정에 있어서는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이 어떤 역할을 하든, 또 어떤 성과를 거두든 상관없이, 가장 근본적으로 그 자신들이 그 성소를 통하여 생명의 넘치는 기운을 얻어 누리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이 먼저 기쁘고 행복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는 예수님의 말씀의 뜻입니다. 부르심의 주체가 예수님이시라는 사실, 그리고 그 부르심의 과정이 단계적이라는 사실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사실은 부르심에 응답한 이들이 생명을 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인도의 안소니 드 멜로 신부가 힌두교나 불교 그리고 이슬람의 영성과 그리스도교의 영성이 함께 어우러져서 빛나는 향기를 풍길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했음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우화집에는, 어느 외딴 산 속에 있는 수도원에 사는 수도자들이 사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적은 숫자인데다가 모두들 나이가 많아서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수도원 문을 닫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 수도자들이 무슨 양로원 같은 분위기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먼 데서 예언자가 찾아와서, 이 수도자들 가운데 메시아가 숨어 계시다는 짤막한 예언을 전해준 다음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침울하고 우울한 분위기가 지배했던 이 수도원에 서서히 그러나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관심을 보이며 그 메시아가 누구일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고, 때로는 혹시 내가 그 메시아인가 하는 생각까지도 하게 되면서, 전반적으로 가라앉았던 수도원의 분위기가 놀랍게도 생기있게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일은 얼마 후에 벌어졌는데, 성소자의 발길이 끊겼던 그 수도원에 몇 십 년 만에 젊은 성소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상 안소니 드 멜로 신부는 다음에 소개해 드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자신의 스타일로 우화로 꾸며서 전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즉, 예수님께서도 무척이나 분주한 활동을 하셨고 그래서 당신을 거들어 줄 협조자들을 필요로 하셨습니다만, 그들이 많은 일을 해서 성과를 내는 것보다는 – 심지어는 성과가 아니라 실패를 한 경우조차도 - 하느님의 사람이 되어 기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을 더 중요시하셨습니다. 결국 부르시는 분은 우리가 아니라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부르심을 먼저 받은 이들이 그분의 사람이 되어야 그분의 도구가 되어 또 다른 부르심이 가능해지는 이치를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3.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사도로 양성하시는 한편 이스라엘 백성을 대상으로 하되 주로 갈릴래아 지방을 중심으로 하느님 백성을 모으시는 복음선포 활동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1단계에서 부르심을 받은 이 제자들이 어느 정도 양성된 단계에서는 갈릴래아 지방을 벗어나 전국 방방곡곡으로 열두 제자를 파견하여 당신이 하시던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게 하시어 하느님 백성을 모으시기도 하셨습니다. 마태오 복음 10장을 비롯해서 여러 복음서들이 다 보도하는 내용입니다. 

 

이 파견과 현장실습 과정에서 예순 명의 제자들이 확보되기도 하는 성과를 거두었는데, 루카 복음 10장의 기록에 따르면, 이 제2단계 부르심 과정에서 확보된 이들은 나중에 열두 제자와 더불어 모두 일흔두 명의 제자단으로서 재차 파견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1장의 기록에 따르면, 나중에 마티아 사도를 보궐선거로 뽑기 위해 전체 사도들이 모였을 때 모두 백스무 명 가량이 모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열두 명의 제자로부터 시작된 예수님의 부르심은 예순 명의 제자들을 거쳐 또 다른 예순 명의 제자들까지도 불러 모으셨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세 차례로 나뉘어 제자들을 부르신 셈입니다. 이 모든 과정이 예수님께서 주도하신 결과입니다. 

 

4. 사람들이 사회적 거리를 두기를 실천하고 있는 이즈음, 교회 안에서도 모이기를 자제하는 분위기이다보니 성소주일 행사도 대폭 축소되거나 아예 취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줄어두는 성소자 추세에 겹쳐 이러다가 아예 성소자가 더욱 줄어들지 않을까 하고 염려하는 눈길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 땅의 그 엄혹했던 박해시대에도 선교사들을 통해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같은 사제 성소자들을 부르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수도회가 없었던 그 시절에도 수도생활을 갈망하던 신자들 중에는 나이 들어서도 결혼하지 않으면 독신생활이 허용되지 않았던 사회풍조에도 불구하고 동정 부부 생활을 기꺼이 선택하는 이들도 나타났습니다. 전라도 전주의 이순이 누갈다와 유중철 요한 부부나, 경기도 양근의 조숙 베드로와 권천례 데레사 부부가 그들입니다. 그들뿐만 아니라 박해시대 교우들은 모두 다 발각되면 잡혀서 죽게 될 줄 알면서도 신앙생활을 그치지 않았고, 천주가사들을 암송해서 이웃에게 전교하기를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박해 중에서도 신자들의 수효가 늘어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전통이 한국 가톨릭 교회의 뿌리요 맥입니다. 

 

⒌ 부르심에 관한 역사를 눈여겨 살펴본 바에 따라 성찰하자면, 성소자들을 처음에 부르시는 분도 예수님이시고, 이 성소자들을 상황의 필요에 따라서 단계적으로 늘리는 일도 또한 예수님께서 주관하시는 일입니다. 성소자들이 출현하자면 신자들의 가정이 성화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혼인 성소를 깨달은 신자 부부들의 존재가 오늘날에도 성소자들을 부르시는 예수님의 부르심 제1단계에 해당되는 기본입니다. 그래야 제2단계에서 사제 성소나 수도자 성소, 평신도 사도직 성소를 포함해서 선교사 성소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런 연후에라야 이 성소자들이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가톨릭 신자들을 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과정을 주관하시는 분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이미 부르심을 받은 우리가 기쁘게 살면서 그 삶을 통한 기도로 성소자들을 보내달라고 하느님께 청하는 일만 남아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