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파스카 신비, 섬김과 나눔의 과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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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탈출 12,1-8.11-14; 1코린 11,23-26; 요한 13,1-15

주님 만찬 성목요일; 2020.4.9.; 이기우 신부

 

사순시기를 마무리하고 부활시기로 건너가는 이 성주간에 봄기운이 서서히 온 세상을 깨우고 있습니다. 사순시기가 시작될 무렵만 해도 겨울 기운이 남아 있었는데, 어느덧 겨우 내내 꼼짝없이 서 있던 동장군 나무들이 기지개를 켜면서 찬 기운을 몰아내는가 싶더니, 그 나무에서 피워내는 꽃에서 봄을 느끼는 하는 때입니다. 오늘은 성주간 안에서 파스카 성삼일을 시작하는 성목요일이고, 우리는 이 성목요일 저녁에 예수님께서 생의 마지막 순간에 준비하신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는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미사에서 들려온 말씀들은 예수님의 공생활을 정리하고 교회를 준비하는 역사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탈출기 12장의 첫째 독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 역사의 뿌리가 되어 온 파스카 사건을 어떻게 기념하는지를 알려줍니다. 당시 세계에서 최강대국이었던 이집트에서 무기 하나 없이 이집트군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고, 홍해를 가르는 기적까지 체험하면서 탈출했던 경험이 함께 빠져나온 이들이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같은 민족의식을 지닐 수 있게 하는 원천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해마다 파스카 사건이 일어난 날이 되면 이집트를 빠져나오던 그날 밤의 상황을 그대로 재현하고는 했습니다. 양이나 염소 같은 가축을 잡아서 가족이 함께 먹는 일도, 그 피는 받아서 문설주와 상인방에 발라서 죽음의 불칼을 든 천사가 지나가라는 표시를 하는 일도, 시간을 아껴 빠져나와야 했으므로 누룩을 발효시킬 시간이나 나물을 발효시킬 시간도 아껴서 누룩 없는 빵과 쓴 맛이 나는 나물을 날것으로 먹던 일도, 허리에 띠를 매고 발에는 신을 신고 손에는 지팡이를 쥐고, 서둘러 먹는 일까지 그대로 재현하였습니다. 이 파스카 사건을 기념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정체성이 오직 하느님의 해방 의지에 기원하고 있음을 거듭거듭 확인했고 그래서 이 파스카 축제는 연중행사 중에 최대의 민족축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공생활의 마지막 해에 맞이하는 파스카 축제를 제자들과 함께 조촐하지만 의미있게 보내고자 하셨습니다. 사전에 미리 약속이 되어 있는 ‘도성 안의 아무개’들의 보이지 않는 협조를 받아서 마련한 작은 방에서 그야말로 최후의 만찬을 나누셨습니다. 이 자리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사명을 제자들에게 최종적으로 부여하시는 기회여서 특별한 절차를 마련하셨는데, 그것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는 일이었습니다. 누룩 없는 빵과 쓴 나물은 그대로이지만, 허리에 띠를 매거나 지팡이를 짚고 서서 먹는 일 대신에 선택하신 특별한 세족례였습니다. 당신께서 공생활 동안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 복음의 의미를 이 발씻김 행위 하나로 보여주고자 하셨던 것 같습니다. 이 발씻김 행위, 즉 세족례는 섬김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스승인 당신께서 제자들의 발을 마치 하인처럼 씻겨 주었으니, 제자들끼리는 물론 서로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는 것이요, 함께 역사적인 파스카 과업에 참여할 하느님 백성들에게도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는 성사적 행위였습니다. 

 

요한 복음사가는 이런 뜻에서 빵과 포도주를 나누는 절차를 소개하는 것을 다 생략하면서도 이 발씻김의 성사를 거행하신 예수님의 선택을 특별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발씻김 예식에 이어 행해졌던 빵 나눔과 포도주 나눔의 예식은 사도 바오로가 코린토 전서 11장에서 전해주고 있습니다. 섬김의 생애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운명을 맞이하셨는데, 제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섬김의 십자가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에서 그분은 당신을 기억하여 이를 행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또한 새로이 소집된 하느님 백성이 나아가야 할 파스카 과업의 길에서 이 백성이 파스카의 길로 나아가도록 섬겨야 할 제자들끼리는 서로 섬겨야 한다는 수칙도 정해 주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섬김의 예식으로 그분과 제자들 사이에는 새로운 계약을 맺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며, 이 계약은 파스카 과업이 성취될 때까지 영원하리라고 못 박으셨습니다. 사실상 그분이 선포하셨던 하느님 나라의 역사적 현실이란 파스카 과업임을 분명하게 선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까지 이스라엘 백성이 걸어온 역사가 무화과나무처럼 꽃도 보이지 않고 열매도 제 때에 맺지 못하는 불임의 세월이었음을 분명히 의식하고 계셨으면서도, 모세 이래 이스라엘 백성이 매년 잊지 않고 꼬박꼬박 기념해 온 파스카 의식을 당신의 사명에 비추어 의미있게 거행하고자 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야흐로 열두 제자들로 하느님 백성의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시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는 것이지요. 그 선언으로 섬김의 깃발을 성체성사로 확실하게 드신 셈입니다. 이 섬김은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하는 상호 섬김인 것이요, 비단 열두 제자들 안에서만이 아니라 ‘도성 안의 아무개’로 지칭되던 ‘익명의 제자들’까지도 포함되는 것이었으며, 나아가서는 이 섬김의 파스카 여정에 함께 할 하느님 백성 전체에게도 해당되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이었습니다. 

 

오늘날 성체성사를 거행하는 우리 가톨릭교회의 현실을 주의깊게 살펴보면 유감스럽게도 파스카 정신을 망각한 채, 상호 섬김의 계약도 무시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성체성사의 은총인 영원한 생명의 축복을 내세에로 무책임하게 미루는 영성이 그러하고, 순명의 덕행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봉건적 잔재를 고수하는 제도와 문화가 또한 그러합니다. 하지만 파스카 과업의 목표를 잊어서도 안 되고, 상호 섬김의 계약을 망각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 자신과 가톨릭교회의 정체성, 세상에 대한 봉사의 성패가 바로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기에 가장 성서적이고 가장 가톨릭적인 은총이 가득 담긴 이 주님 만찬 미사를 통하여 주님의 제자로서의 소명을 재삼재사 확인하고 다짐하시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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