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무너지는 신화, 재발견되는 가치.

86

본문

이사 50,4-7; 필리 2,6-11; 마태 26,14-27,66 

주님 수난 성지 주일; 2020.4.5.; 이기우 신부 
 
⒈ 성주간을 시작하는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의 복음은 성삼일 전례의 흐름을 압축해서 들려주었는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보내신 마지막 일주일의 기록입니다. -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까지만 해도 파스카 축제에 모인 군중은 죽은 라자로까지 살려낸 능력으로 무언가 자신들이 바라던 정치적 역할을 은근히 기대하면서 성대하게 환영을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군중이 기대하던 그 어떠한 정치적 역할도 하실 생각도 없으셨던 예수님께서는 사두가이들이 장악하던 성전을 정화시키시거나 바리사이들과 율법 논쟁을 하시거나 군중에게 정의의 실천으로 열매맺는 사랑과 이 사랑으로 이룩하는 평화에 대해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로 가르치셨을 뿐입니다. 이로써 무장봉기라도 일어나기라도 바랐던 군중의 기대가 무너졌습니다. 이스카리옷 유다도 그 실망한 무리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 공생활 활동을 모두 마치신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이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셔서 하신 그 활동을 계승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성체성사를 세우셨습니다.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였습니다. 성체성사로 유지되는 교회는 섬김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 그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니 동산으로 가셨는데, 제자들이 잠든 가운데 홀로 하느님께 당신의 전 생애를 모두 건 기도를 하셨습니다. 공포와 번뇌에 휩싸여 피땀을 흘려가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는 처절한 시간을 겟세마니 동산에서 보내셨습니다. 광야에서 사탄에게서 유혹을 받으실 때와도 같은 영적 전투 상황이었습니다. 이곳으로 배신자 유다를 앞세우고 칼과 몽둥이를 들고 온 무리들이 한밤중에 들이닥쳐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보낸 체포조였던 이 무리들에 의해서 예수님께서 체포당하셨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한밤중에 소집된 유다 최고의회에서 아무런 증거나 제대로 된 증인도 없이 졸속으로 조작된 재판을 받으셨습니다. 사형 판결을 정해 놓고 시작된 재판이었고 율법 규정도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된 협잡의 결과였습니다. - 당시 정치범에 대한 사형집행권이 없던 유다 의회는 날이 밝자마자 로마 총독 빌라도의 관저로 그분을 끌고 갔습니다. 총독의 권세를 빌려서 그분의 사형을 집행하기 위해서 꾸민 요식 재판이었습니다. 총독 관저 앞마당에는 사두가이파와의 비밀협상으로 동원된 열혈당원들이 우연히 모여든 구경꾼으로 위장한 채 집합해 있었습니다. 그들 열혈당원들은 이미 폭력행위로 사형판결이 내려져 있던 자신들의 동료 바라빠를 구출하기 위해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과 짜고 바라빠와 예수를 맞바꾸자는 비밀협상을 관철시키기 위해 나머지 군중을 선동하고 있었습니다. 금방 폭동이라도 벌일 것 같이 사나워진 군중의 위세에 겁이 덜컥 난 빌라도 총독은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하라는 성난 외침을 핑계로 사형을 선고하고 말았습니다. 
 
 - 악인들의 소행들이 복잡하고 소란스러웠던 것과는 아주 대조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과정에서 묵묵히 침묵을 지키시며 고분고분하게 감당하셨습니다. 모진 매도 맞으신 후에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신 예수님께서는 골고타 언덕 정상에서 다른 두 죄수와 함께 못 박혀 숨지셨고 그 순간에 하늘과 땅에서 커다란 표징들이 일어났습니다. 
 
 ⒉ 이런 수난과 죽음을 이사야 예언자는 무려 5백 년 전에 예언한 바 있었습니다. 이른바 ‘고난받는 주님의 종의 노래’가 그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과 지지자들은 그분의 갑작스럽고 억울한 죽음의 충격에서 쉽사리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거의 한 세대가 흐른 다음에야 예수님의 생애와 죽음을 하느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비움과 낮춤으로 알아들을 수 있었고, 이 깨달음이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이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현세적 영광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고 나서야 예수님의 고난은 이미 이사야가 예언했던 메시아의 운명 즉 수난기약(受難旣約)이었고, 그제서야 그분을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들도 이 운명을 계승해야 한다는 신앙고백이 가능했습니다. 현세적 기대가 무너졌을 때 채워진 새로운 희망은 부활 신앙이었고 이를 가능하게 한 진리는 자기비허(自己卑虛)의 신앙고백이었던 겁니다. 
 
 ⒊ 우리는 기대가 무너지고 새롭게 재발견하는 이치를 최근의 사회현상에서도 보고 있는데, 최근 박노자 교수가 한겨레신문에 기고한 글을 간추려 소개합니다. 그는 공산 소련에서 출생했지만 한국에서 유학 중 소련이 붕괴되는 바람에 한국인으로 귀화했고 현재는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에서 한국학 강의를 하고 있는 지식인입니다. 그는 극좌노선을 걸었던 소련을 벗어났지만 좌파적 관점은 여전히 견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한국 사회를 비판하는 글에서는 진보정당의 노선은 기껏해야 중도좌파로 비추일 뿐이고, 집권여당의 노선도 보수세력으로, 건국 이래 수십 년간 집권했던 야당의 노선은 파시즘을 옹호하는 수구세력으로 비추입니다. 그래서 종종 매우 까칠한 논조로 한국 사회를 비판하던 그가 최근의 사태를 둘러싸고는 오랜만에 한국 사회를 응원하는 시각을 선보였습니다. 그는 지난 석달 동안 일어난 코로나 위기로 말미암아 한국인들의 의식을 지배해 오던 세 가지 신화가 무너졌다고 봅니다. 
 
  첫째, ‘선진국’ 신화가 무너졌다는 겁니다. 근대로의 전환이 빨랐던 유럽의 선진국들을 모방해 온 것이 여태껏 한국인들의 지배적 집단의식이었지만, 코로나 위기는 이 의식이 얼마나 허구적인지 잘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그 ‘선진국’들이 근대로 먼저 나아갔다고 해도, 신자유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공공성을 크게 약화시켜온 까닭입니다. 그 ‘선진국’들이 오히려 한국의 선진 방역 시스템을 크게 평가하면서 배우려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미국’이 세계의 모범국가라는 신화도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만 해도 미국은 위기가 닥치자 정부가 산업구조에 개입하여 비교적 능숙하게 재난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40년 동안의 신자유주의 지배 기간을 거쳐 오는 동안 미국은 이러한 능력을 거의 상실하였습니다. 제약업체와 병원 등 의료 시스템은 공공성과는 한참 거리가 먼데다가 의료보험마저 영리를 추구하는 사설기업에 맡겨놓고 있기 때문에 일반 서민들은 비싼 의료비 때문에 감염이 되어도 검사받는 것조차 엄두를 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번 사태를 거치며 세계 최초로 개발된 진단키트를 수출하는 한국에게 미국 대통령이 이를 지원해 달라는 요청을 할 정도로 한국의 위상은 국제적으로 크게 올라갔지만, 미국의 위상은 끝 모를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는 겁니다. 
 
  세 번째로 ‘시장’이 만능이라는 신화도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시장이 마스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공급할 수 없음을 우리는 여실히 보았습니다. 또 몇 년 전만 해도 기본소득을 정부가 국민들에게 지원하는 일은 ‘급진적이고 사회주의적인 주장’으로 폄하되어왔지만, 지금 자본주의의 총본산인 미국에서도 경제 공황을 막기 위해 대규모 현금지원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상당수 항공사들이 부도를 피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항공산업 국유화의 필요성을 거론하는 나라도 생겨났습니다. 코로나 위기에 이어 경제 위기가 더 심각하게 예견되고 있는 상황에서 아직 본격적 위기는 시작 단계라지만 시장의 기능만으로는 이 위기를 돌파할 수 없음이 명백해졌습니다. 시장 위주의 정책으로 잘 나가던 선진국들이 공공시스템의 부실을 떠안게 된 이상 바이러스 대유행 위기의 약한 고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⒋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시대의 징표로 해석하려는 관점에서 볼 때 대체로 수긍할 수 있는 박노자의 견해에 덧붙여 우리는 미사 없이 지낸 사순시기에 성찰한 바를 더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온 후 백여 년 간의 박해시대를 거쳐 신앙의 자유가 주어지던 개항기에 성당을 세운 때가 백여 년 전입니다. 그때 이후 성당에서는 매일 미사가 봉헌되었고, 특히 해방과 전쟁 이후 급격하게 우리 사회가 산업화되던 시기에 한국 가톨릭교회는 성당을 짓고 신자들을 늘리는 활동을 왕성하게 해 온 덕분에, 세례를 받은 신자들은 마음만 먹으면 멀지 않은 곳에 세워진 성당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주일미사는 기본이고 평일미사까지도 매일 거르지 않고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모든 교구에서 미사를 잠정적으로 중단했고, 몇 번의 재개 시도와 중단 연장을 거듭한 끝에 결국 재의 수요일 무렵부터 시작된 미사 중단 사태가 성주간과 부활대축일까지 이르렀습니다. 그 동안 신자들은 본당에서 미사를 지내지 못하는 사순시기를 보내면서 신앙생활의 중심으로 알고 본당과 미사가 지니고 있었던 효용과 가치를 새삼 고맙게 느끼게 되는 한편으로, 본당에 가서 미사를 드리지 않고서도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신앙을 살아야 하는지를 박해시대 이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이미 성사생활에 감추어 있었을 뿐 드러나지만 않았던 것으로서, 미사 중에 거행되는 성체성사를 비롯한 성사의 사회적 실천이 지니는 의미입니다. 비상사태를 방불케 하는 이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자발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서로의 힘을 합쳐 실천하는 애덕이 빛을 발하게 된 것입니다. 위기로 말미암아 재발견하게 된 이 성사적 실천의 의미는 다시 미사가 정상적으로 재개되더라도 사라지지 않고 더욱 주목해야 할 신앙의 중심가치입니다. 그러니까 교리상으로가 아니라 신자들의 의식 속에서 신앙생활의 중심이 이동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한 것입니다.  성당이라는 전례거행의 장소와 여기서 거행되는 미사는 신자들이 신앙생활의 이 중심가치를 구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고맙기는 하지만 어차피 신앙은 신자들이 살아내야 하는 만큼 이들은 신앙의 도구였음을 신자들이 확인해 가고 있습니다. 
 
 ⒌ 무너지는 신화들 속에서 재발견된 이 신앙의 중심가치는 오늘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의 말씀이 비추어주는 빛에 비추어볼 때 부활 신앙이 겨냥하는 목표에 적중하는 것입니다. 3년 동안의 공생활에서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가르치시고 그 복음 진리가 의미하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과 정의를 숱한 사람들에게 체험시켜 주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분께 걸었던 기대는 복음적 가치와는 동떨어진, 매우 현세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현세적 영광을 담은 기대는 그분의 십자가 죽음 앞에서 힘없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깨달은 진리는 자기비허의 삶을 살아가신 예수님이야말로 세상에 오신 하느님이시며 우리는 그분을 그리스도로 믿고 경배하는 가운데 우리도 그 자기비허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신앙고백을 함으로써 비로소 교회는 그분의 제자 공동체로 거듭 태어난 것입니다. 전례와 미사, 그리고 이를 거행하는 장소로서의 성당은 이 진리를 상기시켜주고 다짐하게 만드는 기회로서 필요했을 뿐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우리의 일상에서 이루어져야 할 비우고 낮추는 삶의 실천이었습니다. 이는 무너진 신화만큼은 아니지만 재발견한 가치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수난기약에 예고된 대로 자기비허의 삶이야말로 부활신앙의 고백이며 이 신앙적 가치가 살아있는 삶을 우리의 일상에서 살아가는 것, 이것이 우리의 부활로 이어지는 소중한 은총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