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유혹하던 악마는 떠나가고 천사들이 다가와 시중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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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창세 2,7-0; 3,1-7; 로마 5,12-19; 마태 4,1-11

사순 제1주일; 2020.3.1.; 이기우 신부


⒈ 전례의 지향과 시대의 징표

오늘은 사순 제1주일이자 삼일절입니다.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이 사순시기의 첫 주일에 우리가 듣는 하느님의 말씀은 태초의 인간이 원죄를 지어 하느님과의 관계가 깨졌다는 죄의 역사와 그래서 인간을 구원하시러 세상에 오신 구세주께서 악마의 유혹에 맞서 싸우시어 승리하신 구원의 역사에 대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또한 삼일절은 우리나라가 국민이 주인인 나라로의 독립을 선언한 날로서, 한 사람이 백성을 다스려온 오랜 왕정통치의 역사를 마치고 백성이 스스로 다스리겠다는 민주주의의 새로운 미래를 외쳤던 뜻깊은 날입니다. 이 독립선언은, 대한제국을 강제로 합병하여 백성을 총칼로 억누르던 일제의 엄혹한 식민통치 하에서도 평화적인 만세운동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주권재민의 민주주의를 위한 인류 역사의 거대한 실험이 이 땅에서 시작되었다는 커다란 의미가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뜻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혁명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프랑스 혁명과 미국 혁명, 러시아 혁명과 중국 혁명에서도 온전히 이룩하지 못했던 대의이기 때문입니다. 

⒉ 악마의 유혹이 뜻하는 것, 세 가지

예수님을 악마가 유혹하는 광야로 인도하신 분은 세례 때에 내려오신 성령이셨습니다. 이 사실이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얄궂게 보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왜 성령께서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로 선언되신 예수님을 악령에게로 내몰 수가 있는가? 하지만 이 또한 하느님의 계시입니다.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악과 싸워서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자유의 참된 힘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과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악령을 능히 물리칠 수 있음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기꺼이 성령의 이끄심에 순명하셨습니다. 이 과정에서 악마가 예수님을 시험한 유혹은 굶주림과 믿음과 섬김, 이 세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 유혹은 인간이 무슨 힘으로 살아갈 것인가, 두 번째 유혹은 인간이 누구를 믿을 것인가, 그리고 세 번째 유혹은 인간이 누구를 섬길 것인가를 시험하는 것이었습니다. 

 

세례 기사와 마찬가지로 유혹 기사는 그 자체로도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 대한 보도이면서 동시에 예수님의 일생을 서로 상반된 관점에서 조명하는 복선 기능을 합니다. 즉, 세례 기사는 서로 사랑하라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그분의 일생 전체가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그리고 하느님을 가장 닮은 아들로서의 삶을 보여주는 본질적 복선이고, 유혹 기사는 이 과정이 실제로 어떠한 반대와 저항 속에서 이루어져야 했는지를 보여주는 현상적 복선이라는 것입니다. 

 

⒊ 첫 번째 유혹: 인간은 무슨 힘으로 살아갈 것인가? 

이런 의미에서 악마의 세 가지 유혹을 풀이하자면 이렇습니다. 우선, 인간이 무슨 힘으로 살아갈 것인가? 악마는 사십 주야를 단식하느라고 몹시 허기지셨던 예수님께 다가와서 돌을 빵으로 만들어서라도 허기를 면하라고 유혹하였습니다. 육체를 지닌 인간은 먹어야 하기에 말씀만으로도 살아갈 수 없지만 영혼도 아울러 지닌 인간은 빵만 먹고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살아가는 힘은 하느님의 말씀과 서로 나누는 빵이며, 이 말씀과 빵을 하나로 융합시킨 것이 생명의 빵이고, 이를 일깨워주는 것이 성체성사입니다. 악마는 말씀 없이 빵으로만 살 수 있다거나 고르게 나누어 먹지 않고서도 나와 내 가족이 굶주림을 해결하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인류 역사 안에서 인간을 유혹해 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굶주리는 군중을 위해서 빵의 기적도 일으켜 배불리 그리고 골고루 먹이시기도 했지만, 최후의 만찬을 통해 성체성사도 제정하심으로써 이 ‘배불리, 골고루’ 먹어야 하는 인간의 각성을 대대로 계승하도록 당부하셨습니다. 또한 무엇을 먹을까 걱정하지 말고 먼저 하느님의 뜻대로 서로 나누면 모두가 골고루 배불리 먹을 수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이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 악마의 유혹을 거절하신 뜻입니다. 

 

⒋ 두 번째 유혹: 인간은 누구를 믿을 것인가? 

또 인간은 누구를 믿을 것인가? 악마는 예수님을 거룩한 도성의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밑으로 몸을 던져 보라고 유혹했습니다. 지금도 악마는 하느님의 능력을 시험해 보고 만일 우리의 필요와 바람을 채워주면 믿되 그렇지 못하면 믿지 말라고 유혹합니다. 하느님의 축복을 바라고 기대는 이런 기복신앙은 얼핏 보기에 자연스럽고 그럴싸해 보이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거절하셨습니다. 인류 역사 안에서 생겨난 모든 종교 현상은 인간의 이 기복신앙적 욕구와 관련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직접 당신의 뜻을 계시하신 종교는 그리스도교가 유일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는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시고 하느님이신 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병들어 아프거나 마귀들려 힘든 이들에게 직접 하느님의 권능을 행사하시면서 당신을 믿기를 요청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마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를 자율적으로 행사하면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지만 믿음도 없고 자유도 포기한 채로 하느님의 권능을 요구하는 것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그 관리를 위임하신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무책임한 처신입니다. 이것이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악마의 유혹을 거절하신 말씀의 뜻입니다. 

 

⒌ 세 번째 유혹: 인간은 누구를 섬길 것인가? 

마지막으로 인간은 누구를 섬길 것인가? 악마는 예수님께 세상의 모든 나라의 권세와 영광을 보여 주면서 악마에게 경배하면 그 모든 것을 주겠다고 유혹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오직 하느님께만 경배하고 섬겨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거절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자유는 인간 스스로 하느님을 향할 때 최고도로 그 힘을 발휘하게 되어 있습니다. 당신을 보는 것이 곧 하느님을 보는 것이라고 전권주장을 하신 예수님께서 스스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면서도, 마지막에 가서는 당신에게 주어진 십자가 고난에 대하여 하느님께 순명하셨습니다. 그것이 옳았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그분의 부활입니다. 그분이 하느님께 순명하시느라 받아들이신 십자가 고난은 골고타 언덕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었고, 삼년 내내 그분을 만나고 그분의 가르침을 듣고 그분을 믿었던 민중을 섬기는 일로도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부활을 믿고 교회를 이루었던 이들은 그 민중이었고 그 속에서 그분은 부활하여 교회를 이끄셨습니다. 이렇듯 스스로 책임을 지고 자유를 행사하되 그 자유를 하느님을 섬기기 위하여 행사하는 인간은 하느님 안에서 그리고 역사 안에서 또한 민중 안에서 부활합니다. 이것이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하고 악마의 유혹을 거절하신 말씀의 뜻입니다. 

 

⒍ 악마는 떠나가고 천사들이 다가와 시중을 들었다

세 번에 걸친 유혹에도 불구하고 실패하자 악마는 다음 기회를 노리며 떠나갔습니다. 그 다음 기회는 3년에 이르는 공생활 내내 찾아왔고, 악마의 유혹은 여러 얼굴로 바뀌어 수시로 다가왔습니다. 사두가이의 얼굴로도 찾아왔고 바리사이의 얼굴로도 다가왔으며 심지어 베드로나 유다 같은 제자의 얼굴로도 찾아왔습니다. 사두가이들에게는 성전 정화 사건으로 응수하셨고, 바리사이들에게는 물러서지 않는 논쟁으로 응수하셨습니다만, 그들 가운데에서는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돌아서지 않고 멸망당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나 유다 그리고 나머지 제자들이 당신을 버리고 도망을 갔을 때, 그리고 십자가 죽음 이후 뿔뿔이 흩어졌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기다려주시거나 용서하시거나 찾아 나섬으로써 그들이 악마의 유혹에 빠져 그 하수인이 되지 않도록 막아 주셨습니다. 결국 그 제자들은 사도가 되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던 민중과 함께 그분의 복음을 온 세상에 선포하는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악마가 떠나가고 천사들이 다가와 시중을 들었다는 말씀이 구체화된 역사적 장면입니다. 

 

⒎ 가치, 목표 그리고 3·1 정신  

예수님께서 받으신 악마의 유혹들은 하느님을 닮고자 하는 인간 존재가 겪어야 하는 투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 유혹들을 이겨내신 예수님을 따라 지난 2천 년 동안 교회 또한 버티어내야 했던 그 투쟁은 인류 문명이 나아가야 할 가치와 목표를 담고 있습니다. 빵의 유혹은 굶주리지 않을 자유와 모두가 다 함께 그 자유를 누릴 수 있는 평등의 가치를 상징합니다.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인류와 인간이 살아가야 할 힘입니다. 성전 꼭대기에서의 유혹은 하느님께 향한 믿음으로 진리와 정의를 향함으로써 이겨내야 할 가치를 상징합니다. 진리와 정의가 하느님 믿음 안에 자리하도록 할 때 인간이 존엄해지고 인류 문명이 위대해집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권세에 대한 악마의 유혹을 이겨내신 예수님은 인간의 삶과 인류의 문명이 민중을 섬기는 방향에로 나아가야 함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가치와 목표와 방향이 가로막힐 때 인류는 혁명을 통해 돌파해 왔습니다. 그리고 지난 백여 년 전 삼일만세운동으로 시작된 독립혁명은 "(조선의 독립운동은) 위대하고 비장한 동시에 명료하고, 민의를 사용하되 무력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세계 혁명사에 신기원을 열었다."고 당시 베이징대학 교수로서 신문화운동을 이끈 천두슈도 증언한 바 있습니다.

 

우리 겨레의 독립혁명은 현재진행 중입니다. 작년 삼일절 백주년 경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대로, “지난 100년 우리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  인류 모두의 평화와 자유를 꿈꾸는 나라를 향해 걸어왔습니다. 식민지와 전쟁, 가난과 독재를 극복하고  기적 같은 경제성장을 이뤄냈습니다. 4.19혁명과 부마민주항쟁,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 그리고 촛불혁명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이 각자의 힘과 방법으로  우리 모두의 민주공화국을 만들어왔습니다. 3.1독립운동의 정신이 민주주의의 위기마다 되살아났습니다.”

 

국내적으로도, 남북관계에서도, 특히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에서도, 아직 넘어야 할 고비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만, 최근 대한민국의 국운은 상승하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에서 그리고 전 세계의 많은 나라들에서 한국인들이 이룩한 성취를 부러운 눈으로 지켜보면서 응원해 주고 있습니다. 한일, 한중, 한미 등 정부 간 관계에 있어서는 적지 않은 숙제들이 남아 있지만 이웃 나라 중국과 일본의 국민들은 물론 미국의 국민들도 내심 이 성취를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북녘 동포들도 남녘 땅의 사정에 대해서 듣고 아는 대로 따뜻한 관심으로 지켜보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국운 상승에 힘입어서 또한 주변의 응원과 관심에 감사하면서, 우리는 멈추지 말고 더 나아가야 합니다. 자유와 평등, 진리와 정의, 그리고 민중을 섬기는 민주주의의 역사를 향하여 나아가야 할 원동력은 여전히 3.1독립운동의 정신입니다. 통일한국이 이룩할 새로운 미래를 향하여 높이 들어야 할 깃발도 여전히 3.1독립운동의 정신입니다. 

 

⒏ 가톨릭교회와 신앙인들의 과제

가톨릭 신앙인인 우리는 백여 년 전 독립만세를 외쳤던 선조들이 바랐던 꿈과 함께, 이백여 년 전 우리 신앙선조들이 바랐던 꿈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민족의 복음화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우리 교회와 신자들이 자유와 평등, 진리와 정의 그리고 민중을 섬기는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길에 앞장서야 합니다. 백여 년 전 삼일독립혁명의 대열에 뒤처졌던 바를 보속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앞장서야 합니다. 이 길에, 천사들이 다가와 시중을 드는 미래가 기다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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