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하느님의 선택, 인간의 봉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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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말라 3,1-4; 히브 2,14-18; 루카 2,22-40

주님 봉헌 축일; 2020.2.2.(일); 이기우 신부

⒈ 오늘은 주님 봉헌 축일입니다. 성탄 후 40일이 되는 이 날, 교회는 주님의 성탄과 공현을 마감하면서 성모 마리아께서 모세의 율법대로 정결례를 치르시고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하느님께 봉헌하신 일을 기억합니다. 또한 요한 바오로 2세의 의향대로, 교회는 이 날에 주님께 삶을 봉헌한 수도자들을 함께 기억하는 축성 생활의 날로 지냅니다.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바를 깨달은 인간이 그 깨달음에 따라 믿음을 지니게 되어 삶을 다시 하느님께 바쳐드리는 봉헌이 오늘의 주제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선택하시고 인간은 봉헌합니다. 하느님의 선택을 알아보고 깨닫는 일도 중요하고, 이 깨달음에 따라 믿음을 간직하는 일도 중요하며, 이 믿음에 따라 하느님께 그분의 것으로 돌려드리는 봉헌의 윤리 또한 중요합니다. 종교가 일깨워주는 인생과 문명의 기본 질서가 여기에 있습니다. 

 

⒉ 아기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후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서는 마태오와 루카, 두 복음사가가 기록으로 남겨주었는데, 관점에 따라 두 기록의 강조점이 다릅니다. 마태오는 동방 박사들이 예물을 들고 찾아와서 경배를 드린 일에 주목하면서도 동방 박사들의 통해 메시아가 탄생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된 헤로데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아기들을 모조리 학살해 버렸다는 사실도 아울러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마태오의 보도는 세상에 오시는 메시아께서 이룩하실 구원이 동방에까지 알려져 있어서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만민에게 보편적으로 실현될 것임을 알려주는 한편, 정작 메시아를 기다려 오던 유다인들로부터는 배척을 받는 이율배반적인 운명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⒊ 그런데 이에 비해 루카는 아기 예수님께서 탄생하신지 여드레째 되는 날에는 할례를 베풀고 이름을 ‘예수’라고 지어주었다는 사실과, 사십 일째 되는 날에는 산모의 정결례와 아기의 봉헌예식을 지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이 모든 예식들, 즉 할례예식과 정결예식, 봉헌예식이 모두 예루살렘 성전에서 이루어졌음을 전함으로써 요셉과 마리아 부부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알아보지 못하고 배척한 헤로데나 주류 유다인들과는 달리 정통 이스라엘의 율법 질서대로 믿음을 증거하였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⒋ 레위기 12,1-8에 따르면, 아기를 낳은 산모는 사십 일이 지나면 정결례를 통해 부정을 씻고 깨끗해질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사실은 위생적인 이유 때문에라도 출산 후 아기와 산모는 사십 일 동안 외부의 감염원으로부터 각별한 보호를 받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또한 탈출기 13,2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은 맏아들과 짐승의 맏배를 하느님께 봉헌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는데 이때 바칠 예물은 일년 생 어린 양 한 마리로 되어 있으나 요셉과 마리아 부부의 경우처럼 가난해서 그럴 형편이 되지 못하면 봉헌과 정결예식의 예물로 비둘기 두 마리만 바칠 수도 있도록 레위기 12,8에 예외규정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⒌ 이러한 루카의 보도가 의미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즉, 세상에 오신 메시아께서 아주 가난하게 오셨다는 것과 그 부모는 가난했지만 이스라엘의 율법에 따라 정해진 모든 규정을 철저하게 준수했음을 알리려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처음 맺은 계약이 시나이 계약인데, 이에 따르면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고 약속하신 하느님께서 세상에 오실 때에도 당신 백성으로 삼으신 이스라엘의 법을 준수하셨다는 것이고, 이는 하느님께서도 세상의 질서, 특히 종교 질서를 존중하셨음을 알려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루카가 복음서를 쓰면서 이방 민족들의 복음화를 염두에 두었음을 감안하면, 이런 의도는 이방 민족들도 이제는 우상을 숭배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섬기기 위한 종교 질서를 존중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음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또한 세상에 오신 하느님이신 메시아를 다시 하느님께 봉헌하면서 가난한 예물을 바쳤다는 보도를 통해서는 이방인들에게 보편적으로 선포될 구원의 복음이 가난한 이들을 기준으로 선포될 것임을 암시하는 한편, 가난한 이들도 하느님을 향한 봉헌을 떳떳하게 할 수 있고 또 해야 할 것임도 암시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느님과 가난한 이들이 만날 때 복음화가 이루어집니다. 

 

⒍ 산모가 정결함을 확인받고 태어난 아기를 봉헌하는 자리에서 뜻밖의 일도 있었습니다. 비록 가난하여 초라한 예물을 봉헌했지만 하느님의 법을 철저하게 준수하던 요셉과 마리아가 뜻밖에도 자신들과 아기를 환대하는 인물들을 만난 것입니다. 마태오가 보도했던 바 동방 박사들에 비견되는 메시아 경배자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노예언자 시메온과 한나였습니다. 시메온은 “의롭고 독실하여 성령께서 머물러 계시던”(2,25) 이였고, 한나는 “여든네 살이 되도록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겨온”(2,37) 이였습니다. 

시메온은 메시아를 보내주신 하느님을 찬미하면서도 메시아를 통해 실현될 두 가지 예언을 밝혀 주었습니다. 즉, 메시아를 통해 이룩될 구원이 모든 민족들에게 계시의 빛이 되고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이 될 것임을 예언하는 내용과 함께, 정작 메시아는 이스라엘 안에서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될 운명이며 이로 인해 어머니 마리아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고통을 겪을 것임을 예언한 것입니다. 

 

⒎ 바빌론 유배 후 예루살렘에서 활약했던 말라키 예언자 이후 이스라엘 역사에는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기까지 이렇다 할 만한 예언자가 나타나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노년에 이르기까지 의롭고 독실한 생활로 메시아를 기다려 옴으로써 예언자로 인정받았던 시메온이 드디어 아기 예수님을 봉헌하러 온 요셉과 마리아 부부를 만나서 환희에 찬 찬미의 노래를 부른 것입니다. 그의 찬미가에는 마리아의 노래와 즈카르야의 노래에 담긴 이스라엘 백성의 희망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시메온은 메시아께서 이스라엘 백성 안에 오심으로써 이 백성이 구원받을 것을 예언자의 눈으로 내다본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제야 평화로이 떠나게”(2,29) 되었음을 감사하며 하느님께 찬미를 드렸습니다. 이 구원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로부터 해방될 수 있게 되었음은 물론 궁극적으로 만민이 해방되는 복음이 시작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메시아께서 전하실 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이스라엘에게는 영광”(2,32)이라는 찬미를 드린 것이지요. 

 

⒏ 비록 이스라엘 백성 대다수로부터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될 운명이라고 해도, 원숙한 지혜와 깊은 신앙심을 지닌 예언자들이 아기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아보고 하느님께 찬미를 드렸다는 사실은 백성 대다수의 배척보다도 더 귀한 역사적 가치가 있습니다. 아브라함 이래 하느님을 섬겨왔고 메시아를 기다려 온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부른 ‘시메온의 노래’는 '마리아의 노래', '즈카르야의 노래'와 함께 '복음찬가'에 속합니다. 즈카르야의 노래가 성무일도의 아침 찬미가에, 마리아의 노래가 저녁 찬미가에 들어온 것처럼, 시메온의 노래 역시 끝기도에서 불려지고 있습니다. 이는 시메온이 노년에 이르기까지 오래도록 기다리다가 당신 백성을 찾아오신 메시아를 맞이하고서 기쁨과 감사의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음을 찬미하듯이, 평화와 감사의 마음으로 하루를 마감하고 언젠가 다가올 거룩한 죽음을 맞이할 준비로서 밤을 편히 쉬고자 하는 지향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⒐ 아기 예수님의 봉헌예식에 담긴 지향과 절차와 축복 모두가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모든 수도자들의 기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봉헌을 기준삼아 바치는 수도자들의 봉헌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께 바쳐드려야 할 봉헌의 모범입니다. 그리고 수도자들의 모범을 본받아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께 드리는 봉헌의 삶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빛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봉헌의 종교 질서는 인생과 문명 그리고 역사의 뿌리를 되찾는 일입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께로부터 왔고 그분의 자비와 선택으로 존재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분께 봉헌한다는 것은 본래의 질서대로 존재하게끔 제 자리를 잡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⒑ 그런데도 마치 우리네 삶과 우리가 가진 것들이 원래부터 존재하고 있었다거나 우리가 소유했던 것이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부당하고 부질없으며 가당치 않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시메온이 메시아로서 오신 아기 예수님을 만나뵈올 수 있었음에 감격해서 그분이 메시아로서 온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실 역할을 축복하면서도, 더불어 그로 인해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어 겪으셔야 할 아픔도 마땅히 내다본 것입니다. 메시아는 온 세상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구원을 알리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께로부터 왔음을 알리셔야 했고, 또 하느님께 자신들의 삶을 바쳐서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가르치고 회개시켜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파스카 과업입니다. 

 

⒒ 그리고 메시아의 이 파스카 사명은 고스란히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특히 하느님께 봉헌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수도자들의 소명이기도 한 것이어서, 수도생활의 고유한 사명 속에는 이렇게 하느님께 봉헌되고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진복팔단의 삶을 세상 사람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증거해야 하는 역할이 필수적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는 세상 역사와 인류 문명이 성취해야 할 모습을 미리 앞당겨 보여주는 역할입니다. 이러한 뜻이 오늘 주님 봉헌 축일에 우리에게 계시된 진리입니다. 

 

⒓ 개념을 정의하자면,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자유로이 당신을 찾기를 바라시는 분입니다. 이를 자비라 하지요. 인간의 자유가 최대한 존중되면서도 한껏 고양된 상태를 봉헌이라 합니다. 이러한 개념 정의를 바탕으로 나타나는 진리가 바로, 하느님께서는 선택하시고 인간은 봉헌한다는 공리입니다. 그리고 이 공리로부터 파생되는 공리가 있으니, 그것은 자유와 기쁨 그리고 의미에 관한 것입니다. 하느님께로부터 존중받는 인간의 자유가 하느님께 봉헌되는 방향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발산되는 에너지가 기쁨이고, 그 결과가 의미입니다. 인간은 자유와 기쁨, 그리고 의미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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