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가정을 작은 천국으로 만드시라.

65

본문

가정을 작은 천국으로 만드시라

 

집회 3,2-6.12-14; 콜로 3,12-21; 마태 2,13-15.19-23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2019.12.29.; 이기우 신부

 

⒈ 우리네 가정의 자리는 어디인가

오늘은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입니다. 나자렛 성가정을 기억하며 이를 본받고자 노력하는 축일입니다. 그리고 이번 주 한 주간은 ‘가정 성화 주간’으로 지냅니다. 또한 이 주간에 해가 바뀝니다. 시간의 기준이나 흐름이 아니라 구획이 바뀝니다. 흘러간 시간이나 흘러오는 시간은 모두 단 한 번만 주어지는 귀한 기회여서 그 안에 담겨 있는 의미를 꼭 챙기게 됩니다. 마무리해야 하는 2019년에 감사할 일도, 반성해야 할 일도 있고, 다가오는 2020년에 희망차게 계획하는 일들도 있는가 하면 설렘으로 다짐하는 일들도 있을 터입니다. 이 감사와 반성, 희망과 다짐의 기준이 자연스레 우리네 가정이라는 사실을 상기합니다. 사람 누구나 가정에서 태어나고 가정에서 성장하며 가정에서 생을 마칩니다. 가정은 우리 모두의 삶이 영위되는 자리이자 그 삶이 이루어지는 현실이며 또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행복의 낙원이 이루어져야 할 작은 천국입니다. 

 

  그런데 사람들 모두의 삶이 영위되는 자리인 가정의 현실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입니다. 대체로는 가족들의 보금자리를 꾸미며 행복하게 살아가려 하지만, 위기를 겪고 있는 가정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 위기의 본질은 경제적인 것들로부터 시작해서 가족이 해체되어 버린 사회적이고 정신적인 것들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은 이러한 위기의 가정들을 의식하고 연대하며 돌보는 이웃 사랑을 통해서 성화되어 갈 수 있습니다. 가정에 있어서도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빛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그러한 가정들의 연합 공동체입니다. 교회를 구성하는 성직자, 수도자들도 다 평신도들의 가정에서 태어나서 신앙을 배우고 자라나며 성소를 키웁니다. 성직자와 수도자가 파견되어 일하는 모든 사도직의 현장, 즉 본당이나 교구 또는 여러 사도직 소임이 이루어지는 공동체에서도 그 중심은 신자들의 가정입니다. 모든 사목 목표가 신자들 가정의 성화에로 수렴됩니다. 그래서  신자들의 가정은 교회의 뿌리이자 기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토양이 비옥해야 뿌리가 잘 내리고 양분을 흡수하여 싹도 트일 수 있고 줄기도 튼튼하게 자라날 수 있으며 꽃도 열매도 풍성하게 맺을 수 있는 것처럼, 교회의 뿌리이자 기반인 신자 가정이 하느님께 굳건하게 뿌리내리고 있을 때 교회는 물론 우리 사회도 아름답고 건강할 수 있습니다. 

⒉ 나자렛 성가정의 모습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의 기준은 나자렛 성가정입니다. 우리는 이 기준 가정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사람들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로서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모시고 살게 될 천상 가정의 목표를 바라봅니다. 나자렛 성가정을 기준을 중심으로 하고 천상 가정이라는 목표를 향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또는 만들고자 하는 인연이 작용하여 가정이 천국으로 가꾸어지기도 하고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본시 인연(因緣)이란 말은 원인을 의미하는 불교 용어입니다. 동아시아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인생관과 세계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불교적 가치관이 담긴 핵심 용어 중의 하나입니다. 모든 인간관계를 포괄적으로 규정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나누어보자면, 인연의 인(因)은 결과를 낳게 된 직접적이고 내적인 원인을 의미하고, 인연의 연(緣)은 인을 돕는 간접적이고 외적인 원인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씨앗은 나무의 직접적인 인(因)이라고 할 수 있고, 햇빛이나 공기, 수분이나 온도 등은 나무의 간접적인 연(緣)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씨앗이 있어야 나무의 생명이 시작될 수 있지만 햇빛이나 공기, 수분이나 온도 등이 적당해야 그 나무라는 생명이 자라날 수 있어서 이 모두가 다 나무 생명의 원인인 이치와 같습니다.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기 마련이고 또 그 원인도 직접적이고 내적인 원인이 작동해야 시작될 수 있지만 간접적이고 외적인 원인이 도와주어야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인과 연을 다 합쳐서 원인의 뜻, 특히 인간관계를 두고 만남의 원인의 뜻으로 인연이라는 말을 일반적으로 사용합니다. 동아시아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이 인연은 인간관계에 관한 가치관을 대변하는 하나의 창이었습니다. 

 

  사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연에 관한 격언이 많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맹자는 “가는 사람 붙잡지 말고 오는 사람 막지 마라”는 말을 남겼고, 세종대왕도 “남에게 너그럽게 대하면 마음을 얻고 엄하게 대하면 노여움을 산다”는 말을 남겼으며, 볼테르는 “분배되지 않는 이익은 오래 가지 못하니 남의 이익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했으며, 니체도 “사람의 가치는 인간관계로만 평가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공자는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행하지 마라”고 했는가 하면, 대길상경(大吉祥經)이라는 불경에는 “어리석은 자와 가까이 하지 말고 슬기로운 자와 친하게 지내라. 존경할 만한 자를 섬기는 것이 인생 최상의 행복이다”라는 말이 적혀 있습니다. 수필가 피천득은 ‘인연’이라는 제목의 수필에서 “어리석은 자는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고 써서 읽던 사람들이 밑줄을 긋게 했지요. 일생 ‘혼불’이라는 단 한 권의 장편 대하소설을 남긴 최명희 작가는, “인연이 그런 것이지라. 억지로는 안되야. 아무리 애가 타도 앞당겨 끄집어 올 수 없고, 아무리 서둘러도 또 다른 데로 가려해도 달아날 수 없고... 지금 너에게로도 누군가 먼 길을 오고 있을 것이다. 와서는 다리 아프다 주저앉겠지. 물 한 모금 달라고...”하는 사색을 남겼습니다. 정목 스님은 인연이라는 가치관의 본가 사람답게 명언을 남겼습니다. “인연은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옵니다. 헤어짐 또한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헤어집니다. 인연이 다했기 때문입니다. 바람이 불면 촛불은 꺼지지만 내면에 있는 어떤 것은 바람이 불어도 꺼지지 않습니다. 좋은 인연은 내 안에 있는 빛과 같습니다. 바람이 불어도 꺼지지 않는 빛과 같은 인연, 여름밤 하늘을 수놓은 무공해의 반딧불이처럼 좋은 인연은 내 안에서 빛을 밝힙니다”(문집 ‘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 이런 뜻과 사연을 담은 노래가 있습니다. 요즘 뜨고 있는 노래로는 국민가수 이선희가 부른 ‘인연’이라는 노래가 있고, 한때 국민애창곡이었던 국민가수 노사연이 부른 ‘만남’이라는 노래도 아주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인연 중에 가장 오래가는 것이 부부의 인연이고, 그 사이에서 자녀가 태어나 부모자식간의 인연이 맺어지면 세대를 넘겨 남습니다. 그래서 부부의 인연을 맺는 일을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 하고, 부모자식간의 인연은 천륜(天倫)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요셉과 마리아 부부의 인연은 약혼을 할 때까지는 여느 부부의 인연과 같았지만 천사가 구세주의 잉태를 알리고 나서는 천륜으로 바뀌었습니다. 요셉은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마리아와 예수를 돌보는 일을 죽는 날까지 철저하게 해 냈고, 마리아는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요셉과 함께 예수에게 조상들의 신앙을 전수시키는 데 역시 철저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덕택에 난지 여드레만에 하느님께 봉헌되는 자리에서 노예언자 시메온과 안나의 축복어린 기도를 받기도 했지만 공생활을 시작하여 집을 나서던 출가의 시점까지 철두철미한 유다인이요, 정체성 분명한 하느님 백성의 일원으로서 자라나실 수 있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 부부가 평생 동정을 지키고자 결심하고 또 실제로 이를 지킬 수 있었던 일도 오로지 예수님을 잘 키우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아이인 만큼 그에 맞갖은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했겠지요. 오직 하느님께 대한 신앙이 나자렛 가정을 있게 한 힘이요 기운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가정은 성가정이라고 불립니다. 모든 가정의 기준입니다. 인연도 이런 인연이 없습니다. 보통 사람들에게 인연은 운명과 비슷하게 받아들여지는데 요셉과 마리아 부부에게는 주어진 인연이 운명을 넘어 신앙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네 가정의 부부들이 요셉과 마리아 부부처럼 인연을 신앙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면,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을 예수님처럼 정성을 기울여 하느님의 사람으로 키워내려고 한다면 그 가정들은 나자렛 성가정처럼 성가정이 될 것입니다. 천생연분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뜻과 마음으로 만들어내고 가꾸어 나가는 것이 아닐런지요? 

 

⒊ 가정을 작은 천국이 되게 하시라

우리는 이렇게 성화된 가정의 모습에서 천국을 봅니다. 복음의 본질이 사랑을 주는 데 있다고 할진대, 가정이야말로 특히 주어진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가정이야말로 주는 사랑을 체험할 수 있는 낙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뿐만이 아니지요. 주는 것만으로도 벅찬 사랑을 기쁘게 희생하며 주었는데, 그 사랑이 메아리로 돌아오고 이 과정을 통해서 서로를 귀한 인연으로 알아보는 기적이 가정에서 일어납니다. 복음의 본질입니다. 이런 게 진짜 운명이라고 부를 만하지 않겠습니까? 운명은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숙명과 다릅니다. 이를 넘어서기 때문입니다. 운명은 능동적으로 개척해 나가는 신천지요, 새로운 나라이며, 새로운 세상을 뜻하는 열쇳말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천생연분을 만들고 운명을 개척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의 본질을 체험하실 수 있고 현실을 기적으로 바꾸는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데 가정에서 부부로나 부모자식으로 주어진 인연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소홀히 하면 가정은 천국이 되는 대신에 지옥으로 변합니다. 그래서 세상 어느 인연보다도 더 상처를 심하게 주고 받게 되고 아픔으로 남으며 세상을 보는 눈까지도 험하게 바뀌어 버립니다. 가정에서 사랑을 받아 보지 못한 사람들이 세상에서 죄를 저지릅니다. 그래서 악인이 되고 죄인들을 양산하고 세상도 지옥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정에서 작은 작은 천국을 마련하시라는 권고를 드립니다. 나자렛 성가정을 기준으로 말씀드리자면, 우리네 가정은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중에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인연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소중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네 가정만 위해서는 결코 천국이 될 수 없고, 행복해야 할 가정을 누리지 못하고 지옥과도 같은 고통을 맛보아야 하는 불행한 가정들에게로 자신들의 사랑을 나누어주어야만 우리는 큰 천국에 받아들여지는 상급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가족이기주의에 매몰되지 말고 결손가정, 이혼가정, 한부모가정, 조손가정 등 어려움을 안고 있는 가정들에게로 따스한 도움의 손길을 먼저 내밀 줄 아는 가정이 되십시오. 가정 성화의 길이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고 또 뻔한 지청구를 늘어놓겠지만, 여러분은 자신들의 가정에서 주어진 일들 가운데 반드시 하느님께 감사해야 할 일들을 기억하시고, 또 아쉬웠던 일들이나 모자랐던 일들을 겸허하게 반성하시며 연말연시를 가족들과 함께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다가오는 새 해에 희망찬 마음으로 계획하는 일들도 있을 테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일들도 있겠으나, 그 어느 일들보다도 가정을 작은 천국으로 만드는 일에 최우선순위를 두시기 바랍니다. 하느님을 우리네 가정에 모시면 날마다 기적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