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고뇌하는 신앙인이자 빛나는 조역인 요셉의 믿음

51

본문

                                                 고뇌하는 신앙인이자 빛나는 조역인 요셉의 믿음
                                                       - 예수 잉태를 둘러싼 옴니버스 이야기

                                                                                                                                  이사 7,10-14; 로마 1,1-7; 마태 1,18-24
                                                                                                                                  대림 제4주일; 2019.12.22.; 이기우 신부

⒈ 오늘은 주님의 성탄을 바로 앞두고 맞이하는 대림 제4주일입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오시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세상 모든 사람이 남녀의 결합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는데, 유독 그분만은 성령으로 그 생명이 잉태되셨기 때문에, 당사자인 마리아는 물론이고 약혼자인 요셉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⒉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했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아기를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마리아는 구세주의 잉태를 알리는 천사의 방문을 받은 직후 나자렛 집을 떠나 유다 산악지방에 있던 엘리사벳을 방문했고 거기서 석 달 가량 머물렀으므로, 요셉이 마리아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마리아가 임신 후 석 달 이후였을 것입니다. 더 이상 감출 수 없을 정도로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는 시점이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마리아는 약혼자인 요셉은 물론 어머니 안나나 아버지 요아킴이나, 다른 그 어느 누구에게도 임신의 진실을 털어놓기가 어려웠습니다. 털어놓아봤자 믿어주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겠지요. 단지 마리아로서는 일단 이 임신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고 하느님께서 시작하신 일인 이상, 하느님께서 알아서 처리하시겠지 하는 배짱으로 버티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결코 쉽지 않았을 마리아의 믿음이 돋보입니다.

⒊ 한편 요아킴과 안나로서는 혼인한 이후 줄곧 자식이 없다가 늘그막에 기도해서 얻은 귀한 딸이었고, 그 마리아를 아주 어릴 적에 하느님께 봉헌하기도 했었으므로 다윗 가문의 요셉과 약혼시킬 때까지만 해도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가문의 며느리가 되어 하느님의 사람이 될 아이를 낳아 기를 것이라고만 기대를 했었을 터입니다. 당연하고 또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만큼 마리아의 부모는 그녀를 믿었습니다. 그러다가 덜컥 마리아가 아이 아버지가 누군인지도 모르는 아기를 임신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을 때 그 부모의 심정은 짐작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충격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성경에 이 당시 요아킴과 안나의 반응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습니다. 하지만 부모의 충격은 물론 실망과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석 달 가량 친척 엘리사벳을 방문하고 돌아온 마리아의 표정이나 행동거지에서는 조금도 흐트러진 구석을 발견할 수 없었던데다가, 아마도 엘리사벳으로부터 보내왔을 법한 전갈 또한 범상치 않았기에 그 부모는 이런 상황에서도 마리아를 믿었습니다. 아니,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무조건 마리아를 믿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⒋ 또 다른 한편으로 마을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요? 나자렛은 작은 마을입니다. 누구 집에 그릇이 몇 개 있다더라 할 정도로 서로의 사정을 잘 알고 지내는 마을 공동체에서 마리아의 성장과정을 익히 보아 잘 알고 있던 마을 사람들도 약혼까지 하고 정식혼인도 하기 전에 아기를 임신했다는 소식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리아의 성품은 물론 요셉의 성품도 잘 알던 마을 사람들은 쉬쉬 하며 소문만 내고 있었을 뿐 아무도 함부로 나서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⒌ 제일 중요하고 가장 난처한 입장에 빠진 사람이 요셉입니다. 누구보다도 마리아를 사랑했고 또 믿었던 요셉이지만, 약혼 후에 엘리사벳 집에 석 달 가량 머물고 나서 나자렛에 돌아온 마리아가 아기를 임신 중이라는 사실은 말을 들어보지 않고 모습만 보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요셉의 고민이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아직 마을 사람들과 회당장 랍비가 문제를 삼기 전에 어떤 결정을 해야 했습니다. 이미 소문은 마을 안에 다 퍼졌을지도 모르는 판인데, 회당장 랍비와 마을 사람들은 자신만 쳐다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던 그 무렵에, 요셉은 도저히 마리아를 고발할 수가 없었습니다. 만일 고발하게 되면 마리아는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하는 형벌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튼 마리아의 뱃속에 생긴 아기는 자신의 아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도 없었으므로, 요셉은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고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작정했습니다. 남의 아기를 받아들일 수도 없고 차마 돌에 맞아 죽게 할 수도 없었던 요셉이 보인 의로움이었습니다. 그날 잠든 요셉의 꿈에 천사가 찾아왔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들으신 대로, 천사는 요셉에게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했다는 놀라운 사정을 알려주었습니다. 이로써 배신의 아픔을 벗어날 수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덜컥 믿기도 어려운 처지인데도 꿈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저 없이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워낙 다져온 믿음으로 겨우 버티고는 있었겠지만 아마도 십중팔구 자신을 심히 불안한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을 마리아를 안심시켰을 것이고, 이후 일생동안 마리아의 충직한 보호자가 되어 주었습니다. 마리아에 못지않은 요셉의 믿음이 돋보이는 대목입니다. 하느님께 대해서 그들이 보인 믿음도 놀랍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도 그에 못지않게 놀랍습니다.

⒍ 요셉의 선택은 여기서 끝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천사의 전갈로 마리아의 임신에 대한 의혹은 해소되었지만 고뇌어린 심정으로 결정해야 할 것은 더 있었습니다. 장차 태어날 아들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이시라면, 그 다음 메시아의 동생으로 여겨질 아이를 자신이 마리아와의 사이에서 낳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생겨났을 것입니다. 여느 부부라면 당연히 기대하기 마련인 자식 문제를 요셉은 심사숙고한 끝에 평생 부부생활을 포기하기로 결정한 때가 이 꿈 이후였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엄청난 사랑과 총애를 마리아가 받고 있음이 분명해진 이상 여느 여인들처럼 대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평생 동정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을 위해서 부부는 모든 것을 다 바쳐 희생하기로 결심하게 만든 것은 바로 이 아기가 성령으로 말미암은 생명이요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메시아이시라는 천사의 전갈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의 언어보다 무겁기 짝이 없는 하느님의 말씀이었기 때문에 요셉은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자는 결정과 함께 그 아기를 위한 이 모든 희생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을 것입니다. 의로움을 넘어 요셉이 지닌 믿음의 경지가 얼마나 높은지를 새삼 경탄하게 되는 대목입니다.

⒎ 이 꿈은 마리아의 임신에 대한 고뇌를 해소시켜준 반면 평생 동정을 결심하게 만든 또 다른 고뇌를 낳은 꿈이기도 했지만, 요셉과 마리아가 평생 동정으로 살면서 오로지 예수님만을 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성령의 이끄심을 받게 된 거룩한 시작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평생 동정이란 당사자들의 결심과 노력이 당연히 요구되지만 이것만으로 간단히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젊은 부부가 오직 예수님 때문에 평생 부부 간의 성생활을 포기하고 완덕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것은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인간 세상에서 기적입니다. 성령의 압도적인 기운이 요셉과 마리아, 이 두 사람의 삶을 이끌지 않고서는 도무지 평생 동정이라는 완덕의 삶을 살아내기가 어려웠을 터이니까 말입니다.

⒏ 이러한 요셉과 마리아를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의 반응은 엇갈렸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예수님이 성장하던 시절에, 그분은 ‘요셉의 아들’(마태 3,23)로 불리기도 하고 ‘마리아의 아들’(마르 6,3)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 경우 마리아의 아들로 부른다는 것은 예수님을 사생아로 본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마리아와 예수님을 바라보는 그네들의 시선이 얼마나 차갑고 따가웠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면, 만삭의 몸으로 찾아간 베들레헴에서 마리아가 해산할 방을 고향 사람들 어느 누구도 내어주지 않았던 싸늘한 반응도 그래서였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마리아와 예수님께서는 차마 입을 열어 자초지종을 말할 수도 없었던 이런 출생의 비밀과 진실에 대해서 그저 하느님의 안배하심만을 믿고 의탁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래서 진실을 침묵 속에 묻어버리고 비슷하게 소외당하는 억울한 이들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이해하실 수 있으셨을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요셉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예수님께서도 공생활을 하러 출가하시고 난 후 마리아는 친척 형제들의 집에 머물면서 그들의 봉양을 받아야 했는데, 예수님의 행적에 대해 그 친척 형제들이 보여준 떨떠름한 태도와 미심적은 행동들 역시 그분의 이와 같은 출생 비밀과 관련이 있었을 듯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친척 형제들 중에서는 예외적으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만 그분을 따랐을 뿐입니다.

⒐ 하느님께서는 요셉의 숨은 생각을 다 들여다보고 계셨다는 사실이 요셉의 꿈에서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천사를 보내시어 개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잉태되시고 출생되실 무렵에 일어났던 일들과 관련하여, 이러한 하느님의 개입에 대해서는 오직 당사자인 마리아의 입에서만 나올 수밖에 없는 일들입니다. 마태오와 루카 등 예수님의 탄생을 기록하고 있는 복음사가들도 마리아에게서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사가를 통해 예수님의 잉태와 탄생에 관련된 이런 비밀스런 신비를 전해 듣게 된 초대 교회 신자들과 교부들은 이미 이사야 예언자가 메시아의 징표에 대하여 예언한 바가 있음을 떠올렸을 것이고 그래서 오늘 제1독서에 올라와 있습니다. “주님께서 몸소 표징을 주시리니,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⒑ 그러므로 성탄을 코앞에 둔 지금, 우리는 요셉이 이 사건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고뇌와 내릴 수 있었던 결정과정을 짚어보면서 강생의 신비가 나타나기 위해서 요셉이 감당해야 했던 고뇌와 결정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네 삶의 역사에 개입하시는 데 있어서도 이에 버금가는 고뇌와 결정이 요구되리라는 점입니다. 만만치 않은 고뇌를 치열하게 요구하고 책임이 뒤따르는 결정을 해야 하는, 그러나 천사의 도움과 성령의 이끄심을 아울러 받을 수도 있는 과정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래서 강생 사건을 바라보는 여러 관련자들의 믿음을 요셉의 믿음에 초점에 맞추어 옴니버스 형식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고뇌하는 신앙인이자 빛나는 조역인 요셉의 믿음이었습니다. 혼탁한 이 세상에서 깨끗한 신앙을 지키려고 고뇌하는 모든 신앙인들에게 요셉 성인의 전구를 청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