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49

본문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이사 35,1-6ㄴ.10; 야고 5,7-10; 마태 11,2-11

대림 제3주일; 2019.12.15.; 이기우 신부

⒈ 오늘은 대림 제3주일이며, 또한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이들을 기억하고 그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자선 주일입니다. 어둠을 비추시는 빛으로서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이때, 자선의 지향으로 바치는 기도와 베푸는 나눔은 우리도 세상의 어둠 속에 빛을 비추는 일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가난한 이들을 멸시하고 차별하는 풍조가 어둠이라면 자선의 지향으로 바치는 기도는 이 풍조를 몰아내는 의식의 빛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가난한 이들을 가난하게 만드는 사회 구조와 정책이 어둠이라면 자선의 지향으로 베푸는 나눔은 이 어둠을 몰아내는 행동의 빛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⒉ 이사야가 예언자적 상상력으로 꿈꾸었듯이 사막에서 꽃이 피고 눈먼 이들이 보게 되며 귀먹은 이들이 듣는가 하면 다리저는 이가 사슴처럼 뛰고 말못하는 이가 말하게 되는 기적이 일어나려면,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시고 다시 그 사람이신 하느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는 거룩한 변화가 필요합니다. 자선은 선을 베푼다는 좋은 말이지만 적선 대상이라는 말은 한없이 슬픈 말이기도 합니다. 적선을 하는 사람에게는 즐거운 일일지 몰라도 자선을 받는 사람에게는 생존과 함께 자존심이 걸려있어서 수치스러운 일일 수도 있기 때문이어서 세상에서 말하는 이런 적선이란 흔히 일방적이고 수동적인 관계를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⒊ 하지만 세상이 보는 것과 성서가 말하는 것은 다릅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마저 성서의 시각이 아니라 세상의 시선으로 가난한 이들과 자선 행위를 바라본다면 그것은 명백히 세속적인 것입니다. 이사야의 상상력 안에서 그런 한가한 적선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더구나 예수님의 실천 안에서 그런 일방적인 적선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야말로 당신의 사명이라고 천명하셨고,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가난한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선포하셨을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죄인으로 낙인찍은 그들을 마치 하느님을 모시듯이 정성껏 돌보아주셨고 그러다가 그들이 복음을 듣고 하느님께 나아오게 되면  더할 나위 없이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믿는 이들은 물론 세상 모든 사람이 생을 다 마치고 당신 앞에 와서 심판받을 때에 바로 당신이 가난한 이들에게 보여주신 모범대로 우리가 가난한 이들에게 처신을 했는지 여부를 대상으로 엄정한 심판을 하겠다고 천명하셨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사야가 내다보았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하느님 나라의 현실 안에서, 가난한 이들은 한낱 교회의 적선 대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하느님을 보게 하고 그분의 말씀을 듣게 하며 그분을 진정으로 찬미하는 말을 하게 해 주는 하느님의 천사요 구원의 동반자이며 하느님의 빛을 보게 하는 통로였습니다. 이는 천동설과 지동설의 차이와도 비슷한 구석이 있는데, 세상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대로 지구가 중심이고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지만 과학의 진리는 그와는 정반대였음을 우리는 상식적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회가 중심이고 가난한 이들이 그 주변에 적선의 대상으로 존재하고 생각하는 것은 성서의 상식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자선 주일에 요청되는 것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의식과 실천에 있어서, 강생의 신비나 부활의 신비에 버금가는 거룩한 변화입니다. 이 변화가 의식과 실천의 혁명입니다. 

 

⒋ 가난한 이들과 교회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되는 영화 한 편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2005년에 인도에서 만들어지고 2009년에 한국에서 개봉되었던 영화 <블랙>입니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지만 이러한 삼중의 장애를 딛고 설리반이라는 헌신적 스승의 도움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인류의 양심을 일깨우는 작가요 운동가로 살아갔던 헬렌 켈러의 실제 이야기를 인도판으로 제작한 명화입니다. 보지를 못하니 세상은 온통 어둠이었고, 듣지도 못하니 소리는 침묵에 지나지 않았으며, 말도 못하니 인간이 아니라 짐승 같은 취급을 당할 뻔 했던 주인공이 헌신적 스승의 희생적 도움으로 남들보다 몇 배 더 한 노력으로 또 더 긴 기간 동안 공부를 해서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드디어 눈뜬 사람들도 보지 못하는 하느님을 보게 되고 귀가 멀쩡한 사람들도 듣지 못하는 진실의 소리를 듣게 되었으며 입이 열린 사람들도 말하지 못하는 진실의 언어를 말하게 되었다는 기적의 스토리를 이 영화 <블랙>이 담고 있습니다. 이 영화가 전하는 또 하나의 기적은 그렇게 역경을 딛고 인간적인 삶을 살게 된 주인공이 처지가 뒤바뀌어서, 자신을 그렇게 키워주다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려서 모든 기억을 상실하게 된 스승의 기억을 되찾아주고자 스승이 자신에게 기울였던 똑같은 노력으로 의학적으로 불가능하다던 기억 소생을 시켜주었다는 스토리에도 담겨 있습니다. 이렇게 이 영화가 두 가지 기적을 전해주듯이, 가난을 바라보는 세속적 시선을 극복하자면 기적과도 같은 거룩한 변화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의식과 실천이라는 두 차원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⒌ 그래서 그에 알맞은 메시지를 이 영화 <블랙>의 두 주인공, 미셸 맥날리과 스승 데브라지 사하이가 주고 받는 대화와 특히 대학 졸업식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서 골라보았습니다.  

  • “검은 색은 어둠과 갑갑함뿐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취의 색입니다.” 

이 말은 마흔이 되어서야 각고의 노력 끝에 대학을 졸업하게 된 미셸이 졸업식장에서 지명받아 행한 연설의 일부입니다. 그리스도를 빛으로 기다리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없는 세상을 어둠으로 인식하듯이, 가난한 이들을 적선 대상으로만 여기는 인식의 어둠도 그러합니다. 

 

⒍ “하느님에게 우리 모두는 장님입니다. 누구도 그분을 보거나 듣지 못했으니까요.”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했던 까닭에 각종 사고를 치던 미셸은 어려서부터 짐승 같은 취급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그러다가 부모의 인내심에 한계가 닥칠 즈음 미셸은 장애인 학교 교사로서 자기 누이가 역시 삼중 장애를 겪었던 아픔을 안고 있던 데브라지를 스승으로 만나게 됩니다. 미셸에게 있어서 데브라지는 세상을 보게 해 주는 창이었고 하느님까지도 보게 해 준 마법의 안경이었습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가난한 이들은 하느님을 보게 해 주고 그분의 말씀을 깨닫게 해주는 고마운 천사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하느님을 보지 못하고 그분의 말씀을 들어도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⒎ “지식은 전부에요. 지식은 영혼이며 지혜이고 용기, 빛, 소리예요. 저에게 지식은 성경이며, 하느님이죠. 지식은 내 스승이십니다.” 

미셸은 데브라지에게서 말과 글을 배웠습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하니 감각으로 느끼면서나 목젖에 손가락을 대고 그 울림으로 전해지는 진동으로 세상 사물을 인식했고 또 점자 타자로 글을 배워 세상 이치를 터득했습니다. 구체적인 뜻을 지닌 단어는 손의 감각으로 익혔고 추상적인 뜻을 지닌 단어는 스승과 의사소통하는 마음의 대화로 깨우쳤습니다. 그에게 지식은 세상을 이해하게 해 주는 지혜였으며, 하느님까지도 보고 듣게 해 주는 예지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배울 것은 너무 많았고 시간은 너무 부족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식을 습득하는 데 남들보다 몇 배 더 걸리는 노력을 해야 했던 미셸은 스승 데브라지로부터 누군가를 위해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을 주는 것인지에 대한 지혜도 터득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가난한 이들로 하여금 그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지식을 전해줄 수 있을 때 그들은 그 지식을 통해 하느님을 보는 지혜까지 얻게 될 것입니다. 

 

⒏ “꿈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것이에요. 전 눈이 안 보이지만 꿈이 있어요. 우리의 꿈은 언젠가는 졸업을 하는 것이지요. 거미는 수 차례 떨어지기를 반복한 끝에 집을 짓습니다. 개미도 그렇게 해서 산을 오르고 거북이는 사막도 지나갑니다. 이처럼 나 미셸 맥날리도 결국 해냈습니다. 선생님은 보여 주셨어요, 세상에 불가능이란 없다는 것을… ” 

항상 뭔가를 찾아 헤매었지만 그때마다 찾은 것은 어둠뿐이었던 미셸이 드디어 자력으로 졸업을 하게 되었을 무렵에 사람들은 성공을 축하했지만 미셸과 데브라지는 실패를 축하했습니다. 흰 지팡이를 선물로 건네주면서 집에서 학교까지 처음으로 아무의 도움 없이 혼자서 갈 수 있었던 날, 데브라지는 미셸에게 아이스크림을 사 주며 거미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집을 만들기까지 수 차례나 실패하다가 그 실패들을 딛고 기어이 집을 만드는 거미 이야기를 통해서 데브라지는 결국 실패란 성공을 향한 첫 걸음이라고 일러주면서 어둠이 필사적으로 미셸을 집어삼키려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빛을 향해 걸아가거라, 희망으로 가득찬 너의 발걸음이 도리어 나를 살아 있게 할 것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인생은 아이스크림과 같아서 녹기 전에 빨리 먹어야 하는 거라고도 일러주었답니다. 

 

⒐ 역사상 교회도 가난한 이들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거나 보는 일에 있어 종종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하지만 그 실패는 헛된 것이 아니었고 그 역사적 시행착오들이 밑거름이 되어서, 1891년 첫 사회회칙을 반포한 레오 13세 교황 이래 역대 교황들이 가난한 이들의 복음화를 뚜렷한 교회 전통의 흐름으로 만들어낸 여러 사회회칙들을 통해서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퍼져나가서 백 년이 넘게 흐른 지금, 이 진리를 한평생 살아온 인물을 교황직에 선출하는 일이 우리 눈 앞에 벌어지고 있으니, 그가 프란치스코 교황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부들은 사목헌장의 첫 머리에서 예수님의 나자렛 선언을 현대적인 용어로 번역했는데 이것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통해 지금 메아리로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번뇌는 곧 그리스도인들의 기쁨과 희망이요 슬픔과 번뇌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말이지요. 그래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적 약자가 울부짖는 소리를 듣는 하느님의 도구요 그들의 기쁨과 희망을 대변하는 마이크이자 스피커가 되어야 합니다. 

 

⒑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요한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분이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게 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전하시는 주체이십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그분께 대한 충실성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도구가 되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분께 의심을 품지 않는 이들이 행복하리라는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