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재구성한 자캐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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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재구성한 자캐오 이야기

 

지혜 11,22-12,2; 2테살 1,11-2,2; 루카 19,1-10

연중 제31주일; 2019.11.3.; 이기우 신부

 

1. 죽은 이들을 기억하고 언젠가 다가올 우리의 죽음을 묵상하는 위령성월의 첫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오늘 미사의 제1독서인 집회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크고 높으신 사랑과, 그러나 그분의 손에서 지어진 피조물의 운명의 가벼움에 대해서 일러줍니다. “온 세상도 하느님 앞에서는 천칭의 조그마한 추와 같고, 이른 아침 땅에 떨어지는 이슬방울 같다.”는 것입니다. 영원하신 창조주의 존재성과 유한한 피조물의 우연성이 너무도 크게 대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오로는 제2독서에서 피조물의 유한한 운명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생명에로 불리운 신앙인의 특권에 대해 일깨워줍니다. 그는 테살로니카 공동체의 교우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늘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우리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당신의 부르심에 합당한 사람이 되게 하시고, 여러분의 모든 선의와 믿음의 행위를 당신 힘으로 완성해 주시기를 빕니다.” 바오로가 이렇게 기도하는 이유, 그리고 그 이유를 굳이 상기시키는 이유는 신앙인의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조건이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를 믿음에 따라서 하느님의 부르심에 초점을 맞출 때라야 그 특권이 실제로 유효할 수 있습니다. 

 

2.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자캐오는 예수님께서 만나신 인물 중에 매우 예외적이고 이례적인 인물입니다. 예수님을 쫓아다니며 감시했던 바리사이들도 부자였지만 예수님을 의심의 눈초리로만 보면서 기회만 있으면 트집을 잡기 일쑤였는데 비해서, 자캐오는 부자이면서도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일 줄 알았습니다. 어느 날 그분의 명성을 듣고 영원한 생명을 얻고 싶어서 예수님을 찾아왔던 부자 청년도 어려서부터 계명을 잘 지켜왔노라며 자신만만해 했지만 가난한 이들에게 재산을 나누어주고 와서 당신을 따르라는 말씀을 듣자 울상이 되어 떠나갔습니다. 재산이 많았으면서도 예수님을 따른 자캐오의 경우에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한 경우였고, 하느님께서는 불가능한 일이 없음을 실증한 사례였습니다. 그래서 매우 예외적이고 이례적인 경우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자캐오조차도 구원될 수 있는 조건이라면 보통의 사람들은 거의 다 해당될 수 있으리라는 점에서 그가 구원받게 된 경위를 사목적인 관심에서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루카가 소개하고 있는 자캐오의 이야기를 재구성해 보면 이렇습니다. 

 

3. 예리코의 세관장이었던 자캐오는 부자였습니다. 키가 작아서 볼품도 없었던데다가 직업상 그는 공적인 기피인물로 낙인찍혀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를 상대해 주지 않았습니다. 돈이 많았다고 하지만 돈자랑을 할 거리도 마땅치 않았고 돈을 쓸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그는 외톨이로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예수님께 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곳곳에서 사람들이 몰려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가난한 사람도 가리지 않고 만나주신다는 것, 아픈 사람이나 마귀 들린 사람까지도 외면하지 않고 낫게 해 주시거나 마귀를 쫓아내어 주신다는 것, 그리고 그런 도움의 대가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신다는 것, 그래서 점점 더 사람들이 그분을 더 많이 찾아가고 있다는 것 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예리코로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놀라면서도 반가웠습니다. 세관장이라는 직책 때문에 자리를 비우기도 쉽지 않았겠지만, 무슨 큰 질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마귀에 들린 것도 아닌 처지에, 핑계도 없이는 선뜻 찾아가기가 어려웠던 참에 그분이 예리코에 들르신다는 소식은 한껏 마음을 들뜨게 했습니다. 하지만 키가 작은 게 문제였습니다. 그분을 보려는 인파가 너무 몰려서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습니다. 마을 한복판에 있는 그 나무에로 올라가면 아무리 인파가 많아도 그분을 볼 수 있겠거니 하고 생각한 것입니다. 

 

4. 자캐오의 이야기는 네 복음서 중 루카만 전하고 있습니다. 루카가 이 이야기의 바로 앞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수난과 부활을 세 번째로 예고한 기사를 배치한 것으로 보아, 그는 수난과 부활의 신비를 깨달은 제자의 전형으로서 자캐오를 제시한 것 같습니다. 그가 존경받던 인사가 아니라 그 반대로 경멸받던 세관장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대단한 파격입니다. 또한 수난 예고 전에는 예수님을 찾아온 인색했던 부유한 권력가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와 달리 자캐오는 세관장으로서 재산을 많이 모았지만 그 재산을 기꺼이 나눈다는 점에서 부자도 영원한 생명을 얻어 누릴 수 있는 사례로서 제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 영원한 생명을 얻어 누리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을 빠져 나가기보다 어렵다고 하지만,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기 때문에, 하느님께 회심한 부자는 얼마든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 영원한 생명으로 구원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5. 무릇 재산이란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지고 있다가 쓰지 못한 재산은 죽으면 단 한 푼도 가지고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준다 해도 문제는 남습니다. 일종의 불로소득 같은 그 유산 때문에 자녀들이 재산다툼을 벌이기 때문입니다. 유산을 많이 남겨준 가정치고 화목한 가정을 저는 아직까지 보지 못했습니다. 진정한 자기 재산은 자신의 자유의지로 쓴 것, 가난한 이들에게 나눈 것, 필요한 이들에게 베푼 것만이 진정으로 자기 재산이라고 하느님께 인정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람을 평가하면서 그가 얼마나 벌었고 그래서 자신을 위해 얼마나 쓸 수 있는지를 보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가 다른 사람을 위해 얼마나 쓸 수 있었는지를 보신다는 것이 루카가 자캐오 이야기를 통해 주려고 했던 교훈입니다. 

 

6.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간 덕분에 예수님의 눈에 띈 자캐오는 그분을 맞아들이고자 했던 마음을 그분께 읽히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캐오가 아무런 청도 하지 않았지만,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고 알아서 제안하셨습니다. 자캐오는 드디어 바라던 바를 성취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를 바라보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서 머무시겠다는 말씀을 듣고 투덜거렸습니다. 직업상 공적인 기피인물이었고 율법상으로도 죄인이었던 그의 집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율법상 부정을 타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7. 사람들의 반응에도 아랑곳없이 마냥 기뻤던 자캐오는 자기 집에 오신 예수님께 활짝 열린 마음으로 회개한 마음을 드러내었습니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구약성경의 율법에 따라 보더라도 ‘네 곱절’로 갚겠다는 것은 규정을 훨씬 뛰어넘는 후한 배상이었습니다. 자캐오가 이렇게 알아서 후한 배상을 하겠다고 제안한 이유는 세관장 노릇을 하면서 자기 자신도 잘 기억나지 않는 횡령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해서였을 것입니다. 그의 마음이 예수님 덕분에 활짝 열린 것 같습니다. 아무튼 모처럼 화끈한(?) 참회자를 만나신 예수님께서도 화끈하게 공개적으로 선언하셨습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말은 혈통을 떠나서 하느님께 구원받은 존재임을 뜻하는 성서적 표현입니다. 

 

8. 루카는 라자로와 함께 등장했던 부자의 이야기를 16장에 소개한 바 있었는데, 그 부자와는 매우 대조적으로 운명이 엇갈렸습니다. 15장에 나오는 되찾은 비유 이야기들에서처럼, 예수님께서는 돌아온 탕자나 되찾은 한 마리 양 또는 되찾은 은전처럼 회개한 자캐오를 아주 기쁘게 맞이하셨습니다. 루카만이 취재하여 발굴해 낸 두 부자 이야기, 즉 회개한 자캐오와 회개를 거절한 익명의 부자의 운명은 하늘과 땅 차이로 갈렸습니다. 루카가 발굴해낸, 예수님의 뜻이 매우 분명하게 나타난 셈입니다. 

 

9. 사실, 우리가 죽은 후에 최후의 심판을 받을 때에 어떠한 잣대로 평가받을지에 대해서는 이미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선언하신 바가 있습니다. 그것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태도와 재물에 대한 태도, 두 가지입니다. 그러나 좀 더 근본적으로 생각해 보면 탈렌트의 비유에서도 밝히신 것처럼, 재물뿐만 아니라 우리가 받은 재능을 어떻게 썼느냐 하는 것도 중요한 잣대입니다. 인생에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그러나 우리에게 매우 필요하고 중요한 것들이 많고, 그것은 재능을 비롯해서 시간, 경험, 노력과 기회 등 여러 가지입니다. 시간을 돈 주고 살 수 없듯이, 온갖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얻은 경험도 돈 주고 살 수 없습니다. 어떠한 성과를 얻었는지와 상관없이 그 성과를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애써 노력한 과정도 귀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도 역시 귀합니다. 우리에게 찾아온 기회들을 어떻게 활용했느냐에 따라서 우리네 인생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 귀한 은총들을 세상에 대해서나 가난한 이들에 대해서 어떻게 썼느냐 하는 것이 최후의 심판에서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해 줄 중요한 잣대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자캐오가 보여준 회개의 태도는 지나간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데에는 물론, 앞으로 남은 우리의 삶을 내다보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10. 이 위령성월에 죽은 이들을 기억하며 기도하고, 우리의 죽음도 미리 준비하기 위해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답게 우리의 모든 선의와 믿음의 행위를 하느님의 힘으로 완성해 주시기를 기도하면서 주어진 삶에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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