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 안중근과 우리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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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 안중근과 우리의 꿈

 

집회 35,15ㄴ-17.20-22ㄴ; 2티모 4,6-8.16-18; 루카 18,9-14

연중 제30주일; 2019.10.27.; 이기우 신부

 

1. 10월 전교 성월을 마치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를 비교하시며 우리도 겸손하게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청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고 가르치시는 말씀을 복음으로 들었습니다. 이 기도를 바치면서 소아시아와 그리스를 개척한 사도 바오로는 선교에 바친 자신의 일생을 회고하면서 제자인 티모테오에게 자신의 기도를 유언처럼 남겼습니다.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다고 자부하는 사도 바오로는 티모테오를 통하여 자신이 시작한 복음선포가 완수되기를, 그래서 모든 민족들이 그 복음을 듣게 되기를 간절히 염원했습니다. 집회서의 제1독서 말씀 또한 하느님의 뜻에 맞게 예배를 드리는 이는 받아들여지고 그의 기도는 구름에까지 올라가리라는 격려를 남겨 놓았습니다. 

 

2. 우리는 어떤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하느님께 바쳐야 할 기도는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바쳐야 할 기도는 첫째, 자기 자신의 관심사를 넘어서서 민족적 차원으로까지 드높여져야 합니다. 둘째, 그러자면 하느님 사랑과 겨레 사랑이 하나로 일치되어야 합니다. 셋째, 백여 년 전에 이미 안중근 토마스가 바쳤던 기도가 그의 동양평화론에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 만큼 그의 기도에 담겨있었던 꿈을 우리가 이어받아 기도하고 그 꿈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3. 프란치스코 교황은 10월 한 달 동안 선교 정신으로 살아가는 특별한 때로 지내기를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요청한 바 있습니다. 교황의 지향은 베네딕토 15세의 교황 교서인 「가장 위대한 임무」(Maximum illud) 반포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교서가 반포될 당시 베네딕토 15세는 선교사들에게 식민주의와 민족주의를 경계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가톨릭교회의 선교는 유럽 가톨릭신자들에게 맡겨져 있었으며, 그들은 아시아, 아메리카 및 아프리카 대륙에서 유럽 열강의 제국주의 침략정책에 휘둘리고 있었으며, 이에 따른 식민지 백성들의 민족주의 저항에 부딪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네딕토 15세는, “인간의 나라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나라를 전파해야 하며, 지상의 조국이 아니라 천상의 왕국 시민들을 늘리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현지인 사제 양성의 필요성도 강조했으며, 선교사는 선교지의 언어를 정확하고 유창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도 강조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유럽 여러 나라들의 비참한 황폐함을 초래했던 직후 였던 그 당시에 위축된 선교 활동을 고무 격려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황은 부족한 선교사 수를 보충해야 한다고 하면서 선교사 성소를 육성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그리고 전후의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교지의 더 가난한 국민들을 돕기 위한 물질적인 원조를 위해 선교 후원을 호소하였습니다. 이 모든 선교적 노력의 목적과 이유는 선교가 교회의 가장 위대하고 고귀한 임무이기 때문이라고 교황은 상기시켰던 것입니다. 

 

4. 베네딕토 15세 교황의 당부와 프란치스코 교황의 당부 위에서, 안중근 토마스의 지향을 종합하여 우리가 바쳐야 할 기도를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첫째, 동북아시아와 민족의 복음화를 위한 지향을 기도에 담아야 합니다. 이 두 교황뿐만 아니라 역대 교황들이 모두 한국의 가톨릭신자들에게 당부했던 바, 한국 가톨릭교회에 주어진 은총은 한국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시아의 복음화를 위해서 주어진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자면 “무엇을 먹을까 걱정하지 마라. 그런 기도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 나라의 의로움을 구하라. 그러면 너희가 청하는 모든 것들을 덤으로 얻어질 것”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하느님의 나라와 그 평화가 우리 민족과 동북아시아에 실현될 수 있도록 원대한 지향을 담아서 기도해야 합니다. 

 

5. 둘째,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 안에서는 물론 남북한 사이에서 또한 일본과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문제를 분명하게 의식하되 공동선을 지향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 안에서도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청산해야 할 문제들도 많이 있고, 6.25 전쟁을 치룬 북녘 동포와의 사이에서도 앙금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일본과 중국과의 사이에서도 현안은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안중근 토마스는 한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하여 한국과 중국을 침략하는 일본 군국주의 세력이 저지르는 악을 미워했고 그 악을 저지르는 이토 히로부미를 응징했을 뿐, 그 악에 물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대한제국의 황제처럼 일본의 천황도 존중했고, 일본과 일본인을 증오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군사력을 앞세워 지배하려 들지 말고 오히려 동양 평화의 주축이 되어 달라고 충고했습니다. 

 

6. 6연발 권총을 소지했던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할 때에도 그에게 세 발의 총알을 발사해서 죽였고 혹시 그로 의심되는 두 사람에게도 각각 한 발씩 발사하여 부상을 입혔으나 나머지 한 발은 쏘지 않고 남겨두었습니다. 이는 그가 무지막지한 테러리스트가 아니었다는 증거입니다. 총알에는 십자가 표시까지 새겨두었다고 하지요. 거사를 준비하면서 예수의 십자가를 새긴 이 총알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했다고 합니다. 거사 후 체포되어 뤼순 감옥 수감 중에 그를 구출하러온 독립운동 동지들에게도 만류하여 무모한 인명을 상하게 하지 말고, 자신은 여기서 죽을테니 남아서 독립운동에 매진하라고 함으로써, 일본인 간수와 검사를 감복시킨 안중근입니다. 의거 후 70년 동안 잊혀졌던 그의 의거가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된 계기는 이때 안중근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간수 치바 도시치 상병이 안중근에서 받은 유묵,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이라는 붓글씨를 받아서 가보처럼 대를 이어 간수해 오다가 1970년대 말에서야 그의 후손이 공개 기증함으로써 였습니다. 그 후손을 비롯한 안중근 숭모회 회원들은 지금까지도 매년 그의 기일에 그를 위해 마련된 사당에서 추모 모임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안중근은 그를 직접 접한 일본인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가 그저 반일사상에 젖은 살인자가 아니라 고매한 인품의 소유자였음을 증명하는 사실입니다. 

 

7. 또한 안중근은 당시 경성교구장 뮈텔 주교로부터 살인자로 낙인찍히고 생전에 그토록 충성했던 교회로부터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했음은 물론 파문을 당하고 말았으나, 어머니와 아내와 빌렘 신부에게 남긴 세 통의 유서에서 주교에게 순명할 것과 장남을 사제로 키워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죽기 전까지 매일 기도를 거르지 않았던 일도 그의 신앙심을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그를 자신에게 병자성사를 주러 온 빌렘 신부와 생애 마지막 미사를 복사하면서, 2천만 동포에게 유언을 남겼습니다. 하느님을 믿을 것과 교육과 산업에 힘쓸 것 그리고 독립운동에 매진하라고 당부하면서 자신은 천국에 가서도 동포들의 독립운동에 함께 하겠노라고 다짐했던 인물입니다. 유서의 서두를 ‘찬미 예수’로 시작할 만큼 신앙심이 두터웠던 그는 죽는 순간에도 예수님의 죽음과 일치하기를 원했으며 그래서 품 안에 예수님 상본을 품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보다 더 어렵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한국 독립과 동양 평화의 꿈을 꾸었던 안중근의 지향에 따라서 백여 년 전보다 훨씬 여건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민족 통합고 동북아시아의 평화가 실현되기에는 요원한 지금, 우리는 안중근의 꿈을 우리의 꿈으로 계승해야 합니다. 그는 현재 한국 교회 안에서 시복시성 청원 명단에 올라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의 꿈을 계승하고자 기도하면 그도 언젠가 시복시성될 것입니다. 

 

8. 셋째,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그 어두운 시대상황 속에서도 언젠가 실현될 동양 평화를 내다본 긍정적 상상력의 산물입니다. 그는 한중일 3국이 군대와 은행과 화폐를 공유할 수 있는 국가 간 연대를 꿈꾸었는데, 우리는 적어도 남북한에는 물론, 일본과 중국에도 복음화를 위한 선교사를 파견하여 복음을 전하고 평화의 길을 닦을 준비를 해서 동북아시아의 선교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합니다. 선교사로 지망하려는 이들은 중국어나 일본어 중 하나를 선택해서 현지 선교를 준비하고, 선교사를 후원하려는 이들은 자신의 기도 지향을 선교사와 합하여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9. 넷째, 선교는 하느님을 전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은 신앙이요, 이를 위해서도 필요한 것은 신앙을 전하는 이와 신앙의 복음을 듣는 이들 사이의 믿음인 신뢰입니다. 그리고 현지의 가난한 이들을 돕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믿음인 신용을 전파하는 일도 매우 필요합니다. 그래서 안중근은 한중일 3국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은행과 군대를 제안했지만, 지금 우리로서는 선교 현지마다에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이들이 서로 연대하도록 만드는 일이 훨씬 현실적인 과업입니다. 그러므로 이 꿈을 위해서 파견될 선교사들과 그 후원자들은 선교적인 협동조합으로 연대하면 좋겠고, 현지에 설립된 협동조합들이 나라를 초월하여 서로 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협동조합은 인류가 실험하고 발견한 경제 모델 가운데에서 가장 복음적이고 가장 민주적인 모델입니다. 지금보다 훨씬 경제적으로 열악했던 백5십여 년 전의 유럽에서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경제적 약자들을 돕고자 했던 그리스도인 선구자들이 숱한 시행착오 끝에 마련한 이웃 사랑의 형태가 협동조합이며 신앙을 종교적으로만이 아니라 신용의 형태로도 전할 수 있고, 또 자본주의 체제에서나 사회주의 체제에서 모두 통할 수 있는 선교의 최첨단 모델이 협동조합입니다. 

 

10. 꿈은 한 사람이 꾸면 그냥 꿈으로 남아 있을 뿐이지만 여러 사람이 꾸면 현실이 됩니다. 백 년 전 안중근이 꾸었던 꿈도 그렇습니다. 동북아시아가 복음화되면 남북의 평화는 물론 동북아시아의 평화도 보장되고 세계의 평화 역시 앞당겨질 수 있습니다. 선교야말로 교회의 가장 위대한 임무임을 상기시켜준 베네딕토 15세 교황의 뜻과 이를 다시 상기시키며 특별한 선교 정신을 환기시켜 준 프란치스코 교황의 지향과 하나되어, 오늘 전교 성월을 보내면서 우리가 바쳐야 할 기도는, 바리사이의 교만한 기도는 반면교사로 삼고, 세리의 겸손한 기도는 기본으로 삼으며, 안중근의 기도는 이정표로 삼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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