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하느님의 선택, 인간의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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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하느님의 선택, 인간의 응답

 

2열왕 5,14-17; 2티모 2,8-13; 루카 17,11-19

연중 제28주일; 2019.10.13.; 이기우 신부

 

1. 인류를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이 구원되기를 바라신다는 것은 광대무변한 우주 안에 유일하게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환경을 지구에 조성해 주신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 지구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느님께서는 골고루 햇빛과 비를 내려주시고 양심을 심어주셨으며 자유도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인류가 하느님께 나아오기는커녕 죄악에 물들고 그 죄악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기만 하자, 하느님께서는 구세주를 세상에 보내시어 사람들이 당신께 나아올 수 있도록 그 길을 여셨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하느님의 구원대책을 알고 믿으며 따라 행하는 과정은 모든 사람 안에서 그것도 동시에 이루어질 수는 없고, 역사 안에서 단계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으며 사람에 따라서 선택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2. 예수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에게 상기시키신 바 있듯이, 이스라엘 주변의 강국 시리아에 나병환자들이 많았지만 하느님께서는 나아만이라는 장군을 선택하셔서 그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이 과정에서 엘리사 예언자의 역할이 필요했고, 요르단 강에 내려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는 그의 조언대로 따르는 나아만의 믿음도 필요했습니다. 이는 시리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징표였습니다. 

 

3. 오늘의 루카 복음 17장에서도 관성처럼 행동하는 사람들과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선택을 깨닫고 응답하는 한 사람이 대비되고 있습니다. 사람의 피부를 짓무르는 질병인 까닭에 천형이라고 불리는 나병은 완치가 되어도 더 이상 진행이 되지 않을 뿐이지 이미 뭉그러진 피부는 원상으로 회복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을 만나신 예수님께서 그들의 청원을 들으시고 나병만 없애주신 것이 아니라 나병에 걸리기 이전의 깨끗한 몸으로 돌려놓아 주셨습니다. 그렇게 치유의 기적을 체험한 이들의 기쁨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 오직 한 사람만 그 기적이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베푸신 자비이며 기적인 것을 깨닫고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습니다. 나머지 아홉 사람은 아무런 깨달음도 없었고 따라서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그 한 사람은 하느님을 믿는 대열에서 소외되었던 사마리라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한 사람, 응답한 사마리아 사람의 찬양과 감사가 훨씬 더 많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귀감이 되었고, 루카 복음서를 통해서 후대의 믿는 이들에게도 모범이 되었습니다.

 

4. 이 사마리아 사람은 자신의 응답을 통해서 하느님의 선택을 깨달은 경우이지만 사도 바오로는 또 달랐습니다. 열성적인 바리사이로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그를 하느님께서 선택하시고 돌려세우셨습니다. 그러한 하느님의 선택에는 이유가 있었으니, 그것은 그가 당대의 소아시아와 그리스 일대에 사는 이방인들을 하느님께로 돌아오게 할 선교 사명을 감당할 만한 인재였을 뿐만 아니라, 후대의 무수한  그리스도인들 역시 자신이 걸어가는 인생 여정 속에서 받고 있는 하느님의 선택을 깨닫고 온 힘을 다해서 응답하게 만들 본보기였기 때문입니다. 

 

5. 스스로 선택하지는 못했지만 부르심을 받은 후에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느라 그렇게 인생의 불꽃을 사른 바오로가 말년에 얻은 제자 티모테오에게 자신이 받은 부르심과 자신이 얻은 깨달음과 자신이 행한 응답을 안수하며 전해주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선택하신 하느님의 뜻이 어떠한지를 뼛속깊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 그분께서는 다윗의 후손으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이것이 나의 복음입니다.” 

 

6. 부활하신 그리스도야말로 바오로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죄인처럼 감옥에 갇히는 고통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였습니다. 자신을 감옥에 가둔 박해자들이 자신이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은 감옥에 가둘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이 당하는 수감생활의 고통을 통해서 그 고통보다 백 배, 천 배, 만 배로 자신을 선택하신 하느님의 섭리와 영광이 더욱 크게, 더욱 오래 빛나리라는 것을 그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나병을 치유받고 하느님을 믿게 된 시리아 장군 나아만보다, 또 나병을 치유받고 돌아와서 예수님께 감사의 응답을 드린 사마리아 사람보다 훨씬 더 굳센 확신으로 하느님의 선택을 믿고 응답한 바오로였습니다. 

 

7. 선택된 사람은 적지만 그가 바오로처럼 응답하면 그 은총은 풍성해집니다. 사람은 하느님의 선택을 거절할 수도 있지만, 기꺼이 응답할 수도 있습니다. 응답하되 사마리아 사람처럼 한 번에 감사의 행위로 응답할 수도 있지만, 사도 바오로처럼 일생을 바쳐서 응답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기회를 주시지만, 응답한 사람의 자유로운 선택을 백 배, 천 배, 만 배로 활용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후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 선택과 응답의 혜택을 은총으로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8. 10월은 전교 성월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 모두는 세례 받고 파견된 이들이며 파견된 이 세상에서 우리가 행하는 삶은 종교적인 행위만이 아니라 모든 것이 다 선교적 의미를 지니는 선교입니다. 머나먼 선교지로 파견된 이들만이 선교사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선교사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먼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다는 것이 지니는 선교적 차원을 재발견하는 일을 뜻합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믿음을 거저 받았고, 하느님의 부르심을 선언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났습니다. 우리가 받은 거룩한 생명은 세상에서 감추일 수 없이 드러납니다. 이는 팔려고 내놓은 상품이 아니며 그 어느 누구에게도 개종하기를 권유하려는 수단이 아닙니다. 부르심으로 받은 생명의 선물을 다시 은총으로 내어주고 그래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전달되도록 하는 통로인가 하면 이런 내어줌과 전달을 통하여 선포하는 복음의 보화입니다. 이것이 선교적 차원에서 우리의 믿음을 재발견하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요청하신 보편적 선교 명령, 즉 땅 끝까지 가서라도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이며 또 믿는 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의 믿음을 증거함으로써 세상이 복음적으로 변화되기를 바라시는 바를 일상적으로 삶에서 받아들이는 선교의 영성입니다.” 이를 일상 선교의 영성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9. 오는 26일은 안중근 토마스가 하얼빈 의거를 일으킨 지 110년되는 날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전교의 달을 맞아 온 가톨릭 신자들에게 강조한 일상 선교의 영성을 일찍이 실천했던 그의 모범을 상기시켜드리고자 합니다. 

 

  • 그는 순교로 신앙을 증거했던 선조들의 전통을 따라 가톨릭 세례를 받았기에 지성적이었으며 실천적이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친을 따라 당시 지식인들이 그러했듯이 선조들이 들여왔거나 저술한 서적을 무려 120권이나 정독하고 나서 교리를 배워 영세했습니다. 그 때문에 유가사상의 깊이를 간직하면서도 이를 넘어 가톨릭 신앙의 정수를 받아들여 성체성사의 정신을 살았고 교리를 가르치고 세례를 준 빌렘 신부로부터 국제 정세와 서양 제국주의 세력의 장단점은 물론 가톨릭 교회의 도덕적 권위에 대해 동경했습니다. 

 

  • 그는 고향인 황해도에서 빌렘 신부를 도와 공소를 순방했고 미사의 복사를 섰으며 외교인들에게 신앙 교리에 대해 열띤 강연을 마다하지 않았고 그 결과 황해도의 가톨릭 교세를 전국 최고로 증가시켰습니다.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진리를 동포들에게 헌신적으로 전파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박해 이후 천민 수준으로 천시받았던 교우들의 권리가 무시받으면 열일 제쳐놓고 나서서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선교 의식이 인적인 전교 차원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으로 열려있었다는 뜻입니다. 황해도에서 이름난 선비 집안이기도 했지만 나름 유복한 집안 출신이기도 했던 안중근 토마스는 재산을 처분하여 진남포에서 학교를 인수하여 젊은이들에게 교리와 신학문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조국의 운명이 풍전등화처럼 위태로워지자 학교를 지인들에게 맡겨놓고 만주와 연해주로 가서 의병운동을 합니다. 열악한 무기로 인해 의병운동이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얻지 못하게 되자, 혼자서라도 이토 히로부미라는 침략의 원흉을 제거하려는 독립전쟁에 나선 것이 하얼빈 의거였습니다. 

 

  • 전교 활동, 민권운동, 교육운동, 의병활동 그리고 마지막으로 독립전쟁에 나서기까지 자신의 마음에 두었던 사상을 하얼빈 의거 후 감옥에서 저술하여 남긴 글이 동양평화론입니다. 암흑처럼 캄캄했던 조국의 운명과 국제 정세 속에서도 나라가 나아가야 할 길을 동포들에게 남긴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과 나라 사랑의 길을 보여준 안중근 토마스는 민족의 통합은 물론 동북아시아의 복음화 사명을 받고 있는 우리들에게 모범을 보여준 선교사였습니다. 

 

10. 어머니와 아내에게 남기는 유서에서도 예수님을 찬미했던 그는 사도 바오로 못지않게 일생을 바쳐서 신앙을 증거했던 생애를 하느님께 봉헌하면서 죽음을 앞두고 품 안에 예수님의 상본을 지니고 한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하느님의 선택에 응답했던 안중근 토마스의 생애야말로 일상의 선교를 보여준 귀감입니다. 이제 이러한 안중근의 응답이 우리의 응답으로 퍼져나가야 할 단계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를 선택하셨던 섭리가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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