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잃어버린 것과 얻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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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것과 얻은 것

 

탈출 32,7-11.13-14; 1티모 1,12-17; 루카 15,1-32

연중 제24주일; 2019.9.15.; 이기우 신부

 

1. 최근 한 달 사이에 우리는 사악한 기운에서 나오는 광기를 똑똑히 볼 수 있었습니다. 일부 정당과 검찰과 언론이 합작한 여론몰이를 정신없이 지켜보면서 차분함을 잃어버릴 뻔 했습니다. 하지만 한바탕 광풍이 태풍처럼 지나간 지금, 진정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가 무엇이며 정신을 차려서 준비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2. 문재인 대통령이 사법개혁이라는 숙원을 해결하고자 야심차게 전임 민정수석비서관을 신임 법무장관으로 지명한 후 일어난 사태는, 마치 경기가 들린 듯이 발악하는 자유한국당과 그에 장단을 맞추어 보란 듯이 무리한 수사의 칼날을 휘둘러 자기 무덤을 판 검찰과 그리고 권력도 독자와 시청자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광고주 자본만이 두려운 언론이 박수 무당이 작두 위를 타듯 아슬아슬한 춤사위를 추는 작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사법개혁이라는 공동선의 의제는 감쪽같이 실종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주권자요 유권자이며 동시에 신문의 독자요 방송의 시청자로서 우리의 머슴이요 심부름꾼에 불과한 정당과 검찰과 언론에 대해 주인으로서 우리 사회에 필요한 공동선의 가치에 대해 건전한 여론을 형성해 나가면서 충고해야 하고 필요하다면 심판해야 합니다. 

3. 마침 오늘 말씀의 주제는 ‘잃어버린 안타까움과 되찾은 기쁨’입니다. 시대 순으로 보아 먼저 살펴볼 말씀은 제1독서인 탈출기 32장에 나오는 금송아지 사건입니다. 홍해를 기적적으로 빠져나온 기적의 기억도, 하느님의 영광이 장엄하게 펼쳐지던 시나이산에서 맺은 계약의 맹세도 까마득히 잊어버린 채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 바쳐드린 신앙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이집트에서 챙겨온 혹은 빼앗아온 금붙이를 모아서 금송아지 상을 만들었습니다. 우상숭배를 일삼던 이집트 사람들의 풍습을 흉내내본 겁니다. 이 목이 뻣뻣한 백성의 배신을 보시고 하느님께서 진노하시어 재앙을 내리시려고 하시니까, 혼비백산한 모세가 하느님께 애원하여 겨우 하느님의 진노를 가라앉혀 드렸습니다. 

4. 탈출기의 금송아지 사건 보도는 하느님께서 참으로 미워하시는 악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그것은 우상숭배요, 당신의 뜻인 최고선을 자신들의 저급한 욕망으로 가리는 일입니다. 최고선은 우리가 머리에 이고 사는 하늘과도 같고 발로 딛고 사는 땅과도 같아서, 이것이 무너지면 마치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것과도 같이 우리네 존재 자체를 스스로 부정하고 마는 어마어마한 재앙이 벌어집니다. 사람들이 우상을 숭배한다고 해서 하느님의 존재 자체가 털끝만치도 다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지만, 오히려 사람들의 근본 존재가 멸망으로 치닫게 되는 앙화가 닥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우상숭배와 그 풍습을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하시며 진노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톨릭교회의 전통교리에서는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라는 윤리 계명으로 신자들에게 가르쳐왔습니다. 

5. 그런데 행선피악(行善避惡)의 이 윤리 계명이 실제 우리 가톨릭 그리스도인들에게 미친 사회적 영향은 죄를 짓지 않고 착하게 살려고 할 뿐인 소극적 사회의식이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지난 주일의 복음을 해설해 드렸던 강론에서 상기시켜 드렸다시피, 최고선을 행하는 데 있어서는 그저 착하게 살려고 해서는 그 선을 달성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사탄이 조종하는 악의 기운이 그만큼 집요하고 조직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악의 기운이 집요하고 조직적인 그만큼 선의 기운도 야무지게 선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먼저 우리를 풍요롭게 만들어 줄 수 있는 힘으로서 선의 상상력을 되찾아야 성령의 이끄심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선한 이들의 연대도 절박한데 그러려면 흔히 선한 이들이 보이는 작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분열하거나 갈등할 것이 아니라 서로를 넉넉하게 품어안을 수 있어야 조직적일 수 있고 그래야 선의 힘이 그만큼 커질 수 있습니다. 또한 악한 기운이 선한 이들을 넘보지 못하도록 선한 기운이 압도할 때까지 집요하게 선한 세력의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철저해야 합니다. 우리가 되찾아야 할 선의 기쁨이요 선의 영향력이 지니고 있는 영적 사정이 이렇습니다. 

6. 오늘 복음의 청중은 세리들과 죄인들입니다. 세리들은 로마제국으로부터 입도선매한 징세권을 마구 남용하여 돈을 제법 벌었지만 그 대가로 사람들로부터는 기피인물로 찍혔습니다. 사회적인 소외만이 아닙니다.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구원의 길에서는 일찌감치 낙오자로 낙인찍혀서 종교적으로 소외된 처지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동료였던 마태오와 자캐오가 예수님을 만나 회개한 후에 이들 덕분에 더불어 초대를 받아서 예수님의 벗들이 되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바리사이 같은 종교적 엘리트로부터 죄인이라고 낙인 찍혔던 사람들은 가난하다는 이유로나, 무식하다는 까닭으로 율법을 잘 지키지 못해서 소외되어 있다가 그들을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7. 상반되는 이유로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에서 제쳐져 있었던 이 두 소외계층을 예수님께서는 덥썩 껴안으셨습니다. 그들이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낙인 행위로 인해 받았을 상처만을 생각하시고 그들의 못난 약점이나 죄에 대해서는 눈감아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오직 하느님의 자비를 대신하여 받아들이셨습니다. 경건하고 위선적이던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 같은 엘리트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태도가 못마땅해서 투덜거렸지만, 예수님께서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한 술 더 떠서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마음을 상기시키고자 잃어버렸다가 되찾은 기쁨을 뜻하는 비유 이야기들을 꺼내셨습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잃어버렸다가 되찾은 목동의 기쁨이나 은전 열 닢을 잃어버렸다가 되찾은 부인의 기쁨 그리고 살아계신 아버지의 유산을 요구하여 가출해서는 방탕한 생활로 탕진했던 작은 아들이 제발로 다시 돌아왔을 때 그 아버지가 느꼈을 기쁨을 생각해 보라는 뜻이었습니다. 

8. 티모테오를 제자로 얻은 바오로 사도가 그에게 보낸 편지도 바로 이러한 하느님의 자비와 예수님의 마음을 일깨워줌으로써 사도로서의 성품과 자세를 일러주려고 쓴 글이었습니다. 특히 오늘 제2독서로 발췌된 대목은 스승으로서 제자인 티모테오에게 권고하기 앞서서 자신이 사도가 되기까지의 심경을 진솔하게 토로하는 내용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는 사도 바오로 역시 잃어버렸다가 되찾은 인재였던 겁니다. 

9. 믿음이 없었던 시절에 예수님을 모독하고 박해하며 학대하던 사울은 마치 탕자와도 같은 처지였습니다. 그는 티모테오에게 이런 극적인 방향전환을 회고하면서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셨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자신의 경우가 당신을 믿게 될 사람들에게 본보기로 삼고자 하신 것이라고 깨달았습니다. 그 목적과 이유는 바로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라고 덧붙였습니다. 

10. 오늘날 우리 사회에 나타난 시대의 징표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촛불혁명으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고자 일어섰던 국민들에게 약속했던 선거공약을 지키고자 대통령이 사법개혁을 완수하려고 지명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향해 돌팔매질을 하던 광풍의 원인은 일부 정당과 전 언론 그리고 검찰이 동맹을 맺은 듯이 힘을 합해서 사법개혁의 지향을 짓밟은 폭력이었습니다. 왜 그토록 그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발악을 하는지, 그 이유를 새삼 생각하게 만드는 광기였습니다. 이 난리소동 탓에 사법개혁이라는 공동선에 대해 공론화시킬 수도 있었던 아까운 기회를 잃어버렸지만 우리가 만들어야 할 새 나라가 수호해야 할 사법적 공동선에 더욱 야무지게 매진해야 한다는 교훈을 덤으로 얻은 것도 그 난리 덕분입니다.

11. 세상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에, “슬기로운 사람은 들으면 알고, 영리한 사람은 보면 아는데, 미련한 사람은 당해야 알고, 답답한 사람은 당하고도 몰라서 또 당한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행여나 당하고 나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미련한 사람이 되거나 아무런 대비를 하지 못해서 또 당하고 마는 답답한 사람은 되지 말아야 하지요.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안타까움과 되찾아야 할 기쁨은 거시적인 사회 공동선에만 있지 않습니다. 

12. 우리네 일상에서도 여전히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해야 할 절박한 필요성은 넘쳐납니다. 그저 악을 피하기만 한다고 해서, 그래서 우리가 죄를 짓지 않고 착하게 살았다는 것만으로는 모자랍니다. 우리가 해야 할 선의 생각과 말과 행위를 야무지게 선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잃어버린 것들 가운데에는 시간도 있고 인간관계도 있으며 성취하고자 했던 일의 목표도 있습니다. 지난 주일의 복음 말씀처럼 차분하게 합리적으로 숙고해서, 그리고 끈기 있게 노력해서 되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되찾은 것들을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도록 야무지게 관리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입니다. 기쁨을 잃어버리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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