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한민족으로 초대해야 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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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한민족으로 초대해야 할 사람들

- 새로운 사도직을 제안하며

 

집회 3,17-18.20.28-29; 히브 12,18-19.22-24ㄱ; 루카 14,1.7-14

연중 제22주일; 2019.9.1.; 이기우 신부

 

1. 순교자 성월을 시작하는 오늘 우리는 주님의 잔칫상에 초대해야 할 손님이 누구여야 하는지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분이 실례로 들어주신 이들은 가난한 이들을 비롯해서 다리저는 이들과 눈먼 이들 같은 장애인들이었는데 이들은 잔치에 초대를 받아도 다시 우리를 초대할 수 있는 사정이 아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초대를 해야 하는, 그것도 우선적으로 초대해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과는 정반대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우선적으로 조건없이 초대해야 우리도 주님으로부터 초대를 받을 수 있습니다. 내세에서건, 현세에서건 천국의 기준이 그렇습니다. 

 

2. 그렇게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처신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주님께서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주님의 계시적 명령에 교회가 겸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명령에 순명하고 충실해야 주님께로부터 총애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사회가 꼴찌로 소외시킨 이들을 교회가 첫째로 끌어안을 때 교회가 벌이는 잔칫상이 시온 산이 될 수 있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3. 지난 주일의 복음 말씀을 배경으로 오늘 복음말씀과도 관련지어서 강론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최근 한반도의 국내외 정세를 보면 새 나라를 향한 꿈으로 가는 문은 참으로 좁아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좁아 보이는 이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것도 꼴찌처럼 지구상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인 우리가 첫째가 되어 들어가야 하고, 그냥 두면 꼴찌로 남을 것 같은 지진아들을 일으켜 세워서 함께 데리고 들어가야 하지요. 더불어 새 나라로 가는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도 좁은 문 통과전략에 포함됩니다. 그 일은 통일의 문을 열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세력을 응원하고 지지하면서도 통일 이후를 차분하게 준비하는 일로서, 한민족의 꿈을 함께 꾸기에는 너무나 소외되어 있는 가장 약한 고리들을 부추겨서 일으켜 세우는 일도 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4. 한반도에 세우려는 새 나라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면 적어도 두 가지 정체성의 자격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하나는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과 또 다른 하나는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입니다. 첫 번째로, 나눔과 섬김으로 이루어질 평화를 하느님께서 바라신다는 인류 보편의 윤리적 요청과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계시에 따라 인간 존엄성의 실현이 진리임을 깨닫는 것이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갖추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 가톨릭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서 가장 큰 짐을 짊어지고, 이 요청과 계시를 믿음으로 고백하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이 그 짐을 나누어 짊어지며, 이 진리에 동의하는 종교인들과 선의의 모든 시민들이 그 대열에 동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한민족의 일원이면서도 그 정체성을 나누어 누리기에는 역사적으로 지체되고 소외되어온 약자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여 정체성의 혜택이 공유될 수 있을 때 한반도에 살고 있는 한민족의 주류도 그 정체성을 분명히 깨닫게 되는 은총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5. 이 두 번째 조건이 한국 가톨릭 그리스도인들이 받아야 할 세례의 마당이자 십자가가 아닌가 싶습니다. 첫 번째로 들어야 할 한민족 정체성의 약한 고리는 북한에서 남한으로 정착한 탈북자들입니다. 한국적을 취득했지만 경쟁이 치열한 남한 사회의 자본주의적 환경에 적응하기에는 너무나 힘이 부쳐서 하루하루 먹고 살기에도 힘이 부친 이들은,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나누어갖고 새 나라의 꿈을 함께 누리기에는 역부족인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장차 통일과정에서 이들은 민족 통합의 길잡이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지요. 북의 약점과 장점, 그리고 남의 장점과 약점을 모두 다 잘 아는 독보적인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6. 두 번째로 들어야 할 약한 고리는 중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입니다. 일제의 압박도 피하고 독립운동을 지원하려고 조상들이 일제강점기에 만주 땅으로 이주했던 까닭에 지금은 중국적을 지니고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도 요구받고 있고 사회주의적 사고방식도 지니고 있지만, 중국 사회에서 소수 민족으로 취급되는 이들은 한국 사회에 노동하러온 이주노동자들 중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3D업종에 종사하면서 설움도 많이 받고 고생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들도 한민족의 정체성을 인정받고 싶어 하고 새 나라의 꿈을 함께 꾸고 싶어 합니다. 장차 통일 한반도와 중국과의 관계가 선린우호관계로 발전하자면 그 징검다리가 되어 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7. 일제강점기에 만주에 인접한 연해주로 이주하여 독립운동을 지원하던 동포들은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 치하에서 어이없게도 멀리 떨어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하여 버려지다시피 했습니다. 고려인이라고 부르는 그들이 그 세 번째 고리입니다. 그들은 삼, 사 세대를 이어져 내려오면서도 한민족으로서의 긍지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해 온 동포들이고 이 긍지로 현지에서도 살아남아 주목받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전하려는 복음이 장차 북녘 땅을 거쳐 만주와 중앙아시아의 대륙으로 퍼져나가자면 반드시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8. 네 번째로 언급해야 할 약한 고리로 재일동포와 재미동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재미동포의 범주에는 미국 땅뿐만 아니라 카나다와 중남미로 흩어져 살고 있는 동포들도 포함됩니다. 재일동포의 범주에는 한국과 교류하고 있는 민단 소속뿐만 아니라 북한과 교류하고 있는 조총련 계열도 포함됩니다. 일제에 의해 강제로 끌려갔던 동포들이 일본 사회에서 모진 핍박을 받으면서도 분단된 조국이 남이나 북이나 이념을 강요한 탓으로 일본적도 아니고 한국적이나 북조선적도 아닌,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는 동포들이 수십만 명입니다. 한반도에 새 나라가 세워지고 대륙과 해양으로 뻗어나가자면 이들도 동참시켜야 합니다. 재미동포와 재일동포는 다 같이 미국이나 일본이 그런대로 먹고 살만한 나라였던 덕분에 경제적 여유는 찾았지만 정신적으로는 민족정체성을 더 갈망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어서 국내에 살고 있는 우리들보다 더 한민족의 운명에 관심이 더 많습니다. 

 

9. 다섯 번째로는 해방 이후 해외에 입양되어 그 나라에서 자리 잡은 사람들과 우리나라에 이주하러 와서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아 살고 있는 이주민들을 들 수 있습니다. 입양아 출신들은 그 나라 사람으로서 성장했고 우리 말도 할 줄 모르지만 얼굴이 한국인이기 때문에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가 하면, 이주민들은 사정이 그 반대입니다. 한국적도 취득했고 한국인과 살고 있지만 우리 말이 서툴고 생김새도 달라서 이방인 취급을 받고 소외된 채로 이등국민으로 삽니다. 이들도 한민족의 일원으로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해외에서 살든 국내에서 살든 이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문화적 정체성이 한민족의 꿈과 결합됨으로써 통일된 한반도에 이룩될 새 나라가 국제적으로 개방되고 건강한 문명사회가 될 수 있는 겁니다. 어차피 피부색이나 국적에 상관없이 인류는 하느님의 가족이라는 우리 신앙의 이상과 목표를 상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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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새 나라 새 꿈은 한민족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해야 하지만 하느님 백성을 지향해야 하므로 배타적이어서는 안 되고 보편적이어야 합니다.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선교 명령을 남기고 승천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서 전해진 복음이, 가톨릭 복음은 동쪽으로 지구 반바퀴를 돌아서 한반도에 들어왔고 그보다 한 세기 후에 개신교 복음을 서쪽으로 지구 반바퀴를 돌아서 한반도에 들어와서 때로는 경쟁자처럼 때로는 현재 한동네 이웃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지구상의 인류 역사에서 한반도에서만 일어난 희귀한 이 사례에 담겨진 하느님의 섭리를 명심해야 합니다. 그것은 한민족에게 주어진 시련은 물론 기회가 여태껏 서구 열강의 그리스도인들이 비복음적이고 반복음적으로 자신들에게 주어진 힘을 남용한 역사적 사례를 본받지 말고 반면교사로 삼아서 한민족이 오랫동안 평화를 상실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와 동아시아는 물론, 복음이 절실한 아시아 대륙 전체와 복음은 알아도 실천할 줄 모르는 미국을 비롯한 아메리카 대륙 그리고 유럽 대륙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의 평화를 전하는 사도가 되라는 소명입니다. 편협한 민족주의가 아니라 이 지구상 그 어느 민족보다도 복음적 열성이 뜨거운 민족정체성을 기반으로 인류 공동체로 나아가는, 그래서 한민족이 하느님의 도구가 되는 진리와 평화의 길입니다. 실천은 구체적으로 하되, 안목은 전 세계와 하느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새로운 사도직은 민족정체성에서 소외되고 지체된 이들을 온유하게 보살피고 일으켜 세우는 일로서, 역사의 가라지들 틈바구니에서 밀을 키우는 농부의 마음과 생명을 키우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해야 하는 거룩한 일입니다. 그러자면 온유함에 더하여 겸손한 마음으로 멍에를 짊어지신 예수님처럼 우리 교회가 같은 마음으로 이 민족복음화의 새로운 사도직을 수행해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겠지만 민족이 나아가는 길에서 교회도 부활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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