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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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이사 66,18-21; 히브 12,5-7.11-13; 루카 13,22-30

연중 제21주일; 2019.8.25.; 이기우 신부

 

1.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에 이르는 문은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좁아 보이지만, 살아온 세월에 비추어서 그 나라의 정체성 기준에 충족하는 사람이라면 넉넉하게 들어갈 수 있어도 그 기준에 미달하는 사람들은 비좁아서 들어갈 수 없는 신기한 하느님의 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잣대로는 첫째로 보이는 사람이 그 대열에서는 꼴찌가 되기도 하고, 그 반대로 꼴찌가 첫째가 되기도 한다는 심판의 문이기도 합니다. 

 

 

2. 하느님께서는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그래서 그 당시 지중해 문명권에서는 꼴찌였던 히브리인들을 당신 백성으로 삼으시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맨 먼저 부여하셨습니다. 이 기회는 배타적인 특권이나 절대적인 자격이 아니었고,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정체성의 모델이 되어야 하는 동시에 다른 모든 민족들을 하느님 나라에 초대할 전령이 되어야 하는 이중 조건으로 주어진 조건부 권한이자 역사적 의무였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부여된 파스카적 역할이었습니다. 이 역할이 우리 교회에 주어져 있고, 우리 민족에게도 주어져 있습니다.   

 

3. 구세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역사의 꼴찌 노릇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에서 생활하시면서 그들이 부여받은 귀한 부르심을 깨닫게 하시고, 만백성을 위해 불리움 받은 자격대로 개방적인 정체성을 확립시켜 주시려고 노력하셨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외면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관심을 보이되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으며, 심지어 오해하고 적대시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났습니다. 

 

4. 이런 상황에서 구원받을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당사자들이 노력하기에 달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고만 말씀하셨을 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보시기에도 모든 사람이 들어가기는 어려울 것 같으셨나봅니다. 심지어,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셨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구원의 정체성을 지니고 많은 사람들을 구원에로 초대할 사명을 받은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도 구원의 문에 들어가지 못할 꼴찌들 때문에 시련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 제2독서인 히브리서 12장에서, “시련을 훈육으로 여겨 견디어 내십시오.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시고 아들로 인정하시는 모든 이를 채찍질하신다.”는 말씀은 바로 이 때문에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그래서 이 메시지에 담긴 기회는 구원의 좁은 문으로 첫째로 들어갈 만큼 정체성을 확립해야 할 임무와 꼴찌의 가능성이 농후한 낙오자들을 초대하여 정체성을 익히게 도와주어야 할 파스카적 소명을 동시에 의미합니다. 우리 교회에게는 역사적 의무요, 우리 민족에게는 역사적 소망입니다. 

 

5. 지난 광복절에 문재인 대통령은 8천만 겨레와 8백만 해외동포들을 향해서 사회적이고 민족적인 차원에서 구원의 문을 제시했습니다. 즉, 독립운동을 했던 선조들이 그리던 새 나라는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였다는 백 년 전의 꿈을 상기시키면서, 그 뜻을 이어 민족의 힘으로 백 년 만에 이룩해야 할 새 한반도의 꿈을 이렇게 펼쳐보였습니다. 그 나라는 인간의 존엄성을 누리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으면서 함께 잘 사는 나라요, 사회적 지위나 조건에 상관없이 공동선에 참여할 수 있는 동시에  그 혜택도 함께 누릴 수 있는 나라이며, 외세의 침략과 지배에서 벗어나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였습니다. 두만강을 건너 아시아와 유럽 대륙으로 우리의 삶이 확장되는 나라요, 태평양을 넘어 아세안과 인도로 우리의 상상력이 실현되는 나라입니다. 

 

6. 그런데 그야말로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할 이러한 새 나라의 꿈은 아직 땅 속에 씨앗의 형태로 묻혀 있을 뿐입니다. 땅 속에 심겨진 씨앗이 싹을 틔우기 위해서는 흙을 들치고 제 힘으로 올라와야 하듯이, 외세의 도움 없이 남과 북이 손잡고 한반도의 운명을 주도하려는 의지를 가져야 이 꿈의 씨앗이 그 싹을 틔울  수 있습니다. 흔히 밀밭에 뿌려진 밀씨가 원치 않게도 가라지들 틈 속에서 자라나듯이, 숙적이자 견원지간처럼 지내온 일본을 뛰어넘어야 할 뿐 아니라 이웃사촌처럼 동아시아 협력의 질서로 이끌어 내야 그 싹을 꽃피우고 열매 맺게 할 수 있습니다. 

 

7. 새 나라의 꿈을 배태하고 있는 생명의 씨앗이 제 힘으로 올라오기 위해서 들추어야 할 두텁고 무거운 흙은 지난 70여 년 간 한반도를 갈라놓고 있는 분단구조입니다. 이 분단구조 안에는 그동안 분단구조를 고착화시키고 이용해온 국내의 수구세력이 또아리를 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분단구조의 주변에는 이 구조를 역사적으로 초래한 책임이 있고 또 이 구조가 무너지고 이룩될 새 나라의 꿈을 못내 시기하는 일본이 발목을 잡고 있는가 하면, 이 분단구조를 시작부터 지금까지 기획하고 유지해 왔으며 그리고 앞으로 이룩될 새 나라의 꿈까지 좌지우지하려고 획책하고 있는 미국이 마치 빅브라더처럼 촉수를 뻗치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새 나라의 꿈을 실현시키자면 짊어지지 않을 수 없는 민족의 십자가이며 민족을 위한 사제로서 그 십자가를 앞장서서 짊어지고 나가자면 우리 교회가 뚫고 나가야 할 시련의 장벽이자 좁은 문입니다. 

 

8. 우리 민족의 운명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개척해 나가자면 이 새 나라의 꿈을 꾸고 있는 선의의 모든 이들이 같은 역사의식을 지니고 힘을 합쳐 함께 뚜벅뚜벅 걸어 나가야 합니다. 역사의 밀밭에서 가라지와도 같은 방해꾼들을 식별해내면서도 섣불리 가라지를 걷어내려다가 밀을 다치게 하지 않도록 이 선의의 사람들이 연대하고 협동하며 역사의 원동력으로 세력화시키는 일이 우선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일제를 상대로 독립운동을 하고 해방 이후 독재시기에 독재세력을 상대로 민주화운동을 하던 그 동력으로, 내부의 사소한 이견보다는 대의를 위해 연대와 협동으로 대동단결하는 지혜와 용기가 절실합니다. 

 

9. 그런데 이러한 새 나라의 꿈을 극력 반대하는 수구세력들은 사실 한 줌도 되지 않지만, 그동안 그들이 지녀온 기득권 탓에 강하고 끈질기며 목소리가 큽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여론의 힘으로 냉정하게 식별했다가 선거 때에는 표의 힘으로 단호하게 솎아내야 합니다. 평화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일에 있어서 공동선의 이치로 설득하되 듣지 않으면 여론의 힘으로 제압해서라도 공동선의 질서에 순응해서 꼴찌로라도 들어가도록 다스려야하지요. 다행스러운 일은, 해방 이후 일본에 기대어 기득권을 유지하면서 부와 권력을 독점해 온 이 세력들이 지금처럼 약화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탄핵 사태 이후 국민이 각성하고 있고, 친일과 독재의 민낯이 고구마 줄기처럼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민심이 깨어나고 있습니다. 

 

10. 식민지배와 전쟁도발로 명백한 역사의 범죄를 저지른 일본에 대해서는 일단 우리로서는 이번 아베가 취한 경제적 보복을 계기로 기술종속의 역사를 끝내고 경제적 자립도를 더욱 높이는 계기로 삼으면 그만입니다. 19세기 후반에 일으킨 명치유신 이래로 일본은 당시 세계 문명을 주도하던 유럽을 따라잡겠다고 ‘탈아입구’(脱亜入欧) 노선을 걸으면서 제국주의 국가가 되어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가 패망했습니다. 그랬던 일본이 전후 동아시아의 미국 패권의 보루로 삼으려는 미국의 도움으로 경제대국이 되더니 다시 전범의 후손들이 정권을 잡고는 군국주의 일본을 재건하려 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라면 있을 수 없는 역주행이요, 인류 보편의 공동선 질서에 반하는 반문명적 퇴행입니다. 

 

11. 하지만 일본 정부와 우익세력이 보이고 있는 여러 가지 모순들과 자가당착적 퇴행에 대해서는 일본 시민사회와 가톨릭 교회가 감당할 몫입니다. 인류가 보편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양심질서에 역행하는 주술적인 신사참배를 국가종교처럼 떠받들고 있는 시대착오적 정신상태와, A급 전범들의 위패를 신사에 모시고 그 악한 기운을 쫒아서 군국주의 국가로 역주행하겠다는 정당이 지난 60여 년 동안 장기집권하는 비민주적 정치행태 등을 보면, 일본 사회는 최고선과 공동선을 일치시키려는 정신혁명의 지진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고, 경제수준에 걸맞은 시민혁명의 태풍이 일어나야 일본 우익세력이 정신을 차릴 것 같습니다. 일본도 새로운 공동선 질서에 순응하도록 일본 민주화를 위한 일본 시민사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역할에 기대를 겁니다. 

 

12.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느님의 섭리를 우리는 믿습니다. 최고선이신 하느님께서 이를 반영하기 위한 공동선의 질서도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 이룩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꿈꾸는 새 나라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선도하는 파스카적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그리고 한국과 북한 그리고 일본에 사는 선의의 모든 이들이 공동선의 질서를 따라 평화의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있도록 간청하는 의미에서 오늘 미사의 입당송을 상기시켜 드립니다. “주님, 귀를 기울이소서. 제게 응답하소서. 당신 종을 구해 주소서. 당신은 저의 하느님,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당신께 온종일 부르짖사오니,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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