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그 입, 다물라!" - 파스카의 역사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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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입, 다물라!"  - 파스카의 역사의식

 

지혜 18,6-9; 히브 11,1-2.8-19; 루카 12,32-48

연중 제19주일; 2019.8.11.; 이기우 신부

 

1. 한여름 대낮에 내리쬐는 햇볕만큼이나 역사 논쟁이 뜨겁습니다. 최근 들어 한국과 일본 사이에 불거진 갈등 때문입니다. 양국 간의 갈등이 경제전쟁의 양상을 띠더니 급기야 역사 논쟁으로도 번지고 있는 이유는 이 갈등을 야기한 일본의 아베 정권이 불의한 역사인식과 부당한 정책수단으로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을 가로막으면서 한반도의 화해와 평화 조성 노력까지 훼방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아베 정권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과거에 군국주의 노선을 표방했던 일본제국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그릇된 야심을 품고 있습니다. 인류가 역사상 숱한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확립한 보편적 윤리와 질서를 부정하면서 바야흐로 해체되어 가는 한반도의 냉전구도와 분단체제를 시기하고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향한 남북한의 발걸음을 멈추게 해서 한반도를 두 동강이 난 채로 일본의 영향력 아래 묶어 두겠다는 속셈을 감추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갈등 국면 속에 백여 년에 걸친 한일 관계의 과거 역사가 뒤틀린 채 녹아 있고, 향후 백 년의 미래에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현실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하는 과제가 씨앗처럼 숨어 있습니다. 

 

2. 개인들 간의 관계가 당사자들의 행복에 기여하려면 그 관계가 사랑을 지향하되 정의에 입각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이치는 하느님의 법에서 나오는 자연법으로서, 집단과 집단 사이에서는 물론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도 어김없이 적용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정의롭지 못한 길을 가는 집단과 나라는 파멸시키시고 의인들은 구원하신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요 성서의 지혜입니다. 범죄를 저지르던 나라들과 왕조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져 온 인류의 역사를 우리 겨레도 살아왔습니다. 우리가 역사 안에 일어나는 선과 악의 싸움, 정의와 불의의 투쟁 과정에서 승리하고자 하면 먼저 정의로워야 할 뿐 아니라 하느님의 법을 배워 익히면서 성공도 위험도 함께 나눌 수 있을 만큼 거룩해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결국 인류의 역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진리와 정의, 사랑과 평화가 실현되는 하느님 나라를 앞당겨 실현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하고, 사회의 법률과 제도와 문화에도 침투시켜 개선함으로써 사회를 복음화해 가며,  한반도의 남과 북은 물론 한일 관계나 더 넓혀서는 미국과 중국과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둘러싼 국제관계 현실에도 이 믿음을 관철해 내야 합니다. 지금이 바로 우리가 이 같은 미래를 구체적으로 준비해 나가야 할 때입니다. 이것이 오늘 미사의 말씀과 시대의 징표가 말해주는 바, 파스카의 역사의식입니다. 

 

3. 악인은 제 꾀에 빠져 멸망합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법정을 반영하는 역사의 법정입니다. 일본은 식민통치로 조선을 괴롭히고 전쟁을 일으킨 전범국가입니다. 그러면서도 가해자였던 일본은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 전략 덕분에 분할되지 않고 엉뚱하게도 피해자였던 조선이 분단되었을 뿐만 아니라, 분단된 남북 간에 벌어진 한국전쟁 덕분에 패전으로 폐허가 되었던 경제를 요행히도 부흥시킬 수 있었던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당하고 부도덕한 행운이 일본 민족의 위대함 덕분이라고 선전하면서 ‘대일본제국’의 부흥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과거의 사악함을 선으로 아름답게 위장하려는 술책을 교묘하게 꾸미고 있습니다. 한일합방은 강제와 불법으로가 아니라 한국인들이 자발적으로 원해서 이루어진 것이고, 식민통치 동안 일본은 한국의 근대화를 도와주었으며, 징병도 징용도 위안부도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강변합니다. 

 

4. 위기에는 위험과 기회가 다 함께 숨어있습니다. 또한 밀물이 들면 모든 배가 다 수면 위로 떠오르듯이, 현재의 위기를 잘 극복하면 미래의 희망도 생겨날 수 있습니다. 즉, 우리가 이러한 한일 간의 갈등 국면에서 일본 정부의 도발로 시작된 위험을 대일 기술종속 상황에서 탈피하여 기술독립을 이룰 수 있는 기회로 선용할 뿐만 아니라, 그동안 매우 불편한 시선과 태도로 우리 민족 현실을 대하고 있는 일본은 물론 한미동맹을 고리로 갑질 외교 행태를 해온 미국을 남북 화해와 민족 통합의 긍정적 방관자 내지 소극적 협조자로 돌려세울 수 있어야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 하느님의 역사가 앞당겨질 수 있습니다. 

 

5. 그러자면 극우 성향으로 군국주의를 부활시키려는 일본 정부와 양심을 지키면서 한일 간 평화와 선린우호를 지키려는 선의의 일본인들을 구분해야 합니다.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들도 아베 정권의 이번 조치와 정책노선을 대단히 엄중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또 이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정의와 독립 그리고 평화를 추구하려는 세력과 불의와 굴종 그리고 분단을 선호하는 세력을 구분해야 합니다. 그래야 해방 직후 미처 하지 못한 일제잔재 청산 작업을 이 기회에 마무리하고 그동안 지연되어온 민족의 정기를 정의롭게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6. 지금은 구한말에 부패하고 무능해서 열강에 휘둘리고 일제에 침략당했던 조선 왕조의 시대도 아니고, 해방 직후에 미군정에 점령당해야 했던 허약한 친일정권 시대도 아니며, 전쟁 이후 세계 최빈국으로서 경제도 외교도 주변 열강에 의해 휘둘리던 아시아 변방 국가도 아닙니다. 지금은 국정농단을 일삼았던 박근혜 정권을 탄핵시키고 촛불혁명으로 문재인 정부를 세움으로써 민주화 의식에 투철한 1등 국민이 다스리는 민주공화국 시대이며, 그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남북 화해를 이끌어내고 머지않아 민족 화해와 남북 평화를 정착시키려 하고 있는 통일의 시대인가 하면, 세계 최강 4대국의 이해가 첨예하게 맞부딛치고 있는 동아시아에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이점을 활용하여 한반도에서 동아시아로, 다시 전 세계로 평화를 샘솟게 할 역사적 소명을 안고 있는 평화의 시대입니다. 

 

7. 동북아시아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가야 할 국제 평화와 한반도에서 구현되어야 할 역사의 정의는 지금 우리 민족이 아니고서는 달리 담당할 수 있는 나라와 정권이 없습니다. 그만큼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역사적 책무가 엄중합니다. 이러한 처지에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주시는 약속이 있습니다. “너희들 작은 양 떼야,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 나라를 너희에게 기꺼이 주시기로 하셨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그렇습니다. 우리 겨레는 작은 양 떼와도 같이 무시를 당하고 있습니다. 일본이나 미국 정부가 마치 상전처럼 우리 정부를 대하는 행태를 보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오로도 상기시켜주고 있듯이, 아브라함은 축복을 약속하신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그 오랜 세월 동안 기다리고 순종하면서 자기 믿음을 증거했기에 약속의 땅을 얻을 수 있었고 모래알처럼 불어난 후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처럼, 비록 작은 양 떼와 같지만 하느님의 역사를 도맡은 소중한 양 떼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종말의 역사를 앞당기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8. 촛불혁명으로 선출된 문재인 대통령이 자유한국당의 비웃음과 아베 총리대신의 조소, 그리고 조선·동아·중앙일보 등 친일언론들이 가짜 뉴스로 조롱하는 가운데 평창올림픽을 평화의 올림픽으로 치러냈고, 남북정상회담이 세 차례나 열려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이끌어내고 남북 간에 군사적 적대상태를 해소하는 평화조치를 단행했으며, 북한과 미국 간에도 두 차례의 뜸들이기식 정상회담을 통해 전쟁이라도 불사하려던 적대관계가 이제 머지않아 평화협정과 비핵화 조치 그리고 상호수교와 경제협력으로 변화되어가려 하는 지금의 역사적 상황에서, 일본의 아베 가 얄팍한 꼼수로 재 뿌리고 있지만 최근의 한반도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려고 하는 역사의 현장입니다. 

 

9. 역사에는 단절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과거 조선 왕조 당시의 과오가 원인이 되어 초래된 결과입니다. 조선 왕조는 학문을 숭상한다고 하면서 사실은 신분차별과 인권유린, 권문세가의 기득권 옹호로 나라의 공동선을 소홀히 함으로써 천주교를 박해하고 열강의 침략을 자초했고, 일본제국주의 세력에게  나라를 빼앗겼으며, 식민통치를 받은 후에는 미국의 힘으로 반쪽의 광복을 맞이한 대가를 오늘날까지 톡톡히 치르고 있습니다. 

 

10.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은 과거와 다릅니다. 경제력이나 외교력, 군사력 같은 힘도 키웠지만 무엇보다도 나라의 공동선과 인간의 양심이 지닌 가치를 아는 국민의 힘이 커졌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과거처럼 우리의 운명을 남들이 마음대로 결정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부당한 도발을 해 오는 일본 아베 정권에게 추상같이 단호해야 하고, 거의 무한의 갑질 행태로 한민족의 미래를 칼질하려 드는 미국 트럼프 정권에게는 슬기롭게 잘 구슬러서 우리 민족의 미래를 인간 양심과 사회 공동선의 진리에 따라 건설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답답하고 한심한 노릇은 일본과 미국의 힘에 기대어 우리 사회에서 기득권을 쌓아올리면서 독재에 부역하던 무리들이 보여주는 저항입니다. 이들에게는 기미 독립선언 당시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이었지만 70년 전 반민특위법정에서 재판을 받으면서 자신의 친일행각을 참회하던 최린이, 그래도 변명으로 일관하던 친일작가 이광수에게 일갈했던 말이 어울립니다. “그 입, 다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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