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파스카를 위해 필요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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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파스카를 위해 필요한 일 

 

창세 18,1-10ㄴ; 콜로 1,24-28; 루카 10,38-42

연중 제16주일; 2019.7.21.; 이기우 신부

 

1.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을 묵상하는 사순 시기와 부활 시기가 그분의 삶에서 이루어진 파스카의 신비를 묵상하는 시기라면, 지금 우리가 16주째 지내고 있는 연중 시기는 성령을 받아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으로 파스카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시기입니다. 지난 주일에 강생의 신비와 관련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한 데 이어서 오늘은 부활의 신비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해 보겠습니다.  

 

 

2. 제1독서인 창세기 18장의 말씀은 젊은 시절에 오로지 하느님의 부르심만 믿고 길을 떠나 낯선 땅에서 살다가 이미 늙은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천사들을 맞이하고서 그토록 기다리던 아들이 태어나리라는 소식을 전해들은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루카복음 10장의 말씀은 부활의 신비가 지닌 일상적인 측면을 묵상하기에 더 없이 좋은 내용입니다. 절친한 벗으로서 가깝게 지내던 라자로의 집은 베타니아에 있었고, 복음선포 활동에서 지치실 때마다 이 집에 들르곤 하던 예수님께서는 라자로의 두 동생인 마르타와 마리아의 시중을 받곤 하셨는데 마르타의 음식 시중도 마리아의 말씀 시중도 다 필요하다고 일깨워주신 내용입니다. 그런가 하면 제2독서인 콜로새 편지 1장에서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무지무지한 고생을 온 몸으로 겪고 있던 사도 바오로가 자기 자신이 겪고 있던 그 고생의 의미를 깨닫고 고백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겪으셨던 고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자기 몸으로 채우고 있다고 깨달았다는 매우 절제된 겸손의 표현으로 고백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십자가로 인한 부활의 신비를 남김없이 증거할 수 있었습니다. 

 

3. 하느님께서 개입하시고 그분이 보내신 메시지가 부활 신앙의 출발점이라면, 말씀에 대한 집중과 사람에 대한 봉사로 살아가는 리듬이 부활 신앙의 경로일 것이고, 그로 인해 겪게 되는 고통이 주어진다 해도 그 의미를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할 수 있어야 하는 영성이 부활 신앙의 희망이라는 것이 오늘 말씀의 흐름입니다. 

 

4. 그리스도 신앙이 계시받은 진리는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강생의 신비와 사람으로 오신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살아나신 부활의 신비로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계시인 까닭에, 그 이전의 인류 역사에서는 강생이라든가 부활에 대한 관념조차 없었습니다. 지구상에 생명체가 출현하고나서 오랜 기간에 걸쳐 진화해 온 인류는 의식이 정점에 달한 신석기 시대에 이르러서야 죽음 이후의 내세와 영혼의 존재를 어렴풋이 깨닫게 됩니다. 그 흔적과 증거가 사람이 죽으면 매장을 하는 풍습이 어느 덧 새로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인간 의식이 언어와 문자를 발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도구와 집단생활양식을 발전시키면서 문명이 생겨나기 시작할 무렵에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하셨으니, 그 첫 인물이 아브라함입니다. 인류가 형성한 다양한 종교 풍습 가운데에서 인격적인 존재로서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신 계시는 아브라함 이래 형성되어 온 유다교가 처음입니다. 

 

5. 인격적 유일신의 존재를 믿어 온 유다교에서 하느님께서 온전히 다스리시는 내세의 영원한 생명, 천국과 지옥에 대한 계시 그리고 무엇보다도 메시아에 대한 계시가 예언자들에 의해 어렴풋이 전해져오다가, 그 내용이 실제로도 온전히 밝혀지게 된 사건이 예수님의 탄생과 공생활 그리고 부활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 의해서 밝혀진 신앙 계시 진리를 전해주는 신약성경 특히 복음서들이 전해주는 메시지는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셨고, 사람이 되어 오신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공생활은 부활하시기에 이르는 과정으로서의 의미만 지니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느님 나라의 삶을 살아가신 부활의 삶으로서 더 큰 의미를 지닙니다. 그분은 당신이 살아보지 못한 하느님 나라를 약속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께서 살고 계시는 하느님 나라의 현실을 보여주시기도 하셨고 초대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봉사와 관상, 실천하는 행동과 말씀에 집중하는 기도이며, 또한 그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부활의 생활양식입니다. 

 

6. 오늘 복음의 본문을 읽으면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두둔하시고 마르타를 야단치신 것처럼 알아들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빠 라자로의 죽음에서 예수님을 맞이하면서 부활 신앙을 고백한 인물은 마리아가 아니라 마르타였습니다. 마르타가 말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는 근거입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복음선포 활동에서 지치실 때마다 라자로의 집에 들르실 때마다, 혼자서가 아니라 제자들을 동행하여 들르셨을 터이므로 열두 명도 더 넘는 장정들을 대접하는 시중이 마르타 혼자서는 여간 벅찬 일이 아니었으리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고 또한 마르타가 음식 시중을 드는 일에 있어서는 제법 솜씨가 있는 여성이었을 것으로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는 음식 시중만 필요하셨던 것이 아니라 군중을 상대로 복음을 선포하실 때마다 말씀을 알아들을 귀가 없거나 부족한 사람들을 워낙 많이 겪으셨기 때문에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알아듣는 사람도 절실히 필요로 하셨습니다. 말씀 시중이 마리아에게는 물론 예수님께도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7. 마르타가 보여준 음식 시중을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행동으로 알아들을 수 있다면 마리아가 보여준 말씀 시중을 하느님께 기도하는 행동으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이는 두 자매에게 가르쳐주시기 이전에 이미 예수님께서도 평소의 생활에서 보여주신 리듬입니다. 그분은 찾아오는 사람들의 요구에 응답하느라 분주하셨지만 때가 되면 어김없이 하느님 앞에 홀로 남아서 기도하시곤 하셨습니다. 중요한 가르침은 제자들에게만 따로 가르치기도 하셨고, 중요한 일을 앞두고서는 반드시 기도하며 하느님의 뜻을 여쭙고 그 기운을 채우셨습니다. 겟세마니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바치신 그 처절한 기도를 상기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해야 할 만큼 처절하셨던 그러나 그로 인해 하느님의 넘치는 기운을 받으셨던 예수님의 봉사와 관상은 부활한 생활양식의 표준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8. 오늘 제1독서에서 아브라함은 우상을 숭배하던 문명의 한복판에서 살다가 그곳을 떠나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고 가나안 땅으로 온 지 수십 년 만에 하느님 천사들의 방문을 받았습니다. 부르심에 응답하고서도 추가적인 하느님의 이끄심이 끊어졌다고 여길만한 오랜 세월 동안에도 하느님께 행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끈질기에 기다린 그의 믿음이 돋보이는 대목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천사들에게 극진한 대접을 했습니다. 발을 씻을 물도 주었고, 구운 빵과 부드러운 송아지 고기요리도 내놓았고 우유까지 차려 놓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아브라함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식, 아들을 낳으리라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9. 이러한 아브라함의 고사(古事)는 부활 신앙으로 봉사와 관상의 생활양식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성체성사를 연상시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이들에게 부활한 삶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남겨주신 유산인 성체성사는 그분의 삶과 메시지를 기억하여 계승하라는 메시지를 기쁜 소식으로 듣는 기회입니다. 그래서 밀가루로 만들어진 빵과 포도를 빚어 만든 포도주가 부활로 이끄는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 되는 실로 신묘한 영적 잔치가 벌어집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기다려서 천사들을 잔치음식으로 대접하여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듯이, 믿음을 간직하고 성체성사에 참여한 그리스도인들도 그분의 파스카를 계승하라는 기쁜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성체성사는 전례로 재현되는 하느님의 개입이요 천사의 전갈입니다. 또한 성체성사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십자가 희생을 다짐하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소아시아와 그리스 땅에까지 전하느라 온갖 고초를 다 겪어야 했던 사도 바오로가 그러했듯이, 그리스도인들도 자신이 짊어져야 했고 또 짊어지고 있는 십자가의 의미를 예수님 안에서, 특히 파스카의 사명 안에서 찾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바오로는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교회를 위하여 몸으로나 마음으로 채우고 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10. 부활은 부활대축일이나 부활 시기에만 기념해야 하는 신비가 아니며, 일 년 내내, 더 나아가서는 온 생애 동안에 실천되고 재현되어야 하는 진리입니다. 그런데도  부활한 삶의 양식을 모르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내세를 모르는 듯이 마냥 욕심을 부리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시대와 때를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습니다. 그래서도 필요한 것은 부활 신앙에 따라 성체성사에서 하느님의 개입과 파스카의 메시지를 기억하며, 봉사와 관상의 리듬을 지키면서, 주어진 고난을 예수님의 모자란 고난을 채우는 십자가로 받아들일 줄 아는 그리스도인들의 부활 증거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부활 신앙의 증거로 파스카의 길을 걸어감으로써 정의와 평화, 사랑과 진리가 충만한 하느님 나라를 현세에 앞당겨 세워서 우리 민족이 진정한 문명시대를 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파스카를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일은 부활 신앙으로 봉사하며 기도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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