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왜 하늘을 쳐다 보고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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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왜 하늘을 쳐다 보고 있느냐?”

 

사도 1,1-11; 에페 1,17-23; 루카 24,46-53

주님 승천 대축일; 2019.6.2.; 이기우 신부

 

1.오늘은 부활 시기의 막바지에 들어선 주님 승천 대축일입니다. 승천 대축일의 전례는 예수님께서 하늘에 오르셨음을 알리면서 믿는 이들 모두가 그분을 따라 하늘에 오르리라는 메시지를 선포하는 교회의 공식 복음선포입니다. 

 

 

2. 현대인들에게 하늘은 무엇입니까? 지구에서 인간이 쏘아올린 로켓 위성이 우주 공간을 휘젓고 있는 이 과학 시대에 하늘은 더 이상 신비의 영역이 아니게 된지 오래입니다. 달나라에서 옥토끼가 방아를 찧는 동화 속의 낭만은 벌써 진작에 사라져버렸습니다. 현대인들에게 하늘은 더 이상 미지의 영역이 아니라 높이와 거리가 문제일 뿐 눈부시게 발달한 과학기술로 얼마든지 도전할 수 있는 만만한 영역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에 와서 하늘은 어린이와 시인이 그리는 상상의 세계에만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도 교회와 신앙인들은 하늘에 계신 하느님을 부르고, 승천하신 예수님을 선포합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3. 성서가 쓰여진 시대에 하늘은 땅을 감싸고 굽어본다는 의미에서 보편적인 공간이었습니다. 땅에는 지상의 강자들이 약자들을 억압하고 못살게 굴지만, 하늘에는 그 모든 땅의 죄악을 굽어보시는 하느님께서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지상의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하늘로부터 다스림의 권위를 받았다고 우기고 있었지만, 대다수 민중은 하느님께서는 어느 특정한 땅이 아니라 모든 땅을 초월하는 하늘에 계셔야만 한다고 믿었습니다. 물리적인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영적인 차원에서도 하늘은 불평등이 아니라 평등을, 차별이 아니라 존중을, 강자 편이 아니라 약자 편을 들어주시는 신성한 공간이자 영역이었던 겁니다. 이 때문에 현세에서는 땅의 지배자들이 판을 치지만, 죽음 이후의 내세에서는 그 지배자들이 패배하고 오직 하느님만이 다스리시는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하느님께서 다스리시는 세상을 하늘 나라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하늘은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하느님의 세상을 뜻했습니다. 이런 관념은 현대인들의 사고방식 안에도 여전히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사람이 죽어서 세상을 떠나면 막연하게 좋은 데로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늘 나라로 갔을 것이라고 말들 하지요. 실제 영적 운명 현실과 상관없이 단지 희망사항의 투영으로도 이렇게 하늘을 소환하는 것이 과학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의 정서적 현실이기도 합니다. 고대인들인 성서에 남겨놓은 하늘에 관한 이해가 영적인 관점에서 현대인들에게도 남아있는 흔적입니다. 

 

4. 전례력에서 부활 시기에 승천의 신비를 도입한 배경은 하늘에 관한 성서의 이해 위에서,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통해 부활의 신비를 승천과 성령 강림으로 설명하고자 했던 루카 복음사가의 시청각 교육적 의도가 반영되었기 때문입니다. 루카는 본시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드러난 예수님의 신성을 가시적이고 시청각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신비이지만 보이는 것처럼 하늘로 올라가시어 현양되셨다고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야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실패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비천한 십자가 죽음으로 세상을 떠나신 예수님의 신성을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분으로 소개하기가 쉬울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르코나 마태오가 같은 의도에서 간단하게 언급했던 그분의 승천을 사도행전에서 본격적으로 하나의 사건처럼 다루었고 그렇게 해서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께서 지상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당신의 성령을 내려 보내시는 구도로 기획을 했습니다. 그것이 오늘 제1독서의 사도행전 첫 머리에서 그분의 승천이 언급되는 첫 번째 까닭입니다.

 

5. 승천은 본래 예수님께서 계셨던 자리로 되돌아가시는 사건이자 또한 그분이 살아오신 생애의 진면목을 알아보게 해 주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십자가 죽음으로 마쳐진 예수님의 생애가 멀리는 탄생 사건에서부터, 그리고 가까이는 공생활의 시작에서부터 전개되었는데, 이 생애의 품위와 품격이 실로 천상적인 것이었음을 일깨워주려는 것이 성서의 승천 기사가 쓰여진 두 번째 의도였다는 뜻입니다. 단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에 부활하셨다고만 전하면, 그분이 하늘로 오르셨다는 메시지는 전달할 수 있어도 그분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하늘로 데리고 올라가시려는 메시지는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상 예수님의 삶은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공생활의 시작에서 성체성사의 제정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다 당신을 믿는 이들로부터 시작해서 인류를 하늘로 데리고 올라가시려는 구원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천상적인 품위와 품격을 지닌 그분의 전 생애가 그분을 믿는 이들의 삶도 천상적으로 이끄시려는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따라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승천은 부활의 완성이며 특히 우리의 부활을 위한 것입니다. 

 

6. 그러므로 승천 대축일의 메시지는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하늘을 쳐다보는 데 있지 않으며, 정서적 영역으로서의 하늘을 죽은 후에 가기를 바라는 것도 그 취지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믿는 이들도 살아있는 동안에 이 땅에서 천상의 품위와 품격을 갖춘 삶을 살아감으로써 죽어서도 하늘에 오르게 하려는 것이 승천 메시지의 핵심입니다. 우리를 하늘로 데려가시기 위해서 그분이 먼저 하늘에 오르셨습니다. 

 

7. 그래서 제1독서로 들으신 사도행전 1장에서는 승천하시는 예수님께 관해서 보도하면서도 천사들이 나타나서 사도들에게 두 가지 지침을 주었습니다. 첫째는 하늘을 쳐다보지 마라 하는 것과, 둘째는 그 대신에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던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니 기다려라 하는 것입니다. 

 

8. 여기서 천사들이 전해 준 두 번째 지침이 무슨 뜻인지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던 모습으로 다시 오시는 모습도 두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시던 모습이라고는 그분이 십자가에 높이 달리셨을 때의 모습밖에 없기 때문에, 승천하시던 모습의 실제 모습은 십자가에 달리신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생전에 니코데모를 만나신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구리뱀이 광야에서 모세의 손에 높이 들렸던 것처럼 당신께서도  높이 들리실 때라야 사람들이 당신의 참모습을 알게 될 것이고 따라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라고 가르치신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 구리뱀이 높이 들렸던 것처럼 높이 들리실 때라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를 뜻합니다. 사람 키보다도 훨씬 더 높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분은 올리브 산꼭대기에서는 물론 예루살렘 어디에서나 다 쳐다볼 수 있는 높은 위치에 들리셨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그리스도께서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십자가는 부활이요 또한 승천입니다. 

 

9. 다른 하나는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성령을 보내시는 모습입니다. 성령께서는 예수님의 영이시기 때문에 승천하신 그분이 보내시는 영도 역시 하늘에서 내려올 수 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사도행전의 보도에 따르면, 예수님의 승천을 목격한 사도들이 곧 이어 성모 마리아를 중심으로 모여서 기도하고 있을 때 성령께서 바람과 불혀의 형상으로 내려 오셨습니다. 이 성령 강림을 체험한 사도들은 이전과 달리 비겁하게 도망치려는 생각이 사라지고 죽기를 무릅쓰고 담대한 믿음으로 복음을 선포할 수 있는 용기를 마음속에 품게 되었고, 또한 쓰는 언어가 달라도 아무 문제 없이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담대한 용기가 박해의 상황에 대비한 성령의 은사라면, 언어를 뛰어넘는 의사소통의 능력은 온갖 언어를 쓰는 세상 만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는 성령의 은사입니다. 

 

10. 이 두 가지 모습을 종합해 보면, 성령의 기운을 받아서 우리가 사랑의 십자가를 짊어질 수 있을 때 영적으로 높이 들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십자가는 하늘로 올라가는 사다리와도 같습니다. 사도 바오로가 에페소 공동체의 교우들에게 강조했던 바, 지혜와 계시의 영이 여러분에게도 내리시면,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시고 하늘에 올리시어 당신 오른쪽에 앉히신 하느님께서, 여러분 안에서도 그 능력을 펼치시어 썩어 없어질 수밖에 없는 세속적인 삶을 벗어나 영원히 빛나는 천상적인 삶에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의 눈을 하느님께서 밝혀 주시면,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 아래 굴복시키시고 만물 위에 계신 그분을 교회에 머리로 주신 하느님께서, 여러분도 천상적 품위를 갖춘 그분의 몸으로 삼아 주셨음을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머리로 하는 몸이 되어 하느님께서 그분에게 주시는 상속을 따라 받을 수 있게 되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되어 우리네 신앙과 인생으로 이미 이 세상에서 하늘을 꾸미고 살아갈 수 있다는 엄청난 희망을 실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늘의 시민이신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여기가 바로 하늘입니다. 지상에서 속물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물들어 세속적으로 살아가지 마시고 하늘에 오르신 그분을 따라서 천상적 품위와 품격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지상에서 하늘을 미리 사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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