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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1951.6.27? 피난지 부산 대청동 건물 정원에서

1951년(설립제19주년) 6월 27일(수) 제11회 첫서원식 3명 - 김 사베리아 수녀, 김 에우카리스타 수녀, 임 아가다 수녀
서원 1년 갱신: 제1회 첫서원 수녀 5명 - 강 베드로 수녀, 와타나베 파물라 수녀, 허 코오르 수녀, 이 앙네스 수녀, 오 다위 수녀(종신서원 3차 연기).

3줄 : 이 안드레아 수녀? 강 벨라뎃다 수녀, 강 루갈다 수녀, 김 에우카리스타 수녀? 
2줄 : 홍 글라라 수녀, 오 다위 수녀, 이 바오로 수녀, 강 베드로 수녀, 황 카타리나 수녀
1줄 : 김 프란치스카 수녀, 변 헬레나 수녀, 김 릿다 수녀, 임 아가다 수녀, 김사베리아 수녀, 이 앙네스 수녀

1951년(설립제19주년)

1. 남하한 회원: 20명(서원수녀 17명, 수련자 3명)

  강 베드로 수녀, 도변 파물라 수녀, 허 코오르 수녀, 이 앙네스 수녀, 김 프란치스카 수녀, 이 바오로 수녀, 윤 골롬바 수녀, 김 릿다 수녀, 홍 글라라 수녀, 이 아녜 수녀, 오 다위 수녀, 이 안드레아 수녀, 박 가리따스 수녀, 변 헬레나 수녀, 강 벨라뎃다 수녀, 황 카타리나 수녀, 강 루갈다 수녀

수련자 김 사베리아 수녀, 김 에우카리스타 수녀, 임 아가다 수녀

2. 남하하지 못한 회원: 12명

장 악니다 수녀(M.M., 피랍), 서 요셉 수녀(피랍), 이 알로이시아 수녀, 나 말가리다 수녀, 이 데레사 수녀, 박 데레시다 수녀, 장 임마꿀라따 수녀, 주 엘리사벳 수녀, 임 젬마 수녀, 고 비안네 수녀, 김 글로리아 수녀, 수련자 전 막달레나 수녀

3. 남한에서의 소임

- 생계를 위한 바느질, 수공예
- 전쟁 이재민 구호사업(세탁소 등)

 

재건기(1950~1960)
1950년 12월 2일 안(G.Carroll)교구장의 도움으로 17명(수련자 1명 포함)의 수녀들은 평양 상수구리 모원을 떠나 12월 3일 서울에 도착하여 명동 사르트르 성 바오로의회 수녀원과 친가에 5일간 체류한 다음 다시 12월 7일에 서울을 떠나 12월 9일 부산 대청동 메리놀 수녀원에 도착하였다. 그 후 12월 16일까지 남하한 회원들을 포함하여 서원 수녀 17명과 수련 수녀 3명은 다른 피난민들과 함께 부산에서 피난 생활을 시작하였다.
6.25 전란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메리놀 회 수녀들이 사용하던 대청동 건물에는 본회 회원들 외에도 함께 간 갈멜 수녀들, 성 골롬바노 회 신부들, 파리 외방 전교회 신부들과 다른 피난민 가족들로 인해 매우 협소했다. 골롬바노 회 신부들은 본회 수녀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주방과 연결된 작은 방 2개를 쓰게 된 17명의 수녀들은 밤이면 주방과 통하는 1m 넓이의 마루까지 나와서 잠을 잤다. 물론 침구도 넉넉할리가 없었다. 매트리스를 가로로 놓고 평양에서부터 가지고 온 담요와 홑이불 등을 3,4명이 함께 사용하였다. 그래도 자리가 모자라 어떤 수녀는 갈멜 수녀들이 기거하는 방에 가서 밤을 지내고 오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성체를 모시고 지낼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위안이었다.
<수도회 50년사 1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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